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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1
최후 진술문
먼저 지난 9개월 동안 성심을 다해 변호해준 권영국, 김인숙, 백신옥 변호사님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추석 직전에 보석 결정을 내려 늙으신 아버님과 명절을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신 재판장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저는 지난 4월 1일 바로 제 쉰다섯 살이 되는 생일 날 체포 구금되었습니다. 그 날 저는 제가 거룩한 바위라고 믿고 있는 구럼비를 부서뜨리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항의하기 위해서 철조망을 넘었습니다. 저는 이런 성스러운 바위를 반드시 하나님이 지으신 모습 그대로 다음세대에게 있는 그대로 물려주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저의 항의가 정당하고 무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분 양보하여 검경의 입장에 서서 본다 하더라도 저는 단지 통상적으로 벌금 2만원이 부과되는 경범죄를 저지른 것이어서 결코 체포 구금할 수 없는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별 건들을 이유로 하여 6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한 채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경찰은 저를 연행하는 과정에서도 제가 차량 바닥에 턱이 걸린 상태에서 여섯 명의 경찰이 다리와 성기를 잡아당기는 불법적이고도 비인도적인 강제구인을 통해 치아 세 개가 부러졌으며 턱밑이 찢어져 봉합수술을 해야만 했고 턱이 몸통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순간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몰려왔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감옥에서도 밤마다 공포스런 악몽에 시달려 정신치료까지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공권력의 남용을 문제시하는 어떠한 국가기관도 없습니다. 국가 인권위원회의 조사관들은 경찰의 과잉대응을 이유로 담당 경찰관들의 징계를 요청했지만 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기가 아무리 선하다고 하더라도 그 방법과 절차가 불법적이라는 이유로 저와 평화활동가들이 처벌을 받고 있다면 저는 직권을 남용하여 폭행을 저지르는 경찰도 동일한 이유로 처벌 받아야 하며 또한 민주주의적인 절차와 방법을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정부와 해군도 동일한 이유로 처벌당해야 옳을 것입니다. 제가 재판장님께 기대하는 것은 강한 자들의 횡포로부터 약한 자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요 재력과 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정의를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국민들이 사법부와 재판장들에게 간절히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19대 총선에서 강정마을 주민들 대다수의 바램과는 달리 강정에 해군기지를 차질 없이 건설하겠다는 박근혜후보가 당선되었고 주민들은 실망과 좌절에 빠져있습니다. 체념과 냉소, 절망과 낙담의 암운이 마을을 덮고 있습니다. 누가 제주도를 미국의 하와이 같은 아름다운 섬이 되게 해 달라고 했습니까? 누가 우리 강정마을에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세워지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까? 왜 정부는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오만스럽게 마을의 미래를 결정해버립니까? 그리고 왜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마을과 대화를 하려 들지 않습니까? 왜 사법부는 이렇게 대화와 협상이 아닌 폭력을 비호하고 정당화시키며 정의로운 주민들을 계속 처벌하고 있습니까? 정의를 외면한 채 국민들을 대화가 아닌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서 지배할 수 밖에 없는 정부는 국민의 정부가 아니라 어거스틴이 말하는 “강도들의 수뇌”일 뿐입니다. 정부가 대화와 협상을 피하는 이유는 국민을 설득할 명분도 내용도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길들여진 방송 매체들을 통해 일방적으로 광고 선전을 하고 세금을 들여 광고전단지를 살포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공명정대한 길을 찾아 나갈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강정 해군기지는 사회적인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제주도 최대의 현안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정부도 마을 주민들이나 평화활동가들도 결코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여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려 들지 말고 모두가 대화의 원탁에 둘러앉아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바른 길인지, 어떤 미래를 선택해야 할 지 충분한 대화와 논의를 하는 것입니다. 찬반으로 갈라져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는 마을 공동체가 서로 화해하고 평화를 회복할 수 있도록 사법부가 국민의 심판자로서 자신의 권한과 의무를 다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을 르완다, 보스니아, 동티모르, 아프간 등지의 전쟁 피해자들과 아체, 파키스탄, 아이티등지에서 벌어진 츠나미와 지진 피해자들을 돌보는 데 저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그런 제가 이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오키나와 기지로 인해서 베트남의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로 인해서 이라크의 수많은 어린이들과 여인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37년 바로 우리 제주도 남서쪽에 지어졌던 알뜨르 비행장에서 발진했던 전폭기들로 인해 이웃 국가인 중국의 상하이와 난징 일대의 수 많은 시민들이 군인들과 함께 소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격납고들의 폐허 만 남아 그 때의 비극적인 역사의 교훈을 알려주고 있건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뜻을 깨닫지 못한 채 다시 평화의 섬을 전쟁의 기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제주에 세워지는 해군기지에 관한 한 진실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 제주 해군기지는 결코 관광객들의 눈요기거리로 그칠 수는 없습니다. 이 해군기지는 핵잠수함들과 미 항공모함이 입항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주한 미 해군 사령관의 요청에 따라 지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1982년도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군복무를 하며 제 눈 앞에서 손가락 크기 만한 지뢰들로 인해 소대장이 현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과 여러 부대원들의 다리가 절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폭약을 가슴에 안고 옮기다 폭발한 동료의 시신이 터진 풍선 쪼가리들처럼 겨울 나뭇가지에 흩어져 걸려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지금도 중동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자살 폭탄테러로 붐비는 시장이나 사원 주변에서 숱한 시민들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무기들로 인한 비참한 희생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핵폭탄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은 하나로도 서귀포에서 중문까지 모든 사람과 건물을 파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수천 배의 위력을 갖고 있는 핵무기들을 탑재한 군함들과 잠수함들이 수시로 출입하는 무시무시한 항구를 관광미항이라고 포장하여 선전하는 정부에 대해 불신하고 저항하지 않는 다면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분쟁이 벌어졌을 때 해군기지 주변지역에 닥칠 수 있는 사태가 무엇인지 주민들에게 정직하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런 전제조건들이 선행되지 않는 한 대화와 타협은 불공정하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나는 정부가 더 이상 속임수로 강정 주민들과 제주도민들을 호도하지 말고 진실을 밝히기를 바랍니다. 왜 해군 기지를 이 제주 남단 강정마을에 지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제주 도민들이 감당해야 할 위험성은 얼마나 큰 것인지. 그리고 그런 대가를 치러서라도 얻으려고 하는 안전과 행복은 어떤 것인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실한 대화와 설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높은 장벽을 쌓은 채 비밀하게 진행하는 공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재판장님, 저는 우리 변호사님들과 더불어 재판장님께서 해군 기지 공사현장을 꼭 답사해주실 것을 강청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희들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재판장님은 여러 차례 화면을 통해서 기지 건설 현장을 충분히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직도 재판장님이 모르시는 현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정포구에는 해경들이 24시간 차에 앉아서 시민들이 구럼비에 들어가려고 바다로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저는 권력과 돈의 힘에 의해서 강제로 무릎 꿇린 대다수의 억울한 주민들을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폭약과 중장비에 의해 힘없이 부셔져 나가는 거룩한 구럼비 바위의 처참한 파괴 현장을 지켜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위들에 기식하고 있는 따개비들과 같은 수많은 생명들의 처참한 주검을 추념하고 진혼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런 미물들의 덧없는 몰살이 이후 멀지 않은 훗날 오만한 우리 인간들이 겪을 비참한 학살의 서곡일 것이라는 불길한 영감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공사장 정문을 찾아가 해군 기지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늘 해왔던 것처럼 구럼비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도록 출입허가를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건설을 찬성하는 몇몇의 주민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이 높은 장벽 안으로 들어갈 수 가 없습니다. 저는 달리 방법이 없어 바다로 수영을 해서 여러 차례 소위 “불법 무단 출입”을 하였으나 공사장 안에 들어가 어떤 시설이나 기물도 파손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 조차도 바다에서 해경들 여럿이 바다에 뛰어들어 막으니 할 수없이 기소된 것처럼 맨 손과 발로 해군기지의 장벽을 부수고 라도 들어가려 했던 것입니다. 제가 죄가 있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이 너무나도 좋고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을 혐오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요 그것을 단지 마음에 품고 있지 못하고 그 마음을 실천했다는 것뿐입니다. 저도 남들처럼 강정마을 공동체가 파괴되든 말든, 주민들이 서로 원수가 되든 말든, 우리 나라의 절대보전지역이 폭파가 되든 말든, 중덕 바다의 연산호들이 죽든 말든 그저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지나칠 수 있는 메마른 심성을 갖고 있었다면 이렇게 법정에 서서 준엄한 법의 심판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왜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닌 것인지 애석할 뿐입니다.
재판장님은 1999년 영국의 그리녹에서 진행되었던 재판을 아시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해 여름 앤지 젤터와 엘렌 목슬리, 올라 로더 세 여인은 영국 해군의 핵 잠수함 트라이던트의 비밀 잠항을 연구하는 바지선이었던 메이타임호에 승선하여 기지 내부의 컴퓨터와 관련 장비들과 자료들을 호수에 던져 수장 시키고 “ 핵살인을 위한 연구를 중단하라”는 현수막을 걸었던 사건으로 인해 선체와 장비를 손괴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습니다. 이 세 여인들은 “ 국제법상 불법 무기인 핵무기를 발사하는 트라이던트 잠수함을 불능화하는 일은 핵무기에 의한 무고한 민간인 살상을 막기 위한 것” 이었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개인의 선한 의지가 국가 시설 파괴를 정당화 할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이에 대해 김블릿 주 법관은 “영 연방이 트라이던트를 사용하는 것은 위협으로 해석될 수 있고 따라서 국제법과 국제 관습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생각되기에 나는 세 여성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다. 나는 피고인들이 범의를 갖고 범행하였다는 것으로 보이는 사정을 발견할 수 없다.” 는 설명과 함께 무죄 선고를 내렸던 것을 상기 시켜드리려고 합니다. 제주해군기지는 강대국 간의 분쟁에 우리나라를 끌고 들어가 국가의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모든 회원국은 그들의 국제분쟁을 국제 평화와 안전 그리고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아니하는 방식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 그리고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 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또는 국제 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의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는 국제 사회의 최고 규약인 UN헌장2조 3항과 4항에도 배치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법이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죄를 지었다고 판결한다면 법은 제게 다른 길을 가라고 이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유죄라면 법은 정의를 위한 분노가 죄이고 평화를 위한 열정이 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방관이 선이고 관여와 동참은 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이 우리 사회의 상식과 인간으로서의 정의감 그리고 개인의 양심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유리될 때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고 분쟁은 끝없이 증폭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강정마을과 제주 법정을 오가며 경험한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법을 집행하는 사람은 법의 엄격한 적용과 범죄자들에 대한 준엄한 처벌을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빵 한 조각을 훔치는 것으로도 20년 형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 빵을 훔쳤다면 그가 왜 빵을 훔쳤는지 그 이유와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었어야 합니다. 저는 이 법정에서 단 한번도 왜 당신은 추운 겨울에 조차도 구럼비에 헤엄을 쳐 들어가려고 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왜 일곱 겹의 철조망을 넘어 구럼비에 들어가 추위와 싸우며 비를 맞으면서도 노숙을 하며 지내려고 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왜 장벽을 부수었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의 행동으로 인해 받은 피해액이 수백, 수 천만 원이었다는 사실만을 설명했습니다. 저는 법정에서 밝혀야 할 것은 사실 배후에 감추어진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법정은 우리 모두에게 법이 우리 사회에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법을 정의 앞에 굴복시켜 주십시오. 법이 평화와 친구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의인을 감옥에 가두고 거짓말쟁이들과 뇌물로 연약한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자들, 협박과 공갈로 겁 많은 사람들을 비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법의 역할인가요? 구슬환 경관은 제가 크레인 기사였던 임영환씨의 업무방해를 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들은 바로 경찰들이었습니다. 경찰들은 기사의 허락도 없이 차량의 열쇠를 무단으로 뽑아서 보관했었고 고칠 필요도 없는 차량이 손상을 입은 것처럼 차량 수리 견적서를 받아오도록 하여 가짜 차량수리 영수증을 가져오게 하는 등 간악한 방법으로 피의자들에게 누명을 씌우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경찰은 마을 주민들을 보호하고 마을을 지키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해군과 삼성과 대림의 불법적인 외상 공사를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게 땅과 바다를 빼앗긴 주민들과 억울한 주민들의 편에서 이들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 동참하려고 찾아온 의로운 시민들 수 백 명이 지금 법정에서 정의로운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판장님, 아직도 더 많은 희생양들이 필요합니까? 더 이상 무고한 강정의 시민들을 범죄자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이제는 이 제주 법정의 과오를 중단시키는 명예로운 판결을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1월 23일
제주 202호 법정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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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송강호 박사님 언제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