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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은 모든 분과 함께 앞으로 세상을 흔든 흔들할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만 성경에서 일어난 일이 그대로 자신에게 똑같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사는 성도도 많고 경우도 많습니다. 누가 우리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를 정확하게 설명을 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수님께 불을 받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이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을 해 주지 않아서 홀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십 수년이 지나서 성령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서 전도를 하는 수십만 명의 한국의 크리스천은 자신이 정말로 얼마나 놀라운 신분인지 잘 이해를 못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으니 이들에 대해서 누구도 설명을 잘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령을 받고서 묵묵하게 교회에서 전도하시는 모든 세상의 전도자들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위로와 평강을 받으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큰 힘을 내시고 모든 어려운 자리에서 다시 전도의 현장으로 망설임 없이 뛰어 나가시고 함께 하시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도우심과 감동에 깊이 빠지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를 성장시키시고 오늘 배우는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시고 온 세상에 이 진리를 전하시는 바울과 같은 전도인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도 되고 천국에도 간다고 하는 우리 개신교인은 믿음을 단품으로 생각합니다. 즉 의롭게 됨에 있어서 믿음 홀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믿음이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천주교는 아니다 믿음 혼자 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도 아니고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다 행위 혹은 행동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의롭게 됨과 천국에 감에 있어 믿음과 함께 무언가가 더 필요한 세트라고 합니다. 이 팽팽한 서로 양보가 없는 주장이 500년 동안 지속되어 왔습니다. 오늘 시원하게 모두에게 무엇이 진정한 답인지 영적인 비밀이 공개됩니다. 개신교의 주장이냐 천주교의 주장이냐 하니면 천주교 개신교가 이 부분에 있어서 모두가 조금씩 더 이해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시원하게 해결이 될 것입니다. 문제는 신학이 어떻고 교리가 어떻고가 절대로 아니고 내가 과연 성령을 받았느냐 아니 받았느냐 혹은 내가 성령의 인도를 받냐 아니 받냐 하는 나의 문제가 시급함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두 신학의 주장이 어떤 것이 옳은가 분별도 중요하지만 나는 과연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말씀의 위력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이 말씀을 루터가 로마서에서 발견하고 자신의 영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확신에 차서 신부로서 성당에 95개 조항에 해당하는 반박문을 내 걸었는데 이로 인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개신교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전 세계에 존재하는 길을 열었으니 이를 통해서 영국이 미국이 세계의 강대국이 되어 천주교 국가인 이탈리아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를 압도하며 약 500년의 시대를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햄버거를 사 먹을 때 햄버거만 달랑 사 먹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햄버거 하나만 살 때 단품이라고 하고 프렌치프라이와 콜라를 곁들이면 세트라고 부릅니다. 가격도 물론 다릅니다. 단품을 선호하는 분도 있고 세트로 점심이나 저녁을 한 때를 때우는 분도 있습니다. 각자의 기호에 따라서 선택이 됩니다. 아래는 햄버거의 단품과 세트의 그림입니다.
햄버거 단품
햄버거 세트
햄버거 단품은 햄버거 하나만 말하며 세트는 햄버거와 같이 음료로 주로 콜라가 나오고 그리고 감자튀김 프렌치프라이가 함께 나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세트로 즐기지만 단품을 사는 분도 있습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성경의 본문을 보겠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영어를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에서 오는 의이다, 기록 된 바의 (하박국서 2장 4절에): "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살 것이다." 함과 같다.
사실 이부분의 영어 해석만 보아도 바로 문제가 해결이 가능합니다. 오직 믿음의 믿음의 강조인가 아니면 믿음으로 삶을 사는 것인가를 보면 바로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이 됩니다. 믿음으로 삶을 사는 내용을 믿음만 있으면 죽지 않고 생존한다로 보면 이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삶을 살아간다라는 본문에서 믿음만 딱 빼어서 강조하고 살아간다는 부분은 빼어 버리면 믿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하는 부분은 생략이 됩니다. 본문만 정확하게 보아도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보이고 이제는 어떤 삶인가가 중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믿음 + 삶의 문제를 가지고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성급하게 믿음만 딱 빼어서 보고서 그 뒤에 있는 동사 live는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저도 이제 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 없이 마음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고도 마음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고서 마음대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살 것인가가 문제의 포인트입니다.
개신교는 이 부분에 있어 오직 믿음만 있으면 의롭게도 되고 천국에도 간다고 하니 햄버거의 예를 보면 단품입니다. 천주교는 아니다 믿음과 행동이 같이 요구가 된다. 즉 의롭게 되고자 하고 천국에 가고자 하면 믿고 이에 합당한 행위를 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의롭게 됨에 있어 믿음의 단품이 아니라 적어도 믿음과 행동이 함께 해야 되는 세트입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주장이 옳은지 제가 AI에게 물어보았는데 각자의 취향이지 누가 옳다고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입력을 시켰으니 기계는 그대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천주교의 주장은 그 주장대로 개신교의 주장은 그 주장대로 서로 존중하면 된다고 기계는 대답합니다. 오늘 이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루터 홀로 라틴어 성경을 가지고 이렇다 하면 청중이 다 따라 갔지만 이제는 모든 지구인이 대부분 자국어의 성경을 갖고 있고 한국어도 5개의 번역이 있고 컴퓨터로 핸드폰으로 지금 바로 앱을 통해서 성경을 보면서 검색도 하니 바로 확인이 가능하며 공부도 과거의 어떤 신학자와 비교할 수가 없게 잘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배울 때 루루터 캘빈은 이 구절을 성경에서 찾고자 할 때 모든 성경을 읽고 성령이 들어간 구절을 찾아서 기록을 하는데 1년이 더 걸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바로 검색을 통해서 수초안에 모든 성령이 들어간 구절을 보고 복사를 하고 모두가 공부를 하니 어떻게 과거의 신학자들이 이런 공부에 도전을 하겠습니까?
저는 이 믿음에 관련된 성경의 구절과 설명을 할 것입니다. 누가 옳고 그런지 즉 의롭게 됨에 있어 믿음의 단품인지 혹은 혹은 믿음외에 무슨 요소가 더 필요한 세트인지 분별을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믿음에 대해서 크게 말씀하신 것입나다. 즉 단품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4장 17절에서 22절을 보면 이 믿음에 대해서 설명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성급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믿음에 그 다음에 분명하게 믿음으로 삶을 사는 구절이 붙어 있고 조금만 더 로마서를 보면 이 구절이 믿음에 대한 설명으로 분명히 있습니다. 보겠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의로 여겨졌다. 국어를 아는 모든 사람은 위의 문장에서 무엇인가 설명이 있음을 보고 바로 위의 내용을 살피면 그것이 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그 내용이 아브라함이 무엇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입니다. 백세가 되어 자신과 아내의 몸이 아기를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세월이 감에 따라서 약해지지 않고 견고해졌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에게 약속하신 내용대로 능히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믿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작게 요약을 하면 75세에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오늘 내일의 믿는 믿음이 아니라 적어도 25년 지속이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날로 견고해집니다. 더욱 요약하면 오랜 기간 변치 않고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에 대해서 뒤에 설명을 한 것을 성경을 백 번을 읽은 분께 이 구절을 읽게 했더니 아니 이 내용이 성경에 있기는 있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명문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신 분이라 이 의미가 당시 바로 전달이 되는데 그냥 믿음에 대해서 단품으로 믿다가 이런 내용이 첨부가 되니 도대체 이 구절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 생각이 온 것입니다. 저는 이 로마서의 4장의 말씀이 하나님의 믿음에 대한 설명으로 모든 성도가 이를 믿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넣지 않았다며 믿음이 단품인지 혹은 세트인지 논쟁을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다투지 말라고 본문으로 믿음에 대한 설명을 하나님께서 해 놓으셨으니 이제는 신학도 접고 교리도 접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으면 될 것입니다. 오랜 세월 지속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을 수가 없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오락가락이 아니고 세월이 가도 도리어 강해져야 합니다. 순간의 믿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변치 않는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절대로 이에 대해서 성경을 믿으시고 흔들리지 말시기 바랍니다. 잘못 알았다면 다시 본문을 보면서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박국서 2장 4절을 보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서 1장 17절에 그대로 인용을 해 간 본문의 말씀이라 이 말씀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이 단품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도 너무나 성급하게 오직 믿음이니 믿음+행동이니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살펴 보면 됩니다. 그 때에는 독일인이 자국어로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가 자국어로 성경이 없어서 누가 그렇다 하면 믿었지만 이제 내가 나의 모국어로 성경을 볼 수가 있는데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성경을 잘 배우도록 모든 준비를 하신 하나님의 안배를 누리지 못함이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
개역개정의 번역으로 의인은 믿음이 있기에 생존한다 라고 이해도 할 수가 있으나 살리라 하는 말은 영어의 동사입니다.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삶을 산다는 것인가? 1장과 3장의 전후의 문맥을 보면서 이해해야 합니다.말미암아는 한국어로 믿음을 방편으로 혹은 믿음이 있는 연유로의 뜻인데 믿음으로 즉 믿음을 가지고 즉 믿음을 삶의 방편으로 실제로 산다는 표현입니다. 믿음을 갖고 삶을 산다는 표현에는 믿음이 있기에 믿음이 없는 사람과는 다른 행위가 나온다는 표현입니다.
B.C 608년 경에 하박국서가 선지자 하박국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는데 당시의 남 유다는 율법이 해이해지고 악이 성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왕으로부터 고관으로부터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런 시기에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의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런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면서 의롭게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되었을 보았습니다. 도저히 이런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하나님께 자신의 동족을 더 이상 참지 말고 멸망을 시켜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남 유다를 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다시 묻습니다. 남 유다가 악하기는 한데 더 악한 바벨론을 어
떻게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하니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우리가 보는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으로 절대로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악한 바벨론을 옳다고 인정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멸망을 시킬 것이라 나중에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지만 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산다고 하십니다. 이 의인은 하나님께서 남 유다와 바벨론을 공히 심판하시고 악을 척결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는데 이제 어떻게 사는가가 우리가 밝힐 내용입니다. 악해서 멸망을 당하는 남 유다와 바벨론의 사람과 같이 살겠는습니까? 아니면 이런 정의를 행하시고 악을 척결하시고 이제는 살 만한 세상을 만드실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살 것입니까? 하는 것이 우리가 밝힐 일입니다. 언제나 불의하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적이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에스겔서에 이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 있습니다. 의롭다 믿고 마음대로 즉 율법을 어기면서 사는 모든 한국과 온 세상의 성도에게 해당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말로 이신칭의의 개신교 교리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천국이 보장이 되었다고 믿는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에게도 역시 바로 해당이 됩니다.
겔 3: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20. 바로 살던 사람도 그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에 들어서면, 나는 그 앞에 올무를 놓아 잡으리라. 네가 깨우쳐주지 않아서 그 때문에 바로 산 보람도 없이 그가 제 죄로 죽게 된다면, 너는 내 앞에서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21. 그러나 네가 올바로 사는 사람에게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일깨워주어서 그 때문에 그가 잘못에 빠지지 않게 된다면, 그도 깨우침을 받아 살게 되고 너도 죽음을 면하게 될 것이다."
제가 어떤 목사님께서 홀로 기차를 타려고 쓸쓸하게 역에 서 있는 모습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인생의 종착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전해야 되는 내용이 있었는데 2년을 여러 사람의 권유와 저의 망설임으로 하나님께서 전하라는 내용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큰 교회 목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제가 죽음에 처하게 됨을 믿고 편지를 즉시 보냈습니다. 그 분이 듣고 아니듣고는 그분의 문제지만 저는 죽음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은 이는 반드시 의롭게 살 것이라 믿습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하신 분으로 노아와 욥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정의로운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신약에서 고넬료의 경건과 구제도 역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이 거친 절차와 다르게 성령께서 먼저 오시고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가 옵니다. 하박국과 같은 정의에 목이 마르고 정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사람만이 이렇게 하나님께 묻을 수가 있습니다. 늘 악을 행하며 악하게 사는 사람이 세상이 이러니 살 수가 없다 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너부터 정의롭게 살아라 하실 것입니다. 마침내 남 유다는 심판을 받고 고관으로부터 왕까지 왕자까지 모든 악한 사람이 죽고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리고 이 악한 사람 때문에 집도 땅도 없던 빈민이 정복자 느부갓네살의 배려로 땅과 집을 차지하고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됩니다. 하박국의 바램대로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악한 세상을 종말을 고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내용을 한국에 적용이 가능합니다. 지금 세대 집도 땅도 없이 소망이 없이 사는 한반도에 국민이 북한에 약 2000만 남한에 약 3000천 만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는 갖혀서 숨도 쉬지 못하는 믿는 이들이 있습니다. 남한의 경우 국민의 1%인 50만이 가용국토의 5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사정보다 더 악합니다. 온 천하의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는 모든 한국의 목자는 이런 현실을 반드시 직시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 지를 알고 실천하고 성도에게 가르쳐야 그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율법이 해이해 지고 하나님을 백성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설명을 드려도 이 문제의 원인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분은 즉시 율법을 제대로 배우고 설교를 하셔야 합니다. 율법을 모르고 하는 설교는 대부분 죄를 짓게 할 수도 있고 성령의 인도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이런 원인도 이런 아픈 현실도 외면하고 내가 먼저 성도의 하나님께 바친 헌금으로 집과 차와 월급을 과도 하게 받고 가진 자는 정말로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가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오늘도 40명이 자살을 하는 세상에서 어찌 그렇게 태평하게 살 수가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살아서는 아니 됨을 굳게 믿고 회개하시고 모든 소유를 가난한 교인과 이웃에게 속히 나누시기 바랍니다. 나누기 싫다면 내가 바로 예수님의 명령을 거절한 부자 청년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청년은 홀로 천국에 가기 어렵게 되었지만 이 부자 청년이 이 부를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고 나와 같이 부자가 되세요 하고 외친다면 이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 여김을 당시에 받았을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미친 사람 정도가 되어야 하는 일인데 그런데 그 일을 하고 있으면서 인식도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가 없고 율법에 대해서 지극히 무지하다는 증거입니다.
하박국서 2장 4절은 의인은 악을 멸하시고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루하루 견디기 어려워도 정의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틀림없는 설명입니다. 지금 시대 부동산 투기도 않고 목사가 되어 모든 성도보다 잘 살지 않고 검소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은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박국의 믿음의 이해와 아브라함의 믿음의 이해를 종합하면 로마서 1장 17절의 진정한 믿음의 의미 즉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의 의미가 밝혀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기 위해선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상황이 어렵다고 믿기가 어렵다고 왔다 갔다가 아니라 변치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조건이 불가능한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박국의 예를 보면서 믿고 정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모든 세상이 불의에 물이 들고 악이 나를 유혹해도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즉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심판을 믿고 정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즉 오래 변치 않고 굳게 믿고 하루하루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으로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모든 사람에게 밝혀진 것입니다. 참고로 좁은 한국에서 과도하게 집과 땅을 가진 모든 성도는 악을 행하는 중에 있음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율법에는 절대로 그렇게 살면 망한다고 합니다. 이도 역시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사랑이셔서 모든 지구에 있는 사람이 집과 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기를 너무나 간절히 바라시고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율법을 보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시며 그리고 사랑이 넘치시고 자비로우시며 그리고 신실하신 분이신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율법은 모든 신약 성도의 찬양의 대상임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돌로 쳐서 죽이라는 명령이 옳습니다. 자신의 딸이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자 분노한 아버지가 그 대상자를 찾아서 처벌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어느 점잖은 분의 가정에 들어갔는데 그 식구가 밥을 먹고 있었는데 이 분의 딸과 나쁜 짓을 한 아버지는 수치심에 그대로 베란다에서 뛰어 내립니다. 악은 이렇게 분노와 죽음을 부르고 실제로 당한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이 절대로 정확하다고 합니다. 내가 그 일을 당했다고 보면서 성경의 구절을 보셔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집과 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그렇게 모든 지구상의 소유가 다 창조주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실제의 모든 소유의 주인으로 오셔서 나누어라 명하시면 그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하지 못합니까? 예수님을 사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대로 못하시는 것은 아직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자신의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집 주인이 땅 주인이 오셔서 세들어 사는 우리 모두에게 내 놓아라 하시면 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누어라 하시면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명령에 불복해서 모두가 알게 큰 부를 소유하고 누리는 모든 대형교회 목자는 부자 청년이고 또 예수님의 나누고 나를 따르라는 명령에서 멀리 있는 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고자 하는 자는 이렇게 율법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합니다. 특히 목사는 율법을 바울과 같이 잘 배우고 성령도 반드시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를 그렇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 분이 이런 내용도 모르고 율법도 모르고 성령의 인도로 모른채 예수님을 섬기는 성전에서 많은 성도의 받듦을 받고 살고 있다면 그런 목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은 조금도 희망이 없고 멸망입니다.
여기에서 이 문제 우리가 풀고자 하는 의롭게 됨에 믿음 홀로 즉 단품인가 혹은 믿음외에 다른 요소가 있는 세트인가가 다 풀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다. 더 가야 할 길이 남았습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로마서 7장 6절을 보면서 이 구절의 이해가 또 분명히 되어야 믿음이 단품인가? 세트인가? 하는 문제가 밝혀집니다. 먼저 구절을 보겠습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개역 개정 공동 번역 모두가 해석에 있어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영어로 본다. 영어를 번역을 해 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때 우리를 얽어매었던 것(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자유롭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된 율법을 (조문조문)지키던 오래된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깁니다]
율법의 낡고 어떻다는 이야기는 영어에는 1%도 없고 오직 방법의 문제입니다. 이제는 성령으로 섬긴다는 표현입다. 즉 방법을 새롭게 한 것이지 율법에는 1%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제가 해석한 데로(영어의 표현) 이해를 해야지 율법에 문제가 있어서 새로운 방법이 등장했다라고 이해하면 너무나 큰일이 생깁니다. 절대로 절대로 이런 말씀이 아님을 굳게 믿으셔야 합니다.
더 부언해서 설명을 드리면 이 로마서를 쓸 때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아나니야를 만나서 예수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복음을 전한 지가 약 20년이 지났습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 조문을 잘 배우고 조문 조문 지키려고 했던 과거 자신이 예수님을 모를 때 유대인 율법학자로서의 삶을 잘 압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옳다고 믿고 의롭게 되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사는 모든 율법학자를 책망하십니다. 더 중한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에 대한 규정은 어겼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주신 율법을 조문에 집착해서 도리어 율법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놓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원리를 절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흠이 없다고 믿었고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상한 것을 가르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유대인과 과거에 살았던 유대인이 모두가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람으로 알고 죽었다고 믿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임하시니 바로 눈이 멀고 음식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절대로 죽지 않고 살아서 역사하심도 보았습니다. 이제 이런 예수님을 핍박하고 믿는 이를 잡아서 자신이 가두고 괴롭힌 것을 생각하니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된 그는 그의 서신서에서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 표현을 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도리 외에 아무런 다른 길이 없음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나니야를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게 됩니다. 이제 그는 성령의 조망으로 구약을 보니 과거에 보이지 않던 구약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천국에도 가 봅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님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흔들릴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구세주 이심을 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바울은 죽어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심으로 거듭나게 되고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이제는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게 부드러워졌습니다. 에스겔서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바울의 초인적이 인내와 사랑이 바울을 그렇게 위대하게 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계획,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 그리고 인간의 이에 대한 반응으로 회개와 믿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 그리고 하나님의 죄 사하심으로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이 사람 바울이 새롭게 창조가 되고 거듭나게 됨으로 가능하게 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이렇게 살게 됩니다. 절대로 바울 혼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이가 이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나를 죽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가 문제입니다. 성령도 없이 성경의 내용만 알던 아볼로는 자신보다 천한 브리스 길라, 아굴라를 만나 겸손하게 성령을 받아 더욱 위대한 신앙인이 되고 바울도 아나니야란 별로 유명하지 않는 사람께 안수를 받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게 된 것입니다. 목사가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전도를 하는 성령받은 성도께 겸손히 성령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 부탁하는 것이 절대로 성경적이지 이상하지 않습니다. 성령받은 전도자는 그렇게 놀라운 분들이며 조용히 교회에서 목자의 가르침과 명령을 따르고 있는 것이 현대의 교회인데, 과거엔 이들이 진정한 교회의 리더였습니다. 설명이 길었지만 성도가 물로 씻고 성령을 받아서 새롭게 되고 이들이 율법을 지키는 내용을 같이 보겠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4. 내가 너희를 뭇 민족 가운데서 데려내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 고국으로 데려다가
25. 정화수를 끼얹어 너희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주리라.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에 묻었던 때를 깨끗이 씻어주고
26.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주리라.
27. 나의 기운을 너희 속에 넣어주리니, 그리 되면 너희는 내가 세워준 규정을 따라 살 수 있고 나에게서 받은 법도를 실천할 수 있게 되리라.
28.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면서 나의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에스겔서의 표현대로 된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바울 사도를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교인을 교육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20년을 살다가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씁니다. 로마에 있는 교인을 세우기 위해서 씁니다. 이런 바울의 삶을 보면서 7장 6절을 보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기 전의 바울과 같이 율법을 생각하며 조문 조문 지켜려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오직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선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어떤 일이 생깁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것과 같이 율법의 완성을 봅니다. 자신이 믿음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다 보니 도리어 율법을 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문을 다 지킴으로 굳게 세움을 봅니다. 이를 로마서 3장 3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31. Do we, then, nullify the law by this faith? Not at all! Rather, we uphold the law.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의 위대함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깊은 곳까지 아시고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다 알고 배워도 구체적인 상황에서 적용을 할 때 참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이스라엘 민족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장로의 유전이 나오고 탈무드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정확하게 그 모든 상황과 율법과 그리고 미래도 아십니다. 그래서 가장 그 사람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십니다. 그 중의 한 성경 말씀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 입니다. 딤섬을 점심으로 먹고난 후에 그 사이에 전도의 때가 온다고 외우시면 됩니다 디모데 후서 4장 2절에 있습니다.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복음을 전파하는 삶은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한국의 땅을 모두 자식에게 물려주어도 자녀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다가 죽으면 지옥입니다. 고작 70-80년의 영화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하고 자식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의 자녀가 예수님과 동행하며 복음을 전하면 늘 평안하고 행복하고 안전합니다. 그가 어디에 있는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가는 별로 문제가 없고 늘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고난 후에 영원토록 사는데 하늘과 별과 같이 빛나게 됩니다. 어떤 것이 참 사랑입니까? 그 복을 받으라고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재산을 나누라고 하신 것입니다. 재산을 가지고 나누지 않고 가난한 성도를 보는 것은 잔인한 행동이며, 사랑이 없는 행동이며, 형제로 보지 않는 행동이며, 예수님을 거부하고 거절하는 행동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로마서 7장 6절의 의미까지 이해를 하고 다시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를 이해하려 갑니다. 오직 믿음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서 4장 17-22절의 아브라함의 믿음의 오랜 세월 변치 않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박국서 2장 4절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 6절에서는 이제는 율법의 조문 조문이 아니라 즉 바울 사도가 예전에 예수님을 모를 때 섬기던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라고 합니다. 즉 성령의 새로운 방법 성령의 인도를 받고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의미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의미가 분명하게 아주 크게 들어가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산다는 표현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표현이 서로 완벽하게 일치를 합니다. 따로따로 노는 것이 절대로 아닙다. 1장 17절에 성령이라는 표현이 없지만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믿음의 삶이 되어야 함을 우리는 로마서 7장 6절을 통해서 너무나 분명하게 확인을 합니다.
이제 오직 믿음이 단품인지 혹은 믿음에 오래 믿고 변치 않고 믿어야 하며 정의롭게 사는 행위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첨부가 된 세트인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렵게 아들을 키우면서 러시아 국적의 한국 동포인 외국인과 삽니다. 나이가 기초 연금을 올해 부터 받을 수 있다기에 서류를 접수를 시키려 올 초에 동사무소에 갔다가 미비한 점이 있어 접수를 하지 못했는데 군산과 서울을 오가며 여러 군데 동사무로로 갔는데 그 때 못해도 나중에 접수하면 1월부터 다 받을 수가 있다고 직원이 말을 하시는 것으로 알아듣고 지금까지 신청하지 않고 있다가 오늘 발령을 다시 서울로 받고 동사무소에 갔는데 이미 지난 달은 받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매월 3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아서 올해 고삼인 아들이 대학에 가면 등록금으로 쓸려고 했는데 8개월치 적어도 270만원은 이미 지났기에 받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어서 이렇게 큰 손해를 봅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후회가 됩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이득에는 빠르게 행동합니다. 그런데 진리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믿고 살다가 지옥에 가고 천국에 가서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히 살면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너무나 크고 중요한 문제를 잊고 돈에 눈이 멀면 나중에 얼마나 큰 후회와 탄식을 하겠습니까? 제가 아는 장로님께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가 되어서 천국에 갔는데 자신 갈 처소를 미리 보았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충성을 하신다고 믿었는데 천국에 온 것은 좋았으나 집을 보니 약간은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운이 좋게 다시 이 땅에 살아서 오셔서 그 분이 본 것을 증거해서 제가 듣고 그분을 얼마전에 직접 가서 만났습니다. 착각하며 잘못 알고 믿는 것은 나중에 어떻게 고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전하는 내용을 꼼꼼하게 체크하셔서 틀림이 없으면 바로 고쳐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제게 처음에 오셨을 때 회개하고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 모든 한국의 교회에 이런 분이 계신다고 합시다 실제로 이런 분들이 꼭 있습니다. 비록 바울 사도와 같이 온전히 성령의 인도를 일생을 받지 못했더라도 바울과 같이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령을 받고 일생을 전도를 쉬지 않고 하시는 분들이십니다. 제가 추측하기로 한국에 50만 명도 넘는 분들이 이렇게 사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들에게 목자나 신학교 교수가 믿음은 단품으로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되고 천국에도 간답니다. 하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분은 예 하고 맞습니다.라고 화답합니다. 자신의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할 때 그렇게 믿음을 강조합니다. 평소에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분은 놀랍게도 전도라는 행위를 쉬지 않고 일생을 합니다. 전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과 삶의 목표를 전도에 맞춥니다. 그리고 전도를 하려고 하니 모든 전도 대상자를 품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물질을 나눕니다. 재능도 나눕니다. 누구에게 악을 행치 않습니다. 만약에 전도자가 전도 대상자를 악하게 대하면 절대로 대상자가 예수님을 믿기 어렵습니다. 전도자는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최선을 다해서 전도 대상자를 사랑합니다. 특히 가족에 대해선 일생을 그렇게 믿고 사랑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냥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성령의 인도를 따릅니다. 전도하는 분께 늘 예수님께서도 함께 하시고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가 쉬지 않고 있습니다. 절대로 있습니다. 절대로 전도자 홀로 다니는 것과 같이 보여서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분들은 전도라는 가장 큰 사랑의 행위를 몸소 일생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물론 때론 마음대로 가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때론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늘 회개하고 속히 전도자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은 율법을 잘 배우지 않습니다. 이런 전도자는 대부분의 분이 성령을 받은 분입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성령의 인도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분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깁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가장 큰 사랑의 실천 행위인 복음 전파와 나눔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선하게 살고자 합니다.
이분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은 사랑의 가장 큰 행위인 복음 전파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섬깁니다. 전도를 위해서 늘 나눕니다. 이분도 어쩌면 율법의 완성을 하고 율법을 굳게 세우고 있을 것입니다. 이분에게 믿음이라 무엇입니까? 사랑의 행위가 쉬지 않고 반복이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깁니다. 이제 이 분이 이런 성경적인 내용을 알고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하시겠습니까? 믿음은 오직 단품이다 혹은 믿음은 정의로운 행위와 사랑을 하는 행위와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세트이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데 여전히 오직 믿음입니다.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복을 받아야 합니다. 행위는 아닙니다. 율법도 아닙니다. 하면 이런 목자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우리가 먼저 본 전도자와 같이 이런 분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오직 믿음 단품 하나만 달랑 들고 성령도 없이 율법을 매일 어기면서 오직 세상에서 성공만 추구하면서 돈을 벌고 집도 땅도 많이 가지고 사시는 분을 의롭다 하나님께서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이 오직 믿음이면 되고 율법도 행위도 아닙니다. 하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의롭게 된다고 하고 천국에도 가고 행위는 상급이라 주장합니다. 인터넷을 보시면 이런 주장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보다 어떻게 복을 받는지 특히 물질의 축복을 받는지 강조합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나누지 않아서 모두가 멸망의 길로 가는데 믿음의 선봉에서 "모든 물질을 가난한 이웃과 형제에게 나누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소망이 없는 물질에 마음을 두지 말고 모든 소유를 나누고 선한 삶을 추구하고 천국에 가서 누릴 기초를 이 땅에서 쌓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누는 일입니다." 하고 외쳐야 하는 모든 세상의 목자가 먼저 교인이 낸 헌금으로 모든 교인보다 더 좋은 집과 차를 타고 월급과 퇴직금을 과도하게 받고 교인이 낸 헌금으로 각종 외국에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자녀의 교육에도 돈을 쓰고 온 교인이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자신과 같이 닮으라고 외치는 목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겠습니까?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리고 책임도 분명히 최후의 심판 때 율법으로 심판을 예수님께 받습니다.
예수와 율법
롬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저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모든 바울 서신의 해석의 기준이 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바울 서신의 오해와 잘못 이해로 절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렇게 살고 목회를 하신 분은 반드시 최후에 예수님의 위의 말씀대로 분명하게 됩니다.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대로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지금 시대에 어디에 있습니까 물을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님 승천하신 후 2000년을 살면서 조금도 쉬지 않고 바리새인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고 지금도 역시 잘 하고 있습니다. 이들보다 의롭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이들보다 더 정의롭게 삽니까? 이들이 지키는 모세 오경 율법은 온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고 공평한 법입니다. 모든 세상의 국가의 법보다 비교가 불가하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시고 인간에게 주신 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믿는 이의 찬양의 대상이 율법입니다. 이들보다 율법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한답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율법을 배우지도 지키지도 설교도 아니하고 도리어 율법도 아니고 행위도 아니라고 하시면 그 사유를 성경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율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지키기에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잘 지키기 못한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이스라엘 1천 년의 불순종의 역사를 아십니다. 그래서 자신을 직접 만나고 수난을 보고 부활을 본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역시 그렇게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그리고 직접 교육을 받은 제자들에게 모두 성령을 받고 세상으로 가서 복음을 전해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굳게 믿는 분들께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도 그렇게 직접 만나고 배운 적도 없는데 신학을 하고 성경을 조금 배웠다고 그 작은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습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일이 반드시 어렵게 될 것이고 이는 율법을 대부분 어기면서 살게 될 것이고 또 자신이 배우지도 실천도 하지 않기에 가르치지도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최후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고 또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요엘서에서도 약속을 하셨고 또 베드로 사도가 자신의 체험을 사도행전 2장 38-39절에서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37.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38.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39. 이것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를 하고 예수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하신다고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오신다고 하십니다. 이대로 하면 반드시 성령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다시 반복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인간의 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히 같이 사역을 하셔서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작품이요, 백성이요, 거듭난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이를 예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죄인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인간의 측면에서 이런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을 보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이 사람에게 오십니다. 이제 이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사람은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무엇을 합니까 가장 중요한 내용인데 이제는 1000년 동안 이스라엘이 지키기에 실패한 율법을 잘 지키게 된다고 합니다.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잘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 앞에서 설명을 드린 에스겔 36장 24-28장 말씀) 이렇게 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울 사도입니다. 이런 자신의 체험을 로마서에 기록을 합니다.
모든 믿는자, 성령의 첫 열매인 우리,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작품, 그리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사람,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사람, 율법을 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우는 사람,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사람, 죄와 사망의 법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이기는 사람, 모두가 같은 의미입니다. 다르게 표현이 되었지만 다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가짜에게 속아서 옛 사람 바울과 같이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려는 사람이 되려하는 각국에 있는 성도를 크게 염려합니다. 영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마치려고 하느냐 하면서 심히 우려합니다. 자신과 같이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세우고 복음을 전해야 되는 사람이 옛날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도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며 바울과 같이 믿고 행하며 또 말씀을 이해해야 되는 성도나 성령을 받은 전도자들이 성령도 없이 성경만 배운 선생에게 속을 수가 있습니다.
부디 모든 전도자들은 모두가 바울과 같이 행하고 있으니 배움에 있어서도 바울과 같이 되셔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율법을 지키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성경을 올바로 잘 배우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도 때론 율법을 조문을 잘 지킴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도가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율법도 잘 지키면서 사랑도 잘 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도우시고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인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바로 율법을 그 중한 것과 조문 조문을 다 지키는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쉬지 않고 강조하시는 삶인줄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성도들로 인해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사는 삶이 믿음으로 산다는 삶이며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삶임을 믿습니다. 부디 율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시고 믿기 바랍니다. 모든 분께 성령께서 주시는 조망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흉악한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경을 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대로 살려고 5년을 몸부림쳤습니다. 저의 악한 모습을 너무나 강하게 분명하게 보았기에 절대로 과거와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5년 지나 예수 그리스 이름의 세례를 김해 장유 반석교회 성경석 목사님의 집례로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약 9개월쯤 지났을 때 성령을 신림동 선민교회 박기수 목사님의 설교시에 예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처음 믿을 때가 1986년 경이고 세례를 받을 때가 1991년 5월 19일이며 성령을 받은 때가 1992년 초봄이었습니다. 그리고 32년을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때론 죄를 짓기도 하고 제 마음대로 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저를 품고 인내하시며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게 하시고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십니다. 망극하신 사랑과 은혜를 말로 다 표현이 어렵습니다. 1983년부터 은행에서 나온 해인데 한국에서 가장 가난하게 지금까지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늘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합니다.
그렇지만 늘 평안했고 자유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일에서 모두 실패를 했고 오직 전도와 성경 정리 일은 풍성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이렇게 이해하는 축복을 받았으니 가장 큰 복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모든 일은 성경책을 주심으로 제가 예수님을 뵙게 되고 성경책을 보게 되고 회개하게 되어 예수님을 믿을 길을 열어 주신 반석교회 김성수 장로님의 전도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장로님께서 소천을 하셨습니다. 모든 장로님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한량이 없으신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길 빕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립니다. 놀랍고 놀라운 성경의 진리를 알게 하시고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으로 흉악한 죄인이 이렇게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복음을 전합니다. 주님의 크신 자비와 인내를 찬양합니다. 모든 믿는 이가 겸손이 회개하고 모두가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의 뜻이 속히 이 땅에 이루어져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