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
지난 주말 아내와 길음동 어머니 댁에 갔다. 어머니는 주름이 많다. 벌써 할머니가 되어있다 번번이 느끼는 것이지만 어머니의 주름을 보는 건 서글픈 일이다. 조금이라도 유심히 볼라치면 금새 눈물이 나오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 앞에 자식이란 감상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아내의 한약을 지으려 경동시장엘 가기 위해서였다.
경동시장, 아 경동시장!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재래 시장의 면모를 유지한 채 불야성, 그야말로 불야성(不夜城)을 이뤘던 시장들이 정말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그것은 끔찍한 노릇이다. 더구나 어머니의 말로는 경동시장도 어머니와 같은 연배의 할머니와 중년 아주머니들의 배낭을 매고 다니는 것이 대부분이고, 옛날 같이 젊은 주부들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야말로 세계 자본주의의 전형이 하나로 마트, E마트, 아울렛, 까르프 등으로 가는 것이다. 그럴수록 규모에 밀리는 재래시장은 풍전등화처럼 꺼져간다. 지방 어느 곳을 가도 이제 작은 소읍까지 마트가 생기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일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그나마 명절을 열흘 앞눈 까닭에 사람들이 있는 편이다. 눈물이 나온다. 내가 정말 늙은이가 된 걸까? 떨이를 외치는 아주머니, 커피 수레를 밀고 가는 커피장수, 정육점의 고기들, 야채들, 쌀쌀한 날 질척이는 바닥을 어슬렁거리며 나는 문득 이곳이 너무나 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걷는 것조차. 성지를 찾는 기분이다. 중학교 때 엄마를 따라 이곳에서 옥수수를 한푸대 사러 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부피가 크고 무거워 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 그걸 마루에 앉아 다듬고 솥에 넣어 쪄먹던 맛! 그 맛! 가난하지만 정직하게만 살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싸우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시장의 이미지는 너무나 생생하다. 대학에 가서도 야학 기금 마련을 위한 주점을 하면서 이곳에서 새벽시장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두어번 이곳을 지난 적이 있고, 이렇게 무엇을 사러 온 것은 그야말로 십년은 된 듯하다.
왜 외국관광객들이 남대문, 동대문, 경동시장을 보면 놀라는지,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맛을 그런 재래시장에서 찾는지 새겨볼 일이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고 싶다. 힘들 때 답답할 때 문득 경동시장을 걸어보기 바란다. 골목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세상의 모든 냄새와 소음이 어울어진 화음을 들어보길 바란다. 우리 같은 먹물들에게 이곳은 명상의 장소이기도 하리라.
경동시장, 아 경동시장! 그것은 불국사나 석굴암같이 장엄한 유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