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캐스트/ 한국의 그림책 작가/ 김환영편 / 김지은 글
그 닭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암탉일 것이다. 야무진 부리를 들고 동쪽으로 한 발 성큼 내딛는 야무진 자세를 기억하라. 이제는 국민의 닭이 되어버린 동화『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이 얘기다. 이 작품이 출간된 지도 10년, 판매 부수는 100만을 훌쩍 넘었다. 도서관 장서를 생각하면 이 책을 읽고 잎싹이의 걸음걸음을 응원한 독자의 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무엇보다 책 표지에 실린 ‘잎싹’이의 모습은 그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모습의 잎싹이를 상상하기 어렵다. 이 그림을 오래도록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갇힌 세상에서 열린 세상으로 걸어 나오는 잎싹이의 담대함을 어떤 화가가 이보다 더 명징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김환영의 그림은 단단하고 투명하다. 그는 그림을 통해 활자 사이에 누워있는 주인공을 벌떡 일으키고 움직이게 한다. 그가 그린 그림은 독자를 흔들고 독자는 자신의 삶을 말갛게 들여다보게 된다. 그가 ‘잎싹’이를 그린 것은 뜻밖의 인연이었다. 함께 작업실을 쓰는 친구가 받아온『마당을 나온 암탉』의 출간 전 원고를 읽게 된다. 머리를 식히려고 원고를 집어 들었다가 단숨에 읽고 만다. 그는 곧이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모아 ‘잎싹’이를 그린 다음 책상위에 붙여 놓았다. 감동이 대단했고 화가의 감동은 잎싹이 캐릭터로 생생하게 옮겨졌다. 그가 우연 같은 마음의 힘에 이끌려 그린 ‘잎싹’이는 한국 아동문학에서 잊을 수 없는 암탉으로 남았다.
그림책의 화가는 어떤 글의 최초 독자이기도 하다. 주인공 내면에서 잠자는 활력과 의지를 깨워야하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다. 김환영은 주인공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이미 만나봐서 아는 사람 같다. 어느 어린이 문학 토론에서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글과 자신의 일치’를 얻기 위해서 글 안에 담긴 철학과 세계관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화가다. 그는 어떤 글 앞에서도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철학과 양심을 양보하지 않으며’ 오히려 글과 대결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통해 화가 자신이 글쓴이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했을 때 비로소 좋은 그림책이 된다고 본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편집을 하는 사람 사이의 민주주의와 철학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쉬운 얘기가 아니다. 고되지 않았을까. 김환영은 그림이 자신의 삶을 붙잡아주었다고 고백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의지할 것이 한 가지라도 있으면 버틸 수 있는데, 저의 경우에는 그게 그림인 것 같아요. (열린어린이 2001년 12월 인터뷰에서)”
그는 1980년대부터 책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개똥이 그림책 시리즈(보리)」, 「옛이야기 보따리(서정오 글. 보리)」, 「창비아동문고(보리)」등 대표작을 꼽기 힘들만큼 수많은 어린이 책에 인상 깊은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김환영의 그림책에 대한 정열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역시 그림책『나비를 잡는 아버지(현덕 글. 길벗어린이)』가 아닌가 싶다. 그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북으로 간 작가 현덕의 짤막한 작품은 잔잔히 언급되다가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김환영은 1999년 2월 이 작품의 작업 의뢰를 받고 1년 동안 밑그림을 그려 출판사에 가져갔다고 한다. 편집자는 좋다고 하나 정작 본인의 마음에는 충분치 않아 가지고 되돌아온다. 여섯 장만 남기고 열 네 장을 다시 그려 완성한 것이 2001년이었다. 그 사이에 그는 열 번 넘게 원작을 손으로 베껴 썼다. ‘어렵던 시절의 신산한 느낌을 표현하려면 흑백 스틸 사진 느낌이 나야 할 것 같아 색을 과감하게 빼기로 결정’ 한다. 경환이와 바우, 두 인물의 갈등과 바우의 심리묘사가 두드러져야 하는 책이기에 평소에 사용하던 붓을 놓고 펜을 먼저 든다. 나무젓가락, 삶은 갈대, 대젓가락, 중국 대나무 등 온갖 것을 다 깎아 써가며 두 사람의 마음 사이를 팽팽하게 오가는 심리적 선을 잡아냈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장면은 누가 뭐래도 진짜 싸움이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의 절정은 마지막 장면이다. 경환이네 머슴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아버지임을 알았을 때, 바우는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르며 엉엉 운다. 이 장면에서 김환영의 그림은 독자의 슬픔을 묵직하게 터뜨린다. 우는 바우는 보이지 않고 바우 아버지만 있는 널따란 모밀밭. 나비는 날고, 아버지는 농립을 벗어 나비를 쫓고, 우리는 바우가 되어 그런 아버지 앞에서 운다. 글만 보았을 때 울먹였다면 이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통곡하고야 만다.
김환영은 2009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주빈국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바 있고 2010년 볼로냐에서도『호랑이와 곶감(위기철 글. 국민서관)』을 호랑이 그림책 특별전에서 선보였다. 이 책은 선 굵은 민화풍의 목판화였는데 각국의 관람객들에게 단연 인기였다. 당장 튀어나올 것 같은 호랑이 눈알과 능청맞은 긴 혓바닥, 검은 칼집을 따라 이어지는 깊은 밤의 공간감, 노란 불빛과 짙은 먹색의 대조가 선명했다. 우리 이야기가 우리 그림다울 때 해외 시장에서도 가장 매력적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작가가 바로 그다.
2009년 7월 용산참사의 현장에서 열린 <그림책 화가들, 촛불을 들다>전에 김환영은 ‘달팽이집’이라는 시와 그림을 내놨다.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 한 채씩 지고 있으니// 뼛속까지 스며드는/ 엄동설한에/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라는 그의 시는 그가 그동안 그려온 그림 속의 철학을 대신 전한다. 그가 간절하게 그려내고자 하는 단단함은 우리 어린이들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위협을 받지 않고 걱정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투명하고 선명한 그림은 어린이들에게 사실이 비틀려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사명감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많은 책에 그림을 그렸지만 아직도 김환영 작가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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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지은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심리철학과 어린이 철학교육을 공부했다. 동화를 쓰면서 철학을 공부한다든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동화를 읽는 일이 모두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와 동반하는 여러가지 작업을 통해 자유정신을 배우고 있다. 배운 바를 담아 동화 평론을 쓰고 동화를 쓴다. 한신대, 서울시립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네이버캐스트에 9월9일부터 게제될 글이라는데, 오늘의 문학> 한국의 그림책 작가 방을 찾으시면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답니다.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list
첫댓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아주 단단하게, 또 깊게 잘 붙잡아 쓴 듯합니다. 네어버케스트에는 아직 안 올라왔네요. 9월 9일이니까, 그때 다시 가서 다시 읽어야겠어요. 지금 동시마중 3호 다듬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놓고 가신 동시마중 창간호 '견본' 보면서 천천히 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수엄수엄 하세요. 몸 상하지 않게 잘 자고 잘 드시고.
김환영 그림책이 궁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