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위치 (신명기 24:16)
죄라는 것은 어디 있는 것인가? 오늘 말씀. 아버지가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 당하지 않는다. 이런 말씀 굳이 하시는 이유? 당시 이스라엘 가운데 속담.
에스겔18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의 위치를 설정할 때 핑계를 댄다. 내가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버지 머리가 안 좋아서야. 내가 못생긴 건 엄마 때문. 아무튼 핑계댈 수 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 속담을 통해 자꾸 자신의 불만스런 삶의 형편 해석할 때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부모입장에서 자식 보고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아들은 왜 내가 어쨌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따져묻고 자기 자신의 어떠한 것을 상대방 통해 답 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먹은 다음 하나님이 주신 여자가 저한테 먹게 함 왜 그 여자를 저한테 주셨습니까. 따지고 보면 하나님 책임. 여자는 왜 하필 뱀 만들어갖고 뱀 때문에 내가 먹었잖아요. 뱀은 선악과 심은건 하나님이잖아요.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도 내게 속하였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오늘날에는 확대되어 사회적 존재로 인간을 파악. 그 인간의 개별적 죄의 근원이 사회적 문제에 있다. 사회구조 탓이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가난한 자 만들어 낸다. 사회 구조를 바꿔야. 사회구조 바꾸는 것 레볼루션. 혁명. 자본주의 구조가 빈자 부자 만들어내기 때문에 자본주의 없애고 사회주의로 가자. 똑같이 나누자. 공평하게 살자.
인간을 개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판단하면 이런 문제. 그러면 성경은. 죄에 대해서 말할 때. 죄라는 것이 대체 어디 있는 것? 사회적 구조 속에 들어있느냐? 아니면 그 죄라는 것이 본래 인간 내부에 들어있는 것? 죄의 위치에 대해 따져묻는 것.
누구 탓 하지마 네 탓이야.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두기도. 그러면 어떤 삶의 태도를 보일까? 내가 구원받는 것이나 지옥 가는 것 내가 할 탓. 내가 하나님 잘 믿고 섬기면 구원되는 것 아니겠어? 아버지 핑계 대지 말고 네가 열심히 하면 되잖아.
혹은 반대로 우리 문제는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문제는 여러분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다 열심히 했는데 왜 못사나. 구조적으로 부르주아들이 많은걸 가져갔기 때문. 바꾸기 위해 망치를 드세요. 부르주아 찍어 없애고 뺏어 나눠 가지자..
문제의 근원, 혹은 죄의 근원을 타인, 사회에 두느냐 개인에 두느냐. 성경은 그 상태에서 뭘 말하냐면. 성경은 애초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님이라는 그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죄 좌체를 이 땅에 도입해 들어오심.
죄를 이 땅에 도입해 들어오도록 허용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위해서. 따라서 우리가 어떤 문제를 봤을 때. 내가 머리 나쁜 것 아버지 때문? 어머니 때문? 내가 가난한 것. 돈에 대한 머리가 안 도는 것은 아버지 때문?
성경은 뭘 말하느냐. 네가 바보인 것은. 죄의 욕심이 강한 것은. 그 모든 원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위한 장치 가운데 속한 것이 죄.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한다. 아담이 지었던 죄. 신명기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인해서 안 죽는다. 그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듣기로는 아담이 지었던 죄 때문에 죽는다고. 나는 선악과 안 먹었는데 왜 내가 감당? 에스겔서.. 그러면 아담이 먹은 선악과 죄 나한테 물으면 안되지.
죄의 위치를 아담의 내부에 둬 버리면 그야말로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유전되었다 말할 수 있는데 아니다. 롬5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은 아담. 그 아담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도록 문을 연 것. 아담 한 사람이 선악과 먹은 죄를 말하는 것 아니고 아담이 열어젖힌 문을 통해 죄가 밀려들어온 것. 만약 어떤 사람이 비오는데 댐 문을 열었다면
그 다음부터 이 세상에 죄가 돌아다니는 것. 트로이. 거대 목마 속 군사. 그것처럼 아담은 선악과 먹을 때 본인 하나가 먹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죄가 세상에 들어오는 통로 만든 것.
전염병 창궐하듯 죄가 온 세상에 돌아다닌다. 아버지는 죄 있고 아들은 없는 것 아니고. 전염병이 똑같이 아버지 치고 아들 치듯.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
그러면 아담이 선악과 먹기 전에는 죄가 어디 있었을까? 분명 아담이 선악과 먹은 다음에는 죄가 세상에 있다. 죄의 정확한 위치는 하나님의 언약 속. 우리가 성경을 바라보거나 인생 살 때는 나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내 행복 내 기쁨 위주로 본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섫어하시고 죄 때문에 괴로움 갈등 오고. 그러면 우리 행복 위해 죄를 짓지 말자. 행복의 나라로 가야지. 어떻게? 죄를 버리면 돼. 도둑질 말자 간음 말자 안식일 지키자...
카톡프사. 경건한 영적 생활을 위해서는 토욜에 일찍 자고 주일이 늦지 않는 것... 죄를 이기고 예배를 잘 드리면 우리 가족에 행복 온다니까 행복을 위해 기를 쓰는 것.
죄를 왜 인간이 못 이기냐면 죄는 인간 존재 이전에 언약 속에 있었기 때문. 죄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결핵 위험 격리. 결핵균은 노크하고 가는 게 아니다. 우리의 의사 의지 넘어선 활동. 죄도 똑같다.
아직도 죄에 무지한 사람들은 우리 부부가 합심기도하면 죄를 이길 수 있다고. 누가 죄를 이긴다고 뻥을 침? 죄라는 것은 공기를 타고 어디든 가는 전염병처럼 어디든 간다. 나는 이번주 경건하게 살았는데요? 뺨따구 한번 착 때리면...
죄와 싸운다는 것은 아직 죄를 모른다는 것. 죄라는 것은 이미 언약 가운데 준비하고 있다가 아담을 통해 들어옴. 롬5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 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죄라고 하는 것을 나 자신의 완성을 위한 정복대상으로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 은혜에 도달할 수 없다. 엄홍길 지구상 가장 높은 봉우리를 왜 올라감? 히말라야 14좌 등반하는 사람처럼 그 죄를 등반하고 이기게 되면 그 죄를 이긴 나의 신앙적 우수함만 드러난다. 죄를 극복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
그들은 예수 은혜 모른 채 죽는다. 죄는 싸워 이길 대상이 아니다. 죄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은혜로 가기 위한 과정. 그래서 언약에 속한 백성은 반드시 언약의 위치에서 우리에게 방출된 죄로 인해 얻어맞게 되어있다. 내가 왜 죄인인지 날마다 알아가는 과정
5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와ᅟᅡᆼ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 죄가 없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속죄 은총도 없다. 그 죄를 내가 이기면 예수와 우리는 남이 된다.
우리가 평상시 죄 짓고 싶을 때 율법 때문에 혼날까 하는 사람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더하겠느냐.... 바울에게 복음 듣고 나서 죄 지어도 되겠네. 옳거니. 그때 주님 말씀 네가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네가 죄를 안 짓는다 생각한 그 때도 죄 가운데 있었던 것. 새삼스럽게 더 지을 필요도 없다.
그걸 예수 그리스도 은혜를 아는 자들이 안다. 목사가 설교한다 해서 그 순간만큼 의롭다 말 못한다. 설교하는 순간도 목사는 죄짓는다. 예수 증거하는 와중에도 영광을 챙긴다. 우리가 복음 전하는 현장에도 숟가락을 얹는다.
우리는 새삼스레 무슨 죄를 짓든 말든.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든 하나님 보시기에 죄 가운데 놓여있다. 그래서 주님이 구원을 이야기할 때 우리와 의논하지 않으신다. 오직 언약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모든 스케줄이 짜여진다. 그래놓고 우리에게 물어보고 나중에 다른 걸로. 우리 욕망이 튀어나온다.
각 사람은 자기 죄로 죽음. 그 죄의 출처가 어디? 언약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죄에 대한 투쟁 아니라 그 죄 인정하고 죄로 인한 사망의 당연함을 인정하고. 그 자만이 한편 강도처럼 우리가 죽는 것은 마땅하거니와 저 분은 왜 죽는 것?
언약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죽음이 내가 마땅히 죽어야 될 죄를 대신 담당했다는 사실을 안다. 당신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
개인적으로 죄와 맞짱떠서 하나씩 격파하는 기쁨으로 인생 사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속이는 것. 그럴수록 그 내부에는 악이 차오른다. 복싱 챔피언? 도장깨기? 그러니까 대는 핑계. 아버지 때문. 죄를 이겨도 안 이겨도 주님은 우리를 상대 않으신다
상대 않으시기 때문에 롬5 원한다고 되는 것 아니고 달음박질 해도 되는 것 아니고. 백번 천번 써도 아니고 오직 주께서 원하시는 자로 은총 받게. 우리한테 뭘 물을 상태 아니기 때문.
죄의 출처가 언약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자는 자기 파멸 죽어 마땅함, 그 자리에서 주어지는 예수 피로 인한 은총을 안다. 경험해봐야 안다. 파산, 회생 절차의 경험. 그런데 방 한칸. 홀로 십자가 지신 예수 은총으로서의 방 한 칸.
죄인 주제에 선풍기도 사치. 팥빙수. 펄펄끓는 지옥 아래층.. 그게 십자가 자리. 모든 저주가 집약된 십자가 자리에 주님이 우리를 세워두시면 우리에게는 아무 권리 자격 없다. 그런 자에게 주어지는 냉수 한 잔 은총이 십자가 피의 댓가. 예수 감사 찬양.
죄의 위치. 출처가 언약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볼 수 있기를. 그러면 이미 죄 가운데 들어있기 때문에 모든게 사망가운데 들어있다는 사실... 자기 죄로 인해 죽임.. 죄의 출처를 언약 속에서.
그런 자는 율법의 행위로 인해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언약 속에서 끊어진다는 것을 안다. 택도없는 죄를 이기자.. 사기 치는 것. 목사 자체가 죄에. 예수님 은총 없이는 아무도 구원 못 받는다. 날마다 언약 속에서 흘러 나오는 죄로 말미암아 다시금 우리가 언약 속 예수 그리스도 만날 수 있기.
죄라는 것 우리가 싸워 이길 만만한 대상 아니라 예수님을 기필코 주로 세우고자 하시는 주의 언약의 일부분이었음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