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의 '사설 탐정'입니다.
오늘 의뢰하신 조선일보 사설, 돋보기를 딱 들이대고 활자 이면에 묻은 지문을 꼼꼼하게 채취해 보았습니다. 제목부터 아주 자극적이죠? "[사설] 중대재해법 지키면 노란봉투법 걸리는 딜레마"라니요. 얼핏 들으면 선량한 기업들이 아주 억울하고 기가 막힌 법적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지금부터 저와 함께 이 기사의 진짜 속내를 하나씩 발라내 보겠습니다.
1. 현상과 본질의 분리: 기사의 껍데기와 진짜 노림수
기사가 말하는 현상(Fact):사설의 뼈대는 이렇습니다. "원청 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기 위해 하청 노동자의 안전을 챙기다 보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에 의해 '실질적 사용자'로 엮이게 되어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다."
숨겨진 본질(Intent):이 사설이 진짜로 유도하려는 프레임은 무엇일까요? 바로 "노란봉투법은 기업을 사지로 모는 세계에 유례없는 악법이니 조속히 무력화(보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전을 챙기면 노조 파업에 시달린다'는 억지 공포심을 조장해서, 재계의 민원 청구서를 정부와 여당의 책상 위에 대리 제출하고 있는 셈입니다.
2. 논리적 허점 타격: 딜레마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일치'
이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합리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의 작업 환경에 개입하고 안전을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다면, 그게 바로 '실질적인 사장님(사용자)'이라는 뜻 아닐까요?
알기 쉽게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영화 촬영장입니다. 메가폰을 잡고 "레디, 액션!"을 외치며 위험한 스턴트 연기까지 세세하게 지시하는 건 '원청 감독'입니다. 그런데 막상 스턴트맨이 다치거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면, 감독은 딴청을 피웁니다. "난 당신 고용한 사람 아니야. 인력 파견업체(하청) 사장한테 가서 따져!"
조선일보는 이걸 '딜레마'라고 표현했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이건 딜레마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책임의 정상화'입니다. 권한(작업 지시 및 안전 통제)을 행사하는 사람이 그에 걸맞은 책임(사용자성 인정 및 교섭 의무)을 진다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자본주의의 원칙이거든요. 법이 엉킨 게 아니라, 이제야 비로소 앞뒤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3. 역사/사회적 맥락: '위험의 외주화'를 끝내려는 시민의 상식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맥락을 봐야 합니다.왜 우리 사회가 수많은 진통과 희생을 겪으며 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을 세상에 내놓았을까요?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산업 현장을 지배해 온 끔찍한 마법의 주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위험의 외주화'입니다. 이익은 원청 대기업이 싹쓸이하면서, 위험한 노동과 헌법이 보장한 노동권의 책임은 영세한 하청업체로 떠넘겼습니다. 그 잔혹한 구조 속에서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노동자를 비롯한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피눈물을 흘렸죠.
이 사설은 포스코를 예로 들며 "지방노동위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하청 노조와 별도 교섭을 하라고 했다"며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탄식합니다. 하지만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시민의 상식선에서 보면, 이건 탄식할 일이 아니라 박수 칠 일입니다. 유령 취급받던 하청 노동자들이 드디어 진짜 결정권을 쥔 '진짜 사장님'과 테이블에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게 된 역사적인 진전이니까요.
언론은 기득권의 스피커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기득권의 '이윤 극대화 논리'를 '국가적 위기'로 둔갑시키는 이런 교묘한 언어의 마술에 우리는 단호하게 합리적 의심을 제기해야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RluuX6tzx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