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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도행전 9장에는 사도 바울의 14년 정도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사울은 히브리어 이름이고 바울은 그리이스어 이름이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 사울의 이름을 가지고 온 것이다. 초대왕 사울도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간 것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로부터 사도로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다른 주님의 제자들과 사귀기 위함이었다.
종은 같은 종에게 사명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종이 다른 종을 세우겠다고 하면 그것은 주인을 반역하는 행위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지 그 어떤 사람의 종이 아니다. 간혹 착각을 하는 목사들이 있다. 자기들이 목사 안수를 주어야 주님의 종이 되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친다. 자기가 노회장이니까, 자기가 총회장이니까 자신에게 목사를 세울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큰 착각이다.
어떤 회사에 소유주는 자신이 볼 때 능력 있는 사람을 골라 승진시키고 어떤 일을 맡길 권한이 있는 것이다. 다른 직원들은 회사의 소유주만 할 수 있는 그 일을 방해할 수 없다.
사울은 주님께로부터 사도직분을 받았지 사도들에게 사도 직분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울은 주님께 사도의 직분을 받은 후 다른 사도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가지 않고 곧장 아라비아로 가서 삼년 동안 주님이 주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다. 3년 후에 다시 주님을 처음 만났던 만났던 다메섹으로 왔다가 거기서 아라비아 왕이 보낸 암살자들을 피해서 다메섹에서 도망나왔을 때야 비로소 예루살렘에 가서 주님의 다른 종들을 만나볼 생각을 했던 것이다.
사실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주님의 제자들을 만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3년 전 거기서 자신은 스데반 집사를 죽였고, 주님의 제자들을 죽이거나 가둔다고 날뛰었었기 때문이다. 그 때 주님의 제자들에게 준 피해가 막대했고, 그의 이름은 악명높았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사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만날 면목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서 그래도 한 번은 주님의 제자들을 만나서 사죄도 하고 자신이 주님으로 부터 사도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울이 사도들에게 사도의 직분에 대한 인증을 받으러 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님의 종은 주님이 임명하신다. 목사가 장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장로를 세우는 것이고, 교회가 집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집사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종이지 그 누구의 종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그 누구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다.
장로교회는 민주주의 정치라서 장로를 세울 때도 투표로 선출하지만, 교인들이 장로를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장로를 세우시는 것이다. 교회 안의 모든 주님의 종들은 주님께서 세우신 자들이다.
사람이 변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박힌 이미지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사람은 항상 위험을 두려워하고 대비하는 존재라서 자신에게 위협을 준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기억을 쉽게 지울 수 없다.
나는 우리에게 위협을 가한 앞 집 우동집 사람들의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남자들이 건장하고 등치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다. 한 두 번 얼굴을 마주쳤지만 자세히 보지는 않았다. 지금도 역시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다.
지난 구정이 끝나는 날에 거제도에서 점심 나절에 돌아와서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우동집 형제들이 차에서 내리는 나에게 달려 오더니 다짜고짜로 교회로 들어오는 길에 대한 사용료를 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용료를 낸다고 말한 적은 없고 땅이 있으면 찾아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리 와보라고 하면서 교회 진입로의 절반 이상을 가리키면서 여기까지가 다 자기들의 땅이니 펜스를 치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펜스 칩니다." 협박조의 말이었다. 그들이 말한 그 지점까지 펜스를 친다면 우리는 교회를 드나들 때 한 사람이 겨우겨우 드나들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 후에도 문자로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진입로를 펜스를 쳐서 막는다느니, 길에 대한 통행권을 주장하려면 법으로 해결하라느니 온갖 협박을 다 했었다. 결국 그들이 돈을 많이 들여 측량을 했다. 자기들의 땅에 경계를 긋고 펜스를 치려고 한 것이었다. 그 측량이 있는 날까지 장로님과 사모님과 성도들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측량을 해 보니 그 사람들의 땅은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교회의 땅을 그 사람들이 무단으로 침범해서 펜스를 치고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세상 사람 같았으면 측량이 끝난 후에 욕이라도 했을 것이고, 당장 교회 땅에 세운 건물을 그들의 땅으로 옮기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었다.
지난 주 그들의 위협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우동집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그 집 옆을 지날 때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린다. 아주 사소한 사건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불편하다면, 악랄하게 자신들을 핍박했던 사울을 기억하는 주님의 제자들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악랄하게 자신들을 몰아붙였던 사울이 3년 정도 지나서 다시 예루살렘에 나타나서 자신이 주님의 종이 되었다고 하니, 주님의 제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떴다는 소문이 들리자 사도들이 다 도망쳤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발이 좀 빠른 사람들이었는가?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까지 죽더라도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말만 풍성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잡히시던 그 순간에 순식간에 다 도망치고 어떤 제자는 벌거벗고 자다가 벌거벗은 채로 도망쳤다. 지금 자기 주위를 돌아보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천사와 같은 얼굴로 앉아 있지만 내가 정말 위험에 처해 있을 때는 같이 죽을까봐 순식간에 도망칠 사람들이 틀림없다. 이것이 위험에 대한 인간의 태도이다.
그 때 바울을 돕는 사람이 나타났다.
(행 9: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위로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나바였다. 바나바가 주님의 제자들에게 바울에 대하여 잘 말해 주어서 사울은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만 만날 수 있었다.
사울은 베드로와 15일 동안 함께 있으면서 주님의 종으로서 서로를 확인했다. 베드로는 그래도 양심적인 사람이라 예수님이 잡혀 끌려 가실 때도 슬슬 뒤를 좇아는 갔던 사람이다. 결국 계집종에게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따라는 갔던 사람이다. 다른 제자들은 꽁지가 빠지게 다 도망쳤다는 점에서 그래도 좀 나은 사람이 베드로이다.
이 바나바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처음 부분에 이미 소개가 되어 있다. 그는 부자였지만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를 위해서 기부하였다. 그는 후에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다.
사람은 사람이 돕는 것이다. 하나님은 도울 사람을 보내 주신다. 사울은 하나님의 붙여 주신 바나바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바나바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바울을 세 가지 면에서 소개했다.
1.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
2. 예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일에 대한 내용
3. 바울이 예수님이 맡겨주신 일을 어떻게 잘 수행해 왔는가
우리도 예수님의 종이라면 이 세가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1. 나는 언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나는 언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는가? 언제 예수님의 종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가?
구약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야곱, 모세도 다 이 세가지를 다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다. 갈데아우르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고, 미디안 광야 가시덤불나무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초대교회 이단자 마술사 시몬은 이런 경험이 없는 종교지도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만난 경험 없이 하나님을 만난 후 목회를 하는 사람들에게 방법을 배워서 목회를 하려고 하다가 저주를 받은 것이다.
2. 예수님은 주님의 종인 나에게 어떤 일을 맡기셨는가?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인가? 목회자인가? 장로인가? 선교사인가? 평신도인가? 집사인가? 섬기는 일인가? 가르치는 일인가?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인가? 나는 구체적으로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3. 지금까지 나는 주님이 주신 사명을 어떻게 수행해 왔는가?
나는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어떻게 일해 왔는가? 어디서 일했는가? 어떤 방식으로 일했는가? 꾸준히 일해 왔는가? 변함없이 일할 수 있겠는가?
바나바의 말에 대한 사도들과 주님의 종들, 주님의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우리는 모두 주님의 종들이다. 종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 할 필요도 없고, 주인의 명령 앞에서는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주인이 어떤 종을 쓰겠다고 하면 다른 종들 은 반대할 수 없다. 주인은 자신의 뜻대로 종을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바나바는 주님이 바울을 어떻게 선택하시고 어떻게 쓰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어떻게 바울이 자기 사명을 감당해 왔는지 설명했고, 다른 주님의 종들은 주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더 할 말이 없었다.
예수님이 아직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베드로는 동료 요한을 가리키며 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되겠냐고 질문했다. 그 때 주님은 베드로에게 딱 잘라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걸 왜 신경 쓰냐?"
(요 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우리는 모두 주님의 종으로서 다른 종을 판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은 그 종을 쓰시는 주님께 반역하는 일이다.
(행 9: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울은 제자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바나바가 없었으면 사울이 있을 수 있었을까? 사울이 교회에서 인정받는 사도가 되는데 바나바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면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마치 건축물처럼 여러 가지 재료들이 서로 잇대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31절에는 교회에 대하여 '든든히 서 간다'는 표현을 썼다. 그것은 건축 용어이다. 교회가 마치 건물이 여러 가지 재료로 건축되어 간다는 뜻이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사울은 혼자서만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들과 연합하여 하나의 건축물의 재료처럼 사용된 것이었다. 그래서 사울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서 가장 먼저 교회의 반석과 기둥이 된 베드로와 야고보와 교제했고, 교회의 사역자들과 교제하면서 자신이 그들과 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함께 있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량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그 사람은 불량한 사람이다.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선량한 사람이다. 사울이 주님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그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행 9: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그런데 사울은 성격 상 큰 특징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문제라면 문제였다. 저돌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실수도 많았다.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도의 직분을 받은 뒤에 1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대로 사도다운 일을 못한 것은 그 성격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나자마다 아라비아로 가서 저돌적으로 선교를 하다가 아라비아 왕의 미움을 받아 도망쳤었고, 3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도 분란과 소동을 일으켰다. 그가 가는 곳은 항상 분란과 소동이 일어났다. 바울은 불 같은 존재였다.
바울 같은 사람은 한 곳에서 진득하니 목회를 할 성격은 못되는 사람이다. 한 지역에서 오래 동안 목회를 하는 사람들은 교인들이 좀 잘 못해도 눈도 감아 주고 기다려 주고 참아 주어야 하는데 바울 같은 사람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달달달달 볶는 성격 스타일을 가졌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은 항상 소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한 곳에 불을 지르고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치거나 이동을 해야 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대제사장들과도 싸웠고 심지어는 자신의 은인같은 사람 바나바와도 심하게 다투고 갈라섰겠는가.
비슷한 예로 부흥사들은 자기의 교회 목회는 잘 못한다. 그러나 여러 교회들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성격상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불을 지르는 스타일의 목회를 했던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들과의 갈등
바울은 3년 전 헬라파 유대인들과 합세해서 스데반을 죽였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앞장서서 일했던 헬라파 유대인들과 논쟁을 벌여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헬라파 유대인들이 도저히 바울을 용서할 수 없었다. 바울을 받아들인다면 자기들은 죄없는 스데반을 죽인 살인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정당했다고 믿으려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자신들과 함께 살인을 했던 사람이 그 일이 잘못된 일이었다고 하니 가만히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헬라파 유대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은 두 종류였다. 본토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 본토 유대인은 조상 대대로 거기 살아왔던 유대인들이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조상 때 외국으로 포로로 끌려가거나 추방되어 갔다가 예루살렘에 다시 살러온 유대인들이었다. 아시리아나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을 때 똑똑한 사람들은 그 땅에 남겨 두지 않고 다 포로로 끌고 가거나 추방시켰다. 왜냐하면 똑똑한 사람들은 다시 거기서 반역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겨진 사람들은 정복자들이 보기에는 신념도 없고 신앙도 없고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종자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바벨론으로 끌려 갔던 사람들은 거기서 살아남으면서 구약 성경을 대부분 완성했다.
예레미야서에 보면 바벨론이 포로로 끌고 가지 않고 남겨진 유대인들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하면 매우 똑똑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날 중국, 베트남, 에티오피아, 필리핀 등지에서 온 외국인들이나, 중국에서 일하러 온 조선족이나 고려인들은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잡일을 하러 온 사람들에 불과하지만, 그 나라에서는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남의 나라에 돈을 벌러 올 수 있는 것이다. 흩어진 곳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노력과 총명함이 필요하다.
현재 유대인은 절반인 600만명은 미국에, 절반인 600만명은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세워지기 전에는 유대인들은 나라의 땅을 잃고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가는 쉽게 짐작이 된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민족이 있다. 한국인이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한 번은 한국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한국인들 때문에 도저히 못살겠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주로 장사로 돈을 벌어 사는 사람들인데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들어오더니 유대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두에 나가서 신선한 생선을 띠어다가 팔았는데 한국인 장사꾼들이 나타나더니 새벽 5시부터 나와서 유대인들보다 먼저 생선을 뗘 가서 부두에 신선한 생선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더란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새벽 5시에 나와서 생선을 띠려 하니 한국인들이 벌서 새벽 4시에 와서 생선을 뗘 가서 남은 생선이 없더란다. 그래서 그들이 새벽 4시에 와서 생선을 띠려고 하니 한국인들이 벌써 새벽 3시에 와서 뗘 가더란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새벽 3시에 와서 생선을 띠려고 하니 한국인들은 그 전날 밤에 모포를 가져 와서 덮고 자다가 생선을 뗘 가더란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왜 부지런할까? 한국인의 부지런함은 한국인들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인들은 많은 외국의 침략을 받고 고난을 받았었다. 중국에 100년 동안 나라를 빼앗긴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일본에 40년가까이 나라를 빼앗겼었다. 주변의 강대국들이 우리나라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점에 위치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고려인들, 조선족들이 왜 존재하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대국들의 등살에 도저히 견디지 못해서 외국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이 오늘날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는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받아서 뿔뿔히 흩어져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역사가 즐비하다. 한국에 돈을 벌러 온 조선족들과 고려인들 3세들을 보면 얼마나 똑똑하고 영리한지 모른다.
바울이나 스데반, 빌립 같은 사람들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유대땅에서 쫓겨나서 흩어져 살던 사람들의 자손들이다. 조상들이 고생을 많이 해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살게 되었고, 그 후손들은 외국의 큰 도시에서 태어나서 지식을 쌓고 돈을 벌고 난후 조상들의 땅인 유대 땅 예루살렘에서 한 번 살아 보고자 이주해 온 사람들이거나 성경을 더 배워 보고자 유학을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헬라파 유대이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들이 왜 예루살렘으로 살러 왔을까? 그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기 때문이고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성전은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스데반이 헬라파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이겼고, 이제는 바울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논쟁하여 이겼다는 것은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똑똑한 헬라파 유대인들과의 논쟁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데반을 논쟁으로 이길 수 없게 되자 스데반을 죽였었고, 이제 바울에게 이길 수 없으니 바울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본토 유대인들보다 뛰어났듯이,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보다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더 뛰어났다. 오늘날의 신약 성경의 분량을 보면 헬라파 유대인인 바울이 쓴 글이 다른 제자들의 글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기독교가 바울 종교라고 불릴만큼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울의 가르침이 더 인정을 받고 있다. 우리는 신약 성경을 27권으로 묶고 있는데, 사실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은 불교의 팔만대장경보다 더 적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방대한 양의 책들 중에서 오직 27권만을 인정하여 성경으로 읽고 있다. 그 27권에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의 글이 절반을 넘고 있다면 기독교 역사 속에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의 세력이 본토 그리스도인들의 세력보다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행 9: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형제들이라는 단어는 교회, 성도, 주님의 제자들, 그 도를 따르는 자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등과 같은 명칭이었다. 특히 주님의 제자들이 서로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초대교회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렵고 어두운 시대였다. 사람은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데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바울이 해를 당할 위험이 있다는 첩보를 받자 주님의 제자들은 바울을 예루살렘 밖으로 재빨리 빼돌렸다.
가이사랴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도시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가이사랴로 가게 되었다. 가이샤라는 헤롯 대왕이 만든 거대한 인공 항구 도시였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베들레헴 주변의 모든 어린아기들을 죽였던 헤롯 대왕이 만든 도시였다.
정치적인 수완을 발휘하여 유대땅의 왕이 된 헤롯 대왕은 위대한 건축가였다. 그가 건축한 것들 중에는 예루살렘 성전도 있었다.
가이사랴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그 지역은 고대로부터 항구가 필요하기는 했지만 절대 항구가 될 수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건축기술력을 발휘해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고 큰 항구 도시를 건설했다. 수심이 깊은 항구라는 것은 큰 배들이 정박할 있는 항구라는 것이다. 그 항구 도시는 그 후 수난을 겪어 지금은 폐허가 되고 일부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사람이 돌보지 않는 집은 자연스럽게 폐허가 된다. 가이사랴도 철저히 파괴되어서 폐허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 때의 유적은 볼 수 있다. 지금 가이사랴는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원형 경기장, 연극장 같은 유적들을 볼 수 있다.
헤롯이 가이사랴라는 도시를 아무 의미 없이 만들지는 않았다. 특별히 만드는 도시는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다. 가이사랴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신도시였다. 오늘날의 세종시나 충북 혁신도시 같은 도시였다. 충북 혁신도시에 가면 마치 서울이나 일산에 가 있는 것같이 생각이 든다. 거기에 비하면 증평이나 진천에 오면 전형적인 시골 도시에 와 있는 것 같다. 전혀 시골티가 나지 않는 곳이 충북 혁신도시이다. 아무 것도 없던 산들을 부루도저로 밀어 평지를 만들고 충북 혁신도시를 만든 이유는 당시 대통령이 밀집해 있는 서울의 인구를 분산시키고 지방을 발전시켰다는 칭송을 듣기 위함이었다. 충북 혁신도시를 만들고 거기 소비자보호원이라든가 법무 연수원 같은 공공관서를 이주 시켜 충북을 발전시키고 인기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여러가지 목적으로 헤롯은 가이사랴라는 항구도시를 12년에 걸쳐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도시의 이름을 모든 로마 황제에게 붙여졌던 명칭인 가이사를 써서 가이사랴로 지었다. 가이사랴의 뜻은 '가이사의 도시'이다. 그리고 황제에게 그 도시를 바쳤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로마 황제에게 인정 받는 왕이 되었다. 헤롯은 에돔 족속의 후손으로서 로마에 대하여 뛰어난 아부실력이 없었으면 아마도 유대의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헤롯이 가이사랴를 지은 것은 마치 전 이명박 서울 시장이 어느 교회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당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 말을 상당히 기분 나쁘게 해석하고 떠들썩했다.
고대 중요한 도시는 모두 물건이 왔다 갔다 하는 교통의 요지에 있었다. 바울의 고향인 다소도 그랬다. 가이사랴는 동서남북으로 산재해 있는 고대 도시의 상인들이 배로 물건을 이동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항구 도시가 되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부산과 같은 항구도시가 건설된 것이다. 기후나 지형적으로 보면 지중해는 겨울 폭풍이 심해서 물건을 실은 배들이 정착해 있을 항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헤롯은 가이사랴 항구도시를 만듦으로써 경제적으로, 경제적으로 이스라엘을 부유하게 한 지혜로운 왕이었다.
그 외에도 가이사라는 빌립 집사가 목회 했던 곳이며,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해 세례를 받았던 곳이고,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이 거주했던 곳이고, 바울이 로마로 잡혀 갈 때 2년 동안 구금되었던 곳이다.
바울이 1, 2,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잡혀서 로마로 압송되어 가기 시작한 가이사랴 항구는 매우 의미가 있는 항구이다. 바울이 로마로 간 사건이야 말로 복음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에 전해져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그리하여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울이 가이사랴를 거쳐 다소로 간 후 그에 대한 기록은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라지게 된다. 그가 있었기 때문에 소동이 일어났던 유대, 갈릴리, 사마리아 땅이 그가 사라지자 조용해졌다. 바울은 그만큼 불 같이 소동을 일으키는 성격의 사람이었다.
아직 그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덜 되었던 것 같다. 10년이 흐른 뒤 그는 안디옥에서 그를 찾아 온 바나바를 따라 다소를 떠나 안디옥에서 일할 수 있었다. 훌륭한 사람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실수하고 많이 실패할수록 회개 하였을 때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울도 그런 준비 기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말을 다른 사람이 들을 때 조금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느긋하게 했다. 그 사람은 원래 성격이 급하고 말을 빨리하고 당황하거나 화가 나면 말을 더듬기까지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노력을 통해서 말을 천천히 느리게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원래 성격이 느긋하고 말을 천천히 하는 사람은 그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성격이 급한 사람이 말을 천천히 느긋하게 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주인이 종을 쓰기 위해서는 적당한 종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종을 훈련 시켜서 일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사울은 예수님의 종이 되어서 사도의 직분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그를 그의 고향 다소로 가게 하시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명의 시간을 보내게 하셨다. 그가 거친 그 각고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시작한 세계 전도 여행을 완벽하게 이룰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 날 우리가 아는 바울은 없었을 것이다. 고난이 많은 사람은 큰 그릇이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성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성격을 다스릴 수 있는 인내가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