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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간혁명 제4권 <입정안국>②
동고(同苦)야말로 불법의 출발점
니치렌은 이와모토의 짓소 사에서 침식(寢食)을 잊고 경문을 차례차례 정독해 갔다.
그 경들에서 니치렌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불행의 원인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정법인 법화경에 위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인간은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친구라도 나쁜 벗을 좋은 벗이라고 믿고 함께 행동하면 언젠가는 나뿐 길로 빠져 버린다.
하물며 종교는 인간의 사고방식, 삶의 근본 규범이다. 따라서 잘못된 종교를 믿으면 인간의 마음은 탁해지고 욕망에 번롱되며 생명의 활력도 빼앗겨 버리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회에 분쟁이나 혼란, 정체를 초래하게 된다.
또한 인심이나 사회의 혼란은 의정불이(依正不二)이며 일념삼천(一念三千)이기 때문에 대자연에도 반드시 파급되어간다.
우주는 본래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이며 주체인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환경세계와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불법이다.
사람들이 도탄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잘못된 종교를 버리고 올바른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니치렌의 결론이었다.
게다가 경문에 비추어 보면 삼재칠난(三災七難) 중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내란을 의미하는 자계반역난(自界反逆難)과 타국의 침략을 가리키는 타국침핍난(他國侵逼難)이 다투어 일어난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생각해 보면 타종의 승려들도 이 경문들을 보았을 터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경문에서 이 세상이 불행하게 되는 근본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그들이 경문을 근간으로 하는 일도 없었거니와 민중의 고뇌를 똑바로 바라보고 그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자세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당시 천태종을 비롯한 진언, 화엄, 율 등의 기성 종파는 진호(鎭護) 국가의 불교에 안주하고 염불(念佛)이나 선(禪)의 신흥종파도 막부의 요인(要人)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종파는 법론을 피하고 가르침의 정사를 논의하는 일도 없었다. 결국, 본래부터 종교 신념도 신조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함께 어울리며 권력에 기생하여 비호(庇護)받는다는 달콤한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이미 민중 구제라는 종교의 대사명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또 막부는 종교를 비호해 주는 대신 정책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는 등, 정치권력과 종교가 완전히 유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니치렌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간효(諫曉)의 서(書)인 <입정안국론>을 집필했다. 그리고 사실상의 최고 권력자인 호조도키요리에게, 그의 측근인 야도야 입도(入道)를 통해 이글을 상정(上程)했다. 1260년 7월 16일의 일이다.
도키요리는 1246년 20세로 집권하자 차례로 적대세력을 물리치고 호조 가(家)의 권력을 굳히는 한편, 정치의 길을 모색하고 무사의 법과 풍속, 풍습에 대한 기율을 엄하게 바로 잡았다.
또 선(禪)을 신봉하였으며 30세의 젊은 나이에 병을 이유로 집권직을 넘기고 입도(入道)하여 임제종(臨濟宗)인 사이묘 사(最明寺)를 물러나 버렸다.
그러나 그의 위광은 쇠퇴하지 않고 막부 내에 은연중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도키요리가 정가의 대지진 후 잇달아 엄습해 오는 재해, 기근, 역병을 위정자(爲政者)로서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도키요리는 어느 날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 정치의 방도에 잘못이 있는가. 정치에 사심(私心)이 있기 때문일까. 하늘이 노하고 땅이 원망할 만한 잘못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무슨 죄 때문에 이렇게 백성이 괴로워해야만 하는가.”
니치렌은 도키요리의 이 한탄을 소문으로 듣고 있었다. 또 <입정안국론>을 상정하기 이전에도 도키요리와 대면하여 이야기도 했다.
이러한 경위로 니치렌은 도키요리야말로 국주(國主)로서 간효(諫曉) 할 만한 인물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입정안국론>은 사회의 참상과 민중의 고뇌에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여객(旅客)이 와서 한탄하여 가로되, 근년부터 근일에 이르기까지 천변지요(天變地夭)·기근역려(飢饉疫癘)가 널리 천하에 충만하고 널리 지상에 만연하였도다. 우마(牛馬)는 거리에 쓰러지고 해골은 노변(路邊)에 가득 찼으며 ···”(어서 17쪽)
<여객이 와서 한탄하여 말하기를 근년부터 근일에 이르기까지 천변이나 지요, 기근이나 역병이 널리 천하에 가득 차고 널리 지상에 만연해 있다. 우마는 거리에 쓰러져 있고 그 해골이 길 위에 가득차 있다 ···>
이 민중의 괴로움이라는 현실이야말로 불법의 출발점이며 고뇌에서의 해방이야말로 불법의 목적이다.
니치렌은 <입정안국론>에서 ‘나라’를 표현할 때 ‘에운담(囗)’에 ‘옥(玉: 왕이라는 뜻)’이라고 쓰는 ‘국(国)’이나 ‘혹(或: 창을 들고 국경과 토지를 지킨다는 뜻)’이라고 쓴 ‘국(國)’이라는 문자보다도 주로 ‘에운담(囗)’에 ‘민(民)’이라 쓴 ‘국(囻)’의 문자를 사용했다. 현존하는 진필에서는 ‘나라’를 표현하는 전체 71문자 중 약 8할에 해당하는 56문자에 ‘국(囻)’이 사용되고 있다.
거기에는 ‘백성’을 더욱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해도 좋다.
니치렌은 <입정안국론>에서 세상의 참상(慘狀)을 한탄하는 객(客)과 불법을 신봉하는 주인이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문답 형식을 사용했다.
그것은 정법유포라고 하더라도 권위나 권력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어디가지나 인간 대 인간의 조리(條理)를 다한, 대화에 의한 촉발과 합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니치렌이 호조도키요리에게 간효한 것도 위정자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한 사람의 인간인 도키요리에게 진실한 불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것에 의해 도키요리가 진정한 인간의 길을 자각하여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행해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니치렌은 결코 막부의 비호를 받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니치렌의 사도 유죄 후, 막부는 그가 예언한 타국침핍난이 현실로 되어 가고 있는 것에 두려움을 품고 사찰의 기진을 조건으로 니치렌에게 국가 안태의 기원을 의뢰해 왔다. 만약 권력에 가담하려고 생각했다면 이 막부의 의뢰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니치렌은 단호히 그것을 거절했다.
또<입정안국론>에는 다음과 같은 기술도 있다.
천하태평을 원한다면 나라 안의 방법(謗法)을 단절해야 한다는 주인의 말에 객은 ‘방법을 범하고 불법의 계율에 위배하는 사람들, 즉 타종의 승들을 참죄(斬罪)에 처해야만 하는가’ 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해서 주인은 ‘보시(布施)를 중지’하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것은 염불(念佛)이나 선(禪) 등에 대한 막부의 보호를 근절시켜 국가 권력과 그들 종교가 유착하는 일을 없애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니치렌은 국가 권력의 위광에 의해 종교의 성쇠가 좌우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종교 대 종교의 법론, 대화에 의해 가르침의 정사를 판단하여 정법을 유포하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종교가 권력의 비호를 추구한다면 종교의 타락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또 이 글에서 니치렌은 잘못된 가르침을 단절하지 않으면 삼재칠난 중 아직 나타나지 않은 자계반역과 타국침핍이라는 두 가지 난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미래의 종말을 점친다는 그러한 류(類)의 예언은 아니다. 경문을 통해 생명의 법리를 통찰하고 이끌어 낸 깊은 지혜의 발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이상 불행한 사태를 절대로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대자대비에서 나온 경종(警鐘)이기도 했다.
니치렌은 <입정안국론>에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대는 빨리 신앙의 촌심(寸心)을 고쳐서 속히 실승(實乘)의 일선(一善)에 귀(歸)할지어다”(어서 32쪽)
<당신은 빨리 신앙의 촌심을 고쳐서 속히 실승의 일선인 진실한 법에 귀의하시오>
불행한 고뇌로 뒤덮인 사회를 변혁하고 ‘나라를 안온케 하는’ 직도(直道)는 무엇인가. 니치렌은 그것은 한 사람의 인간의 마음속에 ‘정(正)을 세우는 것’ 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호소했다.
‘실승의 일선’이란 실대승교(實大乘敎)인 법화경을 말하는 것으로 일체중생은 본래 부처라고 가르치는, 최고의 인간이 묘법에 입각하여 흉중에 부처의 생명을 열어 갈 때, 그 사람이 사는 장소도 불국토로 빛나는 것이다.
즉 시대와 사회를 창조하는 주체인 한 사람 한사람의 인간에게 내발성(內發性)의 승리를 확립하여 사회의 번영과 평화를 창조해 가려고 하는 것이 니치렌 불법이다. 그리고 그 원리를 설해 밝힌 것이 <입정안국론>이었다.
중생을 부처로 보는 불법은 모든 인간에게서 절대적인 존엄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것은 또한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 기반을 형성하는 철리(哲理)가 된다는 것은 틀림없다. 또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부처의 생명을 나타내 간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자비의 마음을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실승의 일선에 귀할지어다”란 “편협된 생명관·인간관을 버리고 생명의 존엄으로 되돌아가라” “이기주의를 깨고 자비를 삶의 규범으로 하라” “진실한 인간주의에 입각하라”는 말씀이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 인류의 번영과 세계 평화를 위한 보편적인 철리가 있다.
그런데 <입정안국론>은 호조도키요리에게 당도하기는 했지만 도키요리는 그것을 묵살해 버렸다.
일설에 의하면 도키요리의 손에 들어왔을 때 주위 사람들이, 니치렌은 자만하여 타인을 경시할 뿐 아니라 자신의 종파를 일으키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고했기 때문에 방치되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도키요리는 니치렌의 주장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도키요리의 측근들은 그 내용을 왜곡하고 비방하였으며 염불을 비롯한 타종의 승들에게 알렸다.
가마쿠라의 땅에서 니치렌이 타종파의 잘못을 지적해 오자 제종의 승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게다가 도키요리에게 까지 간효의 글을 보내어 자기들을 비판했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노여움은 절정에 달했다.
니치렌의 신변에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니치렌은 <입정안국론>을 호조 도키요리에게 상정(上程)할 경우, 심한 박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니치렌은 대난을 각오하고 이 글을 상정하여 국주에게 간 효했던 것이다.
그것은 민중의 괴로움을 자신의 고뇌로 하는 동고(同苦)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진실한 동고는 단지 고뇌를 서로 나누어 가지고 함께 한탄하며 슬퍼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또 단순히 동정과 위로의 말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동고의 사람에게는 상대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행동이 뒤따른다. 자비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있다. 그리고 불굴의 신념을 지속한다.
이 <입정안국론>을 상정한 지 40일 지난 8월 27일 밤의 일이다.
가마쿠라의 마쓰바가야쓰에 있던 니치렌이 초암이 염불자들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마쓰바가야쓰법난이다.
니치렌의 예측은 현실로 나타났다. 그것은 그의 인생에 있어 거듭되는 본격적인 박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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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