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기 쌍기는 후주(後周) 사람이니 주(周)나라에서 벼슬하여 무승군(武勝軍) 절도 순관(節度巡官), 장사랑(將仕郞), 시(試) 대리 평사(大理評事)로 있었다. 광종 7년에 봉책사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왔다가 병으로 머물러 있게 되었고 병이 완치되자 왕이 불러 보았는데 그의 응대(應對)가 마음에 들었으므로 공종이 그 재주를 사랑하여 국서를 주나라에 보내서 그를 요속으로 삼을 것을 요청하였다. 이리 하여 그를 등용하게 되었으며 원보(元甫), 한림학사(翰林學士)로 급속히 승진시켰다. 그리고 그 해가 지나기도 전에 문한에 대한 직권(文柄)을 맡기니 당시 공론이 과중한 등용이라고 평하였다. 광종 9년에 처음으로 건의하여 과거(科擧)를 설치하고 드디어 그가 지공거(知貢擧-과거를 주관하는 관직)로 임명되어 시(詩), 부(賦), 송(頌), 책(策)으로써 진사(進士) 갑과(甲科)에 최섬 등 2명, 면경과(明經)에 3명, 복업과(卜業)에 2명을 선발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과거의 일을 맡아 보며 후진 학도들을 권장하였더니 글을 공부하는 기풍(文風)이 흥성하기 시작되었다. 광종 10년에 그의 부친 시어(侍御) 쌍철(雙哲)은 당시 중국의 청주(淸州)원으로 있었는데 쌍기가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回使) 왕긍(王兢)을 따라 고려로 와서 좌승(佐丞)으로 임명되었으나 그 후의 일은 ≪사기≫에 전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