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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모여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산들애인
【 산 명 】봉두산(753.7m)
【 위 치 】
전라남도 순천시 황정면 죽내리
【 개 요 】
♣ 전라남도 곡성·순천에 자리한 봉두산(753m)은 지형도에는 봉두산이라 표기돼 있지만, 이산 안에 깃든 태안사 일주문 현액에는 동리산 태안사 라고 되어 있다. 산이름이 언제 바뀌었는지 몰라도 두 이름에 연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봉황이 서식하는 나무가 오동나무이고 태안사가 자리잡은 곳을 둘러싼 주변 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동리산이라 불렀으며 둘러싼 주변산세의 최고점을 봉황의 머리 즉 봉두산 이라 부른다.
봉두산 주변에는 곡성 특유의 내륙산지를 이루고 있어 정상에 올라서면 순천쪽 황학리의 작은 들판을 제외하고 주변 조망이 온통 산 뿐이다. 남서쪽으로 삼산과 희아산 능선 넘어로 모후산이 오똑하고 북서쪽으로는 통명산 넘어 무등산까지 시야가 트인다. 동쪽으로는 둥주리봉과 자라봉, 그리고 지리산이 장막을 치고 있다. 이러한 내륙산지 조망이 산행의 맛으로는 제일이지만 봉두산은 태안사 여행에 초점을 맞추어도 좋은 산이다.
곡성 - 구례 간 17번 국도 상행 압록에서 18번 국도쪽으로 방향을 틀면 거대한 협곡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고 약 4km정도 강변 도로 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아들면 태안사로 가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약 5km가면 태안사 입구에 닿는데. 강변을 따라 난 도로에 차량통행도 뜸해 드라이브코스로도 일품이다. 장승 한쌍과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는 입구서부터 다시 협곡을 비집고 낸 비포장길을 따라 들어서면 자유교 넘어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여기에 차를 좋고 정심교, 반야교, 해탈교 를 건너 능파가에 이르는 길은 호젓하기 그지없고 봄이면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능파각은 계곡과 계곡을 가로질러 지은 고색창연한 다리겸 정자다. 경찰충혼탑을 지나 연못을돌아올라 일주문을지나 태안사는 바로 그 위 넓 은 터에 자리잡고 있다.
목 무덤은 ‘고려태사개국장절공(高麗太師開國壯節公)신숭겸장군(申崇謙將軍)’의 묘를 지칭한다.
태안사 경내에서 뒷길로 오르면 스님들이 직접 재배하고 경작한 차밭, 야채밭, 다양한 과실수 밭이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이 고요한 산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고려태사개국장절공(高麗太師開國壯節公)신숭겸장군(申崇謙將軍)’의
목 무덤이 있다.‘장절(壯節)’이란 후백제군과의 공산(公山:지금의 경북 달성군 팔공산) 동수대전투(桐藪大戰鬪)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위왕대사(衛王代死)로위기를 모면한 ‘고려 태조 왕건 (高麗 太祖 王建)이 자신을 대신하여 장렬히 전사했다 해서 내린 시호이다.
왕건(王建)은 신숭겸의 사후에도 나라의 잔치가 있을 때마다 신숭겸이 없는 것을 슬퍼하며 짚으로 그의 형상을 만들어 관복을 입혀 앉히고 그를 잊지 않았다고 전 해진다.임금을 대신해 목숨을 버린 신숭겸의 충성심과 희생정신은 이후에도 크게 존경을 받았었다.
고려 성종 13년(994)에는 태사(太師)라는 높은 벼슬에 올려 졌고 역대 임금의 신주를 모신 태묘의 태조 사당에 공신으로 함께 모셔졌다. 또 예종 15년(1120)에는 예종이 서경(지금의 평양)에 행차해 팔관회에서 신숭겸· 김낙 장군 이야기를 듣고 두 장군의 충성심에 감동받아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노래를 지어 그 넋을 기렸다.이 노래는 신숭겸의 사적을 기록한 책인 ‘장절공유사(壯節公遺事)’에 실려 있다.
전남 곡성출신으로 평산(平山) 신(申)씨의 시조인 신숭겸(申崇謙)장군은 태조(太祖)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운 4태사(四太師 : 신숭겸, 복지겸, 홍유, 배현경)의 한 사람으로 고려의 개국 공신이다.
왕건(王建)은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과 한 가족의 결의를 맺었다고 해서 이들의 성씨를 지닌 사람끼리는 결혼을 피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한다.
신숭겸장군은 고려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해 가고 있던 시기에 견훤(甄萱)이 이끌던 후백제(後百濟)와 맞붙은 공산동수대전투(公山桐藪大戰鬪)에서 견훤(甄萱)의 부대에게 포위를 당하는 상황에 이르자 왕건(王建)을 살려내기 위하여 자신이 대신 왕건(王建)의 복장을 갖춰 입고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바로 고육지계(苦肉之計)였던 것이다.그 바람에 왕건(王建)은 살려낼 수 있었지만 그는 목이 잘리고 말았다.
후백제군(後百濟軍)과 공산동수대전투(公山桐藪大戰鬪)에서 왕을 피신시키고 왕을 대신해 싸우다가 패배한 신숭겸장군을 후백제군이 왕건(王建)의 수급(首級)인 줄 알고 꿰어갔다가 뒤늦게 왕건(王建)의 수급(首級)이 아닌 줄 알고 진(陣)밖으로 던지자 신숭겸장군의 애마인 용마가 수급을 물고 고향과 인접한 태안사의 뒷산(신숭겸 장군이 어릴 적 무술을 연마했던 동리산 ; 봉두산(鳳頭山))에 와서 3일간을 울다가 굶어 죽었다. 이를 발견한 태안사(泰安寺) 승려들이 필시 수급(首級)은 신숭겸 장군의 머리이고 말은 그의 애마라는 것이리라 믿고 장군 단에 말의 무덤과 신숭겸장군의 무덤을 만들어 매년 3월 16일 신제와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사찰의 승려들에게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한다.
신숭겸장군이 애지중지 했던 용마는 신숭겸장군이 어려서 대황강(보성강 또는 석압강) 용소에서 목욕을 하다가 굴에서 나온 용마를 얻었다고 한다. 목 무덤은 고려 전형적인 석축으로 둘러싸인 형식이다. 제단 석에는 절의 표시가 새겨져있는데 이는 절에서 관리하였기 때문이다. 갑술년(서기 1934년)에 태안사 승려와 유림, 본손이 날짜를 잡아 묘를 더 좋은 곳으로 이장하려고 지관을 불러 미명에 단소 봉분을 파묘하니 석함이 나오는 순간 청명하던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소나기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치므로 작업을 하던 인부가 혼비백산하여 도망하므로 봉분을 덮어 버리고 나니 날씨가 다시 맑아졌으며 그 후로도 단소를 더럽히는 자가 있을 때면 큰 구렁이가 나타나 혼내주었으며 또 벌초나 제향을 거르거나 소홀히 하면 귀촉도(歸蜀道:두견이)가 슬피 울며 고을에 흉년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태안사는 장삼이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행깨나 다녔다 하는 사람들의 뇌리에는 아름다운 사찰로 각인돼 있다. 매표소에서 능파각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는 여태 포장을 하지 않은 숲길이라 정감이 간다.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에서 공부한 혜철 선사가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열면서 한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닐 정도로 사세가 컸다. 풍수지리의 원조 도선 국사도 이 절에서 혜철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태종의 둘째인 효령대군이 이곳 태안사를 원당으로 삼았다.
고려 때부턴 송광사의 위세에 눌려 위축됐으며 조선시대엔 쇠락의 길을 걷다 정유재란으로 일부 전각이 소실된 후 한국전쟁 때 일주문과 능파각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탔다. 그러다 제법 절다운 규모를 갖춘 것은 근래의 일이다.
능파각은 태안사의 얼굴이다. 능파란 계곡의 물굽이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다는 의미. 다리이자 누각인 능파각에는 사람들이 앉을 수 있게 해 여름이면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만추엔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을 감상하는 명소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능파각 인근에는 뜻밖에도 경찰충혼탑이 있다. 한국전쟁 때 곡성경찰들이 태안사에 임시본부를 설치, 인민군과 전투를 하다 48명이 전사했는데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매표소 인근에는 곡성이 고향인 민족시인 조태일시문학기념관도 있으니 들러보자. 조태일 시인은 태안사 대처승의 아들로 생전에 그는 '나의 시는 태안사에서 비롯됐고 태안사에서 끝이 난다'고 말했다 한다.
【 소 개 】
▶ 봉두산은 순천시 황전면 쪽에서도 진입할 수 있지만 계곡들이 드러나 그윽한 맛이 곡성 쪽만 못하다. 또한 태안사 일주코스보다 조금 힘든 하한분교(폐교)코스가 있는데 죽곡면 하한리나 고치리에서 출발한다. 하한리 코스는 상환마을에서 북서릉 혹은 북봉 오르는 두가닥 길이 있다. 폐교 있는 마을에서는 건너편 산허리로 북서릉을 올라 고치리에서 올라오는 계곡길과 만나 정상에 오른다. 폐교에서는 주계곡을 계속 오르다 북서릉 지계곡 능선 따라 북봉에 이른 후 정상으로 간다. 이 코스는 3번 정도 고도가 높아지며 8km로 약 3시간 걸린다. 그러나 요즘에는 길이 군데군데 막혀있다.
태안사 일주산행의 들머리는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이 있는 주차장과 정심교다. 주차장에는 대형 봉두산등산안내도와 태안사관광안내도가 있다.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은 잘 꾸며진 특이한 목조건물이다. 정심교를 지나면 태안사까지 2km의 산행이 시작된다. 오른쪽으로 맑고 시원한 계곡물과 곳곳에 얕은 폭포들이 있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고 잘 닦여진 산책로다. 가을엔 단풍이 화려하다.
반야교, 해탈교를 지나면 인명피해 예방을 자동경보기가 있다. 관광안내도는 심청의 고장 곡성을 알리는 다섯 군데(태안사, 심청공원, 압록유원지, 도림사계곡, 청계동계곡)의 사진을 담고 있다. 조금 더 오르면 다리와 금강문, 누각을 겸한 특이한 건물 양식인 능파각이 나온다. 200여 년이 지난 이 건물은 6.25사변 때도 소실되지 않은 채 한 그루 나무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30분쯤 걸으면 충의문과 경찰 충혼탑이 나온다. 6.25사변 때 봉두산에서 산화한 48명의 경찰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조금 위로는 방생연못과 석가모니 부처 진신사리 봉안탑이 있다. 오른쪽으로는 고려 태조 때 창건되어 천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태안사 일주문이 화려한 건축형태를 자랑하고 있다. 태안사 왼쪽으로 난 성기암 방향 등산로를 택할 수도 있다. 일주문을 따라 조금 내려가 표지판을 찾은면 된다.
등산로는 금방 가팔라진다. 숲도 울창하여 꼬부라진 길에선 앞사람이 금새 보이지 않는다. 산죽밭을 지나 안부인 절개지까지는 1.7km, 약 50분 걸린다. 절개지에서 오른쪽 서릉을 따라 오른다. 정상까지는 1.5km. 잡목 사이로 난 길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능선길이 꽤 가파르지만 40분 정도 계속 오르면 정상이다. '봉두산 해발 753m 곡성군' 이라고 새겨진 정상석이 견실하게 서있다.
봉두산 정상은 비좁다. 또한 키가 큰 잡목이 많아 전망이 좋질 않다. 그래도 잡목 사이로 지리산 노고단과 천왕봉, 광주 무등산이 보인다. 정상 남쪽과 서쪽으로는 곡성의 첩첩한 산과 계곡들이 보인다.
남동릉으로 조금 내려서면 전망도 좋아지고 점심 먹기에 좋은 곳이 나온다. 8 - 9부 능선에는 키 큰 철쭉이 피어있다. 이곳에서 35분 내려오면 평평한 안부(월룡) 사거리다. 이정표에는 '외사리재 5.25km, 원달 3.2km, 태안사(성기암) 1.0km, 봉두산 2.5km'로 표시되어 있다. 계곡 길에는 산죽숲이 이어진다. 25분 정도 내려오면 성기암쪽 등산로 표지석과 돌계단으로 오르는 숲길로 이어진다. 그 옆 3 - 4m 길이의 돌다리를 건너면 태안사 일주문으로 오르는 잘 다듬어진 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봉두산(鳳頭山)은 봉황의 머리로 여겨진다. 그만큼 주변 산세와 앉은 터가 빼어나다는 것이다.
산행은 곡성 죽곡면 원달리 태안사 능파각~성기암 갈림길~외사리재~사거리(태안사갈림길)~외동골삼거리~전망대~봉두산(753m)~폐헬기장~북봉~폐헬기장~묘지~고치계곡·상한마을 갈림길~임도(고개)~등산안내판(컨테이너)~절재~태안사 순. 절 입구 등산안내도에 따라 한 바퀴 돌면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산행팀은 봉두산 뒤 북봉을 돌아 크게 원점회귀를 하다보니 4시간 정도 걸렸다. 순천 쪽에선 북봉으로 다닌 흔적이 역력하지만 북봉에서 태안사로 가는 길은 묵어 길찾기가 힘들었다
태안사로 이어지는 1.5㎞의 진입로는 아직 흙먼지 풀풀 날리는 옛길. 절 아래 주차하고 여유있게 걷고 싶었지만 시각은 이미 오전 11시30분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능파각 아래 화장실 옆 간이주차장에 주차하고 등산화를 조여맨다.
산행은 태안사에서 풍광이 가장 빼어난 능파각(凌坡閣)을 지나며 시작된다. 능파각은 물이 흐르는 개울 위에 자연석으로 석축을 쌓고 지붕을 얹은 다리이자 누각. 동시에 속세를 벗어나 도량으로 들어서는 산문 역할도 한다.
능파각을 건너면 수백년 된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숲길. 이 길을 따라 200m쯤 가면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이끼 낀 돌계단이 울창한 숲사이로 열려 있다. 입구엔 '봉두산 등산로'라 적힌 조그만 팻말이 보인다. 우측 너른길은 봉서암 가는 길이다.
발밑엔 낙엽, 머리 위론 끝물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만추의 서정을 느끼게 해주는 오솔길로 5분쯤 오르면 임도와 만난다. 잠시 후 길 좌측 바위 위에 흰색 페인트로 '←태안사' '봉두산 등산로·성기암'이라 적힌 기와 한 장이 놓여 있다. 그러고 보니 일주문을 통과해 경내에서 절집을 둘러보고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도 있는가 보다.
50m쯤 더 가면 곡각지점에서 산으로 올라서는 본격 들머리가 보이고, 임도를 계속 따라가면 성기암을 만난다
산죽과 낙엽이 뒤엉킨 완경사 낙엽융단길을 10분쯤 오르면 사거리인 외사리재. 우측 곡성 죽곡면 원달리, 직진하면 순천 월등면 월룡리, 산행팀은 좌측 봉두산 방향으로 향한다.
곡성과 순천의 시군 경계인 이 길은 수북한 낙엽에 이따금씩 만나는 끝물 단풍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길의 연속이다. 실제로 외사리재에서 27분 뒤에야 농짝만한 바위를 처음 만날 정도로 지형지물이 거의 없다. 여기에 정상까지 거의 외길이라 길찾기도 전혀 문제없다.
도중 인상적인 지점은 외사리재에서 47분쯤 뒤 아주 너른 묘지와 여기서 6분 뒤 한 굽이 오르면 만나는 외동골 삼거리 정도다. 외동골 삼거리에는 어른 손바닥 크기의 코팅된 표지기가 걸려 있다. 산너머 순천 한울산악회 소속의 황전면장이 달아놓은 것이다. 봉두산은 태안사에서 오르기도 하지만 산너머 순천 황전면에서도 많이 올라오는가 보다. 입장료 1500원을 우선 절약할 수 있으니까.
이제 봉두산은 불과 400m 남았다. 3분쯤 길 좌측 전망대에서 서면 태안사와 방금 올라온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부담없이 올라왔지만 위에서 보니 능선의 굴곡이 꽤나 심하다.
정상 직전 전망대다운 전망대를 하나 만난다. 앞선 전망대는 태안사 쪽이지만 이번에 만나는 전망대는 순천 황전면이 내려다 보인다. 순천 쪽 들머리인 봉성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도로와 광산으로 파헤쳐진 흉물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삼각점과 작은 정상석이 나란히 서 있는 정상은 앞선 전망대와 큰 차이가 없지만 향후 오를 북봉이 보인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
하산은 두 갈래길. 커다란 안내판엔 좌측 '태안사(3.2㎞) 상한', 우측 '태안사(3.5㎞) 원달'이라 적혀 있다. 좌측은 절재를 거쳐 작게 한 바퀴 도는 코스이며, 우측은 북봉을 거쳐 크게 원점회귀하는 여정이다. 산행팀은 우측 북봉을 향해 내려선다. 150m쯤은 급내리막길이지만 이후 완만해져 황홀한 낙엽길로 변한다. 정면으로 북봉이 보일 무렵, 대략 13분쯤 뒤 바위 두 개가 엉켜붙은 전망대를 만난다. 좌측으론 하산할 능선이, 우측 낮은 산줄기는 순천땅 봉성 가는 능선이다. 주변엔 그간 안 보이던 키작은 산죽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빛바랜 노란 단풍 또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곧 갈림길. 봉성 가는 반듯한 우측길 대신 좁은 좌측길로 향하면 잡풀 우거진 폐헬기장에 닿는다. 맨 왼쪽 비교적 반듯한 길은 산허리를 타는 무덤 가는 길, 산행팀은 무덤 가는 길 바로 옆 풀섶을 헤치고 능선길을 개척한다.
7분쯤 뒤 둥그스름한 지점에 닿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일 높아 북봉인 듯싶다. 지도에 표기돼 있지 않은 데다 봉두산의 북쪽에 위치해 산행팀이 그냥 북봉이라 명명한 것이다. 동시에 길찾기에 유의할 지점이다. 직진하면 상한봉(상한마을), 산행팀은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하산길 좌측으로 보이는 능선은 봉두산에서 절재 쪽으로 내려서는 산줄기다.
의외로 화려한 단풍이 발길을 붙잡는다. 하지만 여기서 절재까지는 길찾기에 상당히 유의해야 할 구간이어서 산행팀은 노란 안내리본을 촘촘하게 매어 놓았다.
폐헬기장을 지나 봉분이 약간 파헤쳐진 무덤 좌측으로 향한다. 100m쯤 뒤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선다. 갑자기 급경사길로 돌변, 능선길이 아닌 것으로 보이나 서서히 낙엽 수북한 산죽길이 기다린다. 이후 상석이 없는 묘지를 지나자마자 사거리를 만난다. 좌측 고치리, 우측 상한마을, 산행팀은 직진한다. 5분이면 임도에 닿는다. 왼쪽으로 5분쯤 가면 등산안내판이 보인다.
목적지는 정면으로 보이는 능선의 고갯마루인 절재(1㎞)지만 오랫동안 산꾼들이 다니지 않아 길 흔적이 전혀 없다. 안내판 옆 물길, 다시말해 고치리계곡을 건너 우측으로 간다. 좌측으론 컨테이너가 보인다. 촘촘히 달아 놓은 노란 리본을 확인하자. 움푹 팬 길로 40m쯤 가면 또 움푹 팬 지계곡. 건너면 산죽밭 사이로 산길이 열려 있다. 입구를 찾기 어려워서 그렇지 이 길만 찾으면 30분이면 절재에 올라선다. 등산안내판도 서 있다.
이제부턴 일사천리로 하산한다. 태안사까지는 1.7㎞. 간혹 돌길이지만 유난히 울긋불긋한 끝물 단풍 덕에 발걸음이 가볍다. 25분이면 산을 벗어나고, 10분이면 능파각 아래 간이주차장에 닿는다.
【 등산지도 】
【 등산코스 】
▶원달재->(1.3km)강청봉->(0.75km)송소리봉->(1.25km)의사리재->(0.5km)태안사갈림길->(0.8km)능파각->(1.3km)절재
->(1.1km)전망대->(0.75km)북봉->(0.75km)전망대->(0.4km)봉두산->(0.75km)502봉->(1.5km)팔자봉->(1.25km)감시대봉
->(1.75km)괴목 도상거리->14.15km
【 구간별소요시간 】
10:30 태안사 주차장∼10:50 성기암 갈림길∼11:00 외사리재(←봉두산 2.5Km →원당 3.2Km ↓태안사 1.0Km)∼
외동골 삼거리∼11:42 전망대∼11:55 봉두산(754m)∼12:12 폐헬기장∼12:18 북봉(700m)∼12:25 폐헬기장~
12:28 묘지~12:35 상한마을 갈림길~12:42 묘지∼12:48 임도(고개)∼13:01 등산안내판(↑절재 1.0Km, 농장)∼
13:20 절재(↑복두산 1.5Km ↘태안사 1.7Km)~13:51 절옆 임도~13:55 태안사
【 주의구간 】
【 교 통 】
【 맛 집 】
석곡면 소재지에 위치한 돌실회관(061-363-1457). 돼지숯불구이(사진)전문점이다. 호남고속도로 석곡IC에서 차로 2, 3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석곡은 광주로 가는 길의 중간기착지로, 이곳 식당 인근 석곡터미널 부근에서 드럼통 위에 돼지고기를 구워먹으며 허기를 채웠다고 전해온다. 석곡면에 유난히 숯불구이점이 많은 이유다. 그 중에서 가장 전통있고 맛있는 집이 돌실회관이다. 연탄 위에 초벌로 한 번 굽고 나서 숯불에 한 번 더 굽는 것이 맛의 비결. 3년 묵은 김치와 갓김치 등 밑반찬도 한결같이 맛깔스럽다. 1인분 150g 8000원. 석곡면에는 대중탕도 있어 목욕 후 식사를 하면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