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법치주의가 무너진 나라
"기업을 위해 법을 어겨야 할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국내 한 대기업 CEO가 최근 신입사원 면접에서 지원자들에게 이색적인 질문을 던졌다.
응시자 중 상당수는 "법을 무시하고라도 기업 이익을 좇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이 CEO는 "가뜩이나 사회 곳곳에서 법과 원칙이 허물어지고 있는데
지원자들마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어 깜짝 놀랐다"며 "
기업 이익이 중요하긴 하지만 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기업 자체도 존립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그의 따끔한 일침처럼 요즘 사회 전반에 걸쳐 법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국법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국민을 볼모 삼아 20일 넘게 불법 파업을 벌인 철도노조는
솜방망이 판결로 파면되거나 해고된 간부들이 다시 복귀하면서
징계나 고소, 고발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 노조'가 됐다.
환자 목숨을 담보로 파업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의사협회,
교과서 내용이 자신들 입맛에 안 맞는다고 떼법으로 학교를 압박하는
단체들 역시 '준법'과 담쌓은 지 오래다.
더 큰 문제는 사회 거악을 단죄하고 엄정한 법 집행에 앞장서야 할
검사들마저 온갖 불법과 비리에 연루돼 세간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30대 검사가 해결사처럼 여성 연예인 부탁을 받고 병원장에게서
수술비를 뜯어냈다 구속되는가 하면, 중견 검사는 출입 여기자들과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하다가 감찰을 받았다.
한 검사장급 인사는 자기 인척이 홍보팀장으로 있는 업체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또 다른 고위 간부는 원전 비리에 연관된 기업인에 대해 압수수색과
구속 수사를 가로막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ㆍ재계를 떨게 하는 특수부장 출신 검사가 수뢰 규모로
사상 최대인 10억원대 뇌물을 받고 쇠고랑을 찬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벤츠 여검사, 여성 피의자와 성관계를 맺은 검사,
사무실에 돈다발을 숨겨둔 검사 등 사리사욕에 눈이 먼
검사들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검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밖에서 보니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 눈높이는 '성직자' 수준"이라며
"비위 검사들로 공직기강이 흔들리고 국민적 불신이 커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잇단 재발 방지 대책과 다짐에도 불구히고 검사들의 일탈이 끊이질 않는 것은 왜일까?
고검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검사가 늘어나면서 검사 자질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판사 숫자(2780명)가 검사(1895명)보다 훨씬 많은데도
비리 잡음이 적은 점으로 미뤄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그보다는 수사-기소-공소 유지-재판 집행까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고
외부 통제도 받지 않는 검사들이 아직도 자신들을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집단'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작가 고골이 '검찰관'에서 흘레스타코프가 졸지에 검찰관으로 둔갑해 벌어지는
세태를 풍자한 것처럼, 일부 검사들 또한 관직이 빚어낸 거짓 환상에 빠져
구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검찰이 힘 있고 똘똘 뭉쳐 있던 예전에는 내부 비위를 적당히 덮을 수 있었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은 모든 것을 무마하기에 조직적 역량의 한계가 왔다"며
"검찰도 도려낼 환부는 도려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중국 진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끈 재상 상앙은
"법을 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사로움이 없는 것(行制也天)"이라고 했다.
검찰은 이제라도 격탁양청(激濁揚淸ㆍ흐린 물을 씻어내고 맑은 물을 길어 올린다)하는
자세로 대대적인 자정과 기강 쇄신에 나서야 한다.
검사들이 몸가짐과 처신을 바로 할 수 있도록 검사 선발 및 교육 과정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위를 저질러 파면ㆍ해임된 검사는 아예 변호사 자격을 주지 말고
공직에서 영원히 퇴출시킬 수 있도록 검사징계법과 변호사법도 손질해야 한다.
온정주의로는 더 이상 흐린 물을 씻어낼 수 없다.
[사회부 = 박정철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