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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제녀경(須摩提女經)
월지국(月氏國) 우바새(優婆塞) 지겸(支謙)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 왕사성(王舍城)에 계셨다.
한 장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아나빈지(阿那邠池)이고, 그 장자의 딸 이름은 수마제(須摩提)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묘한 인(因)을 쌓아 천품이 기특하였고, 부처님의 높은 행을 받아서 깊숙하고 조용한 방에서 정심(靜心)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때에 만부성(滿富城)에 사는 만재(滿財) 장자라는 사람이 멀리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며 훌륭한 며느릿감을 구하고 있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사위성에 들어갔다가 빈지를 방문하였다. 그들은 여러 해만에 만난 우정을 나누며 반가움이 지극하였다.
이때에 수마제녀는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왔으므로 잠깐 나와서 절하고 인사를 드렸는데 얼굴과 자태가 모두 아름다웠다.
얼굴은 막 보름에 접어든 밝은 달과 같고 눈은 뭇 별이 한밤에 반짝이는 것 같았다.
만재가 빈지에게 말했다.
“이 처녀는 뉘 집 딸이요?”
빈지는 대답했다.
“이 아이는 바로 내 딸이오.”
만재가 이 말을 듣고 기뻐서 칭찬하였다.
“우리는 젊어서부터 사귀어 서로를 잘 알고 또 그 뜻은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이 없었소.
내게도 자식이 있어 며느릿감을 구하는 중인데 아직 정한 곳이 없소.
그대의 여식이 배필이 될 만한데 어떠하오?”
빈지는 대답하였다.
“혼사가 마땅치 않소.”
만재는 원망스러운 듯이 말했다.
“무슨 까닭으로 마땅치가 않단 말이오?
문벌이 당신 같지 않단 말이오, 사는 것이 당신 같지 않단 말이오?
그대도 존귀한 집안에 부유하고 나 또한 존귀한 집안에 부유한데 무슨 까닭으로 마땅치 않소?”
빈지가 다시 말했다.
“내 딸은 밤이 새도록 염불하고 재계를 받들어 가지는데, 그대의 집안에서는 외도의 신을 숭배하며 생물을 죽이고 고기와 피를 먹습니다.
이처럼 위하며 받드는 것이 같지 않으므로 혼사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오.”
만재가 다시 빈지에게 말했다.
“그대 집안이 섬기는 것에도 그대로 공양하고 우리 집안이 섬기는 것에도 그대로 공양하면 되지 않소.
섬기는 것이 같지 않더라도 각자가 좋아하는 대로 하면 그만 아니오?”
그때 빈지는 마음으로는 허락치 않았으나 물리치기도 어려워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에게 요구할 것이 있소.
황금 만 근과 명주(明珠) 백 섬과 용의 간으로 예물을 하고 봉의 뼈로 책상을 만들어 주시오.
만일 그렇게 한다면 허락할까 하오.”
만재는 이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맹세하였다.
“나는 빠짐없이 준비할 수 있소.”
빈지는 다시 말했다.
“내가 희롱 삼아 한 말이지,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오.
먼저 부처님께 여쭈어 본 뒤에 가부를 말하기로 하겠소.”
빈지는 이때 부처님께 찾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딸아이 수마제가 만부성에 사는 만재 장자의 구혼을 받았습니다.
허혼을 하여야 옳습니까, 안 하여야 옳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수마제녀가 그 나라로 시집간다면 반드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성을 제도할 것이오.”
빈지가 이에 돌아와서 만재에게 말하였다.
“앞으로 15일 뒤에 그대 집안에서는 예법을 갖춰주시오.”
만재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허겁지겁 서둘러 돌아갔다.
이때에 만부성과 사위성은 거리가 3천2백 리나 되었다.
만재가 성 중에서 수레 만승(萬乘)을 끌고 나오니 용마는 앞뒤로 따르고 수레 휘장은 구름 같이 너울거렸는데 그 소리는 땅을 울렸다.
또 찬란한 옷차림의 시녀들은 수레를 부축하고 아이 종들은 좌우로 호위하였다.
이때에 아나빈지는 딸을 위하여 열두 가지 보배로 수레를 만들었다.
먼저 붉은 연꽃 자리를 안에 깔고 마니(摩尼)로 밖을 덮고 황금을 겹겹으로 바르고 흰 은으로 줄을 늘어뜨렸다.
호박(琥珀)으로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고 산호와 유리로 수레의 고리를 만들며 여러 빛깔의 마노(瑪瑙)를 수정 사이사이에 교대로 끼워넣고 비늘처럼 번쩍거리는 유리로 아름답게 꾸몄다.
다시 자마(紫磨)로 테두리를 두르고 현쇄(懸灑)를 겹겹으로 일으키니, 이에 밝은 것과 밝은 것이 서로 반사하고 빛과 빛이 서로 비치어, 멀리서 보는 사람은 동쪽에 있던 그림자가 모르는 사이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가까이 보는 사람은 모르는 사이에 두 눈이 멀어버렸다.
당시 만부성에는 옛날부터 법이 있었다.
만일 만부성의 여자가 다른 나라로 시집가면 중한 형벌을 당하고 다른 나라에서 아내를 들여도 또한 중한 형벌을 당하는 것이었다.
만일 이 법을 범하는 자는 6천 명의 범지(梵志)를 공양하되 뜻에 맞아야 했다.
범지가 먹는 음식은 돼지고기로 끓인 국과 세 번 빚은 술이라야 했다.
만재는 법을 범한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크게 여러 범지들을 청하여 넓은 뜰에 가득 모이게 하고는 수마제녀를 시켜 여러 범지에게 예를 올리게 하였다.
수마제녀는 말하였다.
“제가 비록 여자이나 의지는 강하니 굽힐 수 없습니다.
이 범지의 무리는 소 새끼와 다름이 없습니다.
추하고 더러운 다섯 가지 형상으로 맛있는 것만 탐하고 즐기며 부끄러움과 염치가 없으니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저는 차라리 오올(五兀)의 형을 받아 몸을 훼손할지언정 이들에게 예를 올릴 수는 없습니다.”
이때 6천 범지는 이 말을 듣고 일제히 분노하였다.
“어느 곳에서 저런 보잘것없는 백성 집안의 종년을 데리고 와서는 우리를 모욕하는가?”
곧 자리를 파하고는 곳곳에서 사람을 모아 서로 약속해 말하였다.
“시일을 정하여 찾아와 만재와 5족(族)을 벌하고 베어 죽이자.”
만재는 이에 높은 다락에 문을 닫고 들어 앉아 하늘님을 불러가며 한탄하였다.
“어쩌다가 이런 며느리를 들여 우리 집안을 망치게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풀어낼 방법이 없구나.”
이때 수발(須拔)이 다락 위로 날라와 만재의 근심하고 야윈 모양을 보고는 말하였다.
“그대는 도적을 맞았는가?
누군가 죽었는데 장사를 못 지냈는가?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근심하는가?”
만재는 대답했다.
“누가 죽었거나 도적을 맞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일전에 며느리를 하나 들였는데 여러 도사(道士)를 모욕하여 죄가 5족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근심을 하나 풀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 수발이 만재에게 말했다.
“그대가 어느 곳에서 며느리를 데려 왔는가?”
만재는 대답하였다.
“사위성 아나빈지의 딸입니다.”
수발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고 두려워하며 말했다.
“그대의 며느리가 지금 이곳에 왔으니, 우리들은 장차 크게 복을 받을 것이오.”
만재는 물었다.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수발이 대답했다.
“나는 예전에 이름은 균두이고 나이는 겨우 3, 4세인 사리불의 가장 어린 사미와 함께, 설산 북쪽에 이르러 밥을 빌어서 각각 한 발우를 얻었었다.
나는 높이 날라서 아뇩(阿耨) 못가에 이르렀는데, 이때에 못 가에 있던 천ㆍ용 귀신들은 못을 지키며 나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에 균두 사미도 또한 날아왔다.
그러자 천룡 귀신들은 기뻐하여 ‘참 잘 오셨습니다’고 칭찬하며 금 책상에 앉히고 받들어 닦기를 정갈하게 하였다.
균두 사미는 잠깐 사이에 4공(空)을 뛰어넘어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 왔다.
이 가장 어린 사미도 이런 신덕(神德)이 있으니 하물며 그들이 섬기는 대사(大師)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만재가 물었다.
“그 대사를 만나볼 수 없겠습니까?”
수발이 대답했다.
“만일 그 대사를 만나고 싶다면 수마제녀에게 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에 만재가 다락에서 내려와 경건한 마음으로 수마제녀에게 말했다.
“네가 섬기는 스승을 만나볼 수 있겠느냐?”
수마제녀는 말했다.
“만일 장자께서 마음을 돌리고 생각을 누그러뜨려 스스로 깊이 신통한 덕에 귀의(歸依)하신다면,
제가 장자를 위하여 향과 분을 몸에 바르고 다락에 올라 멀리 부처님께 청하겠습니다.”
이때 수마제녀는 향과 기름을 몸에 바르고 높은 다락 꼭대기에 올라 멀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소녀는 지금 곤란에 처해 여러 사도(邪道)의 압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대자대비로 위태한 액화를 구제하여 주시옵소서.”
이에 향기는 구름같이 퍼져 기환정사(祈桓精舍:기원정사)에까지 이르렀다.
아난은 향기가 평상시에 보던 것이 아님을 보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이상한 향기는 어느 곳에서 오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향기는 부처를 부르는 향기이다.
지금 수마제녀가 만부성에서 여러 사도의 핍박을 받고는 이제 향기를 보내어 나와 그대들을 청하는 것이다.
빨리 종을 울리어 여러 사람을 보회당(普會堂)에 모이도록 하고 이렇게 말하라.
‘지금 수마제녀는 만부성에서 여러 사도의 압박을 받고 있는데, 이제 향기를 보내어 부처님과 여러 사람을 청하고 있습니다.
만일 신통력의 변화를 얻은 자가 있거든 주(籌)를 받고 얻지 못한 자는 가만히 있으십시오.’”
이때 여러 사람 가운데에 주리반특가ㆍ부처님의 아들 라운(羅云:라후라)ㆍ수보리ㆍ사리불ㆍ가섭ㆍ목련 등이 있었지만 아직 구계(具戒)를 받지 못하였고, 오직 균두 사미 한 사람만이 먼저 주(籌)를 받고 성인과 함께 갈 자로 뽑히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 나라에는 반드시 밥을 익힐 만한 큰 그릇이 없을 것이니, 건서(乾緖)를 보내어 가마솥을 지고 먼저 가게 하소서.”
건서는 비록 심부름하는 사람이었으나 5통을 갖추고 있었다.
등에 만 곡(斛)이 들어갈 만한 큰 가마솥을 지고, 손에는 백 곡(斛)이 들어갈 만한 큰 국자를 들고, 몸을 솟구쳐 높이 날아서 곧장 그 나라로 향하였다.
이때에 만재는 다락 위에서 멀리 바라보다가, 수마제녀에게 물었다.
“내가 보니, 한 사람이 등에 만 곡이 들어갈 만한 큰 가마솥을 지고, 손에는 백 곡이 들어갈 만한 큰 국자를 들고, 공중으로 날아오고 있다.
저 분이 너의 스승이 아닌가?”
수마제녀가 말했다.
“그는 나의 스승이 아닙니다. 그는 대중의 심부름꾼인데 이름은 건서입니다.
세존께서 오시려고 가마솥을 지고 먼저 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때 균두 사미는 그 다음으로 5백 그루의 꽃 나무를 신통 변화로 만들어 그 위에서 가부좌(加趺坐)를 하고 몸을 솟구쳐 높이 날아서 또한 그 나라로 향하였다.
만재가 다락 위에서 멀리 바라보고 수마제녀에게 물었다.
“내가 보니 5백 그루의 꽃 나무 위에 사람이 가부좌를 하고 허공으로 날아오고 있다.
저 분이 너의 스승이 아닌가?”
수마제녀가 말했다.
“그는 나의 스승이 아닙니다. 그는 사리불의 가장 어린 사미로서 이름은 균두입니다.”
주리반특가가 그 다음에 5백 마리의 사자(獅子)를 신통 변화로 만들었는데 소리를 높여 포효하며 날았다, 떨어졌다, 달렸다, 엎드렸다 하였다.
그는 그 위에 가부좌를 하고 몸을 솟구쳐 높이 날아 곧장 그 나라로 향하였다.
만재가 다락 위에서 멀리 바라보고 수마제녀에게 물었다.
“내가 보니 5백 마리의 사자가 소리를 높여 포효하며 날았다, 떨어졌다, 달렸다, 엎드렸다 하는데 사람이 그 위에 가부좌를 하고 허공으로 날아오고 있다.
저 분이 너의 스승이 아닌가?”
“그는 나의 스승이 아니고 여래의 제자 주리반특가입니다.”
부처님의 아들 라운이 그 다음에 신통 변화로 5백 마리의 금시조를 만들어, 그 위에 가부좌를 하고 몸을 솟구쳐 높이 날아 곧장 그 나라로 향하였다.
만재가 다락 위에서 멀리 바라보고 수마제에게 물었다.
“내가 보니 5백 마리의 금시조 위에 사람이 가부좌를 하고 허공으로 날아 오고 있다.
저 분이 너의 스승이 아닌가?”
수마제녀가 말했다.
“그는 나의 스승이 아닙니다. 여래의 제자 부처님의 아들 라운입니다.”
수보리가 그 다음으로 5백 마리의 코끼리를 신통 변화로 만들었는데 모두 여섯 어금니가 있고 금 안장이 덮여 있었다.
그는 그 위에 가부좌를 하고 몸을 솟구쳐 허공에 올라 또한 그 나라로 향하였다.
만재가 다락 위에서 멀리 바라보고 수마제녀에게 물었다.
“내가 보니 여섯 어금니가 있고 금 안장을 덮은 5백 마리의 코끼리 위에 사람이 가부좌하고 허공으로 날아오고 있다.
저 분이 너의 스승이 아닌가?”
“그는 나의 스승이 아니라 여래의 제자 수보리입니다.”
목련이 그 다음에 신통 변화로 칠보산(七寶山)을 만들어, 그 위에 가부좌하고 몸을 솟구쳐 높이 날아 곧장 그 나라로 향하였다.
만재가 다락 위에서 멀리 바라보고 수마제녀에게 물었다.
“내가 보니 칠보산 위에 사람이 가부좌하고 허공으로 날아오고 있다.
저 분이 너의 스승이 아닌가?”
수마제녀는 말했다.
“그는 나의 스승이 아니라 여래의 제자 신족(神足) 목련입니다.”
상좌 대가섭이 그 다음에 신통 변화로 5백 마리의 큰 용을 만들었는데, 모두들 일곱 개의 머리가 있고 대낮에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그 위에 가부좌하고 몸을 솟구쳐 높이 날아 곧장 그 나라로 향하였다.
만재가 다락 위에서 멀리 바라보고 수마제녀에게 물었다.
“내가 보니 머리가 일곱인 5백 마리의 큰 용이 대낮에 하늘에 올라 허공으로 날아오고 있다.
저 분이 너의 스승이 아닌가?”
수마제녀가 말했다.
“그는 나의 스승이 아니라 여래의 제자 상좌 대가섭입니다.”
이때에 수마제녀가 장자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했다.
우리 스승님 이제 꼭 오시리니
그 광명은 이들과 견줄 수 없습니다.
장자여, 일심으로 염불하시고
다른 생각일랑 품지 마소서.
이때 여래께서는 중생들의 마음이 지극하여 시운이 장차 모일 것을 알고, 몸에 승가리를 입고 땅에서 다라수(多羅樹) 높이의 일곱 배나 되는 허공에 오르시니, 몸 빛이 붉은 금과 같아서 고운 광채가 공중에 반사되었다.
아야거린(阿若車隣:아야교진여)은 여래의 왼편에 서고 사리불은 여래의 오른편에 섰으며, 아난도 부처님 위신(威神)을 받들어 또 여래의 왼편에 섰다.
그 나머지 비구들도 백천만 가지로 신통 변화의 상(相)을 나타내며, 허공에 가득 차서 구름처럼 움직여 그 곳에 이르렀다.
아야거린은 변화하여 월천자(月天子)가 되고 사리불은 변화하여 일천자(日天子)가 되었다.
나머지 비구들도 혹은 변화하여 제두뢰타(提頭賴吒:지국천왕)가 되고, 혹은 변화하여 비루륵차(比樓勒叉:증장천왕)가 되고, 혹은 변화하여 아수라왕ㆍ건달바왕이 되어 북을 울리고 군사를 부리며 항하의 모래처럼 부옇게 일어났다.
아수륜은 동상장군(東廂將軍)에 해당하는 정마후(征魔候)가 되고, 전륜성왕은 서상장군(西廂將軍)에 해당하는 정마공(定魔公)이 되고, 건달바왕은 백억(百億) 귀병(鬼兵)을 손아귀에 쥐고 후군의 순라 임무를 맡았다.
석천왕은 외군도록(外軍都錄)이 되고, 범천왕은 중군도록(中軍都錄)이 되고, 문수사리는 여래의 광부대신(匡部大臣)이 되어 안팎을 통솔하며, 여러 군사를 거느려 정제하고 한마음 한 뜻으로 일어났다.
밀적역사는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잡고 여래의 좌우를 호위하고,
천마 파순은 손에 유리 거문고를 잡고 큰 법을 찬양하였으며,
비사문왕은 손에 큰 칠보(七寶) 일산을 들고 여래의 위에 머물고,
나머지 현성(賢聖)들은 모두 허공에서 풍악을 연주하였다.
이때 여래께서도 또한 백 천만 가지로 신통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고 백 천만 가지 소리로 땅을 울리셨다.
이때에 다시 신통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어,
혹은 화왕삼매(火王三昧)에 들어가 연기를 날리고 불꽃을 날리기도 하고,
혹은 수왕삼매(水王三昧)에 들어가 모래를 날리고 물결을 솟구치기도 하고,
혹은 다시 변화하여 우레와 번개가 되기도 하고,
혹은 서리를 흩뿌리며 쏟아지는 우박이 되기도 하셨다.
이때에 시방(十方)에 구름이 돌며 천지가 기울어지자, 모든 강물은 서쪽으로 거슬러 흘렀고 떠 있던 태양은 동쪽으로 사라졌다.
성인의 능력이 이와 같았으니 어디를 간들 항복하지 않는 이가 있으리요.
이때 6천 외도는 높은 신통 변화에 항복하였고,
수마제녀는 법안통(法眼通)을 얻고,
낭성(朗城) 안의 8만 4천 인민이 동시에 도를 얻었다.
이때 여래께서는 도로 성중(聖衆)을 거두어 이끌고 기환정사에 이르시자 아난이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수마제녀는 어떤 인연으로 항상 부잣집에 태어났고 다시 사도(邪道)의 그물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고 이제 법안(法眼)을 얻었으며, 성중의 인민들도 모두 도를 얻게 되었습니까?
원컨대 세존께서 그 지나간 인(因)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으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겠다.
옛날 과거 가섭부처님 시대에 한 왕녀(王女)가 있었다.
그녀는 높은 다락 위에서 큰 맹세와 큰 소원을 발하였다.
‘저를 항상 큰 부잣집에 태어나게 하시고, 태어나는 곳곳마다 항상 부처님을 만나고 중생에게 보시하며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소서.
여자의 몸을 바꾸지 않고 곧 법안을 얻게 하여 주시고, 성중의 백성들도 일제히 큰 맹세를 발하고 다들 모여 큰 재계를 받들어 공을 쌓고 덕을 모으게 하여 주소서.’
이 인연으로 그녀는 지금 나를 만나게 되었고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제도하게 된 것이다.
그러하니 아난아, 장래의 큰 소원을 발하지 않을 수 없고 들은 자는 돕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때의 왕녀는 지금의 수마제녀가 바로 그 사람이고, 성중의 백성은 지금의 8만 4천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비구승과 비구니와 우바새와 우바이와 여러 천ㆍ용왕 등 팔부는 이 경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고 예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