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념-2.법수념-법을 계속해서 생각함-Dhammānussatikathā
2. Dhammānussatikathā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
Dhammānussatiṃ bhāvetukāmenāpi rahogatena paṭisallīnena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기를 원하는 이는 조용히 혼자 머물러
‘‘svākkhāto bhagavatā 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a. ni. 6.10)
“법은 세존에 의해서 ①잘 설해졌고, ②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③시간이 걸리지 않고, ④와서 보라는 것이고, ⑤향상으로 인도하고, ⑥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evaṃ pariyattidhammassa ceva navavidhassa ca lokuttaradhammassa guṇā anussaritabbā.
이와 같이 교학과 아홉가지 출세간법의 덕을 계속해서 생각해야 한다.
Svākkhātoti imasmiṃ hi pade pariyattidhammopi saṅgahaṃ gacchati, itaresu lokuttaradhammova.
잘 설했고 라는 이 구절에는 교학도 포함되지만 나머지 [다섯 구절]의 경우에는 출세간법만 포함된다.
Tattha pariyattidhammo tāva svākkhāto ādimajjhapariyosānakalyāṇattā sātthasabyañjanakevalaparipuṇṇaparisuddhabrahmacariyappakāsanattā ca.
여기서 교학은 잘 설해졌나니, 시작-중간-끝이 좋고, 의미와 표현을 갖추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Yañhi bhagavā ekagāthampi deseti, sā samantabhaddakattā dhammassa paṭhamapādena ādikalyāṇā, dutiyatatiyapādehi majjhekalyāṇā, pacchimapādena pariyosānakalyāṇā.
세존이 설하신 것은 단 하나의 게송이라도 더할 나위 없이 감탄을 자아내기 때문에 [그 게송의] 첫째 句로 처음이 좋고, 둘째·셋째 구로 중간이 좋고, 마지막 구로 끝이 좋다.
Ekānusandhikaṃ suttaṃ nidānena ādikalyāṇaṃ, nigamanena pariyosānakalyāṇaṃ, sesena majjhekalyāṇaṃ.
같은 뜻을 나열하는 경은 서론(序分)으로 처음이 좋고, 결론(流通分)으로 끝이 좋고, 나머지(正宗分)로 중간이 좋다.
Nānānusandhikaṃ suttaṃ paṭhamānusandhinā ādikalyāṇaṃ, pacchimena pariyosānakalyāṇaṃ, sesehi majjhekalyāṇaṃ.
여러 뜻을 나열하는 경은 처음의 나열로 처음이 좋고, 마지막의 [나열]로 끝이 좋고, 나머지로 중간이 좋다.
Apica sanidānasauppattikattā ādikalyāṇaṃ, veneyyānaṃ anurūpato atthassa aviparītatāya ca hetudāharaṇayuttato ca majjhekalyāṇaṃ, sotūnaṃ saddhāpaṭilābhajananena nigamanena ca pariyosānakalyāṇaṃ.
다시 서론과 그것을 설하게 된 동기로 처음이 좋고, 제도하려는 이들의 근기에 따른다고 해서 뜻이 전도되지 않고 또 원인과 비유가 적절하기 때문에 중간이 좋고, 경청하는 이들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결론으로 끝이 좋다.
Sakalopi sāsanadhammo attano atthabhūtena sīlena ādikalyāṇo, samathavipassanāmaggaphalehi majjhekalyāṇo, nibbānena pariyosānakalyāṇo.
교법 전체는 자기에게 이로운 계로 처음이 좋고, 사마타-위빳사나-도-과로 중간이 좋고, 열반으로 끝이 좋다.
Sīlasamādhīhi vā ādikalyāṇo, vipassanāmaggehi majjhekalyāṇo, phalanibbānehi pariyosānakalyāṇo.
혹은 계와 삼매로 처음이 좋고, 위빳사나와 도로 중간이 좋고, 과와 열반으로 끝이 좋다.
Buddhasubodhitāya vā ādikalyāṇo,
부처님이 잘 깨달으셨기 때문에 처음이 좋고,
dhammasudhammatāya majjhekalyāṇo,
법이 좋은 법이기 때문에 중간이 좋고,
saṅghasuppaṭippattiyā pariyosānakalyāṇo.
승가가 잘 실천하기 때문에 끝이 좋다.
Taṃ sutvā tathatthāya paṭipannena adhigantabbāya abhisambodhiyā vā ādikalyāṇo, paccekabodhiyā majjhekalyāṇo, sāvakabodhiyā pariyosānakalyāṇo.
혹은 이것을 듣고 여여하게 수행하는 이가 얻어야 할 等覺으로 처음이 좋고, 獨覺으로 중간이 좋고, 聲聞覺으로 끝이 좋다.
Suyyamāno cesa nīvaraṇavikkhambhanato savanenapi kalyāṇameva āvahatīti ādikalyāṇo,
들을 때 이 교법은 장애를 억압하기 때문에 듣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러므로 처음이 좋다.
paṭipajjiyamāno samathavipassanāsukhāvahanato paṭipattiyāpi kalyāṇaṃ āvahatīti majjhekalyāṇo,
도닦을 때 사마타-위빳사나의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도닦음으로 좋다. 그러므로 중간이 좋다.
tathāpaṭipanno ca paṭipattiphale niṭṭhite tādibhāvāvahanato paṭipattiphalenapi kalyāṇaṃ āvahatīti pariyosānakalyāṇoti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행복을 가져오도록] 그렇게 도닦으면 도닦음의 과가 완성될 때 평정을 가져오기 때문에 도닦음의 과로도 좋다. 그러므로 끝이 좋다.
evaṃ ādimajjhapariyosānakalyāṇattā svākkhāto.
이와 같이 처음과 중간과 끝이 좋기 때문에 잘 설해졌다고 한다.
Yaṃ panesa bhagavā dhammaṃ desento sāsanabrahmacariyaṃ maggabrahmacariyañca pakāseti nānānayehi dīpeti,
세존은 법을 설하실 때 교법의 청정범행과 도의 청정범행을 설하시고 여러 가지 방편들로 그것을 밝히신다.
taṃ yathānurūpaṃ atthasampattiyā sātthaṃ, byañjanasampattiyā sabyañjanaṃ.
그것은 적절하게 의미를 구족했기 때문에 의미를 갖추었고, 표현을 구족했기 때문에 표현을 갖추었다.
Saṅkāsanapakāsanavivaraṇavibhajanauttānīkaraṇapaññattiatthapadasamāyogato sātthaṃ, akkharapadabyañjanākāraniruttiniddesasampattiyā sabyañjanaṃ.
선언하고-설명하고-드러내고-분별하고-밝히고-서술함으로써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에 적합하기 때문에 의미를 갖추었고, 음절·단어·세목·문체·어원·설명을 구족했기 때문에 표현을 갖추었다.
Atthagambhīratāpaṭivedhagambhīratāhi sātthaṃ,
의미가 심오하고 통찰함이 심오하기 때문에 의미를 갖추었고,
dhammagambhīratādesanāgambhīratāhi sabyañjanaṃ.
법이 심오하고 가르침이 심오하기 때문에 표현을 갖추었다.
Atthapaṭibhānapaṭisambhidāvisayato sātthaṃ, dhammaniruttipaṭisambhidāvisayato sabyañjanaṃ.
義無碍解와 辯無碍解의 영역이기 때문에 의미를 갖추었고, 法無碍解와 詞無碍解의 영역이기 때문에 표현을 갖추었다.
Paṇḍitavedanīyato parikkhakajanappasādakanti sātthaṃ,
현자가 경험할만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이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므로 의미를 갖추었고,
saddheyyato lokiyajanappasādakanti sabyañjanaṃ.
믿을만하기 때문에 세간 사람들에게 믿음을 불러일으키므로 표현을 갖추었다.
Gambhīrādhippāyato sātthaṃ,
의도가 심오하기 때문에 의미를 갖추었고,
uttānapadato sabyañjanaṃ.
문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표현을 갖추었다.
Upanetabbassa abhāvato sakalaparipuṇṇabhāvena kevalaparipuṇṇaṃ.
첨가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전체가 원만한 상태로써 지극히 원만하다.
Apanetabbassa abhāvato niddosabhāvena parisuddhaṃ.
삭제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결점이 없는 상태로써 청정하다.
Apica paṭipattiyā adhigamabyattito sātthaṃ,
더우기 도닦음을 통해 증득의 수승함이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갖추었고,
pariyattiyā āgamabyattito sabyañjanaṃ,
교학을 통해 배움의 수승함이 있기 때문에 표현을 갖추었다.
sīlādipañcadhammakkhandhayuttato kevalaparipuṇṇaṃ,
계 등의 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nirupakkilesato nittaraṇatthāya pavattito
결점이 없고 [고해를] 건너게 하기 위하여 생겼고,
lokāmisanirapekkhato ca parisuddhanti
세간적인 것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지극히 청정하다.
evaṃ sāttha sabyañjanakevala paripuṇṇa parisuddha brahmacariya ppakāsanato svākkhāto.
이와 같이 의미와 표현을 갖추고-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내기때문에 교법은 잘 설해졌다.
Atthavipallāsābhāvato vā suṭṭhu akkhātoti svākkhāto.
혹은 이 [법은] 뜻이 전도된 것이 없으므로 잘 설해졌다. 그러므로 잘 설해졌다고 한다.
Yathā hi aññatitthiyānaṃ dhammassa attho vipallāsamāpajjati,
다른 외도들의 법에는 그 뜻이 전도되어 있다.
antarāyikāti vuttadhammānaṃ antarāyikattābhāvato,
장애가 된다고 설한 그 법들에는 장애가 없고,
niyyānikāti vuttadhammānaṃ niyyānikattābhāvato.
출구라고 한 법들이 출구가 아니기 때문에,
Tena te durakkhātadhammāyeva honti, na tathā bhagavato dhammassa attho vipallāsamāpajjati.
그들의 법은 잘못 설해졌다. 세존의 법은 그와 같이 전도되지 않았다.
Ime dhammā antarāyikā, ime dhammā niyyānikāti evaṃ vuttadhammānaṃ tathābhāvānatikkamanatoti.
‘이 법들은 장애가 되고 이 법들은 출구이다’라고 설한 그 법들이 사실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Evaṃ tāva pariyattidhammo svākkhāto.
이와 같이 교법은 잘 설해졌다.
Lokuttaradhammo pana nibbānānurūpāya paṭipattiyā paṭipadānurūpassa ca nibbānassa akkhātattā svākkhāto.
열반에 걸맞게 도를 설하셨고, 도에 걸맞게 열반을 설하셨기 때문에 출세간법이 잘 설해졌다.
Yathāha –
그래서 말씀하셨다.
‘‘supaññattā kho pana tena bhagavatā sāvakānaṃ nibbānagāminī paṭipadā saṃsandati nibbānañca paṭipadā ca.
“세존께서는 제자들에게 열반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널리 선포하셨고 열반은 도닦음과 더불어 부합한다.
Seyyathāpi nāma gaṅgodakaṃ yamunodakena saṃsandati sameti, evameva supaññattā (dī. ni. 2.296) tena bhagavatā sāvakānaṃ nibbānagāminī paṭipadā saṃsandati nibbānañca paṭipadā cā’’ti.
마치 강가강의 물과 야무나강의 물이 서로 만나 합류 하듯이 그와 같이 세존께서는 열반으로 인도하는 도를 널리 선포하셨고 열반은 도닦음과 더불어 부합한다.”라고.
Ariyamaggo cettha antadvayaṃ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bhūtova ‘‘majjhimā paṭipadā’’ti akkhātattā svākkhāto.
성스러운 도는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中道다. 중도라고 설하셨기 때문에 잘 설해졌다.
Sāmaññaphalāni paṭipassaddhakilesāneva
沙門果는 오직 오염원들을 가라앉힌 것이다.
‘‘paṭipassaddhakilesānī’’ti akkhātattā svākkhātāni.
오염원들을 가라앉힌 것이라 설하셨기 때문에 잘 설해졌다.
Nibbānaṃ sassatāmatatāṇaleṇādisabhāvameva sassatādisabhāvavasena akkhātattā svākkhātanti
열반은 영원함·不死·귀의처·의지할 곳 등의 고유성질을 갖는다. 영원함 등의 고유성질로 설하셨기 때문에 잘 설해졌다.
evaṃ lokuttaradhammopi svākkhāto.
이와 같이 출세간법이 잘 설해졌다.
Sandiṭṭhikoti ettha pana ariyamaggo tāva attano santāne rāgādīnaṃ abhāvaṃ karontena ariyapuggalena sāmaṃ daṭṭhabboti sandiṭṭhiko.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성스러운 도는 우선 자기의 상속에서 탐욕 등을 없애는 성인에 의해 스스로 보아 알만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Yathāha –
그래서 말씀하셨다.
‘‘ratto kho, brāhmaṇa, rāgena abhibhūto pariyādiṇṇacitto attabyābādhāyapi ceteti,
“바라문이여, 탐욕에 물들었고, 압도되었고, 전도된 마음을 가진 이는 자기를 괴롭히는 것을 생각하고,
parabyābādhāyapi ceteti,
타인을 괴롭히는 것을 생각하고,
ubhayabyābādhāyapi ceteti.
둘 다를 괴롭히는 것을 생각한다.
Cetasik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그는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슬픔을 겪는다.”
Rāge pahīne neva attabyābādhāya ceteti,
“탐욕을 버렸을 때 자기를 괴롭히는 것도 생각지 않고
na parabyābādhāya ceteti, na ubhayabyābādhāya ceteti, na cetasik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
타인을 괴롭히는 것도 생각지 않고 둘 다를 괴롭히는 것도 생각지 않는다.” 정신적인 고통도 없고 슬픔도 겪지 않는다/
Evampi kho, brāhmaṇa, sandiṭṭhiko dhammo hotī’’ti(a. ni. 3.54).
“이와 같이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라고.
Apica navavidhopi lokuttaradhammo yena yena adhigato hoti, tena tena parasaddhāya gantabbataṃ hitvā paccavekkhaṇañāṇena sayaṃ daṭṭhabboti sandiṭṭhiko.
다시 아홉 가지 출세간법을 얻게 되면 누구나 타인을 믿는 것에 의존함을 버리고 반조하는 지혜로 스스로 보기 때문에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Atha vā pasatthā diṭṭhi sandiṭṭhi, sandiṭṭhiyā jayatīti sandiṭṭhiko.
혹은 찬탄할만한 견해가 찬탄할만한 견해이다. 찬탄할만한 견해로 물리치기 때문에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Tathā hettha ariyamaggo sampayuttāya, ariyaphalaṃ kāraṇabhūtāya, nibbānaṃ visayibhūtāya sandiṭṭhiyā kilese jayati.
왜냐하면 성스러운 도는 그것과 연결된 바른 견해로, 성스러운 과는 그것의 원인인 바른 견해로, 열반은 이 열반을 대상으로 가지는 바른 견해로 오염원들을 물리치기 때문이다.
Tasmā yathā rathena jayatīti rathiko, evaṃ navavidhopi lokuttaradhammo sandiṭṭhiyā jayatīti sandiṭṭhiko.
그러므로 마치 전차로 승리하기 때문에 전차병이라 하듯이, 아홉 가지 출세간법도 바른 견해로 승리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Atha vā diṭṭhanti dassanaṃ vuccati.
혹은 견은 보는 것을 뜻한다.
Diṭṭhameva sandiṭṭhaṃ,
견이 바로 본 것이다.
dassananti attho.
즉 본다는 뜻이다.
Sandiṭṭhaṃ arahatīti sandiṭṭhiko.
볼만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Lokuttaradhammo hi bhāvanābhisamayavasena sacchikiriyābhisamayavasena ca dissamānoyeva vaṭṭabhayaṃ nivatteti.
왜냐하면 출세간법은 그것이 보이자마자 수행을 관통하고 [열반의] 실현을 관통하여 윤회의 두려움을 물리치기 때문이다.
Tasmā yathā vatthaṃ arahatīti vatthiko, evaṃ sandiṭṭhaṃ arahatīti sandiṭṭhiko.
그러므로 옷을 입을만하기 때문에 옷을 입을 수 있는 이라 하듯이, 볼 만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Akāloyeva akāliko.
시간이 걸리지 않음이 바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Attano phaladānaṃ sandhāya nāssa kāloti akālo.
자신의 결과를 주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Na pañcāhasattāhādibhedaṃ kālaṃ khepetvā phalaṃ deti,
5일이나 7일 등의 시간을 경과하지 않고 결과를 준다.
attano pana pavattisamanantarameva phaladoti vuttaṃ hoti.
즉 그것은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결과를 주는 것이라고 설했다.
Atha vā attano phaladāne pakaṭṭho kālo patto assāti kāliko.
혹은 자신의 결과를 주는데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Ko so?
무엇이 그것인가?
Lokiyo kusaladhammo.
세간적인 유익한 법(善法)이다.
Ayaṃ pana samanantaraphalattā na kālikoti akāliko.
그러나 이것은 결과가 바로 그 다음에 따라오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Idaṃ maggameva sandhāya vuttaṃ
이것은 도와 관련하여 설한 것이다.
150. ‘‘Ehi passa imaṃ dhamma’’nti evaṃ pavattaṃ ehipassavidhiṃ arahatīti ehipassiko.
[와서 보라는 것이고]: ‘와서 이 법을 보라’고 이와 같이 검사하기 위해 초대를 할만하기 때문에 와서 보라는 것이다.
Kasmā panesa taṃ vidhiṃ arahatīti?
무슨 이유로 초대할만한가?
Vijjamānattā parisuddhattā ca.
있기 때문이고 청정하기 때문이다.
Rittamuṭṭhiyaṃ hi hiraññaṃ vā suvaṇṇaṃ vā atthīti vatvāpi ‘‘ehi passa ima’’nti na sakkā vattuṃ.
빈주먹에 금화나 황금이 있다고 말할 순 있지만 ‘와서 이것을 보라’고 말할 수는 없다.
Kasmā? Avijjamānattā.
무슨 이유인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Vijjamānampi ca gūthaṃ vā muttaṃ vā manuññabhāvappakāsanena cittasampahaṃsanatthaṃ ‘‘ehi passa ima’’nti na sakkā vattuṃ.
그것이 소변이나 대변이라면 실제로 있다하더라도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면서 마음을 흡족케 하기 위해서는 ‘와서 이것을 보라’고 말할 수 없다.
Apica kho pana tiṇehi vā paṇṇehi vā paṭicchādetabbameva hoti.
오히려 풀이나 나뭇잎으로 가려야만할 것이다.
Kasmā? Aparisuddhattā.
왜 그런가? 더럽기 때문이다.
Ayaṃ pana navavidhopi lokuttaradhammo sabhāvatova vijjamāno vigatavalāhake ākāse sampuṇṇacandamaṇḍalaṃ viya paṇḍukambale nikkhittajātimaṇi viya ca parisuddho.
그러나 이 아홉 가지 출세간법은 그 고유성질로 존재하는 것이고, 구름없는 하늘에 둥근 보름달처럼, 황금색 돌 위에 놓인 보석처럼 청정하다.
Tasmā vijjamānattā parisuddhattā ca ehipassavidhiṃ arahatīti ehipassiko.
그러므로 있기 때문에, 청정하기 때문에 와서 보라고 초대할만하다. 그래서 와서 보라는 것이다.
151. Upanetabboti opaneyyiko.
[향상으로 인도하고]: 인도할만하기 때문에 향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Ayaṃ panettha vinicchayo,
여기서 판별은 다음과 같다.
upanayanaṃ upanayo,
인도함이 인도다.
ādittaṃ celaṃ vā sīsaṃ vā ajjhupekkhitvāpi bhāvanāvasena attano citte upanayanaṃ arahatīti opanayiko.
자기의 옷이나 머리가 불타는 것도 상관치 않고 오직 수행으로 [이 법을] 자기의 마음에 인도할 수 있기 때문에 인도하는 것이다.
Opanayikova opaneyyiko.
인도하는 것이 바로 향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Idaṃ saṅkhate lokuttaradhamme yujjati.
이것은 형성된 출세간법들(열반을 제외한 네 가지 도와 네 가지 과)에 적용된다.
Asaṅkhate pana attano cittena upanayanaṃ arahatīti opaneyyiko.
형성되지 않은 [열반]은 자기의 마음에 [마음의 대상으로] 삼을만하기 때문에 향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Sacchikiriyāvasena allīyanaṃ arahatīti attho.
깨달아서 체득할 만하다는 뜻이다.
Atha vā nibbānaṃ upanetīti ariyamaggo upaneyyo.
혹은 성스러운 도는 [성스러운 사람들을]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인도할만한 것이다.
Sacchikātabbataṃ upanetabboti phalanibbānadhammo upaneyyo.
과와 열반은 실현해야 할 것으로 인도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도할만한 것이다.
Upaneyyo eva opaneyyiko.
인도할만한 것이 바로 향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152.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
sabbehipi ugghaṭitaññūādīhi viññūhi attani attani veditabbo ‘‘bhāvito me maggo, adhigataṃ phalaṃ, sacchikato nirodho’’ti.
예리한 지자 등 모든 지자는 ‘나는 도를 닦았고, 과를 얻었고, 열반을 실현했다.’라고 각각 자신 안에서 알아야 한다.
Na hi upajjhāyena bhāvitena maggena saddhivihārikassa kilesā pahīyanti, na so tassa phalasamāpattiyā phāsuviharati, na tena sacchikataṃ nibbānaṃ sacchikaroti.
은사가 도를 닦을 때 [제자가] 함께 머문다 해서 그의 오염원들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고, 은사가 과를 증득했다 해서 제자가 행복하게 머무는 것도 아니고, 은사가 열반을 실현했다 해서 제자가 실현하는 것도 아니다.
Tasmā na esa parassa sīse ābharaṇaṃ viya daṭṭhabbo, attano pana citteyeva daṭṭhabbo, anubhavitabbo viññūhīti vuttaṃ hoti.
그러므로 이것은 타인의 머리에 꾸며놓은 장식처럼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지자들이 자신의 마음에서 볼 수 있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Bālānaṃ pana avisayo cesa.
이것은 어리석은 이의 경계가 아니다.
Apica svākkhāto ayaṃ dhammo. Kasmā?
그리고 이 법은 잘 설해졌다. 왜 그런가?
Sandiṭṭhikattā.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Sandiṭṭhiko, akālikattā.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Akāliko, ehipassikattā.
와서 보라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Yo ca ehipassiko, so nāma opaneyyiko hotīti.
그리고 와서 보라는 것은 향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153. Tassevaṃ svākkhātatādibhede dhammaguṇe anussarato neva tasmiṃ samaye rāgapariyuṭṭhitaṃ cittaṃ hoti.
이와 같이 ‘잘 설해졌고’라는 등으로 구분한 법의 덕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그때 그의 마음은 탐욕에 얽매이지 않고,
Na dosa…pe… na mohapariyuṭṭhitaṃ cittaṃ hoti.
성냄에 ··· 어리석음에 얽매이지 않는다.
Ujugatamevassa tasmiṃ samaye cittaṃ hoti dhammaṃ ārabbhāti (a. ni. 6.10)
그때 그의 마음은 법을 의지하여 올곧아진다.”
purimanayeneva vikkhambhitanīvaraṇassa ekakkhaṇe jhānaṅgāni uppajjanti.
앞서 설한 방법대로 장애들을 억압할 때 차례에 따라 어떤 한 순간에 禪의 구성요소들이 일어나게 된다.
Dhammaguṇānaṃ pana gambhīratāya nānappakāraguṇānussaraṇādhimuttatāya vā appanaṃ appatvā upacārappattameva jhānaṃ hoti.
법의 덕이 심오하기 때문에 혹은 갖가지 덕을 계속해서 생각함에 전념하기 때문에 이 禪은 본삼매에는 이르지 못하고 근접에만 이른다.
Tadetaṃ dhammaguṇānussaraṇavasena uppannattā dhammānussaticceva saṅkhaṃ gacchati.
이처럼 이것은 법의 덕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이라 부른다.
Imañca pana dhammānussatiṃ anuyutto bhikkhu ‘evaṃ opaneyyikassa dhammassa desetāraṃ imināpaṅgena samannāgataṃ satthāraṃ neva atītaṃse samanupassāmi, na panetarahi aññatra tena bhagavatāti’ evaṃ dhammaguṇadassaneneva satthari sagāravo hoti sappatisso. 이러한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닦는 비구는 ‘이와 같이 향상으로 인도하는 법을 설하고 이러한 공덕을 갖춘 스승을 과거에도 본 적이 없고 현재에도 세존 이외에 어떤 분도 본 적이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법의 덕을 봄으로써 천인사를 존중하고 천인사에 순종한다.
Dhamme garucittīkāro saddhādivepullaṃ adhigacch
법에 대한 존경심을 내고 믿음이 깊어진다. ati,
pītipāmojjabahulo hoti, bhayabheravasaho, dukkhādhivāsanasamattho,
희열과 기쁨이 커지고,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dhammena saṃvāsasaññaṃ paṭilabhati,
법과 함께 사는 것 같은 인식을 얻는다.
dhammaguṇānussatiyā ajjhāvutthañcassa sarīrampi cetiyagharamiva pūjārahaṃ hoti,
법의 공덕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을 때 그의 몸도 탑묘처럼 예배를 받을만하다.
anuttaradhammādhigamāya cittaṃ namati,
그의 마음은 위없는 법의 증득으로 향한다.
vītikkamitabbavatthusamāyoge cassa dhammasudhammataṃ samanussarato hirottappaṃ paccupaṭṭhāti.
계를 범할 대상을 만날 때, 뛰어난 법의 성품을 계속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양심과 수치심이 나타난다.
Uttari appaṭivijjhanto pana sugatiparāyano hoti.
더 이상 통찰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선처로 인도한다.
Tasmā have appamādaṃ, kayirātha sumedhaso;
그러므로 슬기로운 이는 항상 게을리 하지 말지니,
Evaṃ mahānubhāvāya, dhammānussatiyā sadāti.
이와 같이 큰 위력을 가진,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을.
Idaṃ dhammānussatiyaṃ vitthārakathāmukhaṃ.
이것이 법을 계속해서 생각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