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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서대장
모두 전부를 끌어안고 함께 가야한다. 눅15:1-7
좋은 교회의 성도는 어떤 사람이여야 하나?
좋은 교회의 성도는 회사로 말하면 직원과 같은 직능이고 국가로 말하면 국민 같은 직능이다.
기업이 번창하려면 사장의 경영능력이 탁월하여야하지만 동시에 사원들의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나라기 부강하려면 대통령이 국가경영능력이 뛰어나야하지만 국민들도 지도자의 통치에 순종하여 한 마음으로 대동단결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부흥발전하려면 담임목사가 목회 경영 능력이 있어야 하고 성도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적이라 할 것입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목회자가 자신의 인격 안에 모든 것을 수용 할 수 있는 자기 그릇을 키워야하고 교회를 소리 없이 평안이 끌고 갈수 있는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성도들이 목회자를 존경하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찾아 자기 물질로 헌신하고 소리 없이 봉사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며 오래 참아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모두 전부를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합니다]는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될 때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교회는 모두 전부를 끌어안고 함께 가는 교회입니다.
예화: 처이모 , 열 명의 자식, 고주망태영감님 일찍 별세, 그 자식 먹이고 살리려 젓갈 장사 억순이의 삶, 먹을 것 못 먹고 입힐 것 제대로 입히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팠겠습니까? 남들처럼 제대로 해주신 못했지만 짝을 맺어주었습니다. 이제 자식 걱정 덜해도 될 것 같은데 자식들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원망 합니다. 큰 오빠만 가르치고 나는 안가르쳤다고....
[다른 사람들은 자식들 버리고 입양 보냈지만 가난해도 꽁 보리밥에 감자를 삶아 먹으면서 좋은 옷은 못 입혔어도 암탉처럼 제 자식 끝까지 지킨 그 공덕을 모르면 짐승이다] 불평 없이 효도합니다.
모두 끌어안고 함께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한 영혼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4)
예수께서 한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고 소자 중 하나라도 잃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잃은 양한마리를 찾으려고 99마리를 두고 간다고 하셨습니다.
눅15: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나하겠느냐”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이해되시는지요?
세상 상식으로는 99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서면 안 됩니다. 적어도 그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안전한 우리에 가두어 놓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마음이 급하셔서 사원에게 그 양을 맡기고 본인이 직접 손수 몸소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말씀합니다.
잃은 하나님의 자녀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억조창생중 하나의 생명도 놓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진정한 목자라면 백 마리이 양 가운데서한 마리를 잃으면 그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느냐 반문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양을 생명처럼 아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양을 초장과 물가로 인도하고 밤이 되면 우리에 가둬 두는데 그 때 양들의 숫자를 확인합니다. 막대기로 한 마리 한 마리 세면서 이름을 불러 줍니다. 한 마리라도 모자라면 잃은 양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나섭니다.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에 발자국을 보면 어느 놈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험준한 들과 산을 누벼 절벽에서 벌벌 떨고 있는 그 양을 맹수들보다 먼저 가서 구해야합니다. 조금만 늦으면 하이에나 사자 같은 맹수들의 먹이가 됩니다. 늦기 전에 구하러 나서야 합니다. 들에서 다른 사환에게 양을 맡기고 찾으러 나서는 목동의 마음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조금만 늦으면 마귀의 밥이 되어 죽어 없어지거나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있기에 속히 달려가 찾아 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성도가 일시적으로 타락하거나 시험을 당하여 방황하게되면 그 방황하는 곳까지 직접 찾아오시는 우리의 목자되신 구원자됨을 믿습니다.
모두 끌어안고 함께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둘째로 죄인일지라도 귀하게 높여 주실 줄 알라. (5)
“또 찾아낸즉 즐거워하여 어깨에 메고” 라 말씀 하십니다.
주님은 찾은 양을 어깨에 메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양은 목자가 두드리는 지팡이의 울림을 알기에 그 소리를 듣고 개가 따라오듯 잘 따라 오는 동물입니다.
하루 종일 들판을 떠돌며 흙이며 먼지 그리고 벌레가 뒤범벅된 꾀죄죄한 모 습입니다. 다른 양들은 가라는 길로 잘 따라가서 안전하게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한 마리 양은 좋은 꼴을 따라 가다가 길을 잃고 무리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목자의 부름 즉 지팡이 소리도 무시하고 다른 양 즉 어미양이나 친구양의 목소리조차 못들은 척 하고 그저 자기 눈에 좋은 꼴만 보고 달려간 것입니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라면 이 양을 매를 맞아야 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혼이 나야 합니다. 독방에 쳐 박아두거나 잡아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동은 야단하는 대신 사랑스런 자기자식을 목에 무등태우듯 귀하게 여기고 사랑스러워하고 즐거워하며 오는 것입니다.
아주 귀한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회개한 죄인을 귀한 존재로 여기고 높여 준다 하십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양을 때리거나 꾸짖는 대신 목에 무등을 태워오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죄인된 인간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옛 죄는 묻지도 않고 존귀와 영광으로 높여 주실 줄 믿습니다.
사49:22“주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뭇나라를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것이며”라 하신 말씀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죄인들을 귀하게 여겨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하고 돌아온 성도 여러분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때리시는 대신 의인으로 높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귀한 지위를 주시며 , 거룩한 성령을 주시고 천국 영생복락의 특권을 주신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꾸짖지 아니하시고 더욱 사랑해주시며 또한 그에게 존귀한 하나님이 자녀의 특권을 유지 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모두 끌어안고 함께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셋째 영혼 구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6-7)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십니다.
성도에게 이 예수님의 마음이 없다면 예수님의 제자로써 자격이 없습니다.
6절은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이웃을 불러 기쁨의 축제를 벌이십니다.
7절에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축제를 벌일정도로 기뻐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성삼위 하나님의 창조물이었던 인간을 사단에게 빼앗겼다가 다시 찾아오게 된 승리의 기쁨을 누리시기 때문입니다.
유괴범에게 자녀가 유괴되었다가 돌아온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부모의 모습과 심정이 아마 이와 같을 것입니다.
얼마 전 반군에게 유괴되었다가 20년 만에 아이를 둘이나 낳고 기적적으로 탈출한 여인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기뻐하고 축하합니다.
하나님은 사단에 속아 살던 사람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을 사단에 대한 승리이기에 기뻐하십니다.
천하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기뻐하십니다.
이 세상의 어떤 창조물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이 죄 속에 살다가 멸망의 심판을 받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겔18:2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신 말씀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한 성도를 귀히 여길 줄 아는 목사가 교회를 성장시키고 한 영혼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좋은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집에서 세는 바가지 밖에 나가도 센다합니다. 촌에서 지게쟁이는 한양가서도 지게쟁이 하더라 합니다.
큰 사람은 나를 괴롭히고 언제나 나를 해고지하는 그 한 사람도 귀히 여기고 보듬고 가는 사람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치매로 고생하셨다합니다.
어떤 분이 인사를 갔는데 상상할 수 없는 욕지거리를 하더랍니다.
얼마나 억압된 상처와 분노가 쌓였으면 치매란 무의식 상태에서 욕구불만을 폭발해내었을까요?
한경직 목사님은 영락교회에서 목회하시면서 직원이나 부목사 성도 한사람도 쫓아내지도 잘라 내지도 않으시고 그 많은 사람을 다 품고 평생을 목회하였기에 영락 교회가 된 것이고 세계적인 큰 목사가 된 것입니다.
교회에서 시비 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사심을 버리고 내려앉으면 갈등 할 일이 없습니다. 사욕과 별것 아닌 자기주장 때문에 갈등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요즘 이단들은 학벌좋은 사람들, 젊은 층들, 중산층 이상의 교인들만 전도한다고 합니다.
정통교회가 이런 것들을 자랑한다면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만 눈독을 드리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은 틀림없이 도적이거나 도박꾼과 같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들 수 있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자. 세리 와 창녀를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예수님을 생각하여보자. 예수님 주변에는 존귀하고 돈 많은 부자는 없었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만 우글우글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병든 자를 치료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예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가난한 자를 회복하여 예물을 준비하여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위함입니다.
저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저들의 아픔을 함께하며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줄 믿습니다.
외모가 보잘 것 없는 자, 나를 싫어하는 자 까지 보듬고 함께 가야합니다.
예수님은 가롯유다를 끝까지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가롯유다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고 헌금 도적질하는 도적놈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먹을 음모를 꾀하는 악당이고 마침내 팔아먹은 배신자 사기꾼인데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어서 가서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라 합니다. 가롯유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탄식 하시면서 꼴조차 보기 싫은, 구역질나는 제자지만 그를 끝까지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3년이나 따라다니면서 예수님 설교를 그렇게 많이 들었지만 그놈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고 헌금 도덕질만 하니 예수님이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공동체 안에는 반대자가 있는 것이 정상이고, 해꼬지 하는 자가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시기 질투하는 자가 있고, 잘사는 성도가 목사를 잘 돕는 것도 배 아파하는 사람이 있는 것 입니다. 교회가 부흥되면 사례를 올려주고 고급차를 사 주는 것도 정상이고, 자신은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한 마음으로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것도 정상입니다. 그렇게 해 주는 장로나 개인을 아부꾼으로 보고 비판하는 성도가 있는 것도 지극히 정상입니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은 것처럼 축복받은 자는 교회와 목회자에게 순종하며 헌신하지만 복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은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반대자를 원수처럼 여기지 않고 어떻게 보듬고 함께 가느냐 아니면 원수처럼 내치는 교회인가가 좋은 교회와 나쁜 교회의 판단할 가름입니다.
태산은 한줌의 흙도 결코 버리지 않기에 태산이 된 것처럼 가난한 초신자 한 사람이라도 귀히 여길 줄 아는 교회가 부흥할 줄 믿습니다.
예수님처럼 가롯유다를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까지 품고 간 것처럼 끝까지 모두 다 품고 함께 가야 합니다.
지옥가고 천국 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누가 더 옳은지는 그곳에 가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도저히 인간 같지 못하고 교회에 방해가 되는 사람조차도 우리 주님은 그 사람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줄로 믿어야 합니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리더쉽이 있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여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전도 왕으로 포상도 받았습니다.
예수 잘 믿는 다고 직분도 받았습니다. 십일조도 하고 주일도 성수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하고 의견대립이 있어 다투었습니다.
그러더니 주막에서 그 사람이 다른 아저씨들하고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다가 싸움질을 합니다. 욕지거리를 서슴지 않습니다.
이제 새벽기도도 안 나옵니다. 수요예배도 안 나옵니다. 금요심야예배도 안 나옵니다. 이분에게 전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이분을 존경하던 다른 사람들도 함께 주일을 범합니다. 예배에 빠집니다. 기도에 빠집니다.
결국 이 분은 다른 사람을 전도하여 하나님에게 인도하여 생명으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실족케 하는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한 생명을 실족케 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깊은 바다에 던져지는 것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하며 죄 많은 죄인을 써주시고 불러주시고 택하여 주신 것만도 감사 감사할 뿐입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항상 주의해야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악한 영향을 주는 악의 선봉이 되어선 안 됩니다.
교회에서 반대자가 옳았는지, 반대 받는 자가 옳았는지는 마지막 때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심판은 우리 인간의 몫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그런 모든 자 하나 하나를 내치거나 버리지 말고 끌어안고 함께 가는 교회되길 원합니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하셨지요.
나를 떠나는 자가 있는가? 내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위선적이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회개하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 위에 똑 바로서서 거리낄 것 없는 떳떳한 양심으로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결론
모두 끌어안고 함께 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한 영혼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4)
둘째로 죄인일지라도 귀하게 높여 주실 줄 알라 하십니다. (5)
셋째 영혼 구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6-7)
오늘도 천국에서 기쁨과 찬양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죄인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더욱 크게 기뻐하시고 기쁨의 축제를 벌이시는 줄 믿습니다.
반대로 한 성도라도 실족하고 주님을 떠나가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온 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내게 주신 능력 물질 은사 권세를 가지고 오직 전도하고 영혼 살리는 일에 매진하여 하나님을 크게 기쁘게 해드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원합니다.
모두 끌어안고 함께 가는 성도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무등태워 높여 주시고 귀히 여겨 주시는 놀라운 축복 받으실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