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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종렬: “벩송의 영혼론”에 관하여
- 기억이론의 역사 1903-1904 강의록(2018)에 대한 관점 -
2021 12 10 대설지나 나흘. - 덧글: 소한 지나... 2022 01 13.
서양 철학사 또는 학문 발달사는 한편으로 지성의 발달사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기호화의 다양화와 그 전개(확장)사이기도 하다. 전자의 경우에, 인간이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서 얼마나 많이 이용하고 분석해 들어 갔느냐와 연관이 있으며, 이는 두뇌가 할 수 있는 것이고 현대에 와서는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분야이다. 후자의 경우에, 인간이 또는 인민이 니르고자 홀배 있어도 제 (입)말로 니르지 못하다가, 점점 더 개인이 니르고자 하는 방식이 다양하게 전개(발산)되는 과정에 있다. 전자에서는 원리를 먼저 설정하고 법칙을 전제로 하여, 그 전제를 안다는 자들 끼리 위계를 정한다. 후자에서는 자연(본성)에서 우러나는 대로 기호로 표시하고 입말을 표출되기도 한다. 철학이 학문으로 체계를 갖출 때, 전자를 학문으로 후자를 아마도 예술 또는 감화(공감) 정도를 여겨 학문이 아닌 것으로 배제했을 것이다.
배제된 역사에서 자신의 지위를 차지하려 심층에서 표면으로 올라오는 과정이 서양철학사에서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전복의 역사이다. 400여 년 전에 하나 하나,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이 내부로 들어갔다. 심리학이 내부로 들어가니, 문제가 생긴다. 성직자들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를 대신하려고 하는 학문이 일반적으로 정신분석학이라 한다. 그러나 들뢰즈가 잘 보았듯이, 영혼(프쉬케)의 전복이 있었다. 그 전복이 벩송의 영혼론, 즉 기억론이다.
영혼(프쉬케)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있다가 다시 돌아들어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벩송의 기억론이다. 아마도 카토릭 교리성만이 이 작품의 위험성을 깨달았을 것이다. 영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는 부류들은 지금도 공산주의를 마치 악의 축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부류는 지금도 광기에 차있다. 그러나 정설은 아니지만 그들은 에밀 졸라를 1902년 의문사 시켰다. 그리고 19014년에는 장 조레스를 공공연하게 암살했다.
나는 이 강의록을 읽으면서, 가타리/들뢰즈가 왜 정신(영혼, 프쉬케)분석을 부정하고 분열분석을 했는지를 이해한다. 생명은 분화이기 때문이며, 하나의 원리로부터 주어진 또는 되돌아 온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다른 차원이 플라톤에게서 이미, 보다 먼저 소크라테스에게 있었다는 것을 벩송은 “시간관념의 역사”에서 고대철학사를 통해서 밝힌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이런 관점으로 플라톤을 독해할 수 있었던 박홍규 선생님을 가졌다는 점을 행복이라 생각한다. 박홍규는 철학사의 전복이라 하지 않았고, 흥미있게도, 철학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운동과 정지를 함께 다루는 플라톤, 그리고 정지에서 출발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운동에서 출발하는 베르그송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운동과 정지를 다루는 것이 은연중에 영혼과 신체의 문제를 다루었고, 아리스토텔레스 정지에서 시작하니 영혼의 완전성과 부동성에 출발했으며, 벩송은 운동에서 출발하였으니 영혼 즉 생명의 발생론으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벩송은 흥미롭게도, 철학사가 영혼과 신체의 해명에 대한 동등론에서 평행론과 부대현상론으로 이어지면서 영혼이 신체 속에 두뇌 속에 위치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해석하고 해명하려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혼은 운동하며 지속하는 움직임으로 내재적으로 연속이고 신체적으로 불연속이라 한다. 그 내재적 연속성이 생명의 과정이다. 그 과정은 신체의 모습에 따라 달리 드러난다. 생명체마다 다른 형상으로 드러나고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과 기능의 입장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두 계열에 있다고 한다. 아프로디지아스는 기능으로 플로티노스는 능력으로 다루었다고 벩송은 설명한다. 스토아의 숨결이 기능으로 여기면 말씀(로고스)일 것이고, 그 숨력이 능력이면 누스의 권능일 것이다. 두 계열은 지금도 상반된 철학적 견해로서 대립되어 있다.
이 중간참에 별종(anomalie)이 있다. 그 별종은 심층에서 탈주로를 찾는다. 생명은 분화와 발산이기 때문이다. 별종은 상층으로부터 오랫동안 미치광이로, 악마로 버림받고, 현실에서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세상은 유지하는 것은 별종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미세한 변화와 작은 변역은 별종으로부터 였다. 별종들이 동맹화하고 연대하고 조직화하는 것을 불법으로 여긴다. 별종의 조직화는 체제전복이라 한다. 철학이 원래 체제전복이다. 철학은 여전히 혁명적이다. 조직화는 스스로 위상을 정하고, 연대하며 공감하며, 알리앙스를 맺는 정치화하는 길이다. (54L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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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인식의 차원에 다루지 않고, 재인식의 과정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를 먼저 말한다. 즉 [§01.에서]인식은 분석적 차원이며 이는 의식을 대상으로 다루는 측면이다. 이런 경향으로 [§02.에서]기억을 인식의 이론으로 다루었던 것이 고대철학에서 근대철학에 이어 현대 철학의 상층(논리와 언어)에서 행해진 것이다.
기억은 인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인식의 자기 성장과 자발적 창안을 생성한다. 이런 점에서 기억은 의식과 마찬가지로 이중화를 생성한다. 사물화와 주체화이다. 고대철학은 기억을 대상화할 경우에, 인식의 완결성에서 당연히 기억은 인식의 미완결 또는 부족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에 비해 근세의 데카르트는 인식의 두 종류를 따로 설정하여, 너비와 사유로 이분화하였다. 이 이분화로부터 칸트에 이르러 대상으로서 ‘나’와 생각하는 ‘자아’의 이중화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를 해석하면서, 일반적 상식으로 세계의 현상에 대한 해명에서는 정신(le spirit)은 사유와, 너비는 물체(le corps)과 상응하는 것으로, 그리고 묘하게도 영혼(la psyché)과 신체(notre corps)의 상응관계는 거꾸로 논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물체와 신체를 다루는 추론과 논리의 정신은 현상에 관한 것인데 비해, 너비와 영혼을 다루는 방식은 역동적이고 지속에서 다루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데카르트가 이 양자의 관계를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이중성의 이분화를 달리 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이런 이분화를 스피노자에서 한 실체, 두 속성으로 여러 양태에 견주어서 두 속성은 영혼의 활동성과 사물의 형상성의 상응관계이며, 양태는 이 양자의 혼성 또는 조합에 의한 다양한 형태들과 사건들이 될 것이다. 칸트는 인식을 주제로 삼으면서 주체의 근거를 탐문하다가, 의식의 양의성에 부딪혀서, 자아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이지, 규정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았고, 자아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멸성을 요청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벩송에서는 고대로부터 근세에까지 인식이, 영혼이든 세계이든, 대상화를 먼저 전제로서 상정했다는 순환논증의 오류에 빠진 것으로 보고, 인식하는 의식(자아든 영혼이든)은 과정으로서 이루어지고 있는(se faisant) 것으로 보았고, 벩송은 인식의 정의 및 탐구보다 재인식의 탐색과 탐험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재인식도 인식의 한 방법 또는 경향으로 다루어 온 인식이론들은 선전제로서 동일률을 가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이론은 [§03.에서]탐구 방식은 닮음에 의해 연합을, 또한 인접에 의한 연합을 토대로 삼는다. 흄은 이미 관념형성에서 인접, 닮음, 인과를 다루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칸트는 인과관계를 인식의 주제로 다룸으로써 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주체에 의해 구성할 수 있는 인식(지식)을 확보하는 쪽으로 간다.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는 이전까지 인식이 대상의 관계들, 즉 인과관계인데 비해, 주체의 구성에 의해 인식을 한다고 하며, 그 주체의 구성 능력을 범주화하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그 기원이나 종말에 대해 어떠한 해결을 내지 못하면서도, 구성 안에서 정합성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 정합성은 순수 사유 논리(logos)에, 즉 규정된 경계(페라스) 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스콜라주의로 환원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식 이론은 상응관계도 정합성도 아닌 하나의 경향이다. 이에 비해 인식이론이 재인식의 과정에서 일정한 부분을 단절하여 단위를 형성하는 개연성의 경향도 있다. 이런 관점은 물질이든 생명이든 내부로 들어가서 과정을 탐구함에서제기된 것이다. 의식(영혼이든 생명이든)은 불멸성도 완전성도 아니며, 게다가 동일성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의식은 무엇인가? 의식은 활동성이며 과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벩송에게서 의식은 지속(흐름)이며, 의식 활동의 과정에서 왕복운동과 연관하여 의식에 대한 탐색을 재인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04.에서]재인식에 대한 탐구 방식을 제기하는 길은, 마치 EC에서 생명에 대해 탐구 방식을 제기하는 것과 같다. 재인식을 탐구하기 위해 우선 인식의 차원에서 의식과 대상, 그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다. 대상을 알아보는 것은 감관에 의해서인가? 왜 감관의 오류가 있는가? 따라서 상식을 넘어서자. 그러면 대상에 대한 인식을 추억과 일치를 거쳐야 하는가? 그러면 추억은 어디에 있는가? 추억이 두뇌 안에 정해진 위치가 없다면 어디에서(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 이 탐구에서 기억의 실재성을 제시한다. 이 실재성은 프로이트류의 이드(Id, 실재계)와 견줄 수 있으나, 그들의 상상계(현실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05.에서] 이런 물음의 제기에서 벩송은 재인식의 여러 방식들을 세 가지 경향에서 다루고자 한다. 신체의 자동적 재인식, 지성을 통한 (동일성) 반복에 의한 모방운동의 재인식, 그리고 또 하나 더, 주의 깊은 재인식이 있다. [§06.에서] 벩송에서 중요한 것은 셋째 주의 깊은 재인식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당대의 정신병리학의 사례를 검토한다. 이 재인식에서는 과정의 단면으로서 추억들과는 다른 어떤 능력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재인식을 통하여 기억 또는 영혼의 활동성(능동성)이 실재하는 것으로, 무의식이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음을 제시한다. (54VKJ)
[§07.에서] 기억은 의식보다 풍부하고 거대하다. 그럼에도 신체의 행동에서 기억의 일부만 등장한다. 그렇다면 의식에 내재하는 의식전체(기억) 또는 무의식이 더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탐구를 심리학자들이 한다. 이에 비해 행동심리학자들은 무의식이 아니라, 행동이 현실에서 이익과 유용성에 근거하는 의식만을 본다. 추억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벩송은 무의식이 실재성이라 한다. 무의식이 불충분성하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지성적 사고가 자기 역할을 하는 동안에는 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예를 들어 예술 작품을 창조에서 묻혀 있던 기억은 등장한다. [§08.에서]기억의 불충분한이유에 대해 논한다. 그 사례로서 한편 기억 상실들(퇴행성과 선행성)이 있고, 다른 한편 영혼 쇠약으로서 조증이나 강박 등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벗어나려고 타협하면, 정상처럼 여긴다. 이런 타협이 없으면 비정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런 타협의 노력에는 기억의 집중화의 주의를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기억의 총체 중에서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고, 그것은 실재한다. 벩송은 기억과 주의 사이에 연대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셋째 주의깊은 인식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주의”의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는 지각의 강도성의 증가이다. 둘째특성으로는 사람들이 주의를 행한 지각은 보다 분명한 지각이다. 셋째특성으로 사람들이 주의한 지각은 사람들이 잘 해명한(interpréter)지각이며, 이는 “지성적(intelligible)”이다. 그러나 벩송은 발생론적 생성 과정을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기억이론에서 재인식의 문제제기 다음으로 중요하다.
[§09.에서] 삶에서 주의 집중은 대상의 확인에 있다. 이 집중에서 기억의 일부가 또는 기존의 도식이 개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발명과 창조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기억 활동의 개입이 있다. 즉 기억은 과거의 잔존과 현실의 접근을 넘어서 다음의 창조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개입은 사상의 진보에 필요하기 때문에, 교육에도 필요하다. 게다가 감각작용에도 적용된다. 벩송의 MM에서 8자 회로는 과거-현재-미래의 연속적 흐름에 대한 기억의 활동을 설명하는 중요한 도식이다. [§10.에서] 주의와 기억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둘 사이는 지속적이거나 항상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주의는 인식의 강도를 높이고, 선명성을 증가하게 하고, 지성성을 강화한다. 이러한 역할을 들여다보면, 추억의 장면보다 깊이 있는 기억이 더 많이 개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기억의 개입을 일상적 지적 작업의 향상에 적용되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지적 발상, 발명, 예술적 창조에는 깊은 주의의 개입이 있다. 이런 주의의 활동은 지적 인식과 체계화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또한 형상형이상학의 영향에 있는, 관념연합론(l’associationnisme)과 전혀 다르다고 한다. 여기서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은 기억의 개입이 직관과 같다는 것을 암시한다. [벩송은 이 강의를 하는 중에 직관의 방법론 실재성에 관한 형이상학 입문(1903)를 발표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이제 당대의 심리학과 생리학에 관한 논의로 갈 것이다.
[§11.에서] 관념연합론이 전통 형이상학의 인식론(합리론)의 이원성에서 기대어 있었다면, 경험론은 심리학적 사실들로부터 발생의 기원과 과정을 탐구한다고 여기는 원자론적 연상심리학(psychologie associationniste)에 기대고 있다. 이 학설은 심리적 화학결합에 힘입어 관념을 다루면서 경험에 상응하지 않은 것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합리론에 닮았다고 한다. 이런 탐구는 심리적 사실들도 공간적으로 배열하여, 배열의 순서에 따라 다음을 예측할 수 있는 미래예측으로 나간다. 형성된 관념을 화학의 분해처럼 분석가능하고 여기는 것은 추억들의 단면들을 서로 인접, 유사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벩송은 고깔(원뿔)의 예로서 기억은 총체적 연관이지, 단면들의 관계가 아니라고 한다. 벩송이 보기에, 연상심리학은 어쩌면 전통형이상학과는 또 다른 변형에서, 즉 합리론과 달리 경험적 차원을 다루는 방식이지만 합리론의 변형된 틀에서 지식(인식)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12.에서] 다음으로, 벩송은 관념론과 경험론의 실증적 차원으로서 추억이 내재한다고 여기는 두뇌의 연구를 주목한다. 벩송은 의식과 두뇌, 영혼과 신체 사이에 어떤 연대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 양자 사이에 고대의 동등론, 근세의 평행론과 부대현상론, 등은 양자 사이에 상응하는 것만을 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의식과 두뇌 사이는 전체와 부분처럼 전혀 위상이 다른 것이라 한다. 부분(두뇌)이 의식(전체)을 설명할 수 없다는 설명은 MM에서도 여러 차례 예들을 제시하였다. 기억은 두뇌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억이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생긴 난제를 해소가기 위해, 의식의 내부로 들어가자고 한다. 간단히 DI와 MM 이래로 직관에 무매개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한다. [§13.에서] 영혼과 신체의 대응적 인식론(평행론, 부대현상론)에서 신체의 유용성의 강조를 하게 되면, 이런 인식론은 형이상학을 동원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형이상학은 현재만 있고 과거의 연속성은 부정되었기 때문에, 그런 형상형이상학에서 발생론과 진화론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기억은 생명있는 한 잔존하며, 또한 의식은 신체의 부분보다 또는 신체보다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흐름이 있다)는 탐구를 필요로 하게 된다. 재인식의 탐구에서 내재성으로부터 기억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행할 때, 우리가 늘 표현하는 자연내재성또는 자연자발성으로부터 사유와 탐구(반성과 성찰을 넘어서 무매개적으로)를 할 때, 기억의 실재성을 만나게 된다. [§14. 강의는 속기록이 없다] 아마도 다음 강의는 이런 발생론 또는 원인론을 전개하면서 관념연합도 연상심리학도, 생리학도, 두뇌생리학(신경학)이 탐구의 길을 열어놓았지만, MM에서 설명했듯이 그 깊이까지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것이다. 벩송이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는 영혼이 신이나 천국(저세상)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으로 보았고, 소크라테스 이래로 영혼론이 원인론또는 질료형이상학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였을 것이다. 이로서 네오스콜라주의의 영혼의 완전성, 불멸성을 뒤엎는[전복] 작업을 했을 것이다.
[§15강]에서 [§19강]까지는 서양 철학사에서 인식론적으로 영혼과 신체(영미에서 심신이론)을 다루었던 방식의 두 가지 위상을 보여준다. 이 영혼과 신체의 문제는 항상 형이상학적으로, 박홍규가 강조하듯이, 시간과 공간의 문제에 포함되어 있거나, 벩송이 강의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듯이 형이상학의 양극단에 기대어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하나는 물체에 대한 인식의 지성을 중심으로, 다른 하나는 영혼의 자기 동일성(정체성)을 재인식하는 직관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벩송이 열심히 읽었고 또한 인용했던 “푸이예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글들”에서 소크라테스의 주요 관심은 인간의 영혼이었다고 하듯이, 벩송도 인격성(영혼의 정체성)의 생성과 확장을 영혼을 통해서 재인식과 직관을 해보려 했던 것이다. 그는 영혼(심리)을 다루는 실험심리학, 생리학, 신경학 등의 한계(페라스)를 보았고, 이에 대응하는 새로운 심리학과 형이상학은 아직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과학의 실증이 미흡하여 전통형이상학에 자기들도 모르게 끌려들어갔다는 것이다. [§15강]에서 흥미로운 것은 플라톤의 누스는 지성에 한정된 것도 아니라 영혼과 신체의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플라톤은 형이상학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형이상학적으로 누스는 극한을 다루는 방법이며 또는 실재였다. 그 누스가 직관과 같다고 말하고 싶은 이가 벩송이며, 이 누스는 물체를 다루는 지성성과 구별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의도는 플로티누스에 이어진다고 보았다. [§16강]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페이론 세계조차도 형상의 지배 속에 두었다는 점에서 형상형이상학의 창설자이다. 그는 지배 또는 목적이라는 방식으로 영혼과 신체를 통합하였다. 이와 달리 물질의 결합으로 영혼을 설명하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도 완성된 형태에서는 이 형이상학에 경도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물질 속에서 의식을 찾는 근대 유물론자와는 다르다고 한다. [§17강] 근세철학은 근대과학의 발달로 영혼과 신체의 관계를 고대의 부동의 가설에서부터 운동의 상대성의 인정으로 나가면서, 운동을 좌표의 가설로 바꾸어 놓았다. 이 두 학설의 공통성으로, 하나는 우주가 동일한 하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운동의 법칙이 하나라는 것이다. 이 두 학설들은 영혼과 신체의 문제도 은연중에 형상과 질료의 복사판 정도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8강] 근세 인들이 사물 또는 물체들 다루면서 인식체계의 우월성을 알아챈 것이라고 하지만, 벩송이 보기에 속좁은 이성에 기댄 인간의 오만이다. 물질의 실체성의 인정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물질의 연관에서는 정신의 우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진솔한 유물론에 들어서지 못했듯이, 영혼의 실재성이 형상형이상학을 벗어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데카르트, 스피노자, 말브랑쉬, 라이프니츠 등의 학설에서 영혼과 신체의 이중화방식은 상응론, 평행론, 기회원인론, 부대현상론, 예정조화론으로 전개되었지만, 고대 형이상학의 부동과 영속성이라는 완전 관념과 절대 관념에 포섭되어 있었다. [§19강] 영혼과 신체, 정신과 물질이라는 인식론과 형이상학적 틀에서 관념과 개념을 통해 지적체계를 세우려는 노력에 대해, 감각자료와 더불어 체계를 세우려는 감각론과 경험론이 등장한다고 한다. 합리론에 비례적인 경험론인 셈이다. 이런 이론에 꽁디약과 라메트리가 있고, 영국과 독일은 생리학을 전개했다고 하는데 이들도, 앞 시대의 체계가 형상형이상학의 선전제에 빨려들 듯이 선전제에 따른 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심리학의 도래에서야 기억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억론은 벩송의 것이며, 영혼의 자유를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음해 강의는 자유문제의 진화(1904-1905)로 간다고 한다. 영혼은 진화하고 확장한다는 견해는 생명을 다룬 EC(1907)을 예고 하는 셈이다. (4:38, 54WKJ) (4:40, 55LKI)
(6:08, 55LLC)
*** 기억이론의 역사 1903-1904 강의록(2018)을 다 읽고 나면, ... 보인다.
기억론의 강의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1] 기억의 사실들에 대한 순수 기계적인 설명이 그럴듯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이끌었다.
[2] 의식과 신체의 관계에서, 기억의 현상을 의식에 연관지우지만, 고대에서나 근대에서나 선천적으로 완전과 보편을 인정하는 사고에서 기억을 상정한 것이다. 고대에서 상응론, 특히 근대 사고에서 평행론, 기회원인론, 부대현상론은 의식을 다루는 지성이 시계 기술공과 같은 사고를 했다는 것이다.
[3] 고대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성의 완전과 정지의 설명과 출발점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알렉산드리아와 플로티노스의 갈라짐은 에피쿠로스와 스토아의 차이와 더불어 온 것이리라. 이런 관점은 근대에서 이중화 현상을 그대로 들어낸다고 한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계열만큼이나 감각적 계열로서 꽁디약, 라메트리들이 있지만, 이 후자들은 큰 틀에서는 의식(영혼)의 틀(데카르트류)과 거울처럼 마주하는 감각의 틀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도 기억은 흐름이다.
나의 최고의 수확은, 일반 철학자들이 벩송의 유심론을 또는 쟈니꼬가 이야기 하듯이 멘느 드 비랑과 연결을 찾는데, 내가 생각해왔듯이, 벩송은 철학사에서 기억이론을 만들었다. 인식이론의 역방향과 형이상학의 역방향에서 영혼의 새로운 이론, 즉 기억이론을 창안하였으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별학문 중 마지막 심리학의 전복이다. 흥미롭게도 이 기억이론의 역사 속에 멘 드 비랑은 한 번 언급조차도 없었다. 서사나 추억담의 이야기가 기억이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벩송의 기억론은 고대철학에서 왔으며, 그것도 플라톤을 재음미하는 플로티노스에서 왔다.
또 하나는 기억을 문제는 실증적으로 풀어보려는 노력은 의학, 생리학, 신경학에서 시도되었으나 두뇌 안에서 추억들의 위치를 찾으려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내재성의 심리학과 형이상학이 전체와 부분으로, 즉 기억총량과 두뇌 행동 사이의 관계가 전체와 부분의 관계와 같다고 보았다. 이로서 질료형이상학과 더불어 심층심리학에서 기억을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 벩송은 당대의 내성 심리학의 용어에 조심을 한 이유도 있다. 단순히 과거로 또는 두뇌의 회로의 복잡한 층 아래로 가는 심리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으로”라는 말을 쓴 것은 「형이상학 입문(1903)」을 썼기 때문이고, 지성을 통하여 거꾸로 내려가는 내성심리학과 달리, 자연 또는 본성으로부터 생성과 생장하는 심층심리학은 직관을 통해서 파악하는 것이며, 이런 성장과 발달은 영혼의 확장(욕망)이다. 따라서 벩송의 기억은 내성(반성이든)의 심리학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었다.
고대에서 의식의 흐름에는, 피의 흐름과 신경계의 흐름 그 이상의 흐름이 있는데, 근대에 와서 호르몬의 흐름일 수도 있다. 그런데 벩송은 생명의 흐름이며, 클로드 베르나르 의학이래로 두뇌의 역할에 의존하지 않은 흐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데, 이런 흐름을 현대 용어로 풀어본다면, 면역의 체계와 같을 것이다. (54TKA) (5:32, 54WKJ) (5:34, 55LKI)
(7:03, 55LL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