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경남역사]가파른 산비탈에 기적을 일군 땅…남해 다랭이논
쪽빛 남해 바다와 어우러진 산비탈 계단식 논이 펼쳐진 곳, 바로 남해 다랭이논이다.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 척 없는 마을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일군 사람들의 땀방울이 모여 만들어진 남해 다랭이논(명승 제15호)을 찾았다.
글 배해귀 사진 남해군청
45도 경사진 곳에 만든 680개 논밭과 108층 계단
‘경이로워’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던 장마가 지나가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던 날, 남해 다랭이논을 방문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달리다 보니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가파른 산비탈에 독특한 논밭과 아기자기한 집들이 나타난다. 원래 이곳은 시냇물과 시냇물 사이에 마을이 있다고 하여 간천(間川)마을이라 불렸다. 그 후 가천(加川)마을이라 불리어오다가 지난 2021년 12월부터 새로운 이름인 다랭이마을이 됐다.
“다랭이는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에 있는 계단식으로 된 좁고 긴 논을 뜻하는 다랑이의 사투리이예요. 여기 사람들은 최대한 많은 농경지를 얻기 위해 45도 경사의 산비탈에 석축을 쌓아 논을 만들었죠.”
박순옥 문화해설사는 다랭이논이 유명해지면서 마을 이름도 다랭이마을로 바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문득 다랭이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궁금해진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할아버지 세대, 그 위 할아버지, 그 위 할아버지 세대의 전해진 이야기에 의하면 대략 300년 이상 되었다고 유추하고 있어요.”
당시 조상들은 장비가 없으니 괭이, 소쿠리, 지게, 호미 등으로 논을 직접 만들어 바닷가부터 산 정상 밑까지 약 8만평 규모, 680개 논밭이 층층이 108층 계단을 만들었다.
빗물로 농사짓는 천수답에서 1년 2모작 진행형
지금도 주민들은 산비탈 등고선을 따라 좁고 길게 이어진 다랭이논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또 마을에는 빗물로 농사짓는 천수답(天水畓·농사에 필요한 물을 빗물에 의존하는 논)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봄, 여름에는 벼농사를 짓고, 10월부터는 마늘과 시금치를 심는 이모작을 한다.
“해안 절벽이 많아 어선도 선착장도 없어, 마을에 사는 남자들은 옆 마을에서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어요. 그리고 남은 아낙네들은 45도 경사지인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죠. 두 다리에 힘을 주지 않으면 넘어지니까다리에 딱 힘을 주기 위해 바지 폭도 아주 넓었다고 합니다.”
풍족한 삶을 바랐던 주민들의 마음 ‘밥무덤’
다랭이마을 안으로 발길을 옮기자 박 해설사는 쌀 한 톨도 아주 소중했던 이곳에서 풍족한 삶을 바랐던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곳, 밥무덤을 소개했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10월 15일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냅니다. 이후 제사에 올린 밥을 이곳에 묻죠. 이곳에서 쌀밥은 생명을 유지해 주는 귀한 주식이었어요. 그래서 귀한 제물인 밥을 땅속에 묻어, 즉 지모신(地母神)에게 밥을 드려 그 기운이 땅속에 스며들어 풍요를 돌려받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어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암수바위(경남민속 자료 제 13호)도 소개했다. 미륵불이라 하여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 불리는 암수바위는 숫바위가 높이 5.8m, 둘레 2.5m이고, 암바위가 높이 3.9m, 둘레 2.3m로 선돌 형태를 지니고 있다.
섬사람들의 강인한 의지의 산물 ‘다랭이논’, 지금은 경남의 소중한 유산이 되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해 다랭이논
위치 남해군 남면 홍현리 777번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