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시화록(時化錄) 32--대종사의 공동체 정신 Ⅰ
박용덕 교무(수지교당) 원광 2005년 8월호
전라도 사람들을 두고 ‘전라도 개땅쇠’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보통사람을 상놈이라고 하였다.
상놈의 자식들을 마당쇠, 돌쇠, 개똥이, 똥네, 바우, 돌이, 바랭이라 이름하듯이
아무 쓸모없는 개땅에 사는 잡놈을 개땅쇠라고 한다.
이렇게 다수를 차지하는 민초들은 자기 자신을 비하하였다.
장보고, 견훤, 정여립, 전봉준이 태어난 전라도를 반역의 땅이라 하여
조정은 자주의식이 강한 호남 인물 등용하지 않았다.
왕조시대가 무너지면서
비로소 강증산, 경허, 소태산 등 종교적 선각자들이 빛을 보게 되었다.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중이 상놈 대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자기 내부에 무한동력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민중은 모래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단합하지 않으면 힘센 놈에게 핍박받거나 이용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양반보다 상놈들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7:3의 비율인데 어째서 소수의 양반들에게 민중들은 만날 당하기만 하였을까?
멍청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이들의 멍청함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대종사 대각하고 처음 설하신 법문의 요지는 단결/ 경제/ 교육이었다.
필자가 1980년대-90년대에 대학에 근무하면서 총학생회장 선거를 지켜보았다.
투표율이 20-30%밖에 되지 않아 철저하게 조직화된 운동권이 장악하는 것을 보았다.
총학에 무심하거나 냉소적인 학생들이 70-80% 율의 다수층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이들이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하고 여러 방면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은
공동체 의식을 결여하였기 때문이다.
공동체의식이란 한배에 같이 탔다는 공동 운명체임을 인식하며
함께 더불어 잘 살자는 것이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고 역설한 이승만은 이 슬로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자유당 일당독재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국부로 존경받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단결의 위력은 이처럼 정치조직으로 이데올로기화하여
어떤 목적을 지향하면 언젠가는 자멸하게 되어 있다.
대화혼(大和魂)을 국체로 여기며 자폭을 감행하는 일제국수주의,
우수 종족의 꼴을 보지 못하고 대량학살을 감행하였던 하이 히틀러,
겉으로 일률적으로 인민복을 입고 ‘동무’라 통칭하는 소비에트 연방이 그 예이다.
영원한 강자는 약자를 강자로 만들어 더불어 살아야 하는데
상대를 착취하면서 한없는 부를 축적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잘난 체하고 특수층으로서의 재미를 누리고 싶지만 한계가 있다.
무한 질주는 진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부자가 3대를 넘기기 힘든다는데 경주 최 부자는 12대를 만석꾼 부자로 살았다.
50년을 한평생으로 잡고 12대면 600년이다.
이씨조선 5백년보다 더 오랜 역사이다.
그 비결은 특권계층으로서의 절제능력과 아울러 나눔의 정신이 철저하였기 때문이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않는다.
상놈만 겨우 면할 뿐 벼슬길에 나가 당권 당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다.
둘째, 만석 이상 재산을 불리지 않고 그 이상은 소작료를 적게 받는다.
소작료를 적게 내니 그가 부자가 되길 바라지 않은 작인은 없을 것이다.
셋째, 흉년에는 논을 사들이지 않는다.
넷째, 사방 백리 안에 굶주린 사람을 없게 한다.
다섯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한다.
이것이 남들과 더불어 잘 사는 비결이다.
영원한 강자되는 비결은 너도 잘 살고 잘 사는 것이다.
진정한 공동체 정신은 자기 본원 자리로 돌아가
세계동포 나아가 일체 생령들과 일체의식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
- 1910년대 전라도 영광 길룡리에
처녀가 쌀 한 말 못 먹고 시집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논 한 마지기 없는 동네에 소태산 대각 후
수십만년 버려진 개펄을 간척하여 옥답으로 만들었다.
대종사 혼자 큰일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동네사람 40인 중에
뜻이 견고한 동지 9인과 방언조합이라는 공동체를 규합하였다.
- 8인 제자 중에 가장 늦게 선발된 이가 오산(五山)이다.
병약하고 무식한 사람을 표준 제자로 선발하였다.
대종사는 그의 순실한 마음씨를 장하게 여겨 “조선총독하고 안 바꾼다”고 하였다.
- 당시 기독교 교육을 받고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아온 김활란 이화여전 교장은
자기하고 결혼할만한 상대가 없어 처녀로 늙었는데
자타 공히 한국 최고 여성 지도자로 꼽혔다.
대종사는 산골에서 소학교도 나오지 않은 여제자들을 두고
“나는 한쪽 눈 팩 골고 한쪽 볼따기 쏙 들어가도 김활란이하고 안 바꾼다”고 하였다.
외모나 학력을 중시하지 않고 그 ‘순실한 마음씨’를 보았다.
- 각지의 꿈 많은 청소년들이 영산지부와 익산총부로 몰려와 배움을 청하였다.
대종사는 아주 하찮은 것 청소방법부터 가르쳤다.
통상 청소는 쓰레기를 밖으로 쓸어내는 것이다.
총부 구내 청소할 때 지푸라기 하나 돌멩이 하나까지 밖으로 쓸어내 버리지 않고
그 쓸모있는 것을 가르쳤다.
지푸라기는 거름으로 자갈과 모래는 움푹 페인 데 가져가 고르게 하였다.
- 대종사는 쑥 한 포기에도 은혜를 발견하여 소중히 여겼다.
“나는 쑥을 보면 송구스럽더라.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나의 밥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밟지 않는다”
대종사는 대각 전 고행시 쑥버무리로 배를 채웠다.
이렇게 부처님은 겸손하고 만물을 공경심으로 대한다.
- 대종사는 대각 전에 핸섬한 용모에 후리후리하게 키도 크고 늘씬하여
여자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다.
부친상을 당하고 영광 부자로부터 빚 독촉에 몰려,
22세 때 어떤 사람의 주선으로 임자도 근해 탈이섬에 장사하러 들어갔다.
민어파시에 몰린 어선들에게 물건을 대주는 장사인데
머물고 있는 객주집 부인의 온갖 공대를 받으며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 대종사 대각후 방언공사 준비 관계로 법성포에 자주 드나들었다.
객주집 나씨 부인이 대종사를 매우 존모하여 주무시고 가라고 번번이 신발을 감추었다.
탈이섬과 법성포 유흥업소의 이 두 여인은
생전에 뭇 남성을 타락시키고 가패 신망시킨 과보로 금사망보를 받았으나
대종사를 존모하는 그 인연으로 천도를 받게 되는 기연이 되었다.
- 세상사람들이 더럽게 여기는 창녀들도 법회에 나왔다.
선진포술집의 창녀들이 예회에 참석하자 제자들이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 청정한 법석에 저러한 사람들이 내왕하면 남들이 빈정거리고 비웃을 뿐 아니라
우리 회상 발전에 장애가 됩니다”
이에 “어찌 그런 쓰잘 데 없는 소리를 하냐”며 제자들은 대종사에게 매우 꾸중을 들었다.
“부처님의 본의는 사람을 살려 쓰는 것이다”라고 강조하였다.
- 당시는 남녀 차별이 극심하였는데 여제자들을 조선의 여성 지도자로 양성하였다.
여성 표준 제자 9인은 여염집의 부인들이 아니라 전부 소외받는 여성,
정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대종사의 위대한 점은 미천한 사람, 소외받는 사람을 여성 지도자로 양성하여
설교단상에 올려세운 것이다.
대종사의 교화 본의는 ‘사람을 살려 쓰는 것’이다.
-대종사의 원력은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미물곤충은 물론 허공중천의 무형 영가들까지 포함한다.
1930년대 익산총부 법회에는 4, 50명 정도 사람들이 모였다.
이를 보고 대종사는 ‘구름처럼 모였다’(雲集)라고 하였다.
내가 너희들만 교화하는 줄 아냐고 하였다.
“지금 이 식구? 지금 방안에 이 식구만 제도하면 언제 제도를 다 할 것인가.
내가 지금 이 법설할 적에 허공 중천에 중생들, 무주 귀신, 악귀, 잡귀가 다 제도받고
땅속에 있는 것, 이 근방에 있는 것이 다 제도를 받지.
아, 내가 시방 이 사람만 데리고 이 말을 하는 줄 아는가”
- 대종사의 덕화는 미물 곤충에게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방언공사 전후에 길룡천의 물고기 천도를 하였다.
- 1930년 5월30일, 서울 제자들이 대종사를 모시고 금강산 여행을 하였다.
금강산 탐승 셋째날은 장안사에서 만회암까지 등반하였다.
숙소인 만회암에 내려가기 전의 일화이다.
저녁 7시경에 반야암 변소 지붕에 있는 다람쥐를 보았다.
대종사는 무심코 작은 돌멩이를 던졌더니 다람쥐와 돌멩이가 동시에 떨어졌다.
대종사 가서 왼손으로 집으니 손가락에 피가 묻었다.
다람쥐가 머리를 맞아 죽었다.
“네도 금강산 다람쥐만 하면 쓰겠냐. 막 떼를 썼구나.
평안북도로 갈 것이오”
- 총부 어린 개가 이웃동네 개에게 물려죽었다.
그 신음소리를 듣고 대종사는 자신의 시봉금을 주며 천도식을 지내주게 하였다.
- 이리에서 축산공진회가 열렸다.
동국민학교에서 열린 전국 투우대회에 불법연구회 대표로 산업부 황소가 나가 이겼다.
상금 70원을 받고, 택시 7대 대절을 하여 시가지 행진하였다.
한 제자가 충고하였다.
“종사님께서 소싸움에 이겼다고 해서 택시를 7대나 대절해 시내를 돌 수 있습니까.
위신에 손상이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내가 조 천자나 차 천자처럼 옥좌에 앉아 권위를 피우면
불법연구회가 위신이 드러나겠는가. 생각해 보라.
내가 건설하는 회상은 이 땅 위에 여러분들과 같이 기쁨과 괴로움을 함께 하는 데서
조금씩 조금씩 커 가는 것이다”
여러분들과 같이 기쁨과 괴로움을 함께 하면서 회상을 건설하자는 것은
공동체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