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일기 외 9편
임 채 우
애기똥풀
― 북한산일기 ·
5월도 깊은데 산 어귀 남새밭 가생이에 노란 리본 애기똥풀 지천입니다. 온 산이 초록으로 물결치는데 모개모개 모여서 맥없이 흔들리는 게 넋 나간 혼령들입니다. 거센 파도 아래 잠들지 못하는 어린 영혼이 저리 많으니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하나요. 오호, 네 모습이 안쓰러워 가만히 어루만지면 그제야 사르르 눈 감으며내 손끝에 노란 슬픔 묻어납니다.
아카시아
― 북한산일기 · 7
5월이 오면 적막강산 꽃 진 자리 뻐꾸기 울어 쌉니다. 낮술에 취한 달짝지근한 아카시아가 상여 끝에 매달린 하얀 꽃술을 늘이며 온 산을 떠메고 가는 듯 마는 듯 흘러갑니다. 어느 가신님의 너울 너울 춤사윈가요. 하얀 소복 복받치는 설움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왜 5월이 오면 아카시아가 저리도 피어 푸른 바람 하얀 물결 울며 가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빈산
― 북한산일기 · 8
샛길 넘보는 푸새들이 무성하여 산책길이 무덥습니다. 굽이돌아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계곡을 따라 평탄한 길을 걸어 불광요산회佛光樂山會 좁은 마당 벤치에 앉았습니다. 산자락에 불거진 천둥벌거숭이 바위산이 멀리 나를 에워쌉니다. 머리 위 솔잎들이 그물처럼 드리워 햇볕을 채 썰고 맺힌 인연인 양 묵은 솔방울이 촘촘합니다. 누가 내걸었는지 게양대의 깃발이 펄럭이는 게 이곳에도 흔들리는 마음이 있나 봅니다. 좌정하고 눈 감으면 솔바람 새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 사람 말소리 귀에 가득한데 눈을 뜨면 산은 저만큼 물러나고 그 위로 파란 하늘 흰 구름이 한가합니다. 산객들이 서둘러 내려간 빈산이 입을 다뭅니다.
계곡물 소리
― 북한산일기 · 9
간밤에 내린 비로 계곡에 물이 불어 골짜기를 울립니다. 산골이 그다지 깊지 못해 작은 비에도 금방 물이 찼다 말라버립니다. 졸졸거리는 계곡물을 보고 간밤의 몽사夢事를 짐작하고 나뭇가지 꺾여 바닥에 나뒹굴면 큰바람 훑고 지나갔음을 알 수 있듯이 작은 기미로 뒷일을 예측하기도 하고 자그마한 흔적으로 기왕지사를 추측하기도 합니다. 요즘 세상은 꼬리를 보고도 몸통을 헤아리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계곡물이 저리 흐르는데 비가 오지 않았다고 우긴다면 누가 더불어 대거리를 하겠습니까? 이성이니 지성이니 그런 거창한 말보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저 계곡물 소리처럼 맑을 듯합니다.
바람은 왜 부나?
― 북한산일기 · 11
바람이 붑니다. 남쪽에 걸쳐 있는 장마전선이 좀처럼 북상할 기미가 안 보이더니 태풍 하나 올라온다는 소식에 산바람이 붑니다. 바람에 휩쓸리는 초록 물결이 군대의 함성인 양 요란합니다. 바람맞으니 부풀어 오르는 생기는 인생의 상쾌가 아닐는지요. 하긴 바람도 과하게 쐬면 풍 맞듯 영 못쓰게 결딴나는 수도 있습니다. 바람은 왜 붑니까? 바람 부는 산정에 홀로 서서 밑도 끝도 없는 우문愚問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서 있는 것들 쓰러지지 않을 만큼 부러지지 않을 만큼 휘었다가 구부렸다가 부풀리다가 다시 오뚝이처럼 제자리에 곧추섭니다.
혼자서 가라
― 북한산일기 · 12
더위 식힌 하오 6시에서 7시 사이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각 혼자 걷는 산책길은 세상에 홀로 버려진 착각 속으로 빠지게 합니다. 나라는 인생이 어쩌다 태어나 정든 고향 떠나 부모 형제와 헤어져 이제는 자식들마저 곁에 없으니 천애 고아나 다름없습니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몇 가닥 가느다란 줄이 끊어지면 내가 여기서 죽은들 누가 알 것이며 이 산책길의 이름 모를 꽃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무릇 살아 있는 것들 저 지저귀는 산새나 나날이 푸름을 더해가는 수목이나 하다못해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개망초도 이 공기 중에 세상에 우주에 자신의 살아 있음을 멀리 퍼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아무리 외로운 사업이라 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안테나 같은 것으로 세상에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발신하며 오늘 하루를 묵묵히 견디는 것이 아닐는지요. 스치는 사람 하나 없는 산길을 나 역시 살아 있음을 어디론가 멀리 보내며 혼자서 가고 있습니다.
폭포동 금잉어
― 북한산일기 · 16
북한산 폭포동 초입 인공 폭포 아래 연신내 쪽으로 가는 큰길 메뚜기다리* 아래 보洑에 갇힌 수백 평 계곡물이 제법 물색이 그윽한데 그 안에 누가 기르는지 금잉어 떼가 헤엄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도 물고기도 모두 유순하여 가령 장자나 혜자 같은 어르신들은 호수 위 다리를 거닐면서 유영하는 물고기를 바라보며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하질 않습니까? 제가
난간에서 연꽃이 진 봇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사방에서 물고기들이 모가지만 내놓은 물뱀이 물살을 가르듯 몰려듭니다. 한참을 지나 이제나저제나 새우깡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줄 때가 되
었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자 급기야 인내심이 바닥이 난 금잉어들이 갑자기 움직임이 빨라지며 어떤 녀석은 공중으로 몸을 솟구쳐 물장구를 치는 것이 숫제 앙탈을 부리는 듯합니다. 몇 년 전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영화 빠삐용의 촬영지로 유명한 울루와뚜 절벽 사원을 갔거든요. 안내원의 각별한 주의 사항이 이곳은 야생 원숭이가 150여 마리 살고 있는데 이놈들은 먹이를 충분히 주는 데도 심심하면 여행객들을 상대로 행패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느닷없이 달려들어 가방 모자 안경 목도리 등을 채간다는데 실제로 나의 눈앞에서 순박한 본토 아낙이 슬리퍼 한 짝을 빼앗기고 망연자실 체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기들이 주인이라는 거지요. 객들은 통행세를 내야 하는데 자진 납부를 하지 않으니 자기들이 강탈한다는 거예요. 순 산적 같은 놈들이에요. 폭포동 금잉어, 이놈들도 더 진화하면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하여 뭍으로 기어올라 원숭이처럼 어기적거리며 산적 행세를 할지모릅니다. 폭포동에는 더 이상 폭포가 없고 메뚜기다리는 메뚜기다리가 아니고 더불어 형이상학적인 담소를 나눌 만한 인물도 없고 금옥만당金玉滿堂** 자신들의 화상이 대청마루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이 더 이상 물속에서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 메뚜기다리 : 서울 은평구 진관동 소재의 다리 이름. 다리 난간이 도약 직전의 메뚜기 다리처럼 생겼다. 나는 이 다리를 볼 때마다 다리를 설계한 사람이나 명명자가 혹 시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에게 유희본능이 있다는 적절한 예다.
** 금옥만당金玉滿堂 : 금붕어를 그린 동양화다. 이런 그림은 금은보화가 가득
한 부자가 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보세란 가운데 이 이름을 갖고 있는 종류도
있다.
상수리
― 북한산일기 · 15
인적 없는 산길 머리 위에서 뚝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몸을 던지듯 한 생명의 수직 낙하 그 종말의 현장에 그 청력의 자장 안에 우연찮게 내가 있습니다. 참 기막힌 타이밍이지
요. 조금만 잰걸음으로 아니면 느린 걸음을 하였더라도 이 개별적인 사건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겠지요. 하긴 콩 한 말 밤하늘에 좌악 뿌려 놓은 듯 반짝이는 것들 사이로 별똥이 사선을 그으며 아름다운 영혼 하나 뚝 떨어졌다는 부고가 뜬금없이 문자 메
시지로 날라 온 날이 있습니다.
그리운 안드로메다
― 북한산일기 · 19
몸도 마음도 무거운 날이면 별을 보러 갑니다. 어린 시절 마당에 멍석 깔고 바라보던 맑은 밤하늘에 깨알같이 빛나던 별을 다시 보
고 싶습니다. 도시는 사람들이 내뿜는 불빛 때문에 별이 보이질 않
습니다. 사람들은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 아래에서 절망합니다. 몽
고 대초원을 여행한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그곳의 밤하늘은 목화
송이만 한 별들이 다투어 빛난다고 합니다.
그리운 안드로메다. 한 천문학자의 별자리 이야기를 읽었습니
다. 이디오피아 왕인 세페우스 그의 아내인 카시오피아 또 그 곁에
딸 안드로메다와 사위 페르세우스 가을 밤하늘은 세페우스 가족
의 향연장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호명하는 것만으로도 내 영혼이
가벼워져 천상의 세계로 날아갑니다. 우리의 머리 위에는 신화의
세계가 맴돌고 있습니다.
아, 그리운 안드로메다. 신도 한눈에 반할만한 청순한 아름다움
이여! 나는 지상에서 한 발짝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갑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초속 110km로 40억 년쯤 뒤 우리
는 드디어 하나가 될 것입니다.
덕암사 가는 길
― 북한산일기 · 23
덕암사 가는 길이란 팻말이 보이자 마른 잎 떨며 날리는 주봉으로 오르는 대서문길을 버리고 곁길로 들어섭니다. 그 길은 돌계단을 내려가 계곡 위에 놓여 있는 폭이 좁은 다리로 이어집니다. 다리 아래 집채만 한 바위며 돌멩이들이 말라버린 계곡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굴며 허옇게 풍화되고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흙길입니다. 험준한 바위산에서 구름을 밟듯 통통거리며 걷는 호사입니다. 어귀에 수문장처럼 한쪽에 비켜서 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가진 것 모두 내려놓고 가라고 스스로 다 벗어 버렸습니다. 휘어져 오르며 굽이 너머로 꼬리를 감추는 그 길을 걷다 보면 가파른 능선에 감나무 한 그루 있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땐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에 빨간 돌감들이 불꽃처럼 달려있었는데 누가 다 땄는지 저절로 떨어져버렸는지 새들이 쪼았는지 꼭지만 흔적처럼 남아 있습니다. 높다란 마른 아카시아 나무 가지 위에 까치집 하나 조용합니다. 아래쪽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 아득합니다.
일주문도 절문도 사천왕도 없습니다. 누님 같은 여승들이 그림자처럼 고요합니다. 가끔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무심코 길을 따라 들어왔다가 절 한 바퀴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이 없다고 하면 다시 돌아나갑니다. 매여 있는 개도 짖지 않고 꼬리부터 흔듭니다. 석굴에 앉아 있는 부처님보다도 연꽃 좌대에 서 있는 거대한 석불보다도 깔끔한 절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뉘엿뉘엿 떨어지는 해거름의 풍경이 넉넉하여 가슴 벅찹니다. 저 이랑이랑 물결치는 사바세계는 운무에 잠겨 가물거립니다. 이런 때면 돌부처도 발꿈치를 들고 안타까이 하계를 굽어봅니다.
온 길 온전히 되돌아갑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왔으면 가야하고 일희하면 일비하는 게 세상사 이치거늘, 저녁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집니다. 청아하고 소박한 텅빈 소리입니다. 살아 있는 생명들 육신 없는 영혼들 그 맥놀이에 떨며 사바든 저승이든 천국이든 자기 안에 잠깁니다.
ㅡ『우리詩』2017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