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12억 지원… 철가방 모양의 전용극장 5월 개관 “세상에서 유일한 코미디 체험 경험하게 할 것” 40석 예약제, 입장료는 자장면값과 같은 4000원
4년 전 청도 내려가 버려진 교회를 카페로 개그맨 지망생들 공짜로 먹이고 가르치고 복날마다 하는 ‘개나 소나 콘서트’ 대박
개그맨으로 데뷔해 ‘고정관념 깨기’ 42년 학생 가르치고 영화 27편 출연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 책도 33권이나 펴내
극장이 왜 철가방 모양이냐고?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된다는 뜻 흥행은 철저한 과학이야
▲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의 철가방 모양을 한 코미디 전용극장. 5월 중 개관한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월 17일 오전 11시쯤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발신인은 전유성.
그와 통화한 지도 1년이 넘은 것 같았다. 무슨 문자일까, 하고 열어보았다. 음식을 배달할 때 쓰는 철가방 사진이 보였다. 그 밑에 이런 문자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철가방 청도 전유성 코미디전용공연장 4월 말에 개관합니다!’
순간, 전유성씨가 또 한번 일을 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기자는 전유성씨에게 답을 보냈다.
‘잘됐네요, 기념으로 인터뷰 한번 모시겠습니다.’
그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수년째 거절해 왔던 터였다.
즉각,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통화하는데 다짜고짜 영업하려고 그래? 그냥 한번 놀러와.”
그는 서울 옥수동에 살다가 2007년 아무 연고도 없는 경북 청도에 터를 잡았다. 그가 청도에 터잡은 것은 우연이다. 우연히 청도를 지나가다 버리진 교회가 있어 리모델링하고 카페를 열면서 자연스럽게 청도에 둥지를 틀었다. 그 뒤로 기자와 통화할 때마다 “한번 놀러오라”고 했지만 한번도 실행을 못해온 채 수년이 지났다.
열흘 뒤 다시 통화했다. 청도를 어떻게 가는 게 가장 좋은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특유의 억양으로 말했다.
“KTX 타고 대구까지 와서 (무궁화열차로) 환승해서 청도 오면 돼. 그게 제일 빨라. 2시간20분 걸려.”
얼마 뒤 다시 문자를 보냈다. ‘수요일 11시까지 가겠습니다. 거기서 뵙겠습니다.’
다시 문자가 왔다.
‘네, 인터뷰는 엑스.’
‘코미디극장 얘기나 해주셔요.’
지난 3월 30일 오전 8시30분 서울역에서 동대구행 KTX를 탔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인간 전유성’을 생각했다. 그를 취재원으로 만나 알고 지낸 게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전유성(62)은 한국 연예계의 앤디 워홀이다. 1969년 MBC개그콘테스트로 데뷔했으니 데뷔 42년이 되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보통 개그맨들과 달랐다. 그는 지금까지 27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코미디언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 이건 접어둘 수도 있다.
그의 코미디언 인생 42년은 ‘다르게 생각하기’와 ‘고정관념 깨기’로 축약될 수 있다. 그는 몇 발짝 앞서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1995년 종로구 인사동에 ‘학교종이 땡땡땡’을 열었다. 교실 분위기의 카페.
추억을 파는 카페는 문전성시, 대박이 났다. 소문이 나자 금방 전국에 유사 ‘학교종이 땡땡땡’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가 연 카페는 대부분 성공했다. 2007년 정착한 청도에 그는 카페 ‘니·가·쏘·다·쩨’를 열었다. ‘네가 쏟았지?’의 경상도 사투리다.
전유성은 저자이다. 1995년 그는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를 써서 저자로 이름을 날린다. 곧이어 ‘PC통신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가 나왔다. 같은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를 써서 독자들에게 비겁하게 살 것을 주문했다. 이 책 역시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 전유성을 다시 보게 만든 것은 1997년에 출간된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다. 전유성표 유럽배낭 여행기는 2001년에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2’가 나왔다. 2007년에 발간된 삼국지를 거꾸로 보는 ‘전유성의 구라삼국지’ 시리즈로 10권이 나왔다. 전유성이 쓴 책이 모두 33권이다.
전유성은 코미디언 후배를 양성하는 선생이다. 학생들을 가르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현재 예원대 공연예술학부 코미디전공 전임강사로 있다. 청도에 살면서 수업이 있는 날 서울로 온다. 그는 ‘전유성의 코미디시장(市場)’을 만들어 신인 개그맨들을 양성해 왔다. 신봉선, 박휘순, 안상태, 황현희, 김대범, 이재형, 김민경, 서성금, 김종은 등이 바로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1기생들이다.
전유성은 연출가이다. 물론 극본도 직접 쓴다. 청도 야외음악당에서 열리는 ‘개나 소나 콘서트’는 2009년부터 시작해 대박 행진을 기록 중이다. ‘개나 소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청도를 찾은 관광객이 지난해 7000명을 넘었다. 그는 이미 서울에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음악회를 즐기는 ‘듣도 보도 못한 콘서트’를 기획·연출해 주목을 끌었다.
이쯤되면 전유성이, 화가로 시작해 시각예술의 거의 모든 장르를 크로스오버한 앤디 워홀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는 코미디전용극장을 굳이 철가방 모양으로 짓겠다고 생각했을까?
동대구에서 무궁화열차로 환승했다. 무궁화로 바꿔 타니 완연한 남녘의 봄이 눈을 즐겁게 한다. 철로변에 핀 개나리를 감상하고 있는데 열차가 청도역에 이르렀다. 정확하게 예정시각인 10시57분이었다.
전유성씨는 기차 시간에 맞춰 승용차를 보내줬다. 기자는 청도가 초행길이었다. 승용차가 청도 중심가를 빠져나가는데 작은 광장에 소싸움 하는 동상이 설치된 게 보였다. 청도는 오랜 세월 소싸움으로 자신을 알려왔다. 도로 곳곳에 2011년 소싸움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0여분을 달린 승용차가 도착한 곳은 2층 양옥. 커다란 한의원 간판이 걸려 있었다. 기자가 사진기자와 함께 내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전유성씨가 현관 계단 위에 서서 한마디했다.
“정말 인터뷰하러 온 거야? (좀 뜸을 들이다가) 들어와!”
현관 왼쪽에는 세로로 된 ‘개나 소나 콘서트 안내소’가 걸려 있었다.
1층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손님이 와 있었다.
- 한의원 간판이 있던데, 이 집은 뭐하는 곳이죠.
▲ 철가방 극장 내부.
전씨는 “무대 뒤 벽이 커튼처럼 되어 있어 무대가 800m 뒤편 저수지까지 확장된다”고 설명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한의원으로 쓰던 집인데, 애들 합숙소로 쓰고 있어. ‘개나 소나 콘서트’의 센터도 겸하고 있어.”
‘애들’은 그가 운영하는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2기생 20명을 말한다. 센터장인 마술사 김준오씨가 녹차를 갖다놓았다. 잠시 방안을 둘러보는데 화이트보드 일정표에 빽빽한 스케줄이 눈에 들어왔다. 외부 강연이 대부분이었다. 3월 30일 현재까지 확정된 4월 중 강연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4월 4일 이성미 라디오 출연, 4월 12일 수원 아주대, 4월 15일 경북 울진군 강의, 4월 17일 조영남 대구콘서트, 4월 20일 동국대 강의, 4월 26일 부천 상공회의소 강의, 4월 27일 전주 강의….
- 강연을 많이 하는데 주로 무슨 내용을 하나요.
“그때그때 달라. 돈의 액수에 따라 달라져. 청중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200만원 이하 준다고 하면 안하지.”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되받아쳤다.
“요즘, 세상에서는 뭐에 관심이 많지?”
- 그거야, 신정아 스캔들과 일본 원전 방사능 얘기죠.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을 네 글자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기자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대답했다.
“신변잡기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신변잡기야. 신변잡기를 써야 많이 읽혀.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왜 신정아에게 빠졌다고 생각해?
그들은 젊은 시절 공부만 하느라 연애도 제대로 안 해본 사람들이야.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는 전부 지시만 따르는 비서 같은 여자들만 보게 되었지.
그러다가 자기 의견 딱딱 얘기하는 젊은 여자 만나니까 훽 가는 거지.”
그가 다시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 사람 누구지, 여대생들에게 성희롱했다가 혼난 사람. 강 누군데?”
- 강용석 의원 말이죠.
“농담은 상대방이 웃어야 완성이 되는 거야. 상대가 성질을 내면 그건 농담이 아냐.
우리가 흔히 ‘에이, 농담 가지고 뭘 그래’라고 말하는데, 그건 농담이 아니라 상처를 준 거지.
어떤 사람은 상처를 준 얘기를 가지고 농담이라고 말해.
농담에는 기술이 필요해. 처음 본 사람에게 잘못 농담했다가는 ‘웬수’가 되기 십상이야. 농담은 상대가 웃어야 농담으로 완성되는 거지. 웃지 않으면 그건 칼로 찌른 거야. 폭탄 같은 거지.
그 사람(강용석 의원)은 평상시에 룸살롱에서 농담으로 하던 얘기겠지만 그런 걸 여대생한테 하면 안되지.”
그가 2층에 잠깐 올라가자고 했다. 잠시 뒤 취재진은 짐을 챙겨 2층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마루 겸 방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하고 그를 찾았다. 전유성씨는 한쪽 구석 창턱에 팔꿈치를 대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코미디시장 2기수료생 20명이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체육복 바지에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로고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었다. 2기생의 연령은 24세에서 32세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전유성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보고 지원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이다. 광주광역시 출신인 박민영(24)씨는 예원대 코미디학과를 졸업하고 2기생으로 들어왔다. 개그맨으로 방송인이 되는 게 꿈이다.
전씨는 기자 일행에게 점심을 먹고 완공 단계에 있는 코미디극장과 함께 청도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점심 식사는 ㈜대구메트로아트 정판규 대표가 코미디시장 단원 전원을 초대해 놓은 상태였다. 코미디시장 2기 단원들은 3월 초 대구메트로아트센터(지하철2호선 대공원역 지하)에서 ‘개그 오네요(On Air)’를 공연해 대구를 놀라게 했다. 전씨는 단원들과 1시간 뒤에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어섰다.
전씨는 청도의 이곳저곳을 보여줬다. 그런데 식당 찾아가는 길을 잃어버려 여러 번 엉뚱한 길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인터뷰는 차에서 주로 이뤄졌다.
- 왜 돈 안받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코미디를 가르칩니까.
“그 질문을 정말 많이해. 어떤 학생은 왜 돈을 안 받느냐며 재산증명서까지 떼어오대.”
- 당연히 그게 궁금하죠.
“내 알량한 재주로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잘 벌어먹고 사는 거야. (돈을 안 받는 게) 보답이라고 생각해. 요즘 같으면 내 재주로 개그맨 시험 붙겠어? 떨어지고 말지. 요즘 애들은 재주가 얼마나 많은데, 대단해.”
- ‘전유성의 코미디시장’을 마친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과정을 수료하면 다 방출하지. 그런데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어. ‘신봉선이 추석 때 찾아오나요?’ 아니 연예인들이 명절 때 이런 데 찾아오면 어떻게 해. 그렇게 되면 신봉선이 별볼일 없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내가 신봉선이를 가르쳤다고 해서 내가 당연히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신봉선이가 나에게 코미디를 배웠지만 다른 사람 밑에 있어서 그만큼 큰 거야. 다 영역이 다른 거지. 떠나면 끝이지 뭐.”
한재미나리는 청도 반시와 함께 청도의 특산물. 미나리 비빔밥을 먹고 우리는 또다시 청도 탐험을 시작했다. 청도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자동차가 가파른 산길을 꼬불꼬불 넘었다. 산속에 큰 건물 몇 채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왼쪽에 짐승 우리가 보였다. 놀랍게도 우리 안에 수사자가 있었다.
아니 이 깊고 깊은 산중에 웬 사자가! 이곳은 이미 걷기 매니아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청도 몰래길이 시작하는 곳. ‘청도 몰래길’은 전씨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원래 이름은 청도 올레길이었어. 내가 그랬지. 이름이 그게 뭐냐고. 제주도에 있는 걸 왜 흉내내냐고.
‘몰래 ○○한다’의 몰래라고 짓고 거기에 전설을 만들자고 했어. ‘청도 몰래길이 시작하는 곳에는 사자가 산다’는 전설을 만들어냈지.”
지난해 7월 3일 가수 유익종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몰래길 터기’ 행사가 벌어졌다. 몰래길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패션디자이너 최복호. 전유성은 여기에 스토리를 입혔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몰래길에는 사자가 산다’는 설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옛날 호랑이 고스톱 치고 원숭이가 광 팔던 시절!
비슬산 자락에 화전민 동팔이가 살았다. 동팔이는 척박한 비탈땅을 갈아 감자 심고 텃밭 가꿔 겨우겨우 풀칠하고 살았다. 동팔이는 매년 벌어지는 소 싸움장에 나가 소 여물 끓이기, 소 이빨 닦아주기, 소 발톱 깎기 등 닥치는 대로 뒤치다꺼리를 하며 몇 푼 벌면 생필품을 구해 지금의 몰래길을 넘어 오곤 했다.
어느 해 동팔이의 사람 됨됨이를 지켜보던 소 싸움꾼이 동팔이에게 송아지 한 마리를 맡겨 키우게 했다. 동팔이는 제 처자식처럼 송아지를 보살폈다. 그렇게 지극정성 키운 송아지가 살이 토실토실 올라 겨우 어른 소의 모습을 갖춰갈 무렵이었다.…’
이 설화를 읽고 비슬산 산속, 몰래길이 시작하는 곳에 있는 사자를 보면 모든 게 달라보인다. 지금까지 걷던 산길과는 다른 흥미진진한 몰래길이 탄생한다. 이게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전씨는 단골 카페인 다강산방(茶康山房)으로 안내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청색바탕에 쓰인 옥호(屋號)가 범상치 않아 들른 것이 단골이 되었다. 이곳은 김재호씨가 운영하는 전통찻집. 찻집은 대동골이라는 계곡 옆에 자리잡아 분위기가 그만이다.
청도의 특산물인 청도 반시. 반시의 탄생 설화 역시 전씨가 새로 만들었다.
“청도에 왜 반시가 유명하냐고 물었더니 토양이 어떻고, 날씨가 어떻고 그래. 그래서 내가 조선시대 내시로 임금을 모시던 사람이 은퇴해 이곳에 와서 감을 심었는데, 그게 ‘청도 반시’라고 하라고 했지. 그래야 사람들이 재밌어 하잖아.”
씨 없는 남자인 내시가 고향에 내려와 키운 감이 청도 반시다!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 스토리인가?
다강산방의 대표차인 솔방울차가 나왔다. 고명처럼 살포시 얹혀진 제비꽃잎 하나가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차를 마신 뒤 다시 청도 순례를 시작했다.
- ‘개나 소나 콘서트’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2기 수료생들과 함께.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첫 아이디어는 김훈기 클라리네티스트가 주었어. 애완견을 위한 콘서트를 하면 어떻겠냐고. 그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지. (방송인) 최유라가 어느날 애가 아프다고 울고불고 한 게 생각이 났어. 개를 가족과 똑같이 생각한 거지.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콘서트에 오게 만들자고 한 거야. 날짜는 사람들이 보신탕을 먹는 복날로 잡았지.”
한국인의 언어 생활에서 ‘개나 소나~’는 흔히 부정적인 데 쓰인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곳에서 그는 개를 사람으로 대접해 콘서트장에 데리고 오라고 했다. 좋아라 한 것은 개 주인들이었다.
- 청도군에서 협조를 받았나요.
“아니! 공무원하고 일하려면 정말 짜증 나잖아. 관리들에게 찡찡대봤자 예산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런 모습 보이기 싫었어. 내가 (돈이) 있어도 개털이고 없어도 개털인데, 내 돈 내고 한 거지.
나는 사비를 들여 먼저 하자는 주의야. 잘되면 서로 도와주려고 하잖아. 청도야외음악당이 돈을 많이 들여 잘 지어놓았어. 그런데 열대야 때 영화상영 네 번 하고 거의 쓰지를 않았대. 그래서 거기를 빌려 했지.”
- 왜 ‘개나 소나 콘서트’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은 동호회 시대야. 그러니 동호회 개념으로 가야지. 이제는 뜻이 맞는 게 중요해. 지금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동호회가 있어? 이들을 잘 엮어낼 수 있는 공통분모만 있다면 공연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 결혼도 사랑해서가 아니라 뜻이 맞아서 해야 오래 가. 예컨대 음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학부모를 위한 음악회라고 하면 뭔가 발길이 끌리잖아.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엮어내야만 공연이 성공해.”
연합뉴스가 촬영한 2010년 ‘개나 소나 콘서트’ 동영상을 보면 이 말이 실감 난다. 전국에서 개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 축제의 난장을 벌인다. 사람들은 잔디밭 같은 곳에 아무렇게나 편안히 앉아 개와 장난을 치며 논다. 2009년 4000명이던 이 콘서트 관람객은 2010년 7000명으로 늘었다. 청도 소싸움이 아무리 전통이 깊고 유명해도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데 묶어낼 수가 없다.
전씨는 “군에서 2011년 ‘개나 소나 콘서트’ 지원 경비를 예산으로 잡아놓았대”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차중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동차는 최종 목적지인 ‘철가방 코미디극장’에 우리를 내려줬다. 청도군에서 건축비 12억원을 댔다. 객석은 휠체어 전용석 2개를 포함 40석. 극장 전면은 막 배달된 철가방 문을 연 모습. 삼선간짜장과 삼선짬뽕은 각각 조금씩 쏟아졌다.
양파와 단무지가 담긴 접시, 고춧가루통, 간장통 등 실제로 철가방 속에서 나올 만한 것들이었다. 한 가지 이해 안되는 것은 앞쪽으로 기울어진 소주병.
- 왜 극장 형태를 자장면 배달통 철가방으로 했나요.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된다는 뜻을 표현한 거지. 왜 가수들이 40주년, 50주년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만 할까, 늘 궁금했어. 그 정도 오래 했으면 감사의 표시로 공짜로 해도 될 텐데. 그래서 관람료도 자장면 값(4000원)에 맞췄어. 나는 자장면 값이 많이 오르길 고대해. 그러면 자장면 값이 10만원이 되는 날이 오면….”
- 외관은 일단 눈길을 끄는데, 무대에 올리는 코미디는 대학로와 뭐가 다른가.
“많은 지자체에서 고구마 캐기를 시키며 고구마 체험이라고 하잖아. 나는 사람들에게 코미디 체험을 하게 하려는 거야. 매주 월요일 여기 오면 세계에서 유일한 코미디 체험을 할 수 있게 말이야.
배우가 재채기를 하면 객석에서 얼굴로 그걸 느끼게 되어 있지. 더이상은 알려고 하지 말고. 극장 내부 콘셉트도 다 내가 잡았지.”
- 흥행을 자신하나요.
“문화행사 기획자들이 흔히 적자 얘기를 많이 해. 대부분은 기획력의 부족이야. 만들어봐서 깨진다고 생각하면 거기서 멈춰야 해. 4800만원 들여 제작했는데 영 아니다 싶으면 거기서 멈춰야 해.
미련 때문에 밀고 나가면 5000만원으로 끝날 게 1억~2억원이 나가지. 옛날 사람들이 흥행은 도박이야, 뭐 이따위 소리를 했는데 그렇지 않아. 흥행은 철저한 과학이야. 나는 건방지게 경영할 생각이야.
100석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100석 만들어 20~30석 차면 그거 어떻게 해. 40석을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할 거야. 외벽에 소주병 보이지? 여기서는 코미디 보며 소주도 마실 수 있어.”
의자 38석은 박미선, 신봉선 등 모두 유명 개그맨에게 팔았다. 관객은 ‘박미선 의자’에 앉아 관람을 하게 된다. 이들은 1년에 100만원씩 코미디극장에 기부한다. 이 돈으로 극장 관리직원 3명의 인건비를 마련했다.
- 소주병에 이름이 안 붙어있는데, 왜 그런가요.
“응, 스폰서를 잡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했어.”
- 개관 기념작 대본도 직접 썼다고 하던데.
“그런 말이 있잖아. 애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고. 싸움의 모든 형태를 코미디로 보여줄 거야. 이 동네 사람들도 영상으로 출연하게 될 거야. 12억원, 그리 큰돈이 아니야. 그 돈 써서 청도가 알려지게 되면….”
그가 청도에 터잡은 것은 우연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 연예인이 아니었다. 예측을 불허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청도에서 사회에 통용되는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왜 문화생활은 시골에서는 못하나, 왜 아둥바둥 대도시에서만 살려고 하나 등.
이미 “청도에 가면 운문사 들러 전유성을 만나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청도로 들어와 전유성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등의 얘기가 나온다.
전씨가 공연장 안에서 조명 상태 등을 점검하고 있을 때 기자는 밖으로 나와 극장 외벽에 시선을 고정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철가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철가방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예술작품으로 만든 사람은 대한민국에 전유성 한 사람이다. 전유성은 한국의 앤디 워홀이다.
청도군 12억 지원… 철가방 모양의 전용극장 5월 개관 “세상에서 유일한 코미디 체험 경험하게 할 것” 40석 예약제, 입장료는 자장면값과 같은 4000원
4년 전 청도 내려가 버려진 교회를 카페로 개그맨 지망생들 공짜로 먹이고 가르치고 복날마다 하는 ‘개나 소나 콘서트’ 대박
개그맨으로 데뷔해 ‘고정관념 깨기’ 42년 학생 가르치고 영화 27편 출연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 책도 33권이나 펴내
극장이 왜 철가방 모양이냐고?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된다는 뜻 흥행은 철저한 과학이야
▲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의 철가방 모양을 한 코미디 전용극장. 5월 중 개관한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월 17일 오전 11시쯤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발신인은 전유성.
그와 통화한 지도 1년이 넘은 것 같았다. 무슨 문자일까, 하고 열어보았다. 음식을 배달할 때 쓰는 철가방 사진이 보였다. 그 밑에 이런 문자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철가방 청도 전유성 코미디전용공연장 4월 말에 개관합니다!’
순간, 전유성씨가 또 한번 일을 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기자는 전유성씨에게 답을 보냈다.
‘잘됐네요, 기념으로 인터뷰 한번 모시겠습니다.’
그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수년째 거절해 왔던 터였다.
즉각,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통화하는데 다짜고짜 영업하려고 그래? 그냥 한번 놀러와.”
그는 서울 옥수동에 살다가 2007년 아무 연고도 없는 경북 청도에 터를 잡았다. 그가 청도에 터잡은 것은 우연이다. 우연히 청도를 지나가다 버리진 교회가 있어 리모델링하고 카페를 열면서 자연스럽게 청도에 둥지를 틀었다. 그 뒤로 기자와 통화할 때마다 “한번 놀러오라”고 했지만 한번도 실행을 못해온 채 수년이 지났다.
열흘 뒤 다시 통화했다. 청도를 어떻게 가는 게 가장 좋은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특유의 억양으로 말했다.
“KTX 타고 대구까지 와서 (무궁화열차로) 환승해서 청도 오면 돼. 그게 제일 빨라. 2시간20분 걸려.”
얼마 뒤 다시 문자를 보냈다. ‘수요일 11시까지 가겠습니다. 거기서 뵙겠습니다.’
다시 문자가 왔다.
‘네, 인터뷰는 엑스.’
‘코미디극장 얘기나 해주셔요.’
지난 3월 30일 오전 8시30분 서울역에서 동대구행 KTX를 탔다.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열차 안에서 ‘인간 전유성’을 생각했다. 그를 취재원으로 만나 알고 지낸 게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전유성(62)은 한국 연예계의 앤디 워홀이다. 1969년 MBC개그콘테스트로 데뷔했으니 데뷔 42년이 되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보통 개그맨들과 달랐다. 그는 지금까지 27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코미디언이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니 이건 접어둘 수도 있다.
그의 코미디언 인생 42년은 ‘다르게 생각하기’와 ‘고정관념 깨기’로 축약될 수 있다. 그는 몇 발짝 앞서서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1995년 종로구 인사동에 ‘학교종이 땡땡땡’을 열었다. 교실 분위기의 카페.
추억을 파는 카페는 문전성시, 대박이 났다. 소문이 나자 금방 전국에 유사 ‘학교종이 땡땡땡’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가 연 카페는 대부분 성공했다. 2007년 정착한 청도에 그는 카페 ‘니·가·쏘·다·쩨’를 열었다. ‘네가 쏟았지?’의 경상도 사투리다.
전유성은 저자이다. 1995년 그는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를 써서 저자로 이름을 날린다. 곧이어 ‘PC통신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가 나왔다. 같은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를 써서 독자들에게 비겁하게 살 것을 주문했다. 이 책 역시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 전유성을 다시 보게 만든 것은 1997년에 출간된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다. 전유성표 유럽배낭 여행기는 2001년에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2’가 나왔다. 2007년에 발간된 삼국지를 거꾸로 보는 ‘전유성의 구라삼국지’ 시리즈로 10권이 나왔다. 전유성이 쓴 책이 모두 33권이다.
전유성은 코미디언 후배를 양성하는 선생이다. 학생들을 가르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현재 예원대 공연예술학부 코미디전공 전임강사로 있다. 청도에 살면서 수업이 있는 날 서울로 온다. 그는 ‘전유성의 코미디시장(市場)’을 만들어 신인 개그맨들을 양성해 왔다. 신봉선, 박휘순, 안상태, 황현희, 김대범, 이재형, 김민경, 서성금, 김종은 등이 바로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1기생들이다.
전유성은 연출가이다. 물론 극본도 직접 쓴다. 청도 야외음악당에서 열리는 ‘개나 소나 콘서트’는 2009년부터 시작해 대박 행진을 기록 중이다. ‘개나 소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청도를 찾은 관광객이 지난해 7000명을 넘었다. 그는 이미 서울에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음악회를 즐기는 ‘듣도 보도 못한 콘서트’를 기획·연출해 주목을 끌었다.
이쯤되면 전유성이, 화가로 시작해 시각예술의 거의 모든 장르를 크로스오버한 앤디 워홀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는 코미디전용극장을 굳이 철가방 모양으로 짓겠다고 생각했을까?
동대구에서 무궁화열차로 환승했다. 무궁화로 바꿔 타니 완연한 남녘의 봄이 눈을 즐겁게 한다. 철로변에 핀 개나리를 감상하고 있는데 열차가 청도역에 이르렀다. 정확하게 예정시각인 10시57분이었다.
전유성씨는 기차 시간에 맞춰 승용차를 보내줬다. 기자는 청도가 초행길이었다. 승용차가 청도 중심가를 빠져나가는데 작은 광장에 소싸움 하는 동상이 설치된 게 보였다. 청도는 오랜 세월 소싸움으로 자신을 알려왔다. 도로 곳곳에 2011년 소싸움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10여분을 달린 승용차가 도착한 곳은 2층 양옥. 커다란 한의원 간판이 걸려 있었다. 기자가 사진기자와 함께 내렸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전유성씨가 현관 계단 위에 서서 한마디했다.
“정말 인터뷰하러 온 거야? (좀 뜸을 들이다가) 들어와!”
현관 왼쪽에는 세로로 된 ‘개나 소나 콘서트 안내소’가 걸려 있었다.
1층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손님이 와 있었다.
- 한의원 간판이 있던데, 이 집은 뭐하는 곳이죠.
▲ 철가방 극장 내부.
전씨는 “무대 뒤 벽이 커튼처럼 되어 있어 무대가 800m 뒤편 저수지까지 확장된다”고 설명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한의원으로 쓰던 집인데, 애들 합숙소로 쓰고 있어. ‘개나 소나 콘서트’의 센터도 겸하고 있어.”
‘애들’은 그가 운영하는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2기생 20명을 말한다. 센터장인 마술사 김준오씨가 녹차를 갖다놓았다. 잠시 방안을 둘러보는데 화이트보드 일정표에 빽빽한 스케줄이 눈에 들어왔다. 외부 강연이 대부분이었다. 3월 30일 현재까지 확정된 4월 중 강연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4월 4일 이성미 라디오 출연, 4월 12일 수원 아주대, 4월 15일 경북 울진군 강의, 4월 17일 조영남 대구콘서트, 4월 20일 동국대 강의, 4월 26일 부천 상공회의소 강의, 4월 27일 전주 강의….
- 강연을 많이 하는데 주로 무슨 내용을 하나요.
“그때그때 달라. 돈의 액수에 따라 달라져. 청중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200만원 이하 준다고 하면 안하지.”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한 그가 되받아쳤다.
“요즘, 세상에서는 뭐에 관심이 많지?”
- 그거야, 신정아 스캔들과 일본 원전 방사능 얘기죠.
“신정아·변양균 스캔들을 네 글자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기자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대답했다.
“신변잡기야.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은 신변잡기야. 신변잡기를 써야 많이 읽혀.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왜 신정아에게 빠졌다고 생각해?
그들은 젊은 시절 공부만 하느라 연애도 제대로 안 해본 사람들이야.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는 전부 지시만 따르는 비서 같은 여자들만 보게 되었지.
그러다가 자기 의견 딱딱 얘기하는 젊은 여자 만나니까 훽 가는 거지.”
그가 다시 기자에게 되물었다.
“그 사람 누구지, 여대생들에게 성희롱했다가 혼난 사람. 강 누군데?”
- 강용석 의원 말이죠.
“농담은 상대방이 웃어야 완성이 되는 거야. 상대가 성질을 내면 그건 농담이 아냐.
우리가 흔히 ‘에이, 농담 가지고 뭘 그래’라고 말하는데, 그건 농담이 아니라 상처를 준 거지.
어떤 사람은 상처를 준 얘기를 가지고 농담이라고 말해.
농담에는 기술이 필요해. 처음 본 사람에게 잘못 농담했다가는 ‘웬수’가 되기 십상이야. 농담은 상대가 웃어야 농담으로 완성되는 거지. 웃지 않으면 그건 칼로 찌른 거야. 폭탄 같은 거지.
그 사람(강용석 의원)은 평상시에 룸살롱에서 농담으로 하던 얘기겠지만 그런 걸 여대생한테 하면 안되지.”
그가 2층에 잠깐 올라가자고 했다. 잠시 뒤 취재진은 짐을 챙겨 2층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마루 겸 방안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잘못 들어온 게 아닌가 하고 그를 찾았다. 전유성씨는 한쪽 구석 창턱에 팔꿈치를 대고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코미디시장 2기수료생 20명이었다.
학생들은 대부분 체육복 바지에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로고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었다. 2기생의 연령은 24세에서 32세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전유성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보고 지원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이다. 광주광역시 출신인 박민영(24)씨는 예원대 코미디학과를 졸업하고 2기생으로 들어왔다. 개그맨으로 방송인이 되는 게 꿈이다.
전씨는 기자 일행에게 점심을 먹고 완공 단계에 있는 코미디극장과 함께 청도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점심 식사는 ㈜대구메트로아트 정판규 대표가 코미디시장 단원 전원을 초대해 놓은 상태였다. 코미디시장 2기 단원들은 3월 초 대구메트로아트센터(지하철2호선 대공원역 지하)에서 ‘개그 오네요(On Air)’를 공연해 대구를 놀라게 했다. 전씨는 단원들과 1시간 뒤에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어섰다.
전씨는 청도의 이곳저곳을 보여줬다. 그런데 식당 찾아가는 길을 잃어버려 여러 번 엉뚱한 길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인터뷰는 차에서 주로 이뤄졌다.
- 왜 돈 안받고 먹여주고 재워주며 코미디를 가르칩니까.
“그 질문을 정말 많이해. 어떤 학생은 왜 돈을 안 받느냐며 재산증명서까지 떼어오대.”
- 당연히 그게 궁금하죠.
“내 알량한 재주로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잘 벌어먹고 사는 거야. (돈을 안 받는 게) 보답이라고 생각해. 요즘 같으면 내 재주로 개그맨 시험 붙겠어? 떨어지고 말지. 요즘 애들은 재주가 얼마나 많은데, 대단해.”
- ‘전유성의 코미디시장’을 마친 학생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과정을 수료하면 다 방출하지. 그런데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어. ‘신봉선이 추석 때 찾아오나요?’ 아니 연예인들이 명절 때 이런 데 찾아오면 어떻게 해. 그렇게 되면 신봉선이 별볼일 없는 거지.
세상 사람들은 내가 신봉선이를 가르쳤다고 해서 내가 당연히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신봉선이가 나에게 코미디를 배웠지만 다른 사람 밑에 있어서 그만큼 큰 거야. 다 영역이 다른 거지. 떠나면 끝이지 뭐.”
한재미나리는 청도 반시와 함께 청도의 특산물. 미나리 비빔밥을 먹고 우리는 또다시 청도 탐험을 시작했다. 청도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자동차가 가파른 산길을 꼬불꼬불 넘었다. 산속에 큰 건물 몇 채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왼쪽에 짐승 우리가 보였다. 놀랍게도 우리 안에 수사자가 있었다.
아니 이 깊고 깊은 산중에 웬 사자가! 이곳은 이미 걷기 매니아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청도 몰래길이 시작하는 곳. ‘청도 몰래길’은 전씨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원래 이름은 청도 올레길이었어. 내가 그랬지. 이름이 그게 뭐냐고. 제주도에 있는 걸 왜 흉내내냐고.
‘몰래 ○○한다’의 몰래라고 짓고 거기에 전설을 만들자고 했어. ‘청도 몰래길이 시작하는 곳에는 사자가 산다’는 전설을 만들어냈지.”
지난해 7월 3일 가수 유익종 등이 참석한 가운데 ‘몰래길 터기’ 행사가 벌어졌다. 몰래길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패션디자이너 최복호. 전유성은 여기에 스토리를 입혔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몰래길에는 사자가 산다’는 설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옛날 호랑이 고스톱 치고 원숭이가 광 팔던 시절!
비슬산 자락에 화전민 동팔이가 살았다. 동팔이는 척박한 비탈땅을 갈아 감자 심고 텃밭 가꿔 겨우겨우 풀칠하고 살았다. 동팔이는 매년 벌어지는 소 싸움장에 나가 소 여물 끓이기, 소 이빨 닦아주기, 소 발톱 깎기 등 닥치는 대로 뒤치다꺼리를 하며 몇 푼 벌면 생필품을 구해 지금의 몰래길을 넘어 오곤 했다.
어느 해 동팔이의 사람 됨됨이를 지켜보던 소 싸움꾼이 동팔이에게 송아지 한 마리를 맡겨 키우게 했다. 동팔이는 제 처자식처럼 송아지를 보살폈다. 그렇게 지극정성 키운 송아지가 살이 토실토실 올라 겨우 어른 소의 모습을 갖춰갈 무렵이었다.…’
이 설화를 읽고 비슬산 산속, 몰래길이 시작하는 곳에 있는 사자를 보면 모든 게 달라보인다. 지금까지 걷던 산길과는 다른 흥미진진한 몰래길이 탄생한다. 이게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전씨는 단골 카페인 다강산방(茶康山房)으로 안내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청색바탕에 쓰인 옥호(屋號)가 범상치 않아 들른 것이 단골이 되었다. 이곳은 김재호씨가 운영하는 전통찻집. 찻집은 대동골이라는 계곡 옆에 자리잡아 분위기가 그만이다.
청도의 특산물인 청도 반시. 반시의 탄생 설화 역시 전씨가 새로 만들었다.
“청도에 왜 반시가 유명하냐고 물었더니 토양이 어떻고, 날씨가 어떻고 그래. 그래서 내가 조선시대 내시로 임금을 모시던 사람이 은퇴해 이곳에 와서 감을 심었는데, 그게 ‘청도 반시’라고 하라고 했지. 그래야 사람들이 재밌어 하잖아.”
씨 없는 남자인 내시가 고향에 내려와 키운 감이 청도 반시다! 얼마나 쉽고 재미있는 스토리인가?
다강산방의 대표차인 솔방울차가 나왔다. 고명처럼 살포시 얹혀진 제비꽃잎 하나가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차를 마신 뒤 다시 청도 순례를 시작했다.
- ‘개나 소나 콘서트’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 ‘전유성의 코미디시장’ 2기 수료생들과 함께.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첫 아이디어는 김훈기 클라리네티스트가 주었어. 애완견을 위한 콘서트를 하면 어떻겠냐고. 그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넣고 있었지. (방송인) 최유라가 어느날 애가 아프다고 울고불고 한 게 생각이 났어. 개를 가족과 똑같이 생각한 거지.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콘서트에 오게 만들자고 한 거야. 날짜는 사람들이 보신탕을 먹는 복날로 잡았지.”
한국인의 언어 생활에서 ‘개나 소나~’는 흔히 부정적인 데 쓰인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곳에서 그는 개를 사람으로 대접해 콘서트장에 데리고 오라고 했다. 좋아라 한 것은 개 주인들이었다.
- 청도군에서 협조를 받았나요.
“아니! 공무원하고 일하려면 정말 짜증 나잖아. 관리들에게 찡찡대봤자 예산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런 모습 보이기 싫었어. 내가 (돈이) 있어도 개털이고 없어도 개털인데, 내 돈 내고 한 거지.
나는 사비를 들여 먼저 하자는 주의야. 잘되면 서로 도와주려고 하잖아. 청도야외음악당이 돈을 많이 들여 잘 지어놓았어. 그런데 열대야 때 영화상영 네 번 하고 거의 쓰지를 않았대. 그래서 거기를 빌려 했지.”
- 왜 ‘개나 소나 콘서트’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은 동호회 시대야. 그러니 동호회 개념으로 가야지. 이제는 뜻이 맞는 게 중요해. 지금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동호회가 있어? 이들을 잘 엮어낼 수 있는 공통분모만 있다면 공연은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 결혼도 사랑해서가 아니라 뜻이 맞아서 해야 오래 가. 예컨대 음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학부모를 위한 음악회라고 하면 뭔가 발길이 끌리잖아.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엮어내야만 공연이 성공해.”
연합뉴스가 촬영한 2010년 ‘개나 소나 콘서트’ 동영상을 보면 이 말이 실감 난다. 전국에서 개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 축제의 난장을 벌인다. 사람들은 잔디밭 같은 곳에 아무렇게나 편안히 앉아 개와 장난을 치며 논다. 2009년 4000명이던 이 콘서트 관람객은 2010년 7000명으로 늘었다. 청도 소싸움이 아무리 전통이 깊고 유명해도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데 묶어낼 수가 없다.
전씨는 “군에서 2011년 ‘개나 소나 콘서트’ 지원 경비를 예산으로 잡아놓았대”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흔들리는 차중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동차는 최종 목적지인 ‘철가방 코미디극장’에 우리를 내려줬다. 청도군에서 건축비 12억원을 댔다. 객석은 휠체어 전용석 2개를 포함 40석. 극장 전면은 막 배달된 철가방 문을 연 모습. 삼선간짜장과 삼선짬뽕은 각각 조금씩 쏟아졌다.
양파와 단무지가 담긴 접시, 고춧가루통, 간장통 등 실제로 철가방 속에서 나올 만한 것들이었다. 한 가지 이해 안되는 것은 앞쪽으로 기울어진 소주병.
- 왜 극장 형태를 자장면 배달통 철가방으로 했나요.
“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된다는 뜻을 표현한 거지. 왜 가수들이 40주년, 50주년 공연을 세종문화회관에서만 할까, 늘 궁금했어. 그 정도 오래 했으면 감사의 표시로 공짜로 해도 될 텐데. 그래서 관람료도 자장면 값(4000원)에 맞췄어. 나는 자장면 값이 많이 오르길 고대해. 그러면 자장면 값이 10만원이 되는 날이 오면….”
- 외관은 일단 눈길을 끄는데, 무대에 올리는 코미디는 대학로와 뭐가 다른가.
“많은 지자체에서 고구마 캐기를 시키며 고구마 체험이라고 하잖아. 나는 사람들에게 코미디 체험을 하게 하려는 거야. 매주 월요일 여기 오면 세계에서 유일한 코미디 체험을 할 수 있게 말이야.
배우가 재채기를 하면 객석에서 얼굴로 그걸 느끼게 되어 있지. 더이상은 알려고 하지 말고. 극장 내부 콘셉트도 다 내가 잡았지.”
- 흥행을 자신하나요.
“문화행사 기획자들이 흔히 적자 얘기를 많이 해. 대부분은 기획력의 부족이야. 만들어봐서 깨진다고 생각하면 거기서 멈춰야 해. 4800만원 들여 제작했는데 영 아니다 싶으면 거기서 멈춰야 해.
미련 때문에 밀고 나가면 5000만원으로 끝날 게 1억~2억원이 나가지. 옛날 사람들이 흥행은 도박이야, 뭐 이따위 소리를 했는데 그렇지 않아. 흥행은 철저한 과학이야. 나는 건방지게 경영할 생각이야.
100석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100석 만들어 20~30석 차면 그거 어떻게 해. 40석을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할 거야. 외벽에 소주병 보이지? 여기서는 코미디 보며 소주도 마실 수 있어.”
의자 38석은 박미선, 신봉선 등 모두 유명 개그맨에게 팔았다. 관객은 ‘박미선 의자’에 앉아 관람을 하게 된다. 이들은 1년에 100만원씩 코미디극장에 기부한다. 이 돈으로 극장 관리직원 3명의 인건비를 마련했다.
- 소주병에 이름이 안 붙어있는데, 왜 그런가요.
“응, 스폰서를 잡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했어.”
- 개관 기념작 대본도 직접 썼다고 하던데.
“그런 말이 있잖아. 애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고. 싸움의 모든 형태를 코미디로 보여줄 거야. 이 동네 사람들도 영상으로 출연하게 될 거야. 12억원, 그리 큰돈이 아니야. 그 돈 써서 청도가 알려지게 되면….”
그가 청도에 터잡은 것은 우연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 연예인이 아니었다. 예측을 불허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청도에서 사회에 통용되는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왜 문화생활은 시골에서는 못하나, 왜 아둥바둥 대도시에서만 살려고 하나 등.
이미 “청도에 가면 운문사 들러 전유성을 만나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청도로 들어와 전유성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등의 얘기가 나온다.
전씨가 공연장 안에서 조명 상태 등을 점검하고 있을 때 기자는 밖으로 나와 극장 외벽에 시선을 고정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철가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철가방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예술작품으로 만든 사람은 대한민국에 전유성 한 사람이다. 전유성은 한국의 앤디 워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