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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둘째 놈은 지금 떠난다
김 익 하
성계(成鷄)가 모이를 모조리 먹었다고 갇혀있던 어린 닭은 닭장에서 달아났다.
닭장에서 빠져나온 어린 닭은 헛간 옆에 세워둔 쟁기 보습 끝에 앉아 성장의 깃발인 볏을 보란 듯 까닥까닥 흔들었다. 그놈이 두 다리로 버티고 서있는 보습은 땅을 뒤진 지 이미 오래되어 흙마저 털어내고 농기구가 아닌 듯 뻘건 녹만 뒤집어쓴 채 민속 골동품인 체했다. 소 엉덩일 밧줄로 신바람 나도록 휘두들기며 이랑 긴 밭고랑을 타본 지 한일석(韓一錫)은 기억에도 가뭇했다.
한일석은 주변을 부산하게 두리번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물건들이 모두 한 손으로 쥐어 던질 수 없도록 큼직큼직한데 가장 만만한 건 운동화 짝뿐이다. 유일한 공격 무기인 그것을 한일석은 목표물에 겨냥하여 힘껏 내던졌다. 보습 끝에서 어린 닭과 운동화 짝이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어린 닭은 운동화 짝보다 날개가 있어 더 멀리 날아갔다. 운동화 짝에 빗맞은 뒤 어린 닭은 기가 꺾이긴커녕 주눅도 들지 않았음을 시위 나 하듯 다리까지 빗겨 내디뎌 꽁지를 뒤꼬아 걸으면서 골골댔다.
-골, 골, 골.
“이 망할 놈의 달구 새끼가?”
한일석은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어린 닭에게 빈 주먹질만 두어 번 허공으로 내지르긴 했으나 뒤미처 쫓지는 않았다. 닭장에서 튀어나온 까닭을 보면 억지로 잡아들이지 않는 한 모이가 없는 닭장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지 않을 게 자명했다. 그러나 어린 닭은 한 치 앞도 모르고 있었다. 닭 냄새를 맡아가며 닭장 주위로 감돌아드는 들고양이 야욕까지 어미에게서 들은 바 없을 테다. 한일석에게는 틈틈이 어린 닭을 해치는 들고양이의 왕성한 육식에 신경을 쓰긴 했으나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미루어 두었다. 그때그때 일일이 챙기기에도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성가시기 때문이다.
-골, 골, 골.
울화를 어린 닭에 빗대 풀어보려 했던 한일석의 계산은 애당초에 벗어나 있었다. 울화의 근원 제공자는 엉뚱하게도 마을로 멧돼지라도 내리 덮치면 함께 나서 목숨까지 내걸고 무찔러야 할 동갑내기 장봉대(張鳳大)였다. 지금껏 외세의 침공에서는 그와 혈맹 동지 관계를 철저히 유지해 왔다.
“자네가 판 그 땅 이번에 매수에 들었네그려.”
마을에 남아있는 둘 가운데 한 집 바깥양반인 장봉대가 묻지도 않은 일을 입에 올렸다. 제 딴에는 자랑하고 싶어 입이 심하게 근질거리는데 마을에 딱 네 사람, 두 여자를 제외하며 한일석뿐이니 부득이한 선택이긴 했다. 장봉대가 그 유일한 대담자를 향하여 자가발전할 도리밖에 없었던 심경이야 모르진 않았다. 뱉고 싶은 말을 입안에 두면 썩지는 않을 테지만, 옛말이 그러하듯 입 싼 사람에게는 하고 싶은 말은 마려운 용변보다 참아내기 더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장봉대가 입에 올린 땅이란 새로이 개발된 석회석 채취용 석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가로놓인 천 평 남짓한 밭을 이룸이다. 월남 파병에서 다리를 다쳐 보상금으로 마련한 땅인데, 춘파기(春播期)에 씨앗을 넣고자 쟁기만 들이대면 돌멩이와 부딪치는 쇳소리가 먼저 들려서 돌 골라내기에 해거름 지웠던 박토였다. 그런데 그 땅이 이제 엉덩이 살마저 쭈글쭈글한 장봉대에게 돈방석에 앉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밭일에 힘이 부친다고 하더니만 썩 잘 되었구먼. 받을 만큼은 받은 겨?”
“섭섭지 않게는 뭔가? 두 배가 아니라 왕창 더 받았다네.”
밭을 팔아 거금까지 움켜쥐어 얼굴보다 입이 더 짝 벌어진 장봉대를 바라볼수록 한일석은 싸하니 저며오는 아픈 배로 얼굴을 꾸겨야만 했다. 더군다나 그 땅의 내력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어제 삼켰던 음식까지 토할 만큼 부아가 터럭 끝까지 치닫기 때문이다.
큰놈은 단 한 뼘이 모자라서 늘 턱걸이 인생을 산다고 아비인 한일석의 앞에서 들이대고 노골적으로 원망을 토로했다. 제 딴은 취업 전선에서도 그랬고 바늘구멍처럼 뚫고 들어간 직장의 승진에서도, 배필을 고르는 짝짓기에서도 숙지는 한 끗발 때문에 끝내 패(牌)를 던지곤 했단다. 대학 문전만 갔었어도 패를 던지지 않았다면서 사내자식 놈이 마신 소주 빈 병을 베고 누워 슬피 울었다는 소리를 제 어미에게서 전해 들은 한일석은 뒷골까지 빳빳하니 당겼다.
자식의 그런 꼬락서니를 여러 번 본 한일석 속은 삶은 감자 속이 숟가락 날로 우벼 파이듯 겹겹이 무너져 내렸다. 큰놈이 베고 누운 소주병보다 열 배나 더 마시고 엎어져 통곡해도 아비로서 의무를 다하긴커녕 시궁창에 떨어져 너덜거리는 체면조차 제대로 건져낼 수 있을는지 몰랐다.
큰놈은 현실에서 이리저리 내몰리다가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떠돌더니 자동차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배 아파 낳은 어미에게 수고의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굵은 가시로 가슴에 생채기만 쫙 그어놓고 어지럽게 세상살이하다 장례 차량에 누워 화장장으로 갔다. 아비 입장에선 그것이 보리밭 깜부기와 같은 인생이라 생각하니 어귀가 막혀 까닭을 묻는 이웃들 말에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결코, 모자라는 배움은 삶의 도구를 뛰어넘어 죽음으로 연결되는 끈이 된 셈이다. 그러니 한일석 한은 키만큼 쌓이고도 남을 만했다.
둘째 놈이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일석은 큰놈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몇 며칠 벼르고 별러 모진 결심을 해야 했다. 집안 형세에 눈을 감고 아내 말림에 귀를 틀어막아 가며 천 평이나 되는 그 밭을 장봉대에게 속는 셈 치고 팔았다. 둘째 놈을 대학으로 보내기 위하여 도적질과 오입질을 빼고 할 짓은 다 하리라 이미 작심한 한일석은 고심 끝에 내린 단안이었다. 그런 사단으로 넘어간 땅이 장봉대에게 돈벼락을 안겼으니 입 싼 사람도 할 말이 없었다. 더구나 15년 남짓 채 지나지 않았는데 코앞에서 거름 한 번 제대로 넣지 않고 심어놓은 작물이 되면 거두고 안 되면 갈아엎어 메밀이나 풀어 거두던 땅이 코 한 번 풀지 않고 몇십 배로 튕겨서 횡재했다니 처지를 바꿔 생각해도 혈압이 올라 뒷골이 당겨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밭을 판 돈으로 대학까지 마친 둘째 놈은 큰놈과 달리 한 끗발 나아졌는데도 외로 꼰 새끼줄처럼 운이 바로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는데 생각을 바꾸지 않고 어쩔 거냐고 옆에서 주는 퉁바리 맞으면서도 한일석은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야바위판에서 주머니 털리고 병신 머저리란 소리까지 등 뒤로 들어가며 멱살잡이로 쫓겨난 기분이 이런가 싶었다.
어디 어디 이력서를 넣었다는 소리만 무성하게 들리고 뒷자리는 꿩 꾸어 먹은 듯하자, 궁금증과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당장 한바탕 하려는 듯 한일석은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아, 어떻게 된 겨?”
“오늘내일 연락이 올 것 같아요. 아빠.”
“열흘 전에도 오늘내일이 아니었남?”
오늘내일이 이쪽저쪽에서 그 길이가 서로 달랐다. 기다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한일석은 들었던 소리를 또다시 듣고 있자니 속에서 생솔가지 타는 냄새가 났다. 해서 전화를 끊으려는데 둘째 놈의 목소리가 전화기 속에서 튀어나왔다.
“조금 더 기다려보세요. 아빠.”
파랑주의보가 내려진 선착장에서 도선사(導船士)한테 출항을 물어 그 대답을 들을 때처럼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키를 보건 덩치를 보건 아비보다 더 큰 놈이 내뱉은 ‘아빠’란 말의 울림이 역 앞에다 앵벌이로 보낸 아이의 목소리를 연상시켰고, 뒤미처 제 어미 젖가슴에 묻혀 놀소리하던 때의 모습으로 다가들어 귓가가 사뭇 어지러웠다.
한일석은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이의 처지를 생각해 썩은 참나무 토막에다 박아 넣은 종균(種菌)에서 버섯을 기다리듯 좀 더 참아보기로 작정했다. 제 딴에는 시계추처럼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다. 노 젓는 사공에게 뱃길을 몰아쳐 독촉하면 배가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던 탓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TV를 켜 든 신문을 펴 든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모자란다고 했다. 그러나 한일석 귀에는 그 뉴스가 한 번 더 꺾여 아예 일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망아지도 말뚝에 묶어두면 솟구치는 힘을 발산하지 못해 껑충껑충 뛴다는데, 손발이 자유롭게 풀려있는 젊은이의 솟음치는 기백은 어디에다가 어찌할까 싶었다. 그도 못해 어깨가 좁혀 들어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풀 죽은 모습은 또 어떻게 지켜볼 것인가. 생각하면 벽장에 갇혀 문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벽에다 주먹을 말아 쥐고 피나도록 치는 기분이다.
한일석이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묻어나와 일손이 풀려있는데 둘째 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한일석은 때가 된 듯싶어 애써 침착하려고 느릿한 목소리를 전화기에다 천천히 집어넣었다.
“아빈 겨. 차분히 말혀 봐. 들을 겨.”
한일석은 제 목소리가 꾸밈이 그럴싸하다고 여겨지자 소리 내지 않고 꺼멓게 보이는 치석까지 드러내며 씩 웃었다.
“아빠 그게 있잖아요. 대한 그룹에 이력서 넣은 거요.”
“아 그래 그랬지. 내가 전번에 얘기 들은 것 같혀. 그래 초봉도 많다는 그 회사 드디어 합격한 겨? 허. 허. 허.”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무턱대고 덥석 안을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한일석은 밭일을 나간 아내까지 불러다 둘째 놈의 얘기를 같이 들으면서 고막이 터지도록 만세라도 부를 심경이었다. 참으로 푸른 하늘을 향하여 두 팔 번쩍 들어 올려 목이 터져나가도록 소리치며 만세를 불러본 지 언제였던가. 이게 바로 가뭄 땅에 하늘이 알아서 때맞춰 제꺽 내려준 단비 같은 게 아니고 뭔가.
“아빠, 그게 아니고요. 오늘 친구한테는 합격통지서가 왔는데 저는 오지 않았어요. 그러니…….”
둘째 놈의 목소리는 점점 졸아들어 입안에서 씹히더니만 나중에는 소멸하여 한일석 귀에도 전해지지 않았다.
“무슨 말인 겨? 너는 떨어지고 걔는 들어가게 됐다, 그런 겨? 그 친구는 어떤 놈인 겨?”
“입사시험에 죽을 쑤었다고 나에게 그랬는데, 걔 아버지가 그 회사 노조 간부거든요.”
둘째 놈 목소리는 분함에 떨리고 있었다. 운동회에서 달리다가 코너에 박힌 깃대에 발이 걸려 넘어진 아이 때 둘째 놈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했다. 넘어져 분통이 터진 둘째 놈의 양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운동장은 엇비슷하니 기울어져 보였다고 했든가. 간신히 일어난 둘째 놈의 눈에 그 운동장이 어지러워 보여 내처 뛰려던 아이가 제 아비가 보는 앞에서 또 쓰러질 때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라 보였다.
“아, 시방 뭔 소리인 겨?”
그렇게 묻고 나니 속에서 뒤받쳐 오르는 감정이 왈칵 일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어 뒷말을 잇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그럼 아버지가 그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평생 그놈 회사에 입사도 못 한다는 소리가 아닌 겨?. 아,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 겨. 사장 아들은 손끝 하나 까닥 않고 회삿돈을 히로뽕 피우는데 퍼질러 쓰고, 노조 간부 아들이라서 그냥 회사에 들어가고. 허 참, 내 이놈의 회사 물건을 앞으로 사나 봐라. 산다면 성을 갈 겨.”
전화기에다 괌을 쳤지만, 속이 대통처럼 시원하게 뻥 뚫리지 않았다. 주변으로 손을 뻗어보았으나 허공이라 마땅히 잡아 쥘 손잡이도 없었다. 쌈판에 끼어들었다가 곤죽이 되도록 흠씬 두들겨 맞고 고소도 하지 못하고 돌아온 아들 꼴을 보는 기분이다. 그놈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 개인에 소용되는 게 아니어서 사 본 적은 없지만, 세상인심이 참으로 야박하고 고약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절로 나왔다.
“아빠, 죄송해요.”
“죄송할 게 없는 겨. 제발 용기를 잃지 말아야 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음, 전화 혀.”
말을 하는데 ‘제발’이라는 말에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목구멍을 막아 더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일을 잊으려고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철 이른 농사일도 해보고 장봉대를 불러 소변까지 질질 흘릴 만큼 술도 마셔봤지만, 마냥 꿈길에 서방 만난 꼴이었다. 한때 뜸했던 터라 오늘일까, 내일일까 기다리고 있는 참인데 마침 때 맞춰 둘째 놈한테서 전화가 왔다.
“응, 아빈 겨. 말혀 봐 취직된 겨?”
“아빠, 그게 아니고 이제 큰 회사는 끝났고 2군 업체를 알아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잘될 거예요.”
목소리에는 총상을 입은 후유증을 앓듯 기가 꺾여 있었으나 서른을 갓 넘긴 아들이 칠순에 이른 아비보다 체념도 빠르고 소견도 너르며 자세마저 여유가 있는가 하면 안목 또한, 깊었다.
“그랴. 생각 잘헌 겨. 물도 개천 바닥 따라 흐르는 게 순리여. 눈높이도 조금 낮춘 것도 잘헌 일 같구. 용기를 잃지 않은 게 이 아비가 봐서 그중 젤 잘헌 일 같혀.”
그러나 둘째 놈은 2군을 지나 3군에서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전했으나 벌어진 뒷일을 꿰맞춰 보면 한일석 느낌에는 4군에도 못 미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명절이나 생일을 맞는 날 올 때마다 다니는 직장이 달랐다. 이유인즉 인원 감축에 걸리고 외국 노동자에 밀리며 사장이 달아나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어 갈 수밖에 없었노라 했다. 똑똑하건 어리숙하건 그 올가미에 걸려들면 제 것이 없는 자는 헤어 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 펄로 이루어진 수렁이라 했다.
남의 주머닛돈을 손안에 넣기가 쉽기는 한가. 주머닛돈을 가진 자가 모든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판세에서 부당함을 호소한다는 일은 먼 산을 보고 짖어대는 개 울음만도 못했다. 한일석의 상식 기준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옛적에는 일하기 싫어 도망간 공노비나 사노비를 잡으려 추노(推奴)를 보냈지만, 요즘에는 종업원들의 급여를 떼먹고 사무실에 버티고 앉아 내 목 베 가시오 하는 사장을 경찰도 그렇고 검찰도 그렇고 모르는 체하고 그냥 버려두는 나랏일이 이상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이상한 나라에 살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둘째 놈이 결혼비용 때문에 간다 못 간다 하면서 다툰 후유증이 깊다 보니 5년 새에 아이를 셋 불려 식구가 다섯이 되어서야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들 하나에 딸 하나 더 나으려고 한 게 쌍둥이 딸이 태어났다. 아비가 집을 전세 얻어주고 어미가 반찬을 공급하는 시대라지만, 요즘 출가외인은 딸이 아니라 아들이다. 전화하면 십중팔구 돌아오는 답변은 살맛 난다는 소리는 없고 툭하면 아이들이 아프다 하고 며느리가 힘들어한다 했으며 더 물어야 살림의 형세를 은연중 드러냈다. 전화하면서도 전화기를 개천에다 던져버리고 싶도록 답답함은 여전했다.
“회사는 잘 다니고 있는 겨?”
“다니긴 해요.”
태산이라도 짊어지고 올 나이 때인데, 말끝에 힘이 빠져있고 한 발 더 나가 속내를 감추려는 낌새마저 묻어났다. 한일석은 말투에서 갑자기 이러다 둘째 놈이 어찌 될까 싶은 불길한 생각마저 묻어나 얼른 되물었다.
“시방 괜찮은 기여?”
“예, 아빠.”
세 아이 아비란 위인의 의젓한 체신은 간곳없고 대답이 울먹이지 않아서 그렇지 어린이집 아이 같이 ‘아빠, 아빠’ 해서 험한 세상살이에 여리고 물러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놈이 며칠 전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한 시각이 이르기에 한일석이 긴장 반, 기대 반으로 전화를 받았다.
“아빠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제 얘기를 들어보세요.”
“뭔 겨? 또 회사를 옮긴 겨?”
“그게 아니고. 아빠 우리가 아파트에 전세 살잖아요.”
“아파트에 사는 거 아비도 이미 아는 겨. 벌써 아는 걸 아침부터 왜 이제 와 새삼 묻는 겨?”
“주인이 좋은 사람이라 그동안 참아왔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면 칠천을 올리겠대요. 이웃들은 모두 올린 금액으로 전세를 사는데 우리만 그대로 두었대 나요.”
“뭣이 칠백이 아니라 칠천이라는 겨? 그만 돈이 어디에 있남.”
한일석은 제 귀를 의심했고 허컥 큰일이구나 느꼈을 때 막막한 절벽 앞에 다다른 걸 알았다. 큰 가구를 들일 때 작은 방 넓이를 이리저리 재도 대책이 없을 때 느끼는 그런 공황증에 빠졌다. 전세금을 올려달란다는 소릴 듣긴 들었던 듯했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전화가 정부에서 전세민 대책이 발표된 그 날 오후에 걸려왔다고 했다. 월세로 전환 못 할 사정이라면 전세금을 칠천으로 올려달란다는 소리까지. 그러나 한일석은 지나는 투로 하는 얘기로 들려 엄살이거니 또한, 그냥 해보는 소리거니 그리 여겨 잊고 지웠다.
“그러니 제가 팔짝 뛰고 미치겠어요. 그런데 아빠, 지금 돈 없지요? 빌리기도 그렇지요?”
“돈?! 돈은커녕 돈 만들 거리도 없는 거 너도 잘 알잖은 겨.”
아들의 입에서가 아니라 한일석 입에서 한숨이 더 먼저 나왔다.
“이미 전세 대출까지 받았는데 대책이 없어 어떻게 할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로 나가면 될 게 아녀?”
“아빠,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혜경이가 애들 교육 때문에 말도 꺼내지 못하게 길길이 뛰고 있어요. 그러니 대책이 안 서서 죽을 지경이거든요.”
둘째 놈은 제 아내를 결혼한 이후 아이가 셋인데도 여태껏 ‘혜경’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물론 나이 차이가 여섯 살 위 되지만, 입버릇으로 굳어질까 봐 여러 번 고쳐주었으나 이미 굳어진 말버릇에 일일이 간여한다는 것이 아비로선 부질없는 짓이어서 표기한 지도 오래되었다.
올해 추석 쇠러 내려온 둘째 놈 내외는 서울에서 시작한 다툼을 그대로 싸 안고 왔다. 잠자리에 든 아들 내외 다툼 소리가 사잇문을 뚫고 건너왔다. 며느리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당신, 내일 말씀드릴 거야?”
“막상 내려와 보니 말씀드리기 어렵네.”
“그럼 인제 어떻게 할 거야?”
“말씀드려야지. 기회를 봐서…….”
“내가 지금 미칠 지경이야. 이건 죽음이야, 죽음. 우리 애들을 저대로 둘 거야? 제발 우리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저 애들한테 물려주지 말자. 응, 여보.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 우리가 왜 자식들에게 죄인이 돼야 하는 거야? 우리 이젠 죽음 같은 현실에서 떠나자.”
며느리는 말을 하는지 울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죽음’이란 말을 세 번이나 입에 올려 곤궁한 생활에 대한 암담함을 격한 감정으로 뱉어냈다.
“쉬, 목소리를 낮춰 아랫방에서 들으시겠어.”
둘째 놈의 언사에 그들이 주고 되받는 말소리는 사잇문을 뚫지 못했다. 한일석이 숨결을 낮추고 귀를 아무리 기울여도 궁금증만 더할 뿐 별 소득은 없었다. 여태 들은 말꼬투리를 이리저리 꿰고 둘러 맞혀보면 다툼은 분명한데 오래전부터 진행해온 그 얘기의 근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식사가 끝나가는 자리에서 둘째 놈을 젖혀두고 며느리가 나섰다.
“저희가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저희가 프랑스에서 한 달을 살아보려고요.”
놀라는 건 아내뿐이 아니었다. 한일석도 묵직한 둔기(鈍器)에 머리가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다. 살림 형세가 어려우니 어지간한 변화는 있으리라 예견을 해왔지만, 이런 일을 벌여놓을 줄은 차마 예견도 못 했다. 설마 하면서 되물었다.
“우리나라에 이벤튼가 뭔가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유럽풍의 동네가 아니고 저 먼 프랑스에?!”
이번에는 둘째 놈이 냉큼 대답했다.
“예에, 유럽 프랑스요.”
허리가 들쑤신다고 늘 안방 아랫목 차지하는 아내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매사 아이들 일에 잘 나서지 않던 전례를 깨고 다급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유를 밝혔다.
“애들은 어떻게 하고?”
허리가 아프니 손자는커녕 강아지 한 마리도 돌보기 힘든데, 아이들이 맡겨져 새로운 걱정이 내달을 것 같았기에 서둘러 앞장치고 나섰다. 아내의 말에 며느리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방학을 이용해 가니 당연히 같이 가야지요.”
“하유우- 그리면 모르겠다만…….”
아내는 자신의 처지에서 따질 건 모두 따져 이제 본전만은 건졌다는 표정으로 대화에서 나앉았다. 지금부터는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가면서 이해득실에 따라 대화 속으로 들고날 눈치다. 한일석이 물음을 이어받았다.
“그렇게 결심한 이유는 뭔 겨?”
“아버님, 한 달간 살아보고 아범이나 아이들이 적응할 것 같으면 이민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이민 까지라 했는 겨?”
“예 아버님, 이곳에서 아범의 직장생활은 나이 오십 되면 끝일 테고 세 아이의 교육을 생각하면 그건 죽음이에요, 죽음. 사회보장 제도나 저비용으로 공부시킬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게 저희 처지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옳다고 생각했어요.”
“말의 원리야 옳다만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사는 게 가능한 겨?”
며느리에게 통째 이야기를 맡겼던 둘째 놈이 그 소리를 듣고 뒤퉁스레 툭 던졌다.
“아빠,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거든요.”
“암, 사람도 살고 개도 살며 세끼 먹고 꼬박꼬박 싸면서 밤잠도 잘 수 있긴 있겠지.”
“아버님, 여기선 도저히 세 아이 교육을 감당하기에는 죽음이에요. 큰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려고 해도 입맛 닿는 대로 보낼 수가 없어요. 학원비를 낼 능력만 있다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시기가 맞아야 하고 수강능력을 평가받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테스트를 치른 학원에서 그랬어요. 학력 평가한 결과 부모가 조금 뒷받침해주면 상위 그룹으로 들 수 있지만, 그냥 두면 십중팔구 쳐지는 딱 그 수준이라고 말했어요. 세상 어느 부모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겠어요.”
“…….”
“이리저리 생활비를 쥐어짜 간신히 영어학원 등록을 마치고 나오는데 이웃집 미혜 엄마한테서 카톡이 왔는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며느리는 잠깐 말을 끊고 휴대전화기를 찾아내 손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그러더니 손가락 움직임을 멈추고 그것을 한일석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아버님 글자가 작아 잘 안 보이시죠? 제가 그대로 읽어 드릴게요. 재욱아, 오늘 국어학원까지 등록을 마쳤다. 영어, 수학, 국어는 됐는데 나머지는 지금 공격 중. ㅋ, ㅋ, ㅋ. 보세요. 이건 죽음 판이에요. 경쟁이 이러한데 어느 부모가 속이 타들어 가지 않겠어요.”
재욱은 손자 아이의 이름이고 공부를 웬만큼 한다는 소린 듣고 있었다. 듣고 보니 지금 교육 흐름에서는 그른 소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뒷감당에 들어갈 돈이다. 하긴 그렇다. 지금은 아이를 낳아놓고도,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정부를 쳐다보고 있는 세상이다. 출산비를 달라 하고 우윳값, 보육비, 점심값, 장학금, 취업준비금까지 물어내야 한다고 피켓 시위를 하는가 하며 늘그막에 몸 아프고 수입이 없다면서 질병 적용 보험을 확대하고 노령연금이 푼돈밖에 되지 않는다고 표(票)로 심판하겠다고 얼러댄다. 세금으로 나간 돈은 손에 쥐어보기도 전에 눈 밝은 놈들에게 떼었고, 그것을 감독하지 못했으므로 응당 나랏돈에서 물어내야 한다는 논리다.
하기야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을 저예산이 들어가는 교육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지 못했으니 질책을 들어도 마땅히 싸긴 쌌다. 한일석의 어렸던 시대에는 아이를 일곱 여덟까지 낳아 빨래하는 날 다듬어낸 대파 뿌리처럼 벌거숭이로 한 이불 밑에 파묻어 놓을 만큼 어려운 살림을 하면서도 면사무소를 찾긴커녕 요처를 돌아다니며 피켓 시위나 표 흥정하는 걸 염두에 두지도 못했다.
“아버님 보세요.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허덕이다 보면 부모는 알거지가 되어 노년을 맞이하게 되지 않겠어요? 지금도 그런데 그때라고 일자리가 남아돌아 가겠어요? 그러니 자식들에게 기댈 수도 없지요. 이곳 환경에서는 저희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 아니 그다음 세대까지 고통은 끝나지 않을 거라 결론을 냈어요. 그런 생활이 죽음과 무엇이 다르겠어요?”
말을 마친 며느리 얼굴은 벌겋게 익어 있었다. 제 딴에는 어려운 살림을 살면서 세 아이까지 챙겨가며 느꼈던 감정을 한꺼번에 터진 댐의 물처럼 쏟아낸 셈이다.
“한 달만 산다고 하지 않은 겨?”
“예 아버님, 우선 한 달간 살면서 적응해 보고 결론을 내겠지만, 이민이 목표인 것만은 틀림없어요. 국내에서는 우리가 사는 방법이나 아이들을 저비용을 들여 가르치는 데는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당연히 떠나야죠.”
“그러나 이 아빈 찬성하기가 좀 그런 겨. 모두 살기 어렵다고 떠나면 어떠할 겨? 더구나 젊은것들이 다 떠나면 나라 앞일은 누가 할 겨? 나라가 망하지 않겠어?. 그게 한걱정인 겨.”
한일석이 둘째 놈과 며느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은별리(恩別里)에 자신과 장봉대만 남아있기까지 벌어진 얘기였다. 한일석이 마을의 일을 눈앞에서 보았기에 누구보다 소상히 알고 있었다. 은별리에 사람이 가득 넘칠 무렵에는 칠십여 호에 삼백오십여 명이 북적였다.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쏟아져 나왔고 봄가을에는 혼사가 끊이질 않았다. 저녁이면 물을 긷는 새댁들로 우물터가 붐볐고 서넛 집 건너 한 집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농번기의 밭일이나 겨울나기 땔감을 나를 때는 품앗이 술로 떠들썩했고 초상이 나면 음․양지로 나눠 상두꾼이 되고 성분(成墳) 일꾼이 되기도 했다. 여름 홍수로 마을이 물바다를 이루면 흙 부대를 만들어 제방을 쌓고 적설에 한길이 막히면 모여들어 가래로 눈을 치워 길까지 뚫었다.
가진 재물이 차하(差下)라서 이웃 것을 탐하거나 질시하지도 않았고 풍족하다 해서 움켜쥐고 벌벌 떨지 않았다. 농산물을 탐하여 농약으로 이웃의 생명을 빼앗지는 않았다. 있음에 더 보태려 하지 않았고 없다 해서 빼앗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 첫돌이라면서 떡을 돌렸고 잔치 때는 모여들어 음식을 없앴으며 초상이 나면 너나없이 눈물을 보탰다.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네 일이었다.
처음 마을을 떠난 사람은 이 집 저 집 허드렛일 도와주며 생계를 꾸려가던 최종남(崔鍾男)이었다. 품삯으로 돈을 대신하여 겉보리를 받았는데 되질이 박하다고 따지다 일을 시킨 진응수(陳應洙)와 드잡이까지 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 진응수가 일을 부풀려 최종남을 은덕을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낙인찍어 마을 돌림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최종남에게 일 시키기를 꺼렸다. 사람들은 마을의 음식 자리에서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따돌림당한 최종남은 야밤에 짐을 꾸려 이웃 탄광지대로 옮겨갔다. 석탄 광부로 새길을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일 년 뒤 활짝 편 얼굴로 찾아왔는데,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궁기를 벗었음은 물론이고 사람이 여유가 있어 보였다. 고생은 하지만 급여로 돈과 쌀을 받으니 그것들이 흔한 곳이라 했다. 은별리 생활보다 낫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가 떠난 뒤 넉 달 간격으로 세 가구가 그곳으로 떠나갔다.
물론 긴 가뭄 끝 흉년 탓이지만, 칠십여 호에서 네 가구가 떠났대서 당장 마을 한 귀퉁이가 무너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천재지변으로 궁핍해지면 언제라도 이곳에서도 떠나 살아갈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걸 알았다. 칼만 쥐고 두려움에 떠는 어린 병사에게 갑옷을 입히고 준마까지 준 격이어서 마을에서 벗어나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그런데 서울 인근에 공장이 들어서자 청년들부터 마을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떠나가자 우물터에 나오는 새댁의 숫자도 줄어들었고 아기 울음도 서서히 그쳤다.
“자네가 이 마을에서 떠나는 마지막 청년일세.”
이장이 돌아서 콧물을 휑 풀어내는데 눈시울이 빨개져 있었다. 청년의 아버지가 떠나는 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너희 시대에서는 지게 질빵으로 어깻부들기에 멍이 들어서는 안 된다. 너 어미는 평생토록 인 임으로 머리칼이 빠진 채 허리가 굽었고, 이 아빈 등짐으로 허리를 펼 수 없도록 졌기에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고 허리가 휜 기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했던 소리를 미심쩍다는 듯 다시 반복했다.
“너희는 함지나 지게라는 물건의 이름도 모르고 살아가야 한다.”
이제 서서히 장년들이 가족과 함께 떠났다. 적을 땐 한두 집, 많을 때는 열 집도 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인근에 공장 하나 유치 못 하는 군수를 제 잇속만 챙기고 군민을 위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이 무능하다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원망했지만, 더러는 주장을 달리했다.
“가뜩이나 젊디 젊어 힘 좋은 놈이 기름진 땅에다 바지런히 꿈적여 농살 지으면 되는 기여. 아, 사장하는 그놈들이야 몇 푼 푸는척하고 노동력만 뜯어갈 게 뻔하지. 안 그런가?”
그러나 젊은이가 주저앉아 땅 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다.
장정들이 사라지자 노인들만 남았다. 빈집은 비바람에 외벽이 무너져 뼈대만 남자 태풍이 불어와 기둥째 무너뜨렸다. 칠십여 호의 집들이 그렇게 하나하나 주춧돌만 남기고 무너져 갔다.
떠난 사람들이 마을로 찾아들어 조상의 뼈마저 옮겨가자 개천 양쪽으로 퍼졌던 마을이 지도상에 이름을 남기고 무인촌으로 변했다. 남아있는 가구는 한일석과 장봉대뿐이다. 두 가구 모두 떠난 자식들이 돌아올 가망이 없고 보면 곧 마을에서 인적이 끊길 게 자명했다. 그나마 아침저녁에만 다니던 버스가 끊기자 빨간 우편 자전거 바퀴 자국도 지워진 뒤 다시 박히지 않았다. 간혹 읍내 나들잇길에 날짜가 지난 것들을 찾아올 뿐이다.
산전(山田)은 칡덩굴 속으로 사라지고 숲이 마을로 그림자처럼 내려와 텃밭만 남겼다. 마을이 빈다는 게 무서움보다 외로움이 뼈마디를 저리게 했다.
옛일을 전해준 한일석이 중병환자처럼 아들 내외한테 겨우 입안 소리로 뱉어냈다.
“사람의 온기는 무너지는 집도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는 겨.”
설마설마했는데 닭장에서 달아났던 어린 닭이 들고양이에 물려 죽임을 당했다. 닭장 밖 세상을 모르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나왔으니 사람 눈을 피해가며 닭장 주위로 노리던 들고양이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한일석은 진작 우려를 하면서도 방임한 자신의 처지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때늦은 후회로 이놈의 들고양이를 잡아 죽여야 한다면서 지겟작대기를 찾아들고 식식거리며 나서는데 한일석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둘째 놈이었다.
“뭔 일인 겨?”
“아빠, 이 길밖에 없어요.”
둘째 놈은 입으로 분명하게 이 길밖에 없다고 했다. 오늘 오후 비행기로 떠난다고 연락을 건네주고 그런 말로 끝을 맺었다. 한일석은 속에서 욱하니 치받쳤다.
“그래 이놈 자식아, 가라. 프랑스든 뉴질랜드든……. 가는 곳이 너 살길이 있다면 당연히 가야지. 암 가고말고 아비로선 도울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 너 내키는 대로 가라.”
한일석은 가슴에 맺힌 말은 많았으나 둘째 놈에게 내뱉을 말은 고작 그 말뿐이었다. [끝] [동안 2016년 가을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