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각국의 대관식
태국 왕에겐 성수 뿌리고 줄루족 왕은 외양간서 즉위
입력 : 2023.05.10 03:30 조선일보
각국의 대관식
▲ 2019년 5월 4일 태국 국왕 라마 10세 대관식에서 국왕 몸에 성수를 붓고 있어요(왼쪽 사진). 오른쪽은 대관식 다음 날 태국 국왕 행렬. /유튜브
지난 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영국 찰스 3세의 대관식이 있었어요. 대관식은 임금이 처음 왕관을 쓰고 왕위에 올랐음을 널리 알리는 의식이에요. 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하지 않지만, 아직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왕이 바뀔 때마다 대관식을 열고 있어요. 대관식은 대체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치르는데, 새로운 왕에게 권위와 신성을 부여해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어요. 세계 각국의 대관식을 살펴볼까요?
7.3㎏ 왕관 쓰는 태국
태국에서는 2019년 5월 4일 라마 10세의 대관식이 열렸어요. 69년 만의 대관식이었죠. 방콕 시내 왕궁에서 불교와 힌두교 전통에 따라 치러졌어요. 태국은 불교가 국교지만, 왕실은 힌두교 예법을 일부 따르고 있어요. 왕은 금테를 두른 흰 천으로 몸을 감싸고 태국 전역에서 길어 올린 성수를 자신의 머리와 몸에 붓는 정화 의식을 치렀어요. 성수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52분에서 12시 38분 사이 태국 전역 80여 곳에서 떠온 물을 모은 것인데, 점성학적으로 이 시간대가 태국에서 가장 성스러운 때라고 해요. 성수에는 태국을 상징하는 노란 꽃잎과 길조(좋은 일이 있을 조짐)를 의미하는 기름도 넣었어요. 성수를 뿌리는 정화 의식은 힌두교 전통이에요.
정화 의식을 마친 국왕은 종교 지도자로부터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 명판과 휘장을 건네받았어요. 또 왕관과 칼, 지휘봉, 왕실 부채, 황금 슬리퍼 등 왕권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물건도 받았어요. 이 물건들은 대부분 1782년 라마 1세 때 제작된 것으로, 원뿔 모양 황금 왕관은 무게가 7.3㎏이나 돼요. 라마 10세가 이 왕관을 쓰면서 즉위식이 마무리됐어요.
즉위식 다음 날 국왕은 황금 가마를 타고 왕궁 일대 사원을 돌며 국민과 인사를 나눴어요. 약 7㎞에 달하는 가마 행렬을 보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국왕을 상징하는 노란색 상의를 입고 모였어요. 태국은 1932년 절대왕정이 끝나고 입헌군주제로 바뀌었지만, 태국 국왕과 왕실의 권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요. 국민이 왕실을 존중하는 태도가 남다르죠. 왕실 모독죄는 한 건당 최고 15년 징역형에 처해요.
'삼종신기' 받고 즉위하는 일왕
2016년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그의 장남 나루히토가 왕위를 물려받았어요. 일왕은 즉위에 앞서 '삼종신기(三種神器)'를 승계받아야 해요. 삼종신기는 일본 창세 신화에 나오는 세 가지 보물로, 청동검과 청동 거울, 옥을 반달 모양으로 다듬은 곡옥을 뜻해요. 나루히토 일왕은 2019년 5월 1일 이 의식을 치렀어요. 삼종신기를 승계한다는 것은 '신의 뜻을 대변하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삼종신기는 8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왔다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왕의 신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절차라고 해요. 삼종신기를 받은 직후 새 일왕은 행정부 수장인 총리를 비롯해 국민을 대표하는 인사들을 만나요.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은 2019년 10월 22일 열렸어요. 즉위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일왕과 왕비가 행사용 옥좌(玉座)인 다카미쿠라(高御座)와 미초다이(御帳臺)에 오르는 거예요. 새 왕의 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죠. 즉위식이 끝나면 축하 연회가 며칠간 열리는데, 11월에는 카 퍼레이드 행사를 통해 국민과 인사를 나눴어요. 새 일왕은 즉위 후 첫 햅쌀을 신에게 바치며 국가의 풍요를 비는 의식을 이세신궁에서 치러야 해요. 또 매년 봄과 가을 풍요를 기원하고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는데, 첫 번째 제사는 '다이조사이(大嘗祭)'라고 불리는 중요한 행사예요.
표범 무늬 예복 입고 즉위하는 줄루족
줄루족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 6000만명 중 약 1100만명이 속한 최대 부족이에요. 남아공에는 따로 대통령이 있어서 줄루족 왕은 행정권이 없는 상징적인 존재이지만, 전통문화의 수호자로서 큰 권력을 갖습니다.
지난해 10월 29일 줄루족 미수줄루 카즈웰리티니가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어요. 선왕 별세 후 1년 동안 다른 왕실 가족과 법적 분쟁을 겪다가 왕이 돼 즉위식에서 정통성을 증명해야 했어요. 그는 표범 무늬 예복을 입고 등장해 위엄을 보였어요. 또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으로부터 '미수줄루 왕이 줄루족의 정식 왕'이라는 내용이 담긴 커다란 인증서 액자도 받았어요. 타보 마코바 성공회 대주교가 직접 미수줄루 왕의 머리와 손 등에 성유를 부어주었어요. 이 즉위식은 50년 만에 열린 것으로, 전국에 TV로 생중계됐어요.
미수줄루 왕은 이에 앞서 8월 전통 즉위식을 치렀어요. 즉위 연설을 한 뒤, 왕실 소 외양간에 들어가 조상의 지지를 받는 예식을 거행했어요. 미수줄루 왕은 부족 원로들에게 황금으로 도금된 칼을 받았고, 이어 줄루족 전사들이 전통 칼과 방패를 들고 새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어요. 즉위를 축하하는 잔치에는 잠비아와 말라위 등 남아프리카 다른 부족 추장도 참석했다고 하네요.
대한제국 황제 자리 오른 고종의 즉위식
유교 국가인 조선은 즉위식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치르지 않았어요. 새롭게 왕위에 오를 이는 기쁨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먼저 드러내야 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특별한 즉위식이 있었어요. 러시아 공사관에 1년간 피신했던 고종은 경운궁으로 환궁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했어요. 왕의 칭호도 황제로 바꾸고, '광무'라는 연호를 사용했어요. 고종은 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동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단을 세우고 1897년 10월 12일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어요. 조선은 오랫동안 중국에 사대(큰 나라를 받들어 섬김)하는 외교 정책을 취했는데, 조선 왕이 '황제'가 되면서 완전한 독립국이 됐음을 선언한 거예요. 조선 왕이 사직단에서 땅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과 달리, 대한제국 황제는 환구단에서 중국 황제와 같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됐어요. 고종 황제의 즉위식은 이처럼 독립국이 되려고 했던 뜻을 담고 있었답니다.
▲ 작년 10월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줄루족 미수줄루 왕(왼쪽) 즉위식. /페이스북
▲ 2019년 10월 22일 나루히토 일왕이 자신의 즉위를 선언하는 모습(왼쪽 사진). 오른쪽은 삼종신기 상상도. 삼종신기 실물은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뉴스1
▲ 2017년 10월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열린 고종 황제 즉위식 재현 행사. 고종 황제 역할(가운데)은 고종의 증손자 이원씨가 맡았어요. /문화체육관광부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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