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가 없는 나무
청담 정연원
울진. 삼척에 큰 산불이 났다. 산불 소식으로 매캐한 연기가 나를 뒤덮는다. 나는 금강소나무숲에 정신이 쏠려 마음을 태웠다. 불을 끄는 소방대원과 공무원, 주민, 군인까지 참여하여 지켜냈다는 소식이다.
"우리의 금강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치며 살아갑니다."
몇 년 전 울진 금강솔길(옛 12령길)에서 숲해설가가 한 말이다. '바릿재 고개'를 넘어 '찬물내기 쉼터'까지의 숲길. 내 몸과 마음을 바꿔놓은 변곡점이 된 금강소나무숲이었다.
고성의 산불과 천년 고찰 낙산사를 태운 산불의 악몽이 생각난다. 이듬해 불탄 자리를 찾았을 때다. 몇 천년의 바위가 녹아내린 자리에는 몇 백년의 나무와 사찰 건물은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폐허 위에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그곳에는 잡풀들과 새로 심은 묘목들이 을씨년스럽게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숲을 이루기까지는 최소한 30년을 가꾸며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내 삶에도 산불이 닥쳤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과 불편 때문에 입에 오르지 않는 날이 없다. 산불에 타버린 초목들은 어제의 나무와 숲이 아니었다.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쓰레기 더미가 되었다. 아내를 잃고 목숨을 건진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동안 불에 탄 큰 나무덩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뇌의 기능이 멈추고 있었다. 나는 귤나무에서 탱자나무가 되어 남을 탓하며 나를 찌르고 주위를 괴롭히고 있었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새로 심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오래 걸렸다.
저시력에 적응하려던 어려운 시기였다. 시각장애인 문화원에서 하는 문화기행에 참가하였다. 명승지나 유적을 찾는 길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콧바람을 쌘다'는 기분으로 시작된 기행이 일 년이 넘어서고 자리를 잡아가던 때다. 더위가 남아 있던 날에 울진 금강소나무숲을 만나러 갔다.
그곳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나의 이상향인 별천지였다. 마음의 본향에 온 것처럼 익숙하고 정겨웠다. 아! 하며 감탄하는 순간 곁에 있는 소나무를 끌어안았다. 송진의 붉은 빛과 향을 지닌 금강소나무와 하나가 되었다. 손가락 끝이 닿지 않는 아름이 넘는 나무가 몸을 내주면서 나를 반긴다.
지금까지 만난 숲에서는,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의 호른이 독일의 울창한 숲과 더불어 부족함이 없었다. 오늘 만난 금강소나무의 숲은 몇 대의 호른소리로는 격을 맞출 수가 없다. 몇 백년 동안 이어진 나무들 숨소리에 뿜어지는 향이 오감을 열어젖혔다. 나무마다 다른 음색의 울림이 거대한 숲속 무대에서 연주되는 장엄한 오페라의 공연이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나무를 끌어안았다. 두 아름이 넘는 나무도 품속에 들어오는 나무도 가슴에 와 닿는다. 비로소 내가 굽고 비틀어지고 얼마나 작고 초라한 모습인지 뚜렷해진다. 그곳에는 생활에서 익숙하던 차별과 뒤엉킨 모습도 없다. 그들의 모습은 군자 같고 신사 같으며 품격을 갖춘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금강송이란 금강산에서 경북 울진 봉화 청송 영덕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다. 금강소나무는 색깔이 붉고 줄기가 곧아 쭉쭉 뻗은 울창한 숲을 이루는 소나무다. 나무의 결이 곱고 단단하며 잘 썩지도 않아 금강金剛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금강송은 예부터 소나무 중에서 최고로 꼽혀 궁궐이나 국가 건축에 큰 재목으로 사용되었다.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 웅봉산은 최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다. 500년이 넘는 보호수를 비롯하여 1000만 그루 이상의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이 일대는 조선 숙종 때 황장봉산(黃腸封山)으로 지정했다. 금강소나무를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산의 출입을 막는 봉산封山, 오늘의 입산금지 지역으로 보호되었다.
금강소나무는 잔가지 없이 쭉쭉 뻗은 거대한 기둥의 낙락장송인 특별한 나무다. 그 웅장함과 당당함이 웅비하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며 기개의 표상이라는 표현에 잘 어울린다.
이 엄청난 금강소나무들이 나를 도우며 보살펴주는 자식들과 주위 분들로 바뀐다. 이들 덕분에 내가 살아낸 것이다. 그들은 곧게 뻗은 모습처럼 나를 맞이했다. 배려와 염치를 심으시던 꼿꼿한 할머니의 손주 사랑과 같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불타버린 그루터기의 악몽들. 현실 인정이 되지 않는 몸과 마음. 차별의 아픔도 견디기 힘들지만 내 자신의 불편이 더 힘들었던 일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금강소나무 마을의 운기로 밀려나고 있었다.
내가 끌어안고 있는 나무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옮겨 온다. 내게 있는 날카로운 가시들을 하나씩 없애고 있는 듯하다. 갑자기 마음에 색다른 울림이 생기더니 답답하던 가슴이 풀리는 듯하다. 어제에 갇혀있던 내가 지금을 보는 안목이 생긴 듯하다. 아침의 나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지금의 불편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홀가분해졌다. 고마운 분들과 금강소나무의 마음을 나누며 지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직도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시는,금강소나무처럼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을 때까지는 동행해야 될 것 같다.
금강소나무숲은 출중한 인재들이 모인 신비한 열기와 엄숙함이 가득한 공동체였다. 일반인들의 접근이 막히는 신성한 느낌을 준다. 그들은 가장 높고 깊게 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과 피톤치드의 향기로 남을 배려하는 바 없이 배려하는 완벽한 이기주의자들이었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며 조화를 이루는 음악의 세계 속처럼. 나무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인격을 갖춘 이상형이었다.
내가 끌어안은 이 나무는 스스로 자기의 가지를 잘라내고 자신을 가꾸는 세상의 재목이 되는 금강소나무다. 닮고 싶었다. 산불로 폐허가 된 내 마음 밭에 이 숲과 금강소나무 모종을 옮겨 심어 놓았다.
울진의 금강소나무를 지켜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마음 밭을 들여다보니 그때 심어두었던 모종이 제법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