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헤테로토피아로 가는 입구에 서 있다
제19회 작품상
고옥란(려원)
“그것은 당연히 정원의 깊숙한 곳이다. 그것은 당연히 다락방이고, 더 그럴듯하게는 다락방 한가운데 세워진 인디언 텐트이며, 아니면 목요일 오후 부모의 커다란 침대이다. 바로 이 커다란 침대에서 아이들은 대양을 발견한다. 거기서는 침대보 사이로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커다란 침대는 하늘이기도 하다. 스프링 위에서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숲이다. 거기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밤이다. 거기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유령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침내 쾌락이다. 부모가 돌아오면 혼날 것이기 때문이다.”
― 미셀 푸코 『헤테로토피아』 (문학과 지성사. 2014)
미셀 푸코는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유토피아적 기능을 수행하는,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적인 장소를 ‘헤테로토피아’라 정의했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온갖 장소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전도시키며 실제적 위치를 한정할 수 있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들이라 할 수 있다.
계절과 계절의 점이지대에 서 있다. 시작과 끝, 만남과 헤어짐, 익숙함과 낯섦. 설렘과 두려움, 머무름과 나아감, 절망과 희망, 비움과 채움, 가능과 불가능, 사라지는 것들과 사라지지 않는 것들, 결핍된 것들과 충족된 것들을 시간의 플랫폼에서 하나하나씩 끌어내고 있다.
문득 유년의 새하얀 종이배들이 망막에 스쳐 간다. 아직은 시린 3월의 바람에 볼 붉어진 소녀가 되어 종이배를 쫓아 달리고 있다. 하굣길 ‘뽕뽕 다리’라 불리던 커다란 철제 다리 아래로 봄이 재잘대며 흐르고 있었다. 공책 한 장을 찢어 대충 접은 종이배 하나. 물살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종이배를 쫓아 달렸다. 종이배가 나를 앞질러서, 때론 내가 종이배를 앞질러서.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좌우로 흔들리기만 하던 종이배를 다시 흘러가게 하려고 커다란 돌멩이를 ‘풍덩’ 던졌다. 종이배는 잠시 허둥대다가 흘러 내려갔다. 가끔은 돌멩이를 던져 아무리 물살을 바꿔주어도 그 자리에 꼼짝없이 멈춰버린 종이배들도 있었다. 실망감이 밀려왔다. 아마도 그것은 종이배가 물살을 따라 흘러가지 못함에 대한 실망이라기보다는 종이배를 쫓아 달리지 못함에 대한 실망이었을 것이다. 종이배를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 흐르는 물 위로 쏟아지던 봄 햇살은 눈 부셨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의 즐거움은 아직도 시냇물과 동무가 되어 둑을 따라 바른 방향, 즉 인생을 어딘가 다른 곳, 말하자면 이웃 마을 쪽으로 인도하는 물의 흐름을 따라 걷는 것이다. 나의 ‘다른 곳’은 그렇게 멀리 가지 않는다.”
인생의 어느 ‘다른 곳’을 쫓아 달리지만 그의 말처럼 ‘다른 곳’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설령 그 ‘다른 곳’이 멀었다 하더라도 끝까지 달리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아래로 줄기차게 흔들리며 내려가던 종이배들도 어딘 가에선 분명 멈추었으리라. 표류하거나 좌초되었거나, 물살에 운명을 맡긴 종이배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접었던 유년의 종이배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기억의 서랍에는 알 수 없는 흐름을 쫓고 싶었던 유년의 꿈 한 조각이 종이배로 곱게 접혀있다. 그 시절의 종이배들은 모두 내 안의 헤테로토피아였다.
결 고운 햇살과 찬 바람의 공존, 머무르려는 계절과 나아가려는 계절의 틈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열차를 기다리며 서 있다. 낯선 냄새가 묻어오는 플랫폼에서 새 출발의 내음을 맡기 위해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열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어디론가 떠난다. 누군가는 내가 서 있는 역에 내릴 것이고 나는 그 열차에 오를 것이다. 유년의 종이배처럼 또다시 어떤 흐름을 타게 될 것이다.
지난해 타고 왔던 열차에서 묻어온 헤테로토피아들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진다. 시간의 기억을 더듬는다. 일 년 전 이맘때 어느 역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역에서 지금처럼 열차를 기다렸고 멀어지는 풍경과 다가오는 풍경들을 가슴에 품으며 연초록 두근거림이 새빨간 구세군 냄비 속 온기가 될 때까지 수많은 시간을 달렸다. 같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고 해도 풍경을 해석하는 일을 개별적이다. 단 한 줄의 글이 되기도 하고 장문의 편지가 되기도 한다.
열차는 마음이 정하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할 것이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기를 바라는 곳으로 나를 데려갈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품고 현재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 다가오고 있을 미래를 떠올리는 일은 특별하다. 때론 오 배송된 택배처럼 불편한 것들의 리스트들이 방황하게 만들 때도 있겠지만 낯선 플랫폼에 도착할 때까지 삶을 배우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설렘과 기대를 싣고 올 봄 열차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저만치 밀어낼 것이다. 자리를 잡고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몽실거리는 쾌감을 품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순간이 뭉쳐 나만의 헤테로토피아가 될 테니까.
어디선가 자신만이 느끼고 알아챌 수 있는 속도로 열차는 오고 있을 것이며 무엇을 보게 될지, 누구와 동행이 될지, 어떤 인연들이 시작될지 알 수 없지만 열차 밖 풍경도 열차 안 풍경도 내 선택의 결과다. 낯선 삶의 냄새를 맡으며 ‘서로’를 학습해 가는 동안 열차가 그 모든 ‘서로’를 품고 달리면 시간의 기억들이 서랍에 빼곡히 쌓여갈 것이다.
연두로 물든 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헤테로토피아로 들어가는 입구다. 가슴속 작은 새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차보다 먼저와 전하는 바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희망에 대해 생각하고 유년의 강물을 떠올리고 어디론가 떠나보냈던 수많은 종이배를 기억할 것이다. 새봄의 열차가 나를 싣고 경적을 울리며 ‘가능’에게로 달려가면 수많은 ‘불가능’을 잊어버릴 것이다. 나는 지금 헤테로토피아를 향해 가고 있다.
첫댓글 고옥란(려원) ·필명 : 려원(麗願)
·월간문학 수필 등단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금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은상, 한국예총 신인상, 대한민국환경문화대전 최우수상, 김포문학상 우수상, 한민족이산문학 우수상 등을 수상하였고 2020년,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을 수혜.
·2023~2024 The 빛나는 수필 / 북인 (60인 수록 작가 선정)
·산문집『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2022.8월 수필과 비평사) 출간
·2022년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 선정, 제19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선정
·현) 한국문인협회, 동서문학회 회원, 예술시대 작가회 회원, 책숲 글방지기
조성순선생님 !^^
다른 사람 글을 보다가 갑자기 제가 제 글을 보니 ㅋㅋ 민망하네요
회원 작품을 소개하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수고로움이 동반되는 일일텐데... 감사드리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서로 글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합니다.
벌써 10월의 끝에 이르고 있어요.
건강 조심하시고요!!^^
고옥란 선생님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목적지를 향해 긍정의
힘으로 달려가 보려 합니다
송심순 선생님 ^^
비루한 글에 기꺼이 독자가 되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글로 만들어가는 인연은 참 따뜻하고 좋은 것 같아요.
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말이네요.시간이 흘러갈 수록 늘 '마지막'이란 단어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듯 해요.
좋은 날 되세요. 햇살이 무척 고운 아침입니다 ! 선생님의 목적지로 잘 달려가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