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의 독립운동가
7월24일 안동시민회관에서 광복회 주최 동산 류인식(柳寅植)선생 공훈선양 학술강연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안동의 혁신유림인 동산 류인식(1865~1928년·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1895년 일제가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오백 년 종사가 망하려는데 삼천리 강역에 한 명의 의사도 없단 말인가"하고 비분강개하며, 청량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3년 신채호 선생과의 만남 이후 교육구국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1907년 김동삼, 이상룡 선생과 근대적 중등교육과정의 협동학교를 설립·운영했다. 협동학교 졸업생들은 3·1운동 등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선생은 1911년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로 이주,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등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참여했지만, 1912년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일시 귀국했다 일제에 체포된 후 국내에 머물렀다.
1912년부터 1920년경까지 반만년의 고유문명을 지닌 역사가 말살된 현실을 개탄하고, 젊은이들에게 조국정신을 심어주고자 '대동사(大東史)'를 저술했다. 대동사는 단군을 기원으로 하는 단일 민족사를 체계화하였으며, 일제의 침략과 이에 대항한 민족운동을 기술했다.
이 외에도 백정의 신분해방을 위한 형평운동, 조선노동공제회와 물산장려운동 등 다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1927년 선생은 신간회 안동지회장으로 추대돼 활발히 활동하다 1928년 국권 회복 및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삶을 마감했다.
(정부는 공적을 기려 198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경북 안동시민회관 소공연장에서 안동의 혁신유림인 동산 류인식 선생에 대한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개최하여 유익한시간 좋은말씀 경청하였습니다.
국가보훈처에서 류인식선생 증손자에게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기념패 봉정 ↑
광복회에서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축하패 봉정↑
문중대표 인사말씀 류목기(전주류씨 수곡파 종회장)↑
학술강연:박걸순/충북대 사학과 교수(시대의 선각자 안동의 혁신유림 동산 류인식)↑
독립군가/합창
동산 류인식(東山 柳寅植)
1865~1928.일제강점기 안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래(聖來), 호는 동산(東山). 1865년(고종 2) 안동 동후면(東後面, 지금의 예안면) 주진동 삼산에서 류필영(柳必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류기영(柳祈永)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류필영은 퇴계 학통을 계승한 류치명(柳致明)의 제자였으며, 1919년 3·1운동 직후 유림들의 항쟁인 파리장서의거에 참여했다가 투옥된 인물이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