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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후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에 여운이 남는것을 회상해 보고 싶다..
여인과 미성년 소년의 최초 만난후 3일간의 성적끌림은 강렬했다. 육체적인 성관계후 마이클이 한나에게 이름을 물을때 왜 묻는지 한나의 경계심 또는 향락에서 감정을 굳이 배제하려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의식이 느껴진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솔직한 감정 드러내기는 몇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마이클과 생존자 유태인의 딸의 감정표현을 영화가 끝나갈 무렵인 맨 나중 '용서'라는 중요 대목을 설명하기 위해 잔잔하게 사용하는것 같다. 용서의 어원은 그리스 말로 '놓아주다, 내려놓다'의 뜻으로
마이클과 생존자 딸은 자신을 힘들게 한 사건을 용서한 후, 홀가분하게 본래의 자신의 삶안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한나의 유언대로 유태인학살 생존자에게 자신의 전 재산 주기를 희망했으므로 마이클은 유일한 생존자 딸이 거주하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녀를 만나 한나의 유언을 전해 주지만, 아마도 그때 까지는 서로의 입장차이만을 주장하느라 분노가 있었던 것 같고, 서로의 마음을 받아줄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감독은 서로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그들 사이에 낡은 철로 된 깡통을 테이블위에 제시한다. 깡통의 추억은 어린시절 소중한 보물을 넣어 두었을 법한..이제는...글자와 그림이 지워져 형태가 흐릿해진 깡통...옛 추억을 충분하게 회상하게 하는 도구..
유태인 딸은 철깡통으로 인하여 어린시절 행복했던 추억에로 회상하면서 마음은 격분상태에서 이완에로 안정이 취해지면서, 마이클의 이야기를 연민의 정으로 경청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것 같다.
유태인 딸의 음성은 흥분되고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신체의 이완은 무감각해지거나 기운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몸과 감정을 더 활력있고 깊이있게 경험할때 마음에서 일어남을 알 수 있었다.
마이클은 자신의 15세때 일어난 첫 사랑의 경험을 누구 앞에서 말해 보기는 처음이라며 약간은 주저하면서 유태인 딸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순간 그의 연기는 불안하면서도 긴장된 얼굴 표정을 감독은 클로즈 업 해주어서 잘 볼 수 있었다.
말하기전 마이클이 조심스럽게 유태인의 딸의 마음을 살피는 그의 연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만큼
자연스러웠다. 안정에 대한 경계심 및 두려움과 설렘과 부끄러움 등의 복합감정이 느껴졌고,
그리고 편안함이 느껴졌을때 마이클은 말하기 시작했고 그동안의 긴 세월의
힘겨움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아니 그의 환한 표정에서 새 삶의 활력을 볼 수 있음이 좋았다.
처음 말하는 아마 마이클 역시 수치감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치감이든 죄책감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모든 긍정적 에너지로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앞에서 말할 수 있을때 그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기에...
그때 마이클과 유태인의 딸은 과거의 상처는 각자 달랐지만.. 용서를 하게 된것 같다.
용서는 사람의 본성에서 일어나며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에서 온다. 용서는 사건자체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는데에서 온다. 용서는 자신의 분노, 미움, 섭섭함, 서운함, 적개심, 복수하고 싶은 욕망을 모두 경험한 후에 일어나는것 같다. (하지만 그런 충동을 행동에 옮기지 않을때- 마이클은 한나가 떠난 후에 몇번의 재회가 있었지만 바라보기만 했다)
분노라는 감정의 배경을 탐색하므로써 그 감정이 지금여기에서 자기안에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봄으로써 분노 등 그밖의 복잡한 자기 감정을 붙들고 있는 구조를 느슨하게 하면서 과거의 속박에서 자신을 풀어주는 작업을 마이클과 유태인의 딸은 그렇게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것 같다.
마이클은 법학 동기생인 한 여성과 사랑을 나누어 결혼을 했지만...이혼하여 딸과 지내지만,
딸과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단절되어 살아간다.
딸 역시 그때 사건진술에 대하여 자신의 잘못으로 아빠와의 관계가 소원해진것은 아닌지 오랫동안
무거운 마음으로 힘들어 하다가 아빠와의 재회에서 드디어 자기 감정을 고백하여, 확인을 받는다..
마이클은 딸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잘못있음을 인정할때
그제서야 딸은 죄책감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웃는모습이 인상깊었다.
죄책감은 자신을 자학하는것...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봐주지 못함...
아니 자아를 존중해 주지 못함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 성장하면서 자아존중감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자아존중감이 높아지면, 삶은 경이롭고 새롭고 행복이 충만하다.
이렇듯, 죄책감이나 수치감은 당사자에게 확인 또는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무조건적 수용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묶여 있는 감정을 털어놓아, 자유를 얻어 행복을 회복함이 중요하게 느낀다..
마이클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처음으로 털어놓아 마음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었던것 같다.
나는 영화의 각본이 이 대목에서 무척 마음에 든다. 한나의 종신형으로 인하여 마이클은 그녀가 자연사로 사망할때 까지 구속감으로 책을 읽어줄 수도 있었을텐데....
감독은 노년으로 변해가는 마이클에게 힘들었던 그의 삶의 종지부를 찍게 해주는 한나의 자살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동기를 준점이 좋았다. 사랑도 아닌것이 마이클은 아마도 그의 모든 정신적 에너지를 한나에게 쏟은것 같은 느낌이 드는것은 눈이 깊게 파이는 등 체격이 말라가고 있는 모습....
제2차 세계대전중 한나는 단순한 마음으로 직장이 필요해서 들어간 곳인데 무지로 인하여 유태인학살에 가담하게 되는 전쟁 세대의 범행을, 자신의 전적인 잘못은 아니지만 속죄하는 마음이 영화는 조금 비춰주고 있는것 같다. 자신의 전 재산을 깡통에 넣어 생존자에게 전해달라고 했던모습에서....
연인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책 읽어주기'와 샤워후 침대에 '나란히 누워있기'로 단순해 진것 같다.
30대 여인 게이트 윈슬렛(한나 역)과 10대 소년 데이빗 크로스(마이클 역)가 사실 지속적으로 만나야 하는 공통점의 소재를 감독은 잘 선택한것 같다.
여인은 글을 읽을줄도 쓸줄도 모르고 소년은 15세의 재 학생으로 학교에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사항이 문맹인 연장자의 질문사항일것이기 때문이다.
미성년 마이클에게 한나와의 성 관계경험은 그의 인생내내 마음한켠에 고착되어 남아 있는듯 하다.
구속감은 당시, 자신의 욕구충족에 최고를 경험했기에 마음안에 자리잡고 있는것일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끈이 어딘가 좀 부족하여 끊어짐이 느껴지지만....
각자의 욕구 충족은 달랐지만...공통점은 숨막힐듯 필요로 한 성적 끌림관계였던것 같다.
그 점에 대하여 영화는 각자의 인생에서 한 사람과의 강렬했던 성 관계 경험에서 좋았던, 좋았다고 생각하는 기억에로 '머무름'으로 표현된것 같다. 영화가 다 끝나고 스탭이름의 자막이 올라갈때 영화의 여운이 남아 회상해 보니..... 어쩌면 그것은 이기심 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2%가 부족한 듯한 그 정체는 그들 각자의 만남에 있어, 공통점은 같으나, 기대하는 바가 다른거 아니었을까? 마이클은 다른여성과의 정상적인 결혼생활도 유지 하지 못할 만큼, 한나를 마음에서 떠나 보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소하기 전날 교도소에서의 면회때 서로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 기대하는 바가 다르게 살아왔으므로 다른 대답을 한것 같다.
짧은 만남에서 비밀스런 향락을 즐길때, 소년 마이클은 사랑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나, 그역시 내면에서 한나를 부인하고 있었고, 한나 역시 소년을 밀어내는 몇 장면이 영화에서 포착되고 있어서 감독의 내용설정이 잘 반영이 되고 있는것 같다.. 육체적인 성 관계를 갖을지언정 감정의 교류는 영화에서 발견하기가 어렵다.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한나가 교도소에 수감되었을때 글을 배워 중년이 된 마이클에게 편지쓸때 역시 '꼬마에게는 여자가 필요하다' 라고 간단하게 진술을 전달할 뿐...
서로 마음을 보여주지 않는것 같다. 영화는 그렇게 어쩌면 철저하게 서로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까지 배제하는것 같다.
마이클은 법학을 전공하여 변호사가 되지만 어떤 한편으로는 한나와의 마음정리를 못한 탓일까?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는데도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한나와의 운명의 끈을 놓지 못하고
구속되는듯한 삶...세상은 변화하여, 꼬마는 어른으로 성장해 가지만, 내면은 마치 처음 한나와 마이클이 만나 열병같은 성관계를 갖고 어느 한 순간 아무 말없이 한나가 홀연히 떠나버리고...떠나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발견했지만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 당시 자신의 딱히 뭐라 말 할 수 없었던 소년 마이클의 시간안에 정지된 듯함.... 황량했던 그 시간으로 정지되어 있는 듯함....더 이상의 상상이 느껴지지 않는 시간. 더 나아가 한나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어 보이는 듯함....영화에서는 그렇게 까지는 보여주지 않지만 마이클을 대변한다면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중년이 되어 한나가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로 면회하러 갔다가 정문에서 되돌아 오는 그의 모습에서 현실과 생각의 차이를 느낀 것은 아닐까? 굳이 면회하지 않은 이유가 할머니가 되어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보다...그냥 자신의 생각에 남아 있는 30대의 한나를 기억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에서 하이라이트로 회상하고 싶은 핵심어는 무엇일까?
내가 정작하고 싶은 말은 여기에 있는것 같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2%가 부족한 듯한....그 정체는
한나가 갑자기 떠났을때의 혼란스러움...배신감, 불신감과 아울러...
내가 생각하기엔 <더 리더>영화의 핵심어는 수치감과 죄책감인것 같다.
죄책감은 심리적인 상태로서 마이클은 법정에서 증인의 위치는 아니지만 사실정보를 줄 수 있는 기회 놓침에 무거운 멍애로써 법정 참석 후 평생 괴로워 하지는 않았을까? 죄책감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녔던것 같다. 만약 수감된 한나에게 책읽기를 녹음하여 보내는 수고들이 '사랑'이었다면...
영화 맨 나중에 나오는 출소하기 하루 전에 만나서
서로가 알고 싶었던 사항을 확인하고자 질문을 했을때 영화는 반전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서로 하지 않음을 발견하면서
마이클은 그동안 한나와의 혼란했던 마음을 정리하는것 같다.
재판 법정에서 자신의 수치감을 감추기 위하여 한나가 모든 범법 책임을 지겠다고 거짓말을 할때,
그녀의 수치감을 그녀의 의사결정권으로 존중한다고 마이클이 자아 긍정성으로 생각을 갖었다면
아니, 처음에는 마이클이 사실중요정보를 증언하지 않는것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은 한나의 선택이 가혹한 형벌이 기다릴 지언정 그녀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만큼
그녀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하지만 영화장면에서는
형량이 줄어드는 중요정보사실을 폭로해주지 못한 마이클의 죄책감으로 표현된것 같다.
우리의 삶에서도 같은 상황에 부정적사고 보다는 긍정적 사고로 생각 가다듬기로 순간순간 선택해야 함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많은 연구논문에서도 위기상황에서 긍정적 사고를 갖는것이 자아 회복을 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많기 때문이다. 죄책감 역시 부정적 사고에서 비롯된것...
또한 수치감은 심리학적으로 구분해 본다면, 건강한 수치감과 해로운 수치감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건강한 수치감은 챙피하다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여 그 순간 날려 버리는것이나, 챙피하다고 느껴지는 모든 상황에서 감정관리를 발산하지 못할때 그 부정적 감정은 마음속에 억압되어 차곡차곡 쌓여 결국은 핵 덩어리처럼 마음안에 남아 해로운 수치감으로 존재하여 한나처럼 종신형 이라는 불이익을 받게 되는것이다.
모든 수치감의 원천은 '성(性)에서 시작되는것을 보면.....
수치감이 한나에게만 있을것 같지만,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이클에게도 수치감이 남아 있는것을 볼 수 있는것 같다. 영화 맨 나중 화면에서는 노년이 되어가는 마이클이지만 15세때 성적끌림으로 한나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말로 털어놓는 장면에서 확인 할 수 있다. 15세의 청소년기는 자아 정체감이 확립해 가는 시기이고 성 정체감이 발달단계에 있으므로 아마도 혼란스러움에 마음의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을 것 같다. 암튼....수치감을 갖은 사람은 긍정성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앞에서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털어 놓는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유태인 딸이 결국 심신이 이완되어 마이클의 말을 잘 들어주어 마이클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제서야 자유로움으로 웃는 그를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도 그이후 마이클에게는 한나와의 경험은 추억이 아니라, 인생에서 지나가는 한 사건에 불과하게 생각 할 만큼....기억에서 묻혀지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영화는 이렇듯 멋있고 맛으로 비유하면 맛이 있었다고나 할까? 암튼 재미 있게 보았다..
해로운 수치감을 무의식적으로 가진 어떤 가족구성원은 서로에게 악영향을 끼쳐 서로서로 무의식적 가해자가 되어 행복을 좀 먹는 결과를 갖게 되므로...지금 부터라도 마음안에 모든 감정이 올라올때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표현하여 광명을 찾아야 할 것이다. 부정적 감정이 느껴지면 즉시 감정관리를 잘 할 필요가 있고, 인간이라면 수치감은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건강하게 말이다....수치감을 갖고 있어야 관리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법정에서 한나가 글을 쓸줄도 읽을줄도 모름의 사실을 알렸다면 다른 피고인들처럼 4년 3 개월의 형을 살텐데...한나가 글을 모른다는 챙피함의 수치감을 감추는 자신의 선택으로 무기징역까지 가는 무거운 형을 받게 된다. 해로운 수치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얼마나 무서운지...감옥에서 그 무기징역을 선택할 만큼 자신에게 용납이 되지 않는것이 해로운 수치감의 결과이다.
한나는 종신형을 받았지만 교도소에서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한 것이 인정되어 20년만에 사면허가를 받아 석방하게 된다. 감옥생활중에 글을 읽을줄도 쓸줄도 알게 되었지만, 출소하게 되면, 마이클이 15세 였을때의 추억으로 계속 책 읽어 줄 수 있는지 한나의 질문에 마이클은 고개를 젓는것을 확인하며 다음날 석방 출소를 위해 만나기로 하였지만...결국 목 매달아 자살한다. 한나를 죽게 한 요인은 없다. 다만 한나가 살아야 할 의욕상실로 죽음을 선택한 것 뿐이다.
사실 누가 누구를 행동하게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은 무의식적으로 또는 너무 빠르게 자기행동에 동의한 것 뿐이다.
자살할때 그동안 읽었던 책들을 책상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맨발로 올라가는데,
발 상태에서 보듯, 교도소에서의 수감생활은 외로움과의 큰 싸움이기도 하지만, 혹독스러운가 보다...
피부가 갈라지고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해로운 수치감은 자신이 글을 모른다고 하는 그 챙피하고 부끄러움을 말하기 보다,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무기징역까지도 달게 선택할 수 있고, 무겁고 복잡한 감정덩어리를 힘겹게 지고 살 만큼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억압되어 온 감정인 것이다.
한나는 마이클이 책을 읽어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소포로 보내 준 정성에 재회 희망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처음으로 한나가 자살하기전 그녀의 방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이클에 관한 행복한 추억으로 방은 꾸며져 있었다. 시 한 귀절, 졸업식에서의 마이클 사진 등...
한나는 수감생활동안 마이클과 지냈던 행복한 추억속에서 살은것같다. 이영화가 사랑에로 연결이 되려면 서로에게 마음을 보여주어야 할것이다. 표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영화가 끝났을때는 느끼는 전반적인 소감은
살면서 과거의 수치감과 죄책감은 현재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주범이기 때문에
신속히 마음정리를 하여 자유로움 속에서 순간순간 진정한 사랑을 하며 살아야 함을 교훈으로 얻는다.
수치감과 죄책감은 자신의 감정이다. 감정은 무형이며 말이 없다. 감정은 죄가 없다. 감정은 좋고 나쁜것이 아니다. 다만 필요한것이 있다면, 건강한 삶 또는 행복을 희망한다면, 끊임없이 상황에 대하여
감정과 자신을 분리해 나가는 작업, 감정과 생각을 분리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감정과 생각이 엉켜 있으면 혼란스럽고 감정에 휩싸이며 사건상황사실이 보이지 않아 해결이 어렵다.
또한 어떤 상황에서 생겨난 감정관리의 중요성, 특히 부정적인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여 알아차리고 인정하며... 언어로 잘 발산해서 언제나 마음은 자유로운 행복의 공간으로 남아있음...그로 인하여...
서로간의 관계에 있어...진정한 사랑 확인이 삶에 있어서 중요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토론할 소제를 엄청 많이 제시해 주고 있는것 같다.
-솔직한 감정 드러내기의 중요성, -전쟁에 얽힌 과거사의 문제, -영화속에서 수용소가 전 세계에 1,000개가 넘는다는 소리에 법학과 강의실에서 수강하던 한 남학생은 전쟁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 국민의 원죄 남아 있음으로 격분하여 강의실을 뛰쳐나감
-서로의 입장차이, 수치감, 죄책감, 감정선택, 용서...이하 생략
영화관에 요즘 무슨영화를 하는지 지나가다가 우연찮게 들렀는데 8관 까지 있는 영화중에
<더 리더>가 딱 시작 시간으로, 영화관람을 통하여 즐거웠다.
영화관에 혼자 영화 보러 가기가 2009년 미션이었는데 성공해서도 좋았고, 몇 장면에서 눈물이 나왔는데 닦을게 없어 그냥 흐르는대로 내버려 두니 영화에 더 몰입하게 되어서도 좋았고, 오랫만에 생각지도 않게 영화보며 많이 울어서 마음의 정화를 가져온것같아서도 좋았다.
영화는 영화일뿐....좋았지만...회상의 여운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난 영화장면 대사에서 마음에 드는 대사가 있다. 그건,
소년 마이클이 한나에게 자전거 여행을 하자고 제안한다.
처음엔 마음을 못정하고 있으니, 마이클이 재촉과 설득하여 결국 한나는
승락후, 자전거로 함께 들판을 달린다.
음식점에서 잠시 쉰다.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 하고 계산하며 돌아설때 종업원은 이들의 관계를 엄마와 아들로 오해하며 말해줄때 이들은 옥신각씬 싸운다. 그때 한나가 마이클에게 격앙된 어조로 단호하게 말한다..
“넌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어. 넌 그렇게 할 수 없어!"
그렇다. 어느 누구도 나의 동의 없이 나를 화나게 할 수 없다. 나의동의 없이 나를 아프게 할 수 없다. 여기에 그 유명한 윌리엄글래서박사의 선택으로 알려져 있는 '통제이론'심리학의 깊은 핵심을 말해주고 있는것이다. 모든 감정은 무의식적인 나의 동의로 출발하는 것이다. 나의 동의하에 이루어진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말에서 한나는 철저한 자기 책임감을 느끼는것 같았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대사는 “넌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어. 넌 그렇게 할 수 없어!"
현명한 사람은 자기마음의 주인이 되고 미련한 자는 그 노예가 된다.
그러니, 상처에 대하여 이렇게 외쳐보자: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나는 상처받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당신의 허락없이는 어느 누구도 상처를 줄수 없는것이다.
오직 상처받음은 자신의 사고와 행동(말), 감정에 지느냐, 이기느냐에결정되어짐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영화중 이 장면에서 한나가 자신을 굳건히 지켜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자신이다. 자신이 자신을 최 우선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하는것이다.
영화를 통해 깨닫는 일상의 삶은
마음은 매 순간 깨어 있으면서 현명하게 동의해야 겠다는것. 그 현명함 이란...
사랑인것과 아닌것을 구분하며, 마음은 항상 사랑안에 남아 있도록 하는것과
행복한것과 행복아닌것을 구분하는 등, 분별력을 세심하게 키워나가는 훈련을 해야을 느낀다. 동의의 기준은 자신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내가 있은 후 네가 있는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좋은것, 행복한것 등의 긍정성의 유익은 수용하고 그 나머지는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변더스러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관용을 키우면서 물 흐르듯이 놔두기. 자아 존중감이 낮은 사람 일수록 상대방이 자기를 화내게 만든다고 말하는 특성을 갖는다. 세상사에서 가끔 사람들은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고 말 하곤 하는데, 결국 상처 역시도, 자신이 나약하여 즉, 자기가 자기를 보호하는 능력이 떨어져, 생긴 일이다. 화를 내는것도 자신이요, 마음 아파하는것도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마음 아픈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동의 하지 않으면 감정의 동요는 생기지 않는다.
이미 자신이 동의한 것인데 그 사항자체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어떤 감정에 동의하고 그 감정에 휩싸여 있는데도 여전히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그 해당 감정, 행동에 남아 있는것이 그동안의 삶에서 싸이클로 순환되어 그나마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에 동의하는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좋지 못한 습관의 고리를 발견한다면 빨리 끊는것이 시간을 버는것일 것이다.
우리는 물건을 구매할때 돈을 지불한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해당물건에 구매에 동의한 결과이다. 하지만 자기감정에 동의하는 일에는 서투른것 같다. 현재 내 안에서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알아채고 인정하고 동의 여부를 잘 판단해야 할것이다.
<더 리더>영화 중 지나가는 짧은 대사에서 심리학의 진수를 발견한 점이 기쁘다...
명 대사로 추천하고 싶다. “넌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어. 넌 그렇게 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