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아내 클라라 짝사랑· 죽음… 진지하고 장엄한 가곡으로 승화[이 남자의 클래식]
■ 이 남자의 클래식 - 브람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1895년 두 사람 마지막 만남
그 이듬해 1896년 걸작 완성
고린도전서 등서 가사 인용
말년 음악의 정점으로 평가
브람스는 작곡에 있어 영감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감을 통해 얻은 감정의 파편들을 나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영감의 음악적 표현은 균형과 조화가 어우러진 형식 안에서 섬세한 세련미와 우아미를 자아낼 때 의미 있는 것이며, 그럴 때 비로소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믿었다.
브람스는 고전주의 음악에 자신의 뿌리를 굳게 내리고 그 안에서 낭만의 서정을 담아낸 작곡가이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태도 때문에 브람스를 고전적 낭만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브람스의 음악은 당대의 낭만주의를 배격한 듯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클라라가 말했듯 브람스의 음악은 “투박한 껍질 안에 가장 달콤한 알맹이가 들어 있는 열매”와도 같다. 고전주의의 균형과 조화라는 골격 안에 한없이 낭만적인 서정이 가득하다. 낭만주의 음악의 일면인 ‘감정의 과잉’을 배제했을 뿐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사용해 당신을 불러보고 싶습니다.”(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 중) 브람스는 20살에 스승인 슈만의 아내, 14살 연상의 클라라를 만나 연모의 마음을 갖게 됐다. 그 마음은 점점 커져 목놓아 부르짖고 싶을 만큼의 사랑이 돼버렸지만 이 지독한 이성주의자는 사랑에서도 그랬다.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슈만이 세상을 떠나 클라라가 혼자가 됐을 때도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클라라를 사랑했다.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면 그녀의 손과 발이 되길 마다하지 않았고, 슈만이 세상을 떠나자 스스로 그녀로부터 멀리 떠나기를 자청했다. 1895년 브람스의 나이 62세의 어느 날, 그는 말없이 76세의 클라라를 찾아갔다. 브람스는 그녀에게 정중히 피아노 연주를 청했고, 클라라는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 ‘인테르메조, Intermezzo Op.118’를 연주해줬다.
이 만남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이듬해인 1896년 5월, 브람스는 그의 말년 걸작인 가곡 ‘네 개의 엄숙한 노래, Vier ernste Gesange Op.121’를 완성한다. 이 무렵 브람스는 이미 클라라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예감하고 있었을까? 브람스는 가곡의 텍스트를 성경의 전도서와 고린도전서 등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그 음악의 본질은 신앙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제목처럼 삶과 죽음, 헛됨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엄숙함에 있다. 이 네 곡의 가곡에 담긴 인생의 헛됨과 죽음에 대한 단상들에는 브람스 특유의 감성과 이성이 짙게 드리워 있고, 브람스 말년의 작품답게 짙은 애수와 고독 속에 젊은 날의 초상과 회한이 드러난다. 자유롭지만 고독한 텍스트와 음형은 마치 브람스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무려 43년 동안이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클라라를 사랑했던 브람스는 같은 해 9월 간암 진단을 받았고 그 이듬해인 1897년 4월 3일 64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네 개의 엄숙한 노래’
브람스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96년 5월에 작곡되었다. 그가 생애에 걸쳐 작곡한 200여 개 가곡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며, 같은 해 작곡했던 ‘11개의 코랄 전주곡 Op.122’과 함께 브람스 말년 음악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1곡 Denn es gehet dem Menschen wie dem vieh(사람에게 임하는 바는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제2곡 Ich wandte mich und sahe an alle(나는 모든 학대를 보았노라)
제3곡 O Tod, wie bitter bist du(죽음이여, 고통스러운 죽음이여)
제4곡 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szungen redete(내가 인간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