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디프'를 보고] 정병경
ㅡ바다가 다스리는 마음ㅡ
버뮤다 여름은 바람의 향기부터 다르다. 햇빛이 해변 모래에 내려앉는다. 맑게 다가오는 파도가 바다 속에 잠긴 세계를 드러내 보인다. 1978년은 반세기 전이다. 프로그램 한 장을 200원에 구입했다. 스크린을 통해 처음으로 깊고 푸른 대서양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니 마음이 열린다.
게일과 데이비드가 잠수복을 입고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극장 안은 바다 내음이 퍼지는 듯하다. 재클린 비셋의 흰 잠수복은 수면 아래에서 은빛 포말을 일으킨다. 닉 놀트의 체격은 어둠 속에서도 유연하다. 두 배우는 서로 대조를 이룬다. 한 사람은 부드럽고 섬세한 연기로 시선을 끈다. 또 한 사람은 강단을 가진 연기를 펼친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랑과 모험이 시작된다.
촬영은 난관을 극복해나간다.
감독 피터 이엣과 제작자 피터 구버는 물 속 장면을 구현하는 데 혼신을 쏟는다. 수십 번의 실패를 겪는다. 빛은 방향을 잃고 번져 나가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한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차리스는 조명의 각도 하나에 오랜 시간을 고민한다.
물속에서의 촬영은 늘 위험과 함께 시작된다. 숨을 오래 참아야 한다. 몸은 차갑고 시야는 빛이 흔들릴 때마다 흐려진다. 스테프와 배우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카메라는 파도 앞에서 불규칙하게 흔들린다. 배우는 미세한 표정 하나까지 조절해야 한다. 생생한 장면을 얻기 위해서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결국 스텝과 캐스터들의 끈기와 용기이다.
잠수 전문 스태프들은 조류가 강해지는 오후를 피해 새벽 네 시에 촬영 장비를 물속으로 넣는다. 산호 주변에 회색빛 상어가 지나간다. 스탭들의 땀과 공포가 함께 담긴 현실을 체험한다. 연기자들은 어두움 속에서 바다에 적응이 되어간다. 로버트 쇼는 등대 아래 배경에 녹아든다. 루 고세트의 슬픈 눈빛은 흔들림 없이 표현한다. 이라이 워라크의 표정은 바다를 오래 적응한 표현이다. 감동적인 건 바다에서 펼쳐지는 마음의 깊이이다.
난파선의 오래된 금화와 스페인의 성물과 유리 앰플 속의 노란 약품이 가득하다. 모트리스 (로버트 쇼)는 난파된 콜리오스호에서 2차 대전 중 실려 있던 모르핀 앰플을 발견한다. 그 사실을 데이비드와 게일에게 전한다. 오래전부터 이 약품을 노려온 흑인 조력자 클로트 (루 고세트 주니어)와 조직은 부부를 향해 점점 위협의 고삐를 죄어온다.
바다는 한 사람의 인생과 같다. 맑아지다가 언제 폭풍이 닥칠지 알 수 없다. 때론 숨을 앗아갈 만큼 깊고 어둡다. 물 속에서 건져 올리는 작은 금빛 조각 하나가 삶을 바꿀 만큼 강렬한 의미를 품는다. 게일과 데이비드가 서로를 다시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은 깨닫는다. 사랑은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면서 바다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손을 꼭 잡는다. 푸른 심해에서 건진 것은 금화에 대한 욕심보다 서로의 마음이다.
[더 디프를 보고]
물결에 젖은 보물
심해의 길 따라가
의리로 다진 정성
맘 비운 모습으로
색 바랜
세월 속에는
에메랄드 빛비춰
난파선 숨결 소리
파도에 묻혀가고
어둠과 고통 속을
견뎌준 마음 한 점
끝내는
하늘로 솟아
별이 되어 바라봐
바다에 잠긴 사연
먼 훗날 빛이 되어
후대와 호흡하며
세상을 이어 가리
우주의
존재로 남아
세세생생 비추고
2025.12.06.
첫댓글 영화 <더 디프>의 풍부한 자료와 감상을 잘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크린 비젯트의 아름다운 모습,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