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3장
유대인과 모든 사람이 죄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
(찬송 542장)
2023-2-8, 수
맥락과 의미
1:18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 불의한 모든 자를 심판하십니다. 2장에서는 남을 판단하는 유대인에게 그들 자신도 죄인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3장은 그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합니다. 유대인에게는 율법이 있지만 그들도 완전히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셔서 죄를 다 용서하셨습니다. 책 한 권으로 써도 모자랄 아주 많은 진리가 짧은 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3장에는 ‘폐한다’는 말이 시작과 끝에 나옵니다. “어떤 자(유대인)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려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3,4절) 31절에도,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의 신실함과 율법은 항상 굳게 서있습니다. 왜냐하면 둘은 결국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굳게 서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과,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 이 두 가지를 놓치지 않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율법의 유익: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죄인됨을 드러냄(1-9절)
2. 율법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 아래 있음을 가르침(10-20절)
3. 율법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를 의롭게 하는 하나님은 의로움(21-26절)
1. 율법의 유익: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죄인됨을 드러냄(1-9절)
첫째로, 2,3절에 율법을 맡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말에는 ‘맡았다,’ ‘믿지 아니하였다,’ ‘믿지 아니함,’ ‘미쁘심’ 등은 원래 같은 단어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으면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유대인들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신실하지 않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다”(4절)와 “미쁘심”(3절)은 신약 헬라어에서는 서로 다르지만 구약 히브리어로는 같은 말입니다. 사람이 신실하지 않음은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함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미 사람은 신실하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신실하지 않음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함을 드러냅니다.
비슷한 말로는 5절에서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니까 하나님이 의롭게 심판하는 일이 드러납니다. 만약에 죄를 짓지 않았으면 하나님의 의로움 자체가 사람에게 인지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신실하지만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지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의를 심판하는 행동을 하실 때,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는 계기가 됩니다. 마치 아주 악독한 죄인이 있으니까, 죄인들을 엄중히 처벌하는 국가의 법원이 의롭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행하지 않는 자들의 불의가 말씀의 진실함을 잘 드러내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불의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의가 더 드러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이 말을 듣고 빈정댔습니다. 8절,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 합니다. 악을 행하면 악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니까 악을 더 행하자고 아주 꼬인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에서 벗어나 자기의 악한 길로 계속 가는 것입니다. 지식이 악하고 타락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말을 들었다면 “정말 내가 죄인이구나” 하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의로움을 주장합니다. 사도는 그래도 계속 바른 진리에 대하여 전합니다.
그래서 9절에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묻습니다. 1절에서도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2절)고 답했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언약을 맡은 언약 백성입니다. 다시 9절에서도 그러면 우리가 나은 것이 무엇이냐? 없다. 헬라인과 유대인은 똑같다고 합니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나은 것이 있지만, 죄인이라는 점에서는 이방인과 똑같습니다.
유대인은 요즘으로 치면 어릴 때부터 믿은 성도들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유대인이 언약 백성이었듯이 어릴 때 유아 세례를 받은 성도는 언약의 복 아래에 있습니다. “내가 모태 신앙이어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차라리 내가 믿지 않고 방탕하게 살다가 20대 후반에 돌아서면 간증할 것이라도 많을 텐데. 나는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어 불행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3장 전반부에서 말하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말씀의 빛의 비춤을 받았으니까 유익이 있습니다.
모태 신앙이나 어린 시절부터 믿은 사람이 빠지기 쉬운 또 다른 함정이 있습니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었으니까 원래 착한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들도 똑같은 죄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례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이 순간에도 본성상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덮어주셔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겸손하게 주를 의지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 다니고 성경을 읽은 것을 자기의 의로움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교만하면 복음과 구원으로부터 끊어집니다. 유대인들이 겪은 이러한 비참한 처지로 나가는 것입니다.
2. 율법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죄 아래 있음을 가르침(10-20절)
10절에서 18절까지는 구약의 시편 말씀 여러 가지를 계속해서 인용합니다(시편 14:1-3, 5:9, 140:3, 10:7, 36:1).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가르칩니다. “율법 맡은 너희들이 잘 알아라. 성경을 잘 아는 너희들이 알아라. 성경은 너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19절부터는 “율법이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율법을 많이 읽었다면 사람이 본성상 죄인임을 알아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 뜻으로 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의를 선언하고 사람이 죄인 됨을 선언하는데 이것을 먼저 유대인들에게 말하셨지만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19절)
20절에서는 요약해서 말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율법의 중요한 기능입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자랑하라고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죄와 비참함을 깨닫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알고 우리의 죄인 됨을 압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자비만 바라도록 하는 것이 율법의 목적입니다. 구약 성도들도 율법을 어긴 죄인이지만,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3. 율법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를 의롭게 하는 하나님은 의로움(21-26절)
21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세웠다고 합니다.
화목 제물은 보통 본래 ‘평화의 제사’를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평화의 제사가 아니라, 속죄소를 말합니다. 구약의 법궤 위에 속죄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법궤 안에 있는 십계명 율법을 통해서 죄를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자는 없습니다. 그래서 법궤 뚜껑인 속죄소에 1년에 한 번 피를 뿌립니다. 피의 제사로 죄를 용서하시면서 그 백성을 받아들여 주십니다.
죄를 용서하는 표시인 속죄소의 실상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참된 속죄소로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 용서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세우셨습니다.
사람을 심판할 때도 하나님의 의와 신실함이 나타납니다. 사람을 의롭게 할 때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무작정 의롭다고 선언하신다면 불의한 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서 정당하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심판을 그리스도께서 정당하게 받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4.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27-31절)
27절에서 종합적으로 사람이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가 없고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오직 믿음의 법으로 우리는 의롭게 됩니다. 28절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죄인인데도 의롭다고 간주합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하나의 기준으로 대하십니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똑같이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이 은혜에 우리는 들어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인됨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냅니다. 구약에서 의로운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짐승으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속죄소에 뿌려진 희생의 피를 통해서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상징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신실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속죄소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의로운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의를 우리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선행과 관계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면, 율법을 안 지켜도 되겠다, 필요 없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굳게 세운다(칭의 후의 거룩한 삶, 혹은 생명)는 것을 5장 이후부터 자세히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 전에 4장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더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두 죄인입니다. 유대인은 언약의 말씀을 맡은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죄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 그 자체도 의가 아닙니다. 믿음도 선물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이 모든 일을 예정하시고 작정하신 하나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의롭다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우리와 맺어주신 관계 속에서 점점 더 나아갑시다. 그 관계에서 의롭다 인정하심을 받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 안에서 정말 감사하고 더 죄 용서의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관계를 통해서 죄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율법을 더 지킵니다. 이것이 큰 은혜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손해가 아닙니다. 더 아름답고 거룩하게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는 은혜를 감사합시다. 믿음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은혜도 감사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명령을 통해 자신의 죄악됨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습니까? 스스로의 죄인됨을 자각할 때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죄 용서의 은혜로 피합니까? 처벌의 두려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율법을 지키기에 힘씁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2,3절 맡았다(피스튜오), 믿지 않음(아-피스티아), 미쁘심(피스티스), 4절 참되시니라(알레테이아)
2,3절 “맡았다”(피스튜오), “믿지 않음”(아-피스티아), “미쁘심”(피스티스) 등은 ‘피스토스’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4절에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알레테이아) 했는데, 피스토스와 알레테이아는 구약 성경의 ‘에메트’(진실, 신실함)를 번역한 말로 같은 뜻입니다.
<참고> 25절, 화목제물=속죄소(힐라스테리온)
“화목제물”은 보통의 화목제물이 아니라 속죄소(힐라스테리온)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