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이 방긋 웃는 따사로운 산길
둘째 날 아침 정상 부근 야영지를 정리중이다.
왕산사~팔각정~왕방산 정상~거북바위~물어고개
해님이 방긋 웃는 따사로운 산길 왕방산(王方山·737.2m)은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와 한탄강에서 끝나는 왕방지맥에 솟은 포천의 진산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왕방산은 예부터 왕들과 인연이 깊다. 왕방산은 신라 헌강왕이 도선국사를 만나러 방문했다는 산이고, 또한 이방원이 젊은 시절 무예를 갈고닦은 장소이기도 하다. 왕들이 거닐었을 그 산길을 향해 떠난다.
왕산사를 출발해 곧 노란 생강나무 꽃이 핀 등산로를 걸었다.
산중에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넓은 왕산사 주차장에 햇살이 가득하다. 왕산사 주변에 새하얀 목련(木蓮)이 활짝 피었다. 목련은 꽃눈이 붓을 닮아 목필(木筆)이라고도 하고, 꽃봉오리가 필 때 그 끝이 북쪽을 향한다고 하여 북향화라고도 불린다.
“얼마 전 끝난 [육룡이 나르샤] 사극이랑, 예전에 [뿌리 깊은 나무] 드라마를 재밌게 봤죠.” 조선시대 여러 왕들이 왕방산에서 사냥과 무예를 즐겼다는 설명을 듣고 호상사 이용우 차장이 드라마 이야기를 꺼낸다. 사극 [육룡이 나르샤]가 남긴 많은 명대사 가운데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정치가 무엇이오. 정치란 나눔이요! 분배요! 정치의 문제란 결국, 누구에게 거두어서 누구에게 주는가, 누구에게 빼앗아 누구에게 채워주는가”라는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정도전을 연기한 배우 김명민의 열연과 함께 드라마 속 정도전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된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왕산사 표석 근처 ‘포천 왕방산 등산 안내도’부터 등산로가 시작된다. 처음에 완만한 임도를 따라 걷다가 산길에 들어서자 경사가 조금 가팔라진다. 왕방산이 명당자리라는 걸 짐작케라도 하듯 길 오른쪽에 묘지가 많다. 솔숲이 울창하다. 간혹 노란 꽃을 피운 생강나무가 눈에 띈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생기발랄하다. 10분쯤 걸었을까. 이정표가 정상 1.7km를 가리킨다.
산행 중반 능선에 올라서기 전 등산로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정상이 지척이다. 뒤에 새로 2011년 세워진 팔각정이 보인다. 이 등산로 바로 옆은 헬기장이다
“일기예보에 오늘 23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초여름 날씨라네요.”
“그래도 올라가면 시원할거야.”
호상사 박기형 전무의 말대로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운 기운은 점차 사라지고 걷기 좋은 시원한 날씨로 바뀌어간다. 간혹 솔바람이 불어와 흐르던 땀조차 식혀줘 상쾌한 기분이 든다.
지난달에 이어 박기형 전무, 이용우 차장, 김현호 주임, 손대식 사원, 오세련 사원까지 다섯 명의 호상사 임직원들이 이번 백패킹을 함께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멋진 포천의 야경
왕방산 정상 기념사진.
나무 계단이 가파르다. 위를 올려다보니 능선이 꽤 가까워졌다. 능선 너머 서쪽 하늘로 해가 저물어간다. 계단을 오르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뒤돌아보니 포천 시내가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회색빛 건물이 가득한 저곳과 초록빛 나무가 빼곡한 이곳이 대조를 이룬다.
오후 4시 30분 쉼터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제 반 왔네요.” 이용우 차장이 이정표를 살피고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말한다. 이 갈림길은 선광사가 위치한 어룡동 쪽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갈림길 이후로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걷기 시작한지 1시간 30여분 만에 정상에 닿는다. 서북쪽으로 소요산(536m)이 우뚝하고, 동쪽으로 운악산(935m)과 국망봉을 잇는 산줄기가 포천시내를 크게 둘러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정상 바로 아래쪽 헬기장 근처에 팔각정이 2011년 새로 지어졌는데, 팔각정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정상 근처 넓고 평평한 공터에 사이트를 정하고 텐트를 설치한다. 밤사이 텐트 밖에서 바라본 포천시내 야경이 예상외로 참 멋졌다.
왕방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포천시 야경.
타종소리와 함께 이튿날이 밝았다. 왕산사 아니면 선광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같다. 포천시내에서 가까운 만큼 아침부터 등산객 두 명이 정상에 왔다가 간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어 야영지를 나선다. 하산은 헬기장 쪽으로 다시 내려와 북동쪽 능선을 쭉 타고 물어고개까지다. 산행시간은 2시간으로 부담이 없다.
어제에 이어 산길 능선에 키가 큰 송림이 쭉쭉 뻗었다. 길 자체도 넓고 굴곡이 없다. 주말 아침을 맞아 산을 오르는 등산객을 몇몇 만나 인사를 나누며 걷는다.
팔각정 옆을 지나는 등산로.
별다른 변화 없는 솔숲을 걷다가 9시가 조금 넘어 ‘거북바위’에 도착했다. 바위는 이름 그대로 거북이를 쏙 빼닮았다. “불곡산이 생각나네요. 악어바위, 고래바위, 의자바위까지 바위가 정말 많았어요.” 거북바위를 보고 오세련씨가 불곡산 산행을 떠올린다. 거북바위를 지나 작은 고개를 넘는다. 뒤를 돌아보니 왕방산 정상이 우뚝 솟았다.
하산을 시작한지 1시간쯤 지나 깊이울저수지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표가 깊이울 1.1km, 무럭고개 1.9km를 가리킨다. 무럭고개 쪽으로 간다. 산행을 시작할 때 본 안내도에는 ‘물어고개’로 표기돼 있었지만 이곳에는 ‘무럭고개’로 쓰여 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왕방산에 핀 진달래.
물어고개로 가는 길에 진달래꽃이 피었다.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한 꽃봉우리도 많다. 오세련씨가 걸음을 멈추고 꽃을 바라본다. “꽃은 어쩜 이렇게 매년 보는데도 신기할까요.”
오전 10시 물어고개에 도착한다. 물어고개 버스정류장 옆에 문례현약수(問禮峴藥水) 비석이 보인다.
물어고개 매점 주인 말로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이 지역으로 고려 충신들이 모여들었는데, 물어고개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예를 갖춰 가마 등을 보낸 곳이란다. 당시 이 고개는 오지였고 이곳까지 물어물어 왔다고 하여 물어고개가 됐다는 것이다. 무럭고개는 사람들이 발음하면서 점차 변형된 것이라고. 매점에서 산 칡즙을 마신다. 시원하게 넘어가는 칡즙마냥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 고개를 넘어 다녔을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Information 포천 왕방산
높이737.2m
위치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선단동·자작동·어룡동·포천동·신북면, 동두천시 탑동동
Start - 왕산사 ~0.7km~ 선광사 갈림길 쉼터 ~2km~ 능선 삼거리 ~0.3km~ 팔각정 ~0.2km~ 왕방산 정상 ~2.5km~ 거북바위 ~2km~ 물어고개 총 7.7km, 약 3시간 40분 - Finish
왕방산 정상부 팔각정.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지닌 포천의 진산
왕방산은 포천과 동두천을 동서로 길게 안고 있는 우람한 산이다. 등산코스가 다양해서 체력과 시간에 맞춰 산행하기에 알맞다.
왕산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왕산사 코스는 정상까지 1시간 10분 걸린다. 왕산사는 지형도에 보덕사로 표기돼 있는데 과거엔 왕방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시내에서 왕산사까지 길이 포장돼 있어 산행 맛이 반감되므로 왕산사까지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게 낫다.
물어고개 날머리.
포천동 북쪽 깊이울계곡으로 넘어가는 물어고개에서 서남쪽으로 능선을 타고 가는 물어고개 코스도 있다. 이 코스는 완만하고 길게 이어지는 능선으로 4.5km를 2시간 30분쯤 걸어야 한다. 물어고개까지 시내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는 능선 왕복 산행도 가능하다. 또한 물어고개약수터에서 물을 보충할 수 있고, 물어고개에 매점이 있어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행동식을 구입할 수 있다. 물어고개 주변은 낮에도 음주단속을 하는 곳으로 산행중 술을 조금이라도 마셨다면 이 사실을 유념하길 바란다.
교통
왕방산은 포천시내에서 가깝다. 포천 가는 시외버스는 동서울터미널, 센트럴시티터미널, 인천종합터미널에 많다. 다른 지역은 서울, 인천을 경유해야 한다.
포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00m 떨어진 포천축협 앞에서 56-1, 56-7, 57, 57-1, 60번 버스를 타면 물어고개까지 갈 수 있다. 왕산사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 절까지 올라가는 도로가 꽤 길기 때문에 포천시내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월간사람과산/ 글-양승주기자, 사진-정종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