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전라도닷컴>
<김진수의 약초산책 14>
“대상포진의 예방과 회복” - 구기자나무(枸杞子/地骨皮)
통증은 감각신경에서 발생된 전기적 신호가 뇌에 전달되어 느끼는 아픔이다. 병소가 어디냐에 따라 그 아픔의 성격이 다르고 강도도 다르다. 대상포진이 특히 통증이 심한 이유는 바로 지각신경이 분포하는 신경근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상포진(帶狀疱疹)은 수포(疱)를 형성한 발진(疹)이 띠 모양(帶狀)으로 번져간다는 뜻으로, 현대의학에서는 감각신경절의 신경주행을 따라 발생하는 이른바 수두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본다. 작은 수포가 몸의 좌우 어느 한쪽에서 나타나므로 ‘싱글스(shingles)’라고도 한다.
대상포진은 일찍 치료하면 보통은 1-2주 이내에 회복 되지만 이 시기를 넘기면 증세가 빠르게 발전하고 통증의 강도도 가파르게 상승하여 치료가 더디고 나중에 감각이상, 신경통 같은 후유증 가능성도 높아진다. 필자도 환도부위에 대상포진을 앓은바 있다. 궁금했던 터라 꾹 참고 급성기를 맞아보는데, 마치 온 힘을 쥐어짜서 내 허리를 꺾는 기분이었다. 앉아서 식사하기 어렵고 서서 오줌을 눌 수 없으니 의학통증척도에서 ‘사람이 공감할 만한 통증 중에서 가장 극심한 고통’이라는 표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병은 초반에 양방 병의원에서 처치를 받은 후 잔여 통증과 후유증에 대해 한약치료로 전환하거나, 초기 양방치료 과정에서 한약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마약성 진통제, 합성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제, 항바이러스제 등으로 장기간 치료하면 일부 염증이 완화되는 반면 면역계에 이상이 와서 근본치료가 안 되고 호전과 악화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신경해부학에서의‘신경주행’은 침구학의 ‘유주경락’과 유사하다. 인체에서 경락은 체내 기혈운행의 통로로서 안으로는 오장육부, 밖으로는 사지백해(四肢百骸)를 고루 영양하며 생명활동을 유지시켜주는 독특한 계통을 이른다. 그런데 이 경락의 흐름이 막히면 또는 이 경락으로 미치는 에너지(氣)가 부족하면 또는 이 경락에 염증이 발생하면 그 주변으로 차고 시리며 저리고 쑤시는 반응들이 나타난다. 대상포진의 위치는 대개 간·담·심의 경락 상에서 빈발한다(얼굴 포진은 비와 위의 경락). 발의 네 번째 발가락 외측으로부터 환도를 지나 겨드랑이, 승모근, 귓바퀴 둘레로 이어지는 족소양담경이나 안쪽 엄지발가락에서 위로 샅과 옆구리에 이르는 족궐음간경의 길 주변에 많고, 가슴에서 겨드랑이, 팔과 손 안쪽으로 흐르는 수소음심경·수궐음심포경을 따라서 잦다. 이 중에서도 필자의 경우처럼 간의 원인(風熱)으로 간·담의 경락을 따라 발진하는 경향이 강하다. 흔히 스트레스나 화, 피로, 소화장애를 간과 연관하여 간기울결, 간허 등으로 진단하는바 대상포진의 한방치료는 막힌 경락을 뚫어주고 간과 신의 기운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것이 마땅하다.
피부발진은 실열이든 허열이든 열에 상한 염증성체액이 안에서 가하는 압력에 의해 피부로 내몰린 현상이며 반점·종양·두드러기·수포·농포의 형태로 나타난다. 병적인 열을 몸 밖으로 내보내고 싶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둘 다 열을 내려야한다. 실열의 아토피는 청열(淸熱)·조습(燥濕)·양혈(凉血)·사화(瀉火)·해독(解毒)이 치법이라면, 대상포진은 청허열(淸虛熱)하면서 오장을 보하여 컨디션을 회복시켜주는 방식이라야 한다. 즉 익기(益氣), 양음(養陰)을 근간으로 하면서 활혈(活血), 행기(行氣)하여 경락을 소통시키는 방법을 적용한다. 상술한 대로 심한 통증을 병원에서 가라앉힌 후 정상 회복을 앞당기기 위하여 구기자를 으뜸으로 작약·맥문동 각 5, 계지·인삼·황기·백출·당귀·숙지황 각 3, 오미자·감초·대추 각 1 정도에 청허열약인 지골피(구기자나무 뿌리껍질)나 청호(菁蒿, 개사철쑥)를 더하고, 단삼·울금·우슬 같은 활혈화어약(活血化瘀藥)과 목향·지실·향부자·진피 같은 행기약(行氣藥)을 적당량 추가하는 쪽으로 약재를 구성한다.
대상포진을 예방하고 회복하고 면역력을 기르는데 『구기자(枸杞子)』가 좋다. 구기자는 가지과의 낙엽만성관목으로 구기자나무의 열매를 건조한 것이다. 달고 평하며 간과 신으로 들어간다. 간·신의 음이 허하여 나타나는 눈이 침침하고 어지러운 증세를 개선하고 해수를 그치게 한다. 한방에서는 당뇨, 유정, 항암, 항노화, 대상포진, 신경성피부염, 건선, 습진 및 간기능보호작용 등에 다용한다. 구기자 추출물을 마우스에 경구 투여한 결과 현저한 면역증강작용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체 세포성면역기능증강작용 및 조혈기능, 혈당저하작용과 신경세포보호작용도 잘 알려져 있다. 구기자나무의 뿌리껍질인 『지골피(地骨皮)』 또한 간과 신으로 들어가 허열을 없애고 폐를 맑히며 혈을 서늘하게 한다. 지골피는 내분비계에 작용하여 간보호작용, 항산화작용, 피부보호효과 등을 나타내며 해열과 강압작용, 혈청지질강하작용, 면역조절작용, 항균·항바이러스작용을 나타낸다.
‘허열’은 체온 저하, 병 후, 산 후 허약, 갱년기 호르몬 이상, 노화 등으로 몸에 기혈이 부족하여 열이 일어나는, 나무가 다 타고 끝에 남은 잿불처럼 은근한 열 상태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떠한 이유로 피로가 극심하여 에너지가 거의 방전상태(체온 저하)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노동이나 운동을 감행하면 날씨와 상관없이 젊은 사람도 그 노권의 스트레스로 인해 ‘감기’를 앓는 예는 허다하다. 노년기에 들어서면 마라톤이나 등반 같은 땀을 많이 흘리는 장시간의 운동, 축구·탁구 등 구기종목이나 격투기 같은 ‘겨룸’이 있는 운동은 극히 삼가야 한다. 몸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넘치면 흘려보내서 평정을 되찾고 모자라면 가두어서 채워야 한다. 기혈이 부족한 사람이 불충분한 영양상태에서 정신적으로 과로하거나 심한 신경자극을 특정 근육과 관절에 가했을 때, 또 음주·불면·우울·합성약물 등이 더해졌을 때가 대상포진이 올 수 있는 가장 취약한 환경이다.
열매
꽃 잎 줄기
구기자(약재)
지골피(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