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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번 버스
김지영
습기를 잃고 돌아다니는 바람. 그 바람 끝에서 오지 않는 300번 버스를 기다린다 하얗다 못해 새파란 얼굴들 헝클어진 머리 결 그 아래 내려앉을 것만 같은 어깨 양손 꼬옥 쥐어져 있는 그 속 비릿한 생선 내음에서 그들의 고단한 삶이 묻어난다. 뒹굴 듯 내려앉은 어둠속 그림자들 어스름이 몰려온 창밖을 곁에 두고 번뜩 이는 불빛 따라 마음을 쫓아가면 나도 모르는 내가 어느새 300번 버스에 몸을 담그고 있다. 보이지 않는 차창에 어리는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워하며 웅켜진 바구니 속 늙은 오이가 주글 해진 노파의 마음을 누렇게 대신 해 주고 있다. 오늘 하루도 주문진에서 싣고 나온 생선을 강릉서 다 팔았을까? 버스 한 켠에 내던져지듯 놓여져 있는 둥그런 플라스틱 통 안에서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딸이 되고, 아들이 되어 희망의 긴 직선을 연결해준 300 이란 숫자, 그 숫자에 몸을 싣고 노파가 가고 있는 그 길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두 손 꼬옥 쥐고 있는 바구니 속 누런 오이가 아무런 말없이 버스의 율동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냄새에 취했을까, 고단함에 취했을까 스르르 내려앉은 눈꺼플 위로 끼익 끼익 내려지는 발걸음의 무게 가 하나, 둘, 가벼워질 즈음 끄덕 끄덕 졸던 눈 부비며 긴 기지개를 켠다. 열어둔 작은 문 틈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비릿한 내음 자신의 삶에 충실 하고 있다는 걸 알려 주기라도 하듯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고 점점 가까워지는 종착지. 그곳 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300 이란 숫자 그 뒤에 언제부터 인지 불을 환히 밝힌 고기잡이 배 한척이 자꾸 자꾸 바구니 속 누런 오이 곁을 따라 오고 있다. 누렇게 휘어진 등 언저리 위로 새파랗다 못해 시퍼런 등 푸른 고등어가 할딱거리며 숨 쉬고 있다.
주: 300번 버스 (주문진 강릉을 오가는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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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문진의 풍경이 보이는듯 합니다. 원두와 함께 잘 감상했습니다
ㅠㅠ주문진 출 퇴근 할때 제가 본 제 마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