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정리:2001.9.23
07:00윗새재-07:30첫이정표-07:45둘이정표-08:35치밭목갈림길-09:05샘터-09:10하봉헬기장-09:30중봉-09:50천왕봉-10:05출발-10:20중봉-10:45헬기장-10:55하봉-11:10초암릉갈림길-11:25국골4거리-11:50쑥밭재-12:25이정표-12:45조개골산장
오늘은 산청의 구형왕릉과 웅석봉의 지곡사 입구를 확인하기 위하여 인월로 빠져 국도를 타고 함양을 지나 산청으로 지리산을 향한다. 나의 애마는 경호강을 끼고 진행하다가 산청읍을 지나 도토리봉과 웅석봉을 연결하는 가파른 밤머리재를 넘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쉰다. 밤머리재는 그 옛날 고갯마루에 밤나무가 하도 많아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넘나들며 길가의 밤을 주워 많이 까먹었다고 해서 밤머리재라고 부른다. 밤머리재를 넘자 저 멀리 황금능선 자락과 주산이 구름 위에 뾰족이 모습을 나타낸다. 새벽에 밤하늘의 차오르는 달과 총총한 별들을 보고 나왔으니 날씨는 맑을 것이라고 예상하며 과연 하봉에 올라 멋진 풍광에 취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윗새재 마을로 향한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조개골이다. 조개골을 1년여 만에 다시 찾는다.
조개골. 조개골은 지리산 속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그래서 과거 한국전쟁 당시 조개골은 보급 투쟁이 어려운 지역으로 지리산 중에서 유일하게 파르티잔의 비트가 될 수 없었으나, 남부군이 궤멸 직전에 군경의 허를 찔러 간혹 최후의 은신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병주 선생님의 '지리산' 7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조개골은 유평리에서 5킬로쯤 오지에 있는 곳으로 조개껍질이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조개껍데기가 있다는 것은 수천 년 전 그곳이 바다였다는 증거로 되는 것이지만. 파르티잔의 흥미는 그런 곳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조계사라는 절이 과거에 이 골짜기 초입에 있어 조개골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런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리산의 전설과 지명에 대한 유래는 이곳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아름다운 대원사 계곡의 포장도로를 지나면서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대원사 계곡은 찾을 때마다 정겹다. 유홍준 선생님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에서도 극찬하고 있는 곳이 대원사 계곡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기에 지난 98년 여름 집중 폭우 때 계곡에서 야영하던 많은 피서객이 가장 많이 실종되고 숨진 곳이었다. 이곳에 와서 청춘남녀가 데이트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추억거리를 간직하게 될 것이며, 사랑의 프러포즈에 꼼짝없이 빠져들 거다. 그만큼 시심을 자극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경치가 좋은 곳이 대원사 계곡이다.
아기자기한 민박집과 상점이 있는 밤밭골을 지나 윗세재 마을의 조개골 산장 앞에 주차를 한 시간은 오전 7시 정각.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신밭골로 치밭목을 오르려면 조개골 산장 바로 앞 계류를 건너면 되고, 조개골로 오르려면 비둘기봉 산장 앞으로 난 평탄하고 순한 길을 따르면 조개골 본류 줄기를 따라서 산행을 하게 된다. 조개골로 향한다. 왼쪽 아래로는 흐르는 계류 소리가 크게 들리나, 울창한 숲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조개골은 중봉과 하봉 능선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대원사 계곡의 상위 골짜기이다. 수량이 의외로 풍부하고 암반이 크고 널리 분포하고 있으며 계곡 또한 넓다. 아름답고 청정한 계류와 울창한 수림은 이곳을 찾는 산님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하다. 싱그럽고 풋풋한 산길을 따라 장쾌한 물소리를 들으며 오늘의 목적지 하봉을 향해 오른다. 이곳에서 하봉까지의 예상 등정 시간은 3시간. 그리고 하산은 쑥밭재를 거쳐 세재 마을로 회귀하는 루트로 잡았다.
조개골을 따라 오르면 치밭목산장이나 하봉 능선의 헬기장에 오를 수 있는데 사실은 이곳도 통제구역이다. 미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계곡을 따라 오른다. 오르는 길가엔 가을을 알리는 다 익어 절로 떨어진 밤송이들이 무수히 많았으나 세재 마을 주민들의 재산이라 생각되어 건들지 않는다.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을 따라 오르니 약초 캐는 할아버지 한 분이 망태를 뒤에 메고 오른다. 안녕하세요? 약초를 캐시나요? 이곳에서 하봉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물어볼 필요도 없건만 괜히 죄의식에 질문을 던진다. “ 하봉까지는 4시간 이상 걸려요. 한참 가야 해요. ” 순박한 할아버지는 더 이상의 말을 아끼고 어서 올라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앞서 나간다.
삼십여 분 올라가니 이정표. 얼마 전 산행 때 보았던 국군 철모를 위에 씌어 놓은 이정표이다. 여기서 조개골의 지류가 갈라져 올라간다. 좌측은 치밭목과 하봉 헬기장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은 능선을 치고 쑥밭재를 올라 하봉이나 국골 또는 광점동으로 향하는 길이다. 지난가을엔 하봉을 한참 지나 쑥밭재 직전 이곳으로 하산하였는데 예상외로 하산길이 무척이나 길었고, 험하고 표지기가 없어 어려움을 느꼈다. 치밭목 길을 택한다.
조금 더 오르다 2번째 이정표를 만나는데 특기할 사항은 없다. 왼편에 흐르는 계류를 따라 등산로는 잘 놓여 있다. 계곡을 네 차례나 건너 조갯골 본류에 합류하고 계곡을 건너 제법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걷는다. 아직 길은 그저 평범하고 순하다. 곧 삼거리 갈림길을 만난다. 우측 천왕봉 3km, 좌측 치밭목 0.6km. 세재 4.9km. 그렇다면 하봉 헬기장이 있는 능선은 삼십여 분 오르면 된다. 하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다. 세재 마을을 떠난 지 시간 반 동안 휴식이 없이 올랐는데 하봉 능선에 도달할 때까지 가느다란 물줄기가 계곡 바윗돌 틈 아래로 졸졸 흐르고 있었고, 능선 안부 바로 아래 파이프에서 내려오는 샘터가 있다. 이름하여 하봉 샘터.
하봉 헬기장에 올랐다. 제법 바람이 거세다. 짙은 운무가 봉우리를 넘어 반대편 계곡 아래로 쉼 없이 흘러내려 간다. 오늘도 멋진 주능의 풍광을 감상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시각은 불과 9시 10분. 세재 마을에서 2시간 남짓 시간이 소요되었다. 너무 빨리 올랐나. 시간이 여유로워 갈등이 생긴다. 내친김에 천왕봉까지 오르기로 마음의 결정을 하고 중봉을 향하여 걷는다. 중봉까지는 제법 가파른 계속 오름길이다. 하늘에서 빗방울을 뿌린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정말 멋진데, 아쉬운 마음으로 천왕봉에 오르니 역시 짙은 운무와 강한 바람에 오리무중.
오늘도 역시 조망은 어렵다. 천왕봉에는 몇몇 사람이 옴팍한 바위틈에 쭈그리고 앉아 추위를 피해 술잔을 나누고 있었고. 대성골에서 올랐다는 젊은 부부 산님은 추위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몸서리를 치다가 다시 장터목 쪽으로 하산을 한다. 나도 하산을 한다. 아침을 아직 먹지 않은 터라 중봉에 내려가 시원한 캔맥주와 간단하게 조식을 마쳤다. 안타까워라. 중봉에서 천왕봉을 보면 정말 죽여 주는데. 안개에 쌓인 천왕봉이 보일 리가 만무. 중봉에서 하봉 가는 길은 야무지게 통제구역으로 막아 놓았다. 지리산 태극 종주를 하려면 이곳을 지나야만 하는데.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산꾼은 범법자가 되는 셈이다.
지리산의 동부지역은 왜 그리 통제지역이 많은지. 올 때마다 다소 부담감을 느낀다. 헬기장부터 하봉을 거쳐 무덤까지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어 가장 헷갈리는 구간이다. 하봉에서 추성리 쪽 초암릉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다 아쉽지만 하봉을 떠난다. 오늘도 신경을 쓰며, 하봉에서 초암릉으로 내려가는 길을 다시 확인하면서 하산을 한다. 하봉에서 무덤까지는 초암릉코스가 2개 정도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지난번 올랐던 초암릉 루트 앞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며칠 전 새로 설치한 듯한 통제 안내판이 있었는데 초암릉 코스를 국골이라 표기를 해놓았다. 하기야 초암릉을 타다가 국골로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것 같다. 하봉의 돌보는 이 없는 잡초 투성이의 무덤을 또 지난다. 최근 들어 이곳으로 여러 차례 지나다녔건만 그래도 생소하다.
국골 사거리까지는 조개골 지류로 하산하는 희미한 길이 두어 개 있는데 대체로 험난한 편이다. 무성한 산죽밭의 길을 따라가다가 허공다리골과 외고개길 갈림길 직전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 샛길을 찾아 조개골을 향하여 내려간다. 내려선 지 얼마 안 되어 조개골 지류를 만나는데 커다란 암반이 가로막는다. 암반을 건너 길을 찾았으나 없어, 다시 건너와 찾아보니 옆에 숨겨진 커다란 돌 틈 사이로 빼꼼히 길이 열려있다.
그 내리막길에도 마을 주민들이 약초를 캐고 있었고. 한참을 내려가서 아침에 보았던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는데 반가움에 인사를 드려도,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가스가 걷히면서 세재 마을 쪽이 어느 틈에 시야에 들어오고 주능쪽도 차츰 구름이 벗겨진다. 쑥밭재부터 하산길은 비교적 유순한 산죽 길이였는데 산님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확실한 길을 이루고 있지 않았으나, 비교적 쉽게 내려 갈 수 있었다.
한참을 내려가다 조개골 본류와 합류를 한다. 세재 마을에 하산하니 12시 45분. 산장에서 나오는 물로 몸을 닦고, 평화로운 세재 마을에 취해 한참을 머문다. 지리산의 오지로서 비교적 엄격하게 통제되어 환경오염이라고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세재 마을. 아직도 지리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지리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복이 아닐까.
덕산으로 나가는 직진 길을 버리고 좌회전하여 밤머리재를 다시 넘는다. 활짝 갠 동부 지리산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산청에서 함양 쪽으로 난 국도를 타고 가며, 흠뻑 취해 시청했던 MBC 대하 드라마 <허준>에 나오는 유의태 유적지를 지난다. 언제 여유로운 시간이 있다면 이곳의 왕산과 필봉산 그리고 구형왕릉을 들러야겠다는 생각하며 지리산을 떠난다.
첫댓글 애즈산님의
산행기를 읽다 보면 나두 산행 한거 같은 착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리산 종주길만 몇번 다녀왔던 것만으로
지리산 길은 그리 궁금하지 않음은 마음의여유가 없음일겁니다.
애즈삿갓홍길동럭비공님은
자유로운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