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4 (첫째 짐승)
성경본문:다니엘 7: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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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밤에 침상에서 잠을 자는 가운데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뇌 속으로 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서 불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큰 네 짐승들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보았던 짐승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17절 말씀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천사가 다니엘이 본 이상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 내용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세상의 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읽은 단7:4은 다니엘이 본 이상 가운데 나타나는 첫째 짐승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모습이 사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사자와는 달리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날개처럼 큰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독수리의 날개를 가지고 있는 이 사자는 어느 나라의 어느 왕을 상징하는 것이겠습니까?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임금이 꾸었던 꿈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꿈에서 한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머리는 정금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금으로 만든 머리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사자로 또는 독수리로 종종 비유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몇 구절만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렘4:7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아는 유다 나라가 바벨론의 의해 멸망당하는 것을 보면서 슬퍼하며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열방을 멸하는 자가 나아왔으되."
문맥상 여기서 "열방을 멸하는 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열방을 치러 출정한 것을 상징적으로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다"고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 렘49:19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보라 사자가 요단의 수풀에서 올라오는 것같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로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뇨."
여기서 "그가 와서"라는 것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넘어가서 22절 말씀을 봅니다.
"보라 원수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그 날개를 보스라 위에 펴는 그 날에."
여러분 사자 또는 독수리라는 말씀이 자주 나오지요? 문맥상 사자와 독수리가 누구를 가리킵니까? 28절 말씀을 보십시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공격된바."
모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곳만 더 찾아보겠습니다.
합1:8의 말씀입니다.
"그 말은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 기병은 원방에서부터 빨리 달려오는 기병이라 마치 식물을 움키려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하박국 선지자가 갈대아 사람들, 곧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를 공격하기 위해서 쳐들어온다는 두려운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의 군사들이 유다를 치러오는 모습을 마치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내려오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다고 묘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사자나 독수리로 묘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대궐의 문전에 보면 돌로 만든 짐승의 모양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해태, 거북이 등등의 모습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옛날 느부갓네살 임금당시의 바벨론 신전(Ishtar Gate)앞에도 짐승의 상이 있었습니다. 무슨 상이었겠습니까? 사자 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은 사자로 종종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다니엘이 첫번째 본 짐승, 곧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사자와 같은 짐승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을 묘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봅니다.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있어서 이것이 좋은 징조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흉한 징조이겠습니까? 날개쭉지를 잃어버렸으니까 당연히 흉한 징조이겠지요.
다니엘서 4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두번째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까 땅 중앙에 한 큰 나무가 서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점점 더 자라서 그 꼭대기가 하늘에까지 닿았다고 했습니다. 가지도 무성하고 열매도 많았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 뒤에 하늘에서 한 거룩한 순찰자가 내려왔습니다. 그 순찰자는 그 나무의 그루터기만 제외해 놓고는 몽땅 베어버렸습니다.
이 꿈의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과연 느부갓네살 왕은 7년동안 정신병에 시달렸습니다. 그에게서 사람의 마음이 떠나버리고 그 대신 그에게 짐승의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7년동안 그는 소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그는 하늘의 이슬을 맞으면서 들짐승과 함께 거했습니다. 소처럼 풀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의 머리털은 독수리의 털처럼 되었습니다. 또 그의 손톱은 새의 발톱처럼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는 "그 날개가 뽑혔고"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다.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7년이 지난 뒤에 느부갓네살 임금이 하늘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때에 그의 총명이 그에게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 동안에는 짐승처럼 네 발로 걸었지만, 이제는 사람처럼 두 발로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잃어버렸던 권세도 다시금 되찾게 되었습니다.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그를 사로잡고 있던 짐승의 마음이 떠나가고, 본래의 사람의 마음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하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처럼 두 발로 "섰고"가 아니고, "서게 함을 입었으며"라고 했습니다. 또 사람의 마음을 "찾았고"고 아니고, "받았으며"라고 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누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람의 마음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다시금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임금을 낮추게도 하시고, 다시 높이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느부갓네살 임금을 낮추셨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낮추셨습니다.
단4:30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느부갓네살 왕이 왕궁 위를 거닐면서 큰 바벨론 성을 내려다보고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내 능력과 내 권세로 건설해서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내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그는 자기를 최대한 내세웠습니다. 교만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습니다. 그를 낮추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정신병자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넘어가서 34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그 전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하늘을 우러러 볼 줄을 몰랐습니다. 자기가 제일 높은 줄 알았습니다. 그가 꿈에서 본 나무는 그 끝이 하늘에 닿았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하늘 높은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겸손하게 하늘을 우러러 볼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가 겸손해 지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34절을 계속 읽어봅니다.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로 이르리로다."
느부갓네살 임금을 낮추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셨던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게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교만하지 맙시다. 교만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시채를 뒷발질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이 바리새인 때에는 자기가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자기가 제일인줄로 알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생각을 하고 다 잡아서 죽이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멸하는 정도로 만족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바사 나라의 하만이 유대인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생각을 한 것처럼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공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다메섹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약 160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입니다. 걸어서 6∼7일정도 걸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곳으로 가던 도중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이 네게 고생이구나!"
소나 말을 움직이게 할 때 쓰기 위해서 가시처럼 뾰족하게 깎은 나무가 가시채입니다. 뾰족한 가시채를 향하여 뒷발질을 하면, 뒷발질하는 그 당사자만 더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요, 곧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깨닫고 회심을 했습니다. 겸손해졌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자기야말로 율법에는 흠이 없고, 자기가 제일 잘 믿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가 죄인일 뿐더러 그것도 죄인 가운데서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 만큼 바울이 겸손해졌습니다. 그리해서 바울은 남달리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지리라." 교만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낮추십시다. 오늘 이 하루도 겸손하게 우리의 마음을 낮추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모두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