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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 말라 1 You shall not give false testimony against your neighbor.
자료가 길어서 둘로 나누어서 1.2로 올립니다. 2번도 보셔야 합니다.
샬롬! 가을의 정취가 한창입니다. 곳곳에 단풍도 이쁘게 들고 사람들은 분주히 주말을 맞아서 야외로 가족과 함께 나갑니다. 좋은 계절을 아름다운 한국에서 보내는 모든 분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도 충만히 임하길 기도합니다.
오늘 같이 보실 말씀은 출애굽기 20장 16절 말씀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지 마라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제9계명에 있습니다. 살인, 간음, 도적질이 인간의 몸이나 재산에 대한 범죄를 금한데 비해서 거짓 증거는 진실에 대한 왜곡을 금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입니다.
출 20: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출 20:16 You shall not give false testimony against your neighbor.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진리를 알고 믿는 것입니다. 진리와 진실의 반대되는 개념이 거짓 증거입니다. 거짓은 있는 사실을 속이는 것이며 거짓의 아비의 속성이며 증거는 말이나 다양한 방법으로 진실, 혹은 진리를 속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 진리 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일들입니다.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고 진실을 전하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거짓 증거를 말로 혹은 행동으로 금해야 함은 물론 거짓에 대해서 거짓되다 라고 용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왜곡이 되고 진실이 거짓으로 판을 쳐도 이를 보고서 묵인하고 용인함은 결국을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를 하는 결과로 연결이 되니 적극적으로 진리를 전파하고 진실을 말할 의무가 모든 크리스천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과 진리가 쉽게 분별이 되면 누구나 진실을 알게 될 것이나 이에 대한 분별이 쉽지 않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서 재판을 붙게 되면 그 주장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이 되고 온 국민이 이 재판을 보며 혹은 청문회를 보면서 시비를 가리고자 하나 결코 진리를 드러내고 진실이 밝혀지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거짓은 거짓의 아비 마귀의 일로 진리의 영 성령으로 무장이 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진리를 분별하고 진리의 길로 가게 되는데 이 진리의 말씀이 바로 우리가 늘 보는 성경 말씀이며 이 말씀으로 우리는 거짓을 또한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성경과 말씀으로 거짓을 분별하고 진리의 편에 서고 거짓 증거를 배척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전문가이며 대가이며 백성의 본이 되는 사람들이 목사들입니다. 목사는 영적인 분별력이 일반의 성도와 비교가 되지 않게 정확해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의사가 되고 변호사 판사가 되고 세상의 학문의 지적인 일에 종사하며 세상의 존중과 성공과 그리고 이에 따른 수입을 동시에 누리고 살고 있듯이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보다 목사가 진리의 편에 서고 진리를 수호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선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정의와 진리는 늘 같은 편에서 서로를 돕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거짓이 판을 치고 진리가 무너져도 이에 대한 분노나 목마름이 없이 거짓을 쉬지 않고 용납하고 왜곡을 쉬지 않고 묵인하고 결국은 이들이 거대한 악으로 개인이나 집단이나 혹은 국가를 송두리째 삼켜도 여전히 침묵하며 그래도 예수를 믿는다고 외치고 예수를 따른다고 외치고 예수를 전한다고 외치나 이들의 외침은 진리를 세우는데 실상은 별로 도움이 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 나라 정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는 관심도 노력도 없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마귀가 판을 치게 영적인 대가라는 사람들이 다 방조하고 묵인하고 결국은 마귀의 일을 돕는 결과가 되는 일에 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 진화론의 극복과 평화의 나라 한국 그리고 전라남도
마귀가 하는 거대한 거짓 증거가 바로 진화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고 하나님도 부정하는 마귀의 가장 큰 속임수가 온 세계적으로 행해지니 바로 진화론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성경에 기준해서 약 6200년이 다 입니다. 그런데 거짓으로 이를 속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현혹하고자 수백만 년의 인간의 비슷한 존재가 있었음을 추정하고 이들이 시간이 가면서 진화를 해서 지금의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모든 노력을 다해서 그 증거를 발견하려고 애를 쓰나 수백만 년의 세월에 겨우 짐승 뼈다기 조각 몇 개가 전부입니다. 돌을 깨어서 쓰다가 갈아서 쓰는데 이 머리가 나쁜 인간 비슷한 존재가 약 50만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50만 년의 유적은 달랑 이상하게 생긴 돌 몇 개가 전부입니다. 완벽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과 이들의 시간의 갭이 약 100만 년이나 됩니다. 그런데 100만 년이란 시간에 겨우 지구 전체에서 뼛조각 몇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따라서 에덴으로부터 삶과 노아 홍수의 시까지 약 1700년의 역사와 이후의 약 4500년의 역사를 보면 지금 보이는 모든 지구의 인간의 유적을 완벽하게 다 설명을 합니다. 즉 6200년이면 우리가 지금 보는 모든 고대 유적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삶이 다 100% 증명이 되며 다른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이 학교에 교수로 혹은 교사로 있으면서 한국에서 학생이 배우는 교과서도 진화론으로 작성하다 보니 모든 한국의 학생이 진화론에 물이 들었고 심지어 예수를 믿는다는 교수 중에서 진화론이 맞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진리를 외면하고 부인하며 믿지 않는 경우 말도 되지 않는 거짓을 믿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지만 거짓의 아비 마귀에 속은 세상의 사람은 진화론에 목을 매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지극히 작은 존재가 조금씩 사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기로 시작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바로 존재하면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는 결과가 됩니다. 아기가 홀로 스스로 자라서 남자로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언가 작은 존재가 또 스스로 자라서 사람의 모습을 갖추는데 여자로 자랍니다. 이 둘이 험난한 자연환경에서 스스로 자랍니다. 그리고 이들이 만납니다. 그리고 같이 살고 자신을 닮은 사람 아들과 자녀를 낳습니다. 이런 일이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가능하다고 속이는 것이 진화론입니다. 확률도 절대로 없고 가능성도 절대로 없는 일이 진리라 우기니 마귀가 사로잡고 있는 모든 세상의 사람의 모습이며 인식인 것입니다. 이들을 진리로 즉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가 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진리를 전해서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증거해서 이들을 이런 마귀의 종에서 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죽은 영혼 마귀에 사로잡힌 영혼을 건져서 구원해서 살려야 하는 일이 저와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남녀 둘이 있고 그리고 주변에 몇 사람이 있으면 한국의 경우 약 3000년 만에 오천만 명이 됩니다. 북한과 합쳐서 7500만 명이 됩니다. 성경대로 아브라함이 기원전 약 2166에 탄생하고 사라를 만나서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이들이 기원전 1876 경 72명이 이집트로 이주하고 430년이 지나니 이백만으로 성장하고 다윗 때 400백만 정도 그리고 예수님 오실 때 600-700만 수준 그리고 지금의 약 2050만 명의 유대인이 지구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마엘에서 그두라의 자손에서 아랍 제국이 되며 이렇게 노아와 아내 그리고 자신의 아들 셈, 함, 야벳과 그 아래로부터 약 4500년의 세월로 흑인 백인 황인이 약 80억 명이 넘게 존재하고 이 모든 성경의 기록대로 인간의 역사로 이전의 무엇이 절대로 없이 이렇게 완벽하게 모든 지구상의 유적들이 다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에 앞에 10,000년 정도가 더 있으려면 지금 지구상에 보이는 것 몇 배의 사람과 닮은 존재의 뼈와 유물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청동기 토기 철기는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전의 것들을 마제석기 구석기로 구분하나 진실로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남녀 둘이 있고 주변에 정말로 소수의 남녀가 있는 경우 100년에 여러분의 후손은 수백 명으로 불어납니다. 제 조부와 조모는 남해 노량의 마을에 약 120년 전에 부부가 되셨는데 100년이 조금 지나니 그 후손이 200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나 여러분이나 한 분이 중요하고 복의 근원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인간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보시니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은 하나님도 없고 창조도 없고 하나님의 형상도 없이 추측으로 거대한 시간을 마을대로 빌려다가 우리 자신이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물이며 동물과 같이 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속이니 공산주의 이론도 이와 완벽하게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생을 누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사는 진리를 이렇게 왜곡하는 것입니다. 속이는 아비, 속이는 천재, 속이는 존재 영적인 존재인 마귀의 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일인 것입니다. 이 마귀의 일을 우리는 깨뜨리고 복음의 진리로 승리하며 영혼을 구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도표로 잘 보여드리니 미혹에서 벗어나 다시는 진화론은 쳐다보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수도 없는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진리를 보고 진실을 보면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힘차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이 그냥 마귀의 종으로 진리를 모르고 살지만 우리 믿는 사람도 여전히 마귀는 꾀려 하니 성경에 대한 왜곡이며 오해이며 또한 거짓 이단의 발호입니다. 이는 영적인 측면도 역시 마귀들이 할 수만 있다면 믿는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며 우리는 이에 맞서서 싸워야 하니 우리의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이 전쟁이 기도로 그리고 성경 공부로 그리고 예배와 찬양으로 이루어지는데 역시 예수님을 대장으로 모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전쟁은 너무나 교묘하고 또 집단적으로 속아서 넘어가기에 성도가 홀로 바로 보고 바로 가는 길이 거의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교단과 교파와 신학교가 생겨나고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같은 예수 같은 성경을 보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교리를 따라서 간다는 것입니다. 이 흐름이 어떤 경우는 500년이나 되고 어떤 경우는 2000년이나 되니 이를 누가 바로잡습니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특별하고 특별한 나라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에 좋고 가장 안전한 땅으로 만드시고 이곳에 3000년 전에 아브라함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로 이주를 허락하시고 평화롭게 번성하게 하셨으니 한국인 모두가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무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한 분 한 분이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크리스천이 누리지 못하는 영적인 축복을 누릴 분으로 선택이 되신 것입니다. 이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외쳤습니다. 모든 인류의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땅에는 평화! 할 때 이 평화는 세상에 모든 분쟁이 사라지고 과도한 경쟁도 사라지고 모든 죄인이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어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상태가 바로 평화입니다. 성령을 따라서 하나님의 법 율법을 준수하고 완성할 때 그 율법이 지구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이기에 정의로운 세상이 서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의가 서고 그 나라가 선다는 의미도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정의로운 사람들이 정의롭게 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룩되는 평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평화가 넘치는 곳에 즉 정의가 행해지고 평화가 있는 곳에 기쁨이 넘치게 되니 이곳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세우려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를 기존의 기독교 국가가 세워야 했었으나 우리가 보는 2000년의 기독교사는 강대국이 된 기독교 국가가 주변의 작고 약한 나라 예수님도 모르는 나라를 정복하고 약탈하고 백성을 잡아서 종으로 부려먹고 실로 평화와 거리가 너무나 먼 행동을 했었습니다. 특히 루터의 본국 독일은 절대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인정해야 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고자 600만 명이 되는 유대인을 학살을 했으니 그 죄가 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신학을 또 배우고자 하고 이런 신학을 한 학자가 한국의 신학교 교수로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들이 학살을 당하지 않고 다 살았더라면 이스라엘의 인구가 우리와 같이 7500만 명은 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인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에 너무나 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들과 달리 한국민은 기원전 약 1000년 전에 이 땅 전라남도로 이주했을 때 한반도에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오직 천국과 완벽하게 닮은 바다와 작은 산과 들과 강과 그리고 바다엔 물고기와 먹거리가 물 반 고기 반으로 있고 들에도 숲에도 울창해서 동물이 낙원처럼 살고 온갖 과일과 채소와 산나물이 존재해서 이 땅에 오시는 분은 먼저 전라남도 섬이나 지역의 바닷가에 삶을 시작해서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살았던 것입니다. 또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람이 늘면 또 조금 북으로 즉 전라북도로 또 경상남도로 이주를 하면 되니 아브라함아 롯에서 양보를 한 양보같이 양보하고 이동하면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급도 권력도 없이 모두가 형제와 자매로 가족으로 친족으로 마을마다 흩어져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시골에 남아있습니다. 약 1000년의 놀라운 평화가 이 한반도를 감싸니 하나님께서 이곳에 오신 모든 분과 그 후손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 증거가 아래 고인돌의 분포도입니다. 그리고 무기와 말과 왕제도를 가진 자들이 중국에서 이주를 하니 이들이 이 순박한 천 년의 평화를 누린 한민족의 진정한 뿌리요 조상인 분들 쉽게 제압하고 이제는 거대한 묘를 만들게 하고 왕과 권력을 지닌 계층이 되어 이들을 종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종의 역사가 복음이 올 때까지 쉬지 않고 지속이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도래와 천주를 믿는 이들을 독일이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고자 하려는 것과 같이 왕과 양반이 말살하고자 100년을 피를 흘리게 하는 것입니다. 온 한국의 강산이 순교의 피로 물이 들면서 이 악한 왕 제도와 양반 제도의 묵은 폐습을 꺾고 이겨낸 후에 일본이 이 나라를 완전히 장악하고 지배할 때 개신교가 들어와서 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믿는 한국의 성도는 비로소 이런 종과 노예의 상태에서 영적으로 혹은 물적으로 다 벗어나서 이런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모두가 한국의 조상들이 누린 1000년의 평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DNA로 물러 받고 이후에 약 1000번의 외침을 복수하지 않고 주변의 나라와 평화를 누렸으니 그 인내가 하나님께서 인간의 쉬지 않는 도발과 도전을 인내하며 여전히 사랑하시는 모습과 지구상에서 가장 닮은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특별하고 한국의 성도가 특히 특별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고인돌의 분포도
일제가 한반도를 점령하고 보물을 깨려고 다양한 시도를 할 때 청동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대를 추정했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접한 일본인들이 이 땅에 청동기 시대가 자신들보다 수백 년이 앞선 것을 보고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숨기려 했습니다. 이도 하나님께서 밝히므로 우리가 일본에 앞서서 주민이 들어와서 살다가 일본으로 가게 된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본의 홋카이도를 거쳐서 갔는지 혹은 고래를 잡던 실력으로 태평양을 건너서 갔는지 밝혀야 하지만 아메리카로 갔는데 모든 인디언이 우리와 같은 조상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암각화는 이를 정확하게 증명합니다.
처음 전라남도를 통해서 한반도로 들어온 우리의 진정한 조상은 소수였을 것입니다. 흑조류에 따라서 흘러왔던 노아의 후손으로 발달된 조선 기술의 배로 왔던 기원전 약 1000년 경의 한반도는 우리가 진화론에서 배운 내용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먼저 바닷가를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혹은 지중해 주변에서 이주한 우리의 조상은 인도 남부와 동남아 필리핀을 거쳐서 한반도에 들어옵니다. 고인돌의 분포와 연대가 정확하게 이를 설명을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우리와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이를 신석기를 지나서 진화한 원시인으로 보는 진화론으로 설명을 하나 너무나 지금 사람과 같은 모든 상황에 진화론 고고학자도 놀라고 놀라고 있는 현실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조상이며 완벽하게 모든 면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을 미생물의 진화로 보니 말입니다. 이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노아의 후손이며 우리의 조상인 분들이 한반도에 상륙을 했을 때 한반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청동기 시대 이전의 사람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낙원인 한국의 당시 상황을 우리는 바로 밝혀야 합니다.
모든 한국인이 60-70세 되신 분은 이전의 시골을 상상하시면 3000년 전의 한국을 소환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상상으로 수렵이니 채취니 하면서 원시인이 노닐던 한반도가 절대로 아니고 진정한 우리와 같은 사람이 천국과 같은 조건의 한반도에서 삶을 시작한 것을 생생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성경의 도움으로 과거의 일을 모든 성도는 고고학적인 지식이 없이도 과학적이라 하면서 뜬 구름 잡는 헛된 소설에 빠지는 일이 없이 생생하게 현실과 같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3000년전 한반도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숲은 자랄 대로 자란 나무로 밀림과 같았고 동물의 천국이었으며 삼면이 바다이고 나지막한 산들과 들판과 그리고 강과 우거진 숲으로 모든 물은 바로 마실 수가 있었고 공기는 맑았으며 하늘에는 밤에 별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본 그 별들이 그대로 있었으니 모든 한국의 시골 출신의 50-70대는 그 별들을 보았습니다. 은하수도 보았습니다. 숲이나 산이나 강이나 어느 곳의 물을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먹거리입니다. 고인돌은 바닷가를 따라서 온 세계적으로 분포하는데 드물게 내륙에도 있지만 대부분 바닷가를 따라서 나타납니다. 바다는 지금의 바다가 아닙니다. 모든 생선은 자연산으로 클 대로 큰 생선이 물 반 고기 반으로 많습니다. 종류도 다양하고 철 별로 남해 동해 서해로 회유합니다. 물이 빠지면 소라 멍게 조개 해삼 파래 다시마 미역 등이 그냥 손만 뻗으며 주울 수가 있게 지천에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바다는 안전합니다. 갯벌도 있고 해변도 있고 시야가 확보가 되고 집을 짓고 살기에 맹수가 있는 숲보다 안전합니다. 누가 호랑이와 곰이 득실거리는 사람이 다닐 수도 없는 빽빽한 숲에 집을 짓고 삽니까?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면서 창조하신 어류는 사람이 먹기에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데 그냥 홍수도 가뭄도 없이 사철내내 풍성하니 노력도 없이 취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소산이 천국과 같이 풍성합니다. 그리고 가축도 함께 오면 가축도 기르고 나무로 집도 짓고 울타리도 치고 들에서 벼농사를 짓고 우리가 살던 바닷가 시골의 삶과 완벽하게 같은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저는 고향이 남해이고 선친이 어부였는데 약 50년 전에도 남해 노량은 고기 반 물 반으로 모든 수산물이 풍성해서 모두가 해변에서 먹거리를 자유롭게 구했습니다. 막 지은 쌀밥에 나무 숯불에 바로잡은 생선에 소금을 조금 뿌리고 구워서 먹으면 그 맛이 온 천하에 으뜸이었습니다. 모든 고인돌족이 그렇게 맛있는 지금의 사람이 상상도 못하는 진미를 먹으면서 살았고 들에는 채소가 산에는 산나물이 풍성했습니다. 모두가 집이 있고 논이 있고 밭이 있고 가축이 있고 모든 남녀가 20세가 되기 전에 짝을 찾고 바다는 사철 물이 들어도 먹거리 물이 빠져도 먹거리니 완벽한 천국이며 낙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온 한반도에 자신들이 다 이니 서로 다투고 싸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밤에 전기가 없으니 해가 떨어지면 깜깜해지니 젊은 부부는 사랑을 나누고 아기가 생기는 데로 낳으니 인구가 늘고 인구가 늘면 사는 것이 비좁게 되면 또 새로 마을을 정하고 집을 짓고 들판을 일구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라남도에서 경상도로 전라북도로 조금씩 이동을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친척이요 형제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고인돌족의 전통대로 큰 돌을 선택해서 아래를 파서 돌을 세우고 고인을 모시면 되었습니다. 큰 돌을 옮길 필요가 없이 이렇게 무덤을 만들면 수백 톤 바위 아래에 혼자서 무덤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큰 배로 고래도 잡아서 먹습니다. 여러 척의 배로 고래도 잡고 이를 암각화로 남겼으니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와 아메리카 대륙의 암각화가 완벽하게 같습니다. 고래를 잡는 배와 노와 사람들이 다 같이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분포대로 고인돌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속히 모든 한국인은 이 진실된 한국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이미 한반도에 약 400백만 이상의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구비가 된 한반도에서 1000년의 세월이 흘러갑니다. 중국에서 오는 사람도 침략도 없습니다.일본은 도리어 이곳에 살던 사람이 약 600년이 지나서 이주를 해서 고인돌 시대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침략할 수도 없습니다. 1000년의 낙원의 삶이 흘러가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놀랍고 깊고 긴 평화가 자리잡습니다. 이 평화의 축복이 은혜가 철기 시대를 맞아서 북으로 혹은 중국을 바다를 건너서 오는 말과 칼과 창과 왕 제도를 지닌 그리고 문자를 지닌 무리에게 정복을 당하면서도 혹은 이후에 약 2000년 1000번의 외침을 받음에도 유지가 되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누린 평화는 율법이 통치하는 율법이 기준이 되는 평화가 아니였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에 양심의 법으로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 지배를 했습니다. 성경은 율법이 마음에 기록이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양심의 법을 지닌 아브라함과 같은 순박한 셈족의 사람들이 모든 것이 구비된 천국과 같은 환경에서 먹과 사는 것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을 때 일본과 중국의 침략도 없던 1000년의 완벽한 평화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1000번의 침략을 인내로 지킨 평화인 것입니다. 이 평화와 율법이 주는 평화가 만나서 진정한 성경의 평화의 의미를 이해할 민족으로 우리가 선택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를 전하는 도구로 선택이 되어서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보다 더 저질이고 흉악한 그리고 패역한 사람인데 평화의 예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심은 이에 따라서 큰 은혜가 임했고 그리고 모든 한국인이 다 저보다 더 열정적으로 이 평화의 복음을 온 만방에 증거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내용을 여러 차례 아브라함의 큰 칼, 동방의 빛으로 제목을 붙여서 온 세상의 신학 대학의 교수님 약 700명께 한글과 영어로 보냈으니 이제는 온 세상이 이 평화의 복음을 아는 것이 시간문제일 뿐인 것입니다.
◆◆◆ 아브라함의 큰 칼과 천주교 개신교 갈등 해결, 이스라엘 복음화
이 아브라함의 큰 칼과 동방의 빛에 해당하는 내용을 오천만의 로마서에 수도 없이 올렸고 이제 온 세상에서 100만 명이 보는 쪽으로 가니 모르는 분들이 이상한 세상에 살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큰 칼은 창세기 12장에서 26장의 아브라함의 신앙의 요약입니다. 그림으로 모든 분이 한 눈에 이해하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큰 칼의 내용으로 천주교와 개신교를 하나로 묶게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이 내용이 또 로마서로 전체적으로 연결이 되면서 동방의 빛이 되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자세한 내용은 오천만의 로마서의 아브라함의 큰 칼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간략하게 설명을 드립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성경의 이해입니다. 저는 굳게 믿습니다. 이 자료와 아래 자료가 동방의 빛의 핵심입니다. 이제부터 기독교 역사는 완전히 새롭게 전개가 될 것이고 이 중심이 바로 한국이며 그 한국에서도 전라남도는 극도로 소중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전라남도와 주변의 섬이 온 세상에서 가장 귀한 땅이요 가장 귀한 지역이 될 것입니다. 믿고 따져 보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온 세상에서 가장 복된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자신의 축복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치에 휘둘리고 이단에 휘둘리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분연히 일어나시고 한국을 바로잡고 온 세상의 교회를 세워야 하며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지구 최강 최선의 사명을 가지신 분들이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제가 드리는 설명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이 다 이해가 가능하며 이 내용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믿고 행동하는 모든 성도와 교회와 나라가 앞으로 온 세상의 주역이 되며 예수님의 오심을 환영하는 주체가 될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르심을 받고 순종합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그냥 가십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이르렀을 때부터 86세가 되어 이스마엘을 낳기 전에 하나님께서 오시는데 창세기 15장 6절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니 의롭다 하셨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로마서 4장 1-16절, 갈라디아서 3장 5-6절, 로마서 5장 1절, 또 로마서 3장 22절에 분명하게 그렇게 됨을 다시 확인을 합니다. 딱 여기까지 루터가 본 내용으로 개신교의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500년 동안 요지부동입니다. 그런데 같은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해서 그가 118-125세무렵 이삭을 바칠 때 신앙을 야고보서 2장에서 설명하면서 믿음과 행함이 동시에 존재해야 의롭게 됨을 선포합니다. 같은 사람 아브라함의 신앙의 다른 측면이 소개가 되고 있고 이를 근거로 천주교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이 부족하고 믿음과 무슨 행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니 이도 성경에 분명히 있으니 500년 개신교가 덤벼도 요지부동입니다. 둘 다 성경에 근거가 있으니 완벽하게 그 주장이 논리적이고 또 정당합니다. 둘 다 문제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다른 연령대의 신앙을 각각 부분만 보면서 서로 옳다고 양보가 없는 것은 모든 지구인이 성도가 또 인식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천주교와 개신교가 놓친 부분이 있으니 둘 다 공히 보지 못하고 서로의 옮음만 주장하니 바로 창세기 17장과 18장의 하나님의 오심의 소개와 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으리라는 주장에 웃기만 하는 모습이 또한 분명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2000년 후에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바울은 로마서 4장 17-22절로 100세가 된 아브라함이 도리어 믿음이 굳어졌고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을 굳게 믿으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기록합니다. 이 두 성경의 미묘한 한 사건을 두고서 서로 다르게 기록한 차이를 우리를 밝혀야 하는데 제가 그린 도표 내 년 이맘 때입니다.
이 성경적인 비밀을 풀게 되면 놀랍고 놀라운 축복이 모든 인류에게 기다리고 있으니 즉 믿고 행한 사람이 받는 축복이며 이는 누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행동할 때 누리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후 두 부부는 밤에 무엇을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비록 웃었지만 너무나 자신의 늙은 몸을 보면서 불가능한 일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고서 웃었지만 이들에게는 아직 아기를 가질 3개월이 남았습니다. 내년 이 맘 때 아들이 있기 위해서 두 임신이 불가한 부부가 9-10개월의 임신 기간을 빼면 넉넉하게 3개월의 아기를 가질 시간의 여유가 있습니다. 이제 인간 아브라함 부부는 불가한 일은 놓고 밤과 낮에 고민합니다. 서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고민합니다. 이는 인간의 고민일 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죽은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하시고 죽은 사람도 살리시며 죽어서 흙이 된 모든 성도를 부활의 몸이 갖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늙은 부부를 젊게 하고 태를 열고 아기를 갖게 하는 일은 하나 편에서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이 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입느냐 하는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어떻게 받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년 이 맘 때의 시간도 정하셨지만 반드시 아브라함의 씨 라야 한다고 못도 박아 두셨습니다. 그래서 동정녀와 같이 사래가 아기를 갖게 되면 하나님의 씨이지 아브라함의 씨가 절대로 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젊은 여자와 낳은 아들도 사래의 야속과 다릅니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사래에게도 내년 이맘때 아들을 낳으리라 약속을 같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둘이 반드시 애기를 임신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쉬운 이들의 행동만 남았습니다. 이들이 불가능한 자신의 몸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지만 이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을 합니다. 즉 밤에 두 사람이 부부의 일을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전능하신 권능을 펼치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믿고 행하는 것 이것이 인간이 반드시 행동해야 되는 일입니다.
병자를 믿고 성도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낫습니다. 내가 능력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행하심으로 고쳐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냥 믿고 기도하면 다 입니다. 믿고 기도하면 나음이 있음에도 내가 무슨 능력이 있어 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고치십니까? 그래서 불가능한 모든 사정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고 행동하는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진리가 모든 믿는 이에게 전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와 관련해서 영어를 믿고 매일 함이 바로 영어 능력자가 됨을 밝혔습니다. 일 년에 100조원을 버는 일이 생김을 밝혔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이 한 사람 아브라함의 100년의 믿음의 여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제 이 모든 일을 다 합쳐서 보면 그 내용이 바로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인데 영어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만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오늘 하루 믿고 끝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매일 매일 그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롭게 됩니다. 이 말씀이 아브라함 100년의 신앙의 요약입니다. 세 구절의 요약입니다. 100년 동안 적어도 세 번의 믿음의 테스트가 있고 그때마다 아브라함은 다 통과합니다. 그 비결이 하나님께서 언제 오셔도 이를 의식치 않고 매일 매일 믿음에 합당한 삶을 지속적으로 잘 살아서 세 번 다 믿음의 테스트를 하나님께서 오실 때 마다 의롭다 인정을 받으므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아주 내주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시각각 다 아십니다. 그리고 연륜이 가면서 강해지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보셔야 합니다. 믿고 떠납니다. 믿고 행합니다. 믿고 바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오직 믿음만 알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을 약 30%만 알고 이만 주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믿고 아들을 바치는 신앙만 알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초기의 신앙을 놓치게 됩니다. 이는 초신자가 교회에 오면 오직 믿고 행하는 것이 어려운 성도를 배려하지 못하게 되기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교회가 믿고 행하는 신앙 즉 약 100세가 된 신앙의 모습을 공히 놓치고 있으니 천주교 개신교는 기존의 자신들의 주장에서 아브라함의 큰 칼로 설명하는 100년의 신앙을 전체를 보시고 이를 보지 못한 것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온 천하가 아는 내용을 교회가 부정하고 알지 못하면 그 수치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짧은 세 구절에 아브라함의 백 년의 신앙이 다 있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부디 두 교회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그리고 온전한 지식으로 하나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을 위와 같이 이해를 하시고 기존의 목사나 신부의 주장을 보시면서 이들이 알기는 아나 부분적으로 아는 것을 간파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남해 섬에서 자란 예수님도 성경도 교회도 모르고 자란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죄가 심히 흉악하고 저질이며 패역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오셔서 회개를 하게 하시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게 하심으로 죄를 용서받게 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성령께서 이렇게 밝히시니 저는 도구일 뿐 이런 내용을 스스로 알 자격도 알 수도 없음을 분명하게 밝히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성령께서 일마다 때마다 쉬지 않고 제가 성령을 받은 후 약 34년 동안 성경의 내용을 조금씩 순서대로 주셨습니다. 새로운 성경의 이해가 올 때마다 기쁨이 함께 왔습니다. 저는 순간 순간 하나도 놓치지 않게 받아서 적었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고 무엇을 알아야지 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냥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일도 너무나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모이고 계속이 되면서 로마서에 대해서도 새롭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로운 이해를 보면서 때론 지나치게 흥분하고 방방 뛰었습니다. 그리고 오천만의 로마서에 쉬지 않고 약 9년 정도 올리고 신학교 교수님께도 쉬지 않고 보냈습니다. 글을 쓸 때도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으면 일사천리로 써내려 갔습니다. 1300편의 긴 글을 단번에 다 쓴 것입니다. 가끔 다른 분의 글도 보고 검색도 하였으나 대부분 성령께서 저를 전도하게 하시면서 주신 내용,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주신 내용, 그리고 로마서를 따로 더 공부할 때 주신 내용을 적은 것입니다. 그림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심으로 내용을 쉽게 이해하게 요약해서 많이 그리게 된 것입니다. 저는 도구로 제가 쓰는지 주님이 쓰는지 모를 지경이 되어서 쓴 적도 있습니다. 진실로 전도 편지를 쓸 때 주님께서 오셔서 내가 쓰니 너는 저리 가라 하시는데 제가 쓰는지 주님께서 쓰시는지 모를 지경이 되어서 전도 편지를 쓴 적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제가 주님 안에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제 노력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을 하느라 사는 문제가 늘 고달팠지만 이 일이 힘들었던 적은 없습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1장 17절은 풀어야 할 비밀이 많은 구절입니다. 그냥 이 구절만 보고서 개신교와 같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하고 믿으면 이 구절이 담긴 의미의 약 30% 정도 밖에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구절은 이 구절이 인용한 본래의 성경의 사건과 표현의 가야 합니다. 창세기와 로마서 그리고 갈라디아서 심지어 야고보서까지 여기에다가 하박국서 까지 다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주교가 1500년 동안 정교회와 두 교회로 세상에서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때 다시 루터를 통해서 이 구절로 종교 개혁을 시작하시고 개신교를 태동시켰습니다. 그리고 500년 동안 온 세상에 선교와 전도를 하게 하심으로 7억 명이 넘는 개신교인 온 세계에 퍼져서 살게 된 것입니다. 이를 본 천주교도 반 종교 개혁으로 로율라를 중심으로 또 선교를 분발하게 됩니다. 개신교는 성경을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고 전도와 선교에 열중하면서 성도 개개인이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열기를 온 세상에 뿜어 내었습니다. 이 개신교에 힘입어 한국도 개항과 동시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학교도 세우고 병원도 세우며 전도한 결과 1000만 명 이상의 성도로 성장했고 선교사를 2만 명이나 보내는 선교 대국이 되었습니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에서도 개신교가 부흥하고 특히 미국에서 그 꽃을 피우고 있으며 중국도 거대한 부흥으로 신자가 1억 5천만 명에 육박해서 곧 미국을 제치고 가장 성도가 많은 국가가 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천주교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개신교의 주장에 반박하며 야고보서 2장을 그 근거로 들면서 무언가 믿음 + 행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주장이 한치도 양보가 없이 500년을 다투는 것입니다. 같은 로마서 1장 17절을 보고서 다투는 것입니다.
이를 저는 앞에서 아브라함의 큰 칼로 100년의 아브라함 한 사람의 신앙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에 있는데 각각 아브라함의 초기 신앙의 모습을 설명한 성경도 있고 말기 신앙을 성경도 있으니 이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함을 설명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99-100세 무렵의 설명을 첨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500년 전에는 새로운 전도와 선교가 필요해서 하나님께서 루터를 통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고 이제는 온 세상이 복음화가 거의 진행이 된 마당에 두 교회가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니 감추어졌던 로마서 1장 17절의 깊은 의미가 하나님의 인도로 밝혀지게 되는 것으로 봅니다.
아브라함의 100년의 신앙은 도표로 보여드렸지만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순종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납니다. 한민족이 일제 시대에 사할린 등으로 가고 다시 스탈린에 의해서 강제로 중앙 아시아로 이주를 한 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하늘의 별과 같은 후손을 약속하실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십니다. 첫 의롭다 하심 입니다. 이를 창세기 15장 6절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났을 때 그의 후손 율법학자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에 이 내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갈라디아서도 같이 인용을 합니다. 이를 루터는 보고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주창했고 개신교의 모토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오직 믿음이 개신교의 중요한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의 삶이 종료가 되고 하나님의 오심과 의롭다 하심이 끝이 났으면 루터가 발견한 성경의 오직 믿음은 영원한 진리로 문제가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그가 99세 때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아들을 약속합니다. 이 내용을 바울 사도는 로마서 4장 17-22절로 인용을 하면서 오직 믿음으로가 아니라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는데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셨다고 설명을 합니다. 같은 사람 아브라함의 다른 시기의 의로움에 대한 인정이며 굳은 믿음이 그 근거가 됩니다. 본문은 사람들이 성경을 100번을 읽어도 그냥 지나가는 구절입니다. 오직 믿음에 너무나 강하게 에워싸여 이 구절은 그냥 묻어서 가기 때문입니다. 이를 반드시 새롭게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첫 의롭게 인정을 받는 장면과 분명하게 다른 장면이며 다른 나이 때입니다. 이를 구분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보아야 합니다. 이 부분은 천주교와 개신교가 같이 보지 못한 부분으로 저는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창세기 17장과 18장의 아브라함 부부의 반응을 로마서 이 부분과 보면서 차이를 풀어야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저는 도표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제 그의 삶과 신앙이 더욱 성숙해졌을 무렵 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방문하시는 데 이때엔 아예 독자 이삭을 잡아서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이를 순종합니다. 이 내용은 구체적으로 로마서에 없고 야고보서 2장에 기록이 되며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바치는 행위와 같이 행동이 따라야 됨을 강조하는데 이 부분이 바로 천주교가 주목하고 개신교의 오직 믿음이 부족하다고 인정도 따라가지도 않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아시다시피 한 사람의 100년의 신앙을 개신교는 아브라함의 85세까지의 초기 신앙과 이를 설명한 성경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보면서 오직 믿음이라 하고 천주교는 아브라함의 말기의 원숙한 신앙 믿고 바치는 신앙을 보면서 믿음 + 행위가 있어야 된다고 하니 둘 다 완벽하게 성경적이며 다 옳바릅니다. 그리고 이들은 둘 다 99-100세의 신앙을 반드시 살피고 해결을 했어야 했습니다.
이제 이런 내용의 이해를 갖고 로마서 1장 17절로 가서 봅니다. 영어로 봐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영어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어야 한다 그리고 의인은 예수님을 믿고 매일 매일 그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100년의 신앙을 이렇게 단 세 구절로 요약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매일 매일 믿음에 합당한 삶을 일생을 즉 100년을 잘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 하나님께서 불시에 방문을 하셔도 믿음의 테스트를 다 합격해서 의롭다 인정을 받으시 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삽니다. 믿고 고향을 떠납니다. 75세 때입니다. 믿고 자녀를 가질 수가 없는 상태에서 행동을 합니다. 아브라함 부부의 잠자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믿고 바치라고 하시니 바칩니다. 아들까지 피를 흘리며 칼로 잡고 장작으로 태워서 제사를 드리려고 까지 순종합니다. 이 모든 내용이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로 한글 성경으로 번역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내용을 적어도 수십년을 조금씩 조금씩 순서대로 하나님께 받아서 이 이해로 오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 문제를 풀려고도 한 적이 없고 고민도 없었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조금 주시면 바로 기쁘게 받아서 이것이 다다 하고 전했습니다. 이제 이렇게 한 번에 설명을 드리지만 절대로 한 번에 이해가 된 것이 아닙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이제 하나가 될 근거와 명분이 충분합니다. 서로 주장을 하나로 합치면 로마서 1장 17절이 온전히 이해가 되고 여기에 제가 보여드린 99-100세 신앙도 함께 보면서 온전히 이해를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아주 중요하고 동방의 빛으로 가는 중요한 성경의 이해가 되며 이스라엘의 전도에 꼭 필요합니다. 이제 여기서 진도가 더 나간 로마서의 이해로 가 보겠습니다. 노량 바다 어부의 아들을 택하시고 이를 통해서 한국의 3000년의 평화의 의미를 깨닫게 하신 우리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님의 감동과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 동방의 빛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를 아브라함의 큰 칼로 잘 이해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여기에다가 하박국서 2장 4절의 의미를 이해를 해서 또 합쳐야 합니다. 하박국서의 의인은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소망이 없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의인은 하나님의 약속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멸망을 시킬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없어도 불의를 멀리하고 정의롭게 하나님을 믿고 삽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도 하나님으로 인해서 의인은 기뻐합니다. 의인이 하나님을 기뻐함은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인을 구원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 의인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날로 강해지는 믿음입니다.그리고 정의롭게 사는 믿음입니다. 의인은 예수님을 믿고 매일 매일 그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 생활이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 생활입니다. 신자가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매일 매일 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의 모습이 로마서 7장 6절입니다.
성령의 사역에 대한 이해가 없이 로마서를 보면 실로 진리의 어느 것도 온전히 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7장 6절의 의미를 올바로 알고자 하면 성령이 없던 시절의 바울과 성령을 예수님을 통해서 받은 바울의 삶을 동시에 다 보아야 이 구절이 해석이 됩니다. 성령이 누구 신지 성령의 사역이 어떤 것인지 성령을 받지 않고 체험도 없이 이 구절을 이해로 가고자 하면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게 됩니다. 성령이 없이 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성경 연구가가 되고 신학교 교수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긴다는 표현이 어떻게 경험이 없이 설명으로만 이해가 됩니까?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가 무엇인지 죄의 용서가 무엇인지 그리고 율법학자라 하면서도 율법의 진정한 의미 즉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가 같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즉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고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름의 물세례를 아나니아에게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도 역시 받습니다. 이를 로마서에서 우리는 성령의 첫 열매라는 표현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이 절차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의 물로 세례를 받으면 죄의 용서가 있습니다. 이런 깨끗해진 사람에게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고 도장도 꽉 찍으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일일이 우리의 할 바를 밝히시고 해야 될 것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분별해 주십니다. 바울은 일생을 그렇게 성령의 인도로 이방인의 사도가 되고 교회를 세우고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다시 번역 했음]
이제 예수님을 만난 새 사람 바울이 새롭게 섬기는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전에 율법의 조문의 준수를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알던 바울이 이제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것으로 반응합니다. 예수님과 한 세례로 죽고 십자가에 함께 예수님과 달리므로 죽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부터 자유 하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이 있으니 이 내용을 모든 성도는 알아야 합니다. 천주교 개신교도 함께 알아야 합니다. 그 구절을 제가 로마서에서 찾아서 적습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 내용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
그리고 에스겔서 예언과도 일치합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바울 사도의 성령을 통한 경험, 그리고 로마서의 내용,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예언서의 말씀이 완벽하게 성령을 받고 율법을 완성함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위의 같이 명령을 하시고 성령을 받고 행동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 내용이 조금도 성경과 어긋남이 없음을 온 세상의 사람은 다 인정을 할 것입니다. 천주교도 개신교도 예외가 없습니다.
로마서 14장 17절은 천국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라고 합니다.
위와 같이 성도가 성령을 따라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룰 때 이 땅에 놀라운 정의가 서게 됩니다. 율법은 정의를 위한 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의로운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평화는 질서가 지켜지고 사람들이 이 질서를 따라서 살 때 안전이 확보가 되고 예측이 가능하며 불안한 일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평화가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이 평화와 정의가 있는 곳에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적인 질서가 지켜지는 곳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함께 축복이 또 임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율법대로 살면 복이 임한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정의로워서 질서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복을 주심으로 평화가 확보가 되고 모든 구성원이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되니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먹고 마실 때 성도는 이렇게 성령을 통해서 율법을 완성함으로 이 세상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우리 믿는 사람 마음 마음에 세워져야 하고 그 나라가 우리가 사는 가정에 세워져야 하고 그 나라가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교회와 교인이 많은 사회와 국가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도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리로 교파로 교단으로 다양하게 진리를 전한다고 하나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고 불완전한 것도 있습니다. 왜 저입니까? 저는 한국인입니다. 남해 노량 바닷가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도구로 이전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누구보다 흉악한 죄인입니다.
우리 한국인은 평화의 3000년의 전통을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이렇게 오래 평화를 추구한 민족은 다시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속에서 전통속에서 이렇게 평화의 복음을 봅니다. 이 평화를 우리는 어떻게 조화롭게 하나로 연결할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평화를 전파해야 합니다. 평화의 복음은 아브라함의 큰 칼과 동방의 빛으로 요약이 되지만 이와 함께 한국인이 가진 놀라운 3000년의 평화의 전통에 이 천국 복음을 녹여 넣어야 합니다. 아니면 이 천국 복음에 우리의 평화의 전통을 녹여 넣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이제 큰 영적인 어두움이 세계적으로 걷어 내어졌습니다.
저는 약 40년 전에 은행을 퇴사하고 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행정고시를 공부하면서 고급관료가 되어서 한국의 통일에 일조하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성경도 교회도 하나님의 나라도 조금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불신자였습니다. 흉악한 죄를 짓고도 스스로 착하다고 착각을 하고 살던 사람입니다. 이런 무지하고 몽매하며 악한 죄인을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전도자가 건내 준 성경을 통해서 회개를 하게 하셨습니다. 두려움과 함께 말씀이 제 눈으로 들어올 때 그냥 글자가 아니라 보지 못하는 마음을 거울을 보듯이 분명하게 보게 하면서 들어왔고 저는 회개했습니다. 1분 정도만에 완전히 새롭게 변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감사드리며 찬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공로와 보혈을 믿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5년 뒤의 일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지금까지 인도하십니다. 우리 주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40년을 쉬지 않고 함께 하시면서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모든 성도도 다 같은 사랑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이 함께 했고 고난도 많았지만 평화로 늘 지켜 주시고 쉬지 않으시고 격려를 하셨고 쉬지 않고 성경을 이해하는 기쁨으로 늘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제가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로마서 1장 17절의 오직 믿음의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로마서를 계속 읽어가고 또 강의도 하고 책도 냅니다. 그리고 목사는 쉬지 않고 설교합니다. 그런데 믿음 생활을 매일 매일 해야 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믿음 생활입니까? 아브라함을 보면 믿고 떠나고 믿고 행하고 믿고 바치는 것을 해야 합니다. 초신자는 시간을 두고 이렇게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60대 이상의 수십년을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오직 믿음에 머물면 너무나 약합니다. 믿고 행하고 믿고 가장 소중한 나의 것을 바쳐야 합니다. 이 부분에 오면 천주교의 주장대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초신자는 천주교가 양보를 해서 믿고 행동하지 못해도 용납을 하고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자신에게 3년을 배우고 세례도 받았지만 부활도 보았지만 성령을 받고 움직이라고 한 것과 같이 성령을 받고 행하도록 기다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믿는 이는 모두가 성령을 받고 움직여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으로 당시 제자에게만 해당하는 과정이나 명령이 아니라 이후의 모든 성도가 따라야 하는 명령입니다. 저는 회개 후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물로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1991년 5월 19일 장유 반석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1992년 행정고시 2차 준비를 하던 중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깨닫고 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을 알고 모든 진리를 지식으로 아는 것도 중합니다. 이렇게 신학도 하고 목사도 장로도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선물은 그냥 성경책에 있는 이전의 성도의 이야기다 하면 절대로 아니됩니다. 모든 성도 장로 목사 신학자가 내 것으로 되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내가 성령을 받고 인도를 받아야 로마서가 의미가 있고 이해도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에 통달하고 구약의 달인이었지만 예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진리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핍박하는 길에 모든 자신의 운명을 다 걸었던 사람입니다. 구약을 알지만 누구보다도 더 잘 알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적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는 회개도 없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없고 그래서 죄사함도 없으니 당연히 성령의 선물은 꿈도 꾸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어떻게 쓰십니까? 그런데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바울 앞에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으로 바울을 만난 것입니다. 이 한 번의 만남으로 바울이 가진 모든 지식체계가 다 무너졌고 예수님께 굴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예수님께 큰 대적이 되며 절대로 지옥에 가는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을 바로 회개합니다. 죄인의 괴수였던 자신을 똑똑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야를 만나서 예수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믿음의 삶을 자신의 욕망을 다 내려놓고 이전에 살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는 것도 내려놓고 새로운 방법 성령의 인도를 순간 받아서 움직이는 새로운 창조물로 살아가게 되니 이렇게 산 삶이 적어도 20년이 지났을 때 A.D 57년 경에 고린도에서 로마로 편지를 보내니 우리가 배우는 로마서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따라서 살면서 완성되는 율법을 사랑함으로 됨을 봅니다. 성령을 따라서 믿음 생활을 하니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움을 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전도하고 선교하고 선하게 살다 보니 율법이 요구하는 정의로운 요구 사항들이 다 이루어짐을 봅니다. 결국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 율법의 완성을 체험하고 율법의 조문 조문 작은 것도 잘 지키게 되고 이를 잘 지키라고 가르치니 천국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큰 자로 사는 것입니다. 흉악한 죄인의 괴수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된 비결이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자신의 모든 욕심과 욕망을 절제하며 죽이면서 산 결과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과 같이 사라고 로마서를 쓴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을 했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로 정의를 한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자신이 전도하고 선교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이 나라의 백성이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해서 이 땅에서 천국을 세우고 이후에 예수님을 뵈올 때 자신과 같이 큰 자가가 되게 하려고 로마서를 쓴 것입니다. 영적인 비밀을 나누고 견고케 하려고 편지를 쓴다 의 의미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당시의 성도는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바울이 없는 로마교회에서 다양한 시련을 겪고 있었으니 성령의 인도보다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는 거짓 유대인 교사도 있었을 것이고 육신의 정욕으로 성령을 따라서 살지 않는 성도도 고린도 교회와 같이 있었을 것입니다. 로마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율법을 완성하고 이를 통해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라 하는 것이 요지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밝히신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작은 자가 되며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기준이 결국은 율법의 준수에 달렸는데 그 율법은 사랑을 함으로 완성하고 성령을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죽이며 율법을 굳게 세우며 정의로운 율법의 요구를 이룰 때 천국에도 가고 큰 자도 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죽어도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경우는 우리 성도의 의가 바리새인 즉 유대인이 자신들의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세우는 의보다 못할 때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경 공부만 해서 목사도 되고 신학자도 되고 장로가 된 분들이 이 부분에 와서 자신을 보면서 사랑도 없고 즉 성도가 가난해서 죽어가도 내 재산을 갖고 수십억 수백억을 갖고 자랑하면서 이들을 나누어 살리지 않고 그리고 성령을 받지 못해서 자신의 욕망대로 마음대로 살면서 때론 왕과 같이 군림하면서 자식에게 교회도 마음대로 물려주고 수도 없는 비리를 행하면서 대를 이어서 숨기고자 하는 모든 교회 지도자는 지금 유대인이 율법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10계명을 지키고 그리고 율법대로 형제가 어려우면 돕고 나라가 어려우면 하버드 대학도 포기하고 생명을 바쳐서 나라를 지키면서 율법대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의로움 보다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 없는 자신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보혈의 공로와 그리고 유대인이 없는 성령의 내주를 모든 회개한 죄인에게 허락하시면서 예수님도 성령님도 없이 홀로 율법으로 의롭게 사는 바리새인을 절대로 이기면서 사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성도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산다면 어떤 자력으로 율법의 의를 추구하는 유대인도 반드시 모든 면에서 이길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믿음 하면서 막 살면서 천국에 가고자 하면 참으로 무서운 비극이 있음을 똑똑하게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이렇게 모든 면에서 이기면서 전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도의 비결이 로마서인 것입니다. 제가 10년 전에 이런 원리를 모를 때 미군 병사로 군대에 온 유대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짧은 영어로 복음을 전하고자 했는데 이 친구가 자신은 유대인이라 했습니다. 순간 제가 스치는 생각이 아! 나는 율법 즉 모세 오경을 이 친구보다 모르는데 뭣을 전하지 하니 예수님도 성령님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전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참 부끄럽게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주께서 이런 저를 책망치 않으시고 차근 차근 위와 같이 유대인을 전도하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미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르면 배워서 하면 되고 잘못된 길로 가면 알게 되면 돌이키면 됩니다.
보는 바와 같이 유대인이나 이방인 성도나 다 같이 추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바로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과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룸 입니다. 이에 있어서 둘이 목적이 완벽하게 같습니다. 이렇게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면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의 삶의 목적이 동일함을 알게 되고 이렇게 되면 유대인 전도는 길이 열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세우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스라엘이 자국을 세우는 비결이 다 율법의 준수에 있음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인간이 예수님을 믿던 예수님을 모르던 율법을 배워서 지켜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헌법이 있고 법이 있는데 지구상에 어떤 인간도 법이 없이 바로 살 수가 없고 집단이나 공동체나 국가나 민족이나 법이 없는 단체가 없습니다. 이는 인간은 법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도 자기 마음대로 믿고자 하고 믿지 않는 이는 아예 기준이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조금 잘나거나 세력을 지니게 되면 독재를 행하면서 하나님을 절대로 따르지 않으려는 성향이 너무나 강합니다. 모든 세상의 독재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싫어하고 백성이 예수를 믿는 것을 너무나 싫어해서 하나님 이름만 소리내도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도 절대로 예외가 없이 교회가 커지고 권력화 되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교회에서 독재를 합니다. 인사권을 쥐고 돈줄을 쥐고 부목사 전도사 임명권을 쥐고 장로도 마음대로 세우고 모든 교회 시설과 성도를 자신의 종과 같이 부려 먹습니다. 이런 인간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지 못함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드신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을 온 세상에 주십니다.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이 법대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분의 나라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righteousness and justice)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리고 이런 조상의 전통에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시면서 잘 지키면 축복, 어기면 저주가 임함을 선포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이 아멘 함으로 계약을 맺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이 율법을 지키면서 가는 곳 마다 증거하고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을 거부하고 믿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의 뼈대가 되는 율법을 수천 년을 통해서 잘 보존하고 전하고 그리고 지키고자 하니 이는 온 세계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서게 되는데 큰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모두가 이렇게 율법을 완성하면 이스라엘은 수천 년을 통해서 율법대로 되로 되는 나라를 세우고자 했으니 그 목적이 일치하니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하고 이방인은 이스라엘에 접을 붙은 상태로 여기면서 이 나라를 존중하고 전도해야 했어야만 했는데 이스라엘은 예수님 오시기전 멸망한 후 약 2500년을 떠 돌면서 나라가 없는 고난을 당했고 개신교 독일은 이 나라의 백성을 전부 말살을 하고자 했으니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당한 것을 생각하면 예수를 믿는 성도와 나라가 전도를 해도 시큰둥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나라와 달리 이스라엘과 같이 3000년을 침략을 받은 국가이고 공격을 하지 않고 용서하고 이들 나라와 평화를 추구한 나라로서 우리가 전하는 평화의 복음에 대해서 그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너희를 지극히 존중한다. 너희의 율법에 대한 태도를 귀히 여기고 존중하며 인정한다. 그리고 너희가 당한 수난의 역사를 같은 입장에서 이해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희가 추구하는 율법대로 되는 세상을 너희와 똑같이 추구하지만 2000년 너희 조상 바울과 같이 우리 힘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나 우리나 다 율법으로 죄인임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구약에 약속이 된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용서를 받고자 한다. 우리는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이를 회개한다. 그리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오신 율법과 예언대로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는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로 죄를 용서받고자 한다. 이렇게 된 우리는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우리는 구약의 하나님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들과 성령으로 계심을 믿는다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을 완성해서 율법대로 통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이미 에스겔 선지자는 아래와 같이 구약에서 약속을 하셨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대로 우리는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너희가 없는 예수님과 성령님을 동시에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하지 않고 너희의 조상 예수님을 믿던 제자들의 방법으로 너희보다 훨씬 더 율법을 잘 지키고자 한다 봐라! 우리의 삶과 행실을 보면서 모든 면에서 너희보다 율법도 잘 지키고 사랑도 잘 하고 율법도 굳게 세우는 우리를 보면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라 이렇게 전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있고 그렇게 전도할 것입니다. 저의 능력이 1%도 없는 성령의 능력이요 보혈의 공로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이 땅에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먼저 세워지고 가정에 세워지며 교회가 그렇게 되고 이런 교회와 성도가 사는 곳이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저는 이 나라를 세우고자 합니다. 행정고시를 공부해서 이 땅에 통일된 조국을 세우고자 했던 죄인이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공로로 온 지구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영광이 차고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성도가 그렇게 귀한 직분의 소유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함께 힘을 내어 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를 이 땅에 온 지구에 세웁시다!!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 함께 이 일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