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의 신학적 의미는 '자연을 창조한 신의 뜻에 맞는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이 인간의 몸을 창조할 때
사지와 장기가 특정 목적을 수행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지와 장기를 신이 마음에에 그렸던 목적에 맞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활동이고,
신의 의도와 다르게 사용한다면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장기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화한 것이 아니며, 그 사용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체의 장기 중에 그것이 원형 상태로 수억 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했던 일만을 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장기는 특정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하지만,
일단 존재하게 되면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방향으로도 적응할 수 있다.
가령 입이 등장한 것은 가장 초기의 다세포 생명체가 영양소를 몸 안으로 섭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도,
우리는 지금도 그런 용도로 입을 사용하지만, 동시에 키스하고 말하는 데도 사용한다.
람보라면 수류탄 핀을 뽑을 때도 써먹는다.
이런 용도 중 어느 하나라도 부자연스러운 것이 있을까?
벌레 비슷하게 생겼던 6억 년 전의 우리 선조가 입으로 하지 않던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찬가지로 날개도 처음부터 모든 공기역학적 장점들을 갖추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원래 다른 목적으로 쓰였던 기관에서 발달했다.
한 이론에 따르면, 곤충의 날개는
날지 못하는 벌래의 신체에서 돌출한 부위로부터 수백만 년 전 진화했다.
튀어나온 혹이 있는 벌레는 신체 표면적이 더 넓었고,
덕분에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해서 체온을 따스하게 유지할 수 있다.
진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태양광 히터는 점점 더 커졌다.
해빛을 최대로 습수할 수 있는 구조(표면적이 넓고 무게가 덜 나가는 구조) 는 우연히 다른 능럭도 주었다.
달리고 점프할 때 약간 떠오르는 능력이었다,
돌출부위가 더 큰 벌레는 더 멀리 뛰고 점프할 수 있었다.
어떤 곤충들은 이부위를 이용해서 활강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약간의 단계만 더 거치면 실제로 공기를 헤치고 날게 해주는 날개가 된다.
다듬번에 모기가 당신 귀 근처에서 앵앵거린다면 모기에게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행위라고 비난해보라,
만일 그 모기가 하느님이 자신에게 준 것에 만족하는 착한 모기라면 날개는 태양광 집열기로만 쓸 테니까.
인간의 성기와 성행위에도 똑같은 멀티태스킹이 적용된다.
성관계는 당초 출산을 위해 진화했고,
구애행위는 잠재적 짝의 적응도를 측정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진화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동물이 이 두 가지를 다양한 사회적 목적들에 이용한다.
자신의 작은 복사본을 만드는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목적들이다.
예컨대 침팬지는 정치적 유대를 강화하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긴장을 완화하는데 성관계를 이용한다.
이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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