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urg)
출생-사망 1933년 3월 15일 - 2020년 9월 18일
소속
미국 연방대법원(대법관)
경력
1993.08~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1980.06 미국 연방상소법원 판사
1973~1980 미국자유인권협회 법무 자문위원
1972~1980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 교수
진보 긴즈버그의
보수 *‘베프’
*베프: best friend 베스트 프렌드’를 줄여 이르는 말로,
서로 뜻이 잘 맞으며
매우 친한 친구를 이르는 말.
157년 간 남성(男性) 입학만 허용한
미국 공립 버지니아 군사학교(軍事學校)는
1996년 연방 대법원(大法院) 판결로
여성(女性) 생도(女性)를 받아들이게 됐다.
3년 차 美 연방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다수의견에 이렇게 썼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능력을 바탕으로 열망하고 성취하며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동등한 기회를 부정(否定)하는 법(法)과 공공 정책은
명백히 무효(無效)다.”
아들이 이 학교에 재학(在學) 중이어서 기권한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大法官)을 뺀 표결은 7대 1.
양성평등(兩性平等)을 실현한 역사적 판결에서
딱 한 명이 긴즈버그에 반대했다.
앤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이었다.
“남성(男性) 전용 군사학교는 오랜 전통(傳統)이다.
국민은 다른 전통(傳統)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과정을 통해 전통(傳統)을 바꾸기로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전통(傳統)이 몇 세기 동안 위헌(違憲)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法)이 아니라
법으로 밀반입(密搬入)된 정치(政治)다.”
확고한 진보주의자 긴즈버그와
뼛속까지 보수주의자 스캘리아는
판결(判決)에서 극(極다할극)과 극(極)을 달렸다.
헌법을 대하는 시각(視覺)도 달랐다.
근원주의자인 스캘리아는
제정자의 입법(立法) 의도(意圖)대로
헌법(憲法)을 해석(解釋)해야 한다고 믿었다.
긴즈버그는
헌법은 “살아있는 문서(文書)”이므로
사회 변화(變化)에 따라 해석(解釋)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두 사람은 대법관(大法官)으로 함께 일한
22년간 낙태, 동성결혼, 건강보험 등
논쟁적 사건에서 같은 편에 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깊은 우정(友情)을 나눴다.
80년대부터 해마다 12월 31일 저녁
긴즈버그 집에서 두 가족(家族)이 모여
식사(食事)하며 새해를 맞았다.
두 사람 이름을 딴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카메오로 출연하고,
*cameo: 카메오(유명 배우의 단역 출연)
여행과 쇼핑도 함께 했다.
2016년 스캘리아 대법관 追悼(슬퍼할 도)式에서
긴즈버그는
“그를 따라가서 산
카펫을 지금도 잘 쓰고 있다”고 농담했다.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냐는 질문(質問)에
2014년 스캘리아는
“나는 생각을 공격하지 ~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있는 긴즈버그를 보며
“몇몇 아주 좋은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스캘리아는 반대의견을 초안(草案) 단계에서
긴즈버그에게 보여줘
다수의견을 쓸 때 약점(弱點)을 보완하고
논리를 강화할 수 있게 했다.
대법관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명감(使命感)이
둘을 우정(友情)으로 묶었다.
편을 갈라 내 편 아닌 네 편은 배척하고,
정치 이데올로기로 모든 사안(事案)을 바라보는 데
우리는 익숙해졌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어쩌면
논쟁할 아이디어가 없어서일까.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정치적 분열의 시대에
두 사람은
생각이 같지 않아도 함께 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끝)
박현영/ [글로벌 아이]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2020.09.24.(Thu)
[뉴욕 중앙일보] 발행
미주판 14면
Los Angeles 76.0°
[출처: 중앙일보]
[글로벌 아이] 진보 긴즈버그의 보수 ‘베프’
중앙일보 2020 09 21 월요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Ruth Bader Ginsburg)
시대의 아이콘이 된 법관.
지난 9/18일 숨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 대법관 얘기다.
미국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는
그의 얼굴을 새긴 티셔츠와 열쇠고리가 팔린다.
연예인이 아닌 법관(法官)이
이렇게나 인기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긴즈버그는 작은 사건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페미니스트란 수식어 때문에
여성 인권만을 주장했다는 오해도 받지만
그가 추구한 건 *젠더에 기반한
차별(差別) 해소(解消)였다.
*젠더(gender):
생물학적인 성에 대비되는 사회적인 성을 이르는 말.
1995년 9월 5일
북경 제4차 여성 대회 정부 기구 회의에서
섹스(sex) 대신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섹스가 남녀 차별적인 의미를 지닌 것인 반면
젠더는 남녀 간의 대등한 관계를 내포하며,
평등에 있어서도 모든 사회적인 동등함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출산(出産)하다 숨진 아내를 대신(代身)해
아들을 키운 스티븐 와이젠펠드 사건이
대표적이다.
미국법은 남편을 잃은 편모(偏母)에게만
연금(年金)을 지급했는데 긴즈버그는
1975년 연방 대법원(大法院)에서 승리하면서
이런 관행(慣버릇관行)을 바꿨다.
그는 1993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여성 혹은 남성에게만 맞는 일은 없다"라며
"젠더에 기반한 차별(差別)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남긴다“라고 말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대법관 지명(指名) 연설에서
“긴즈버그가 미국 역사 책에 오르려
자리 욕심(欲心)만 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측(豫測)은 들어맞았다.
긴즈버그는 대법관(大法官)에 취임하면서부터
적극적으로 소수자(少數者)를 대변(代辯)했다.
그에게 반대자(反對者)란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1996년 버지니아 군사학교(軍事學校)가
남성 입학만 허용한 사건에선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한다“
라고 주장했다.
2015년 동성 결혼 합법화 판결문에선
"결혼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라며
"결혼은 시민법적인 전통(傳統)에
기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보수 진영의 공격이 이어졌다.
"좀비" "마녀"라며 그를 비난한 보수 논객도
적지 않았다.
긴즈버그의 마지막은
말 그대로 몸을 바친 투쟁이었다.
10년이 넘는 암 투병 기간에도 긴즈버그는
"은퇴에는 관심이 없다"라며 대법관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긴즈버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구성된 미 대법원은
보수색이 짙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긴즈버그는 법원(法院)에 갇히지 않았다.
숨지기 직전까지 외부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는 2018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RBG에
* (Ruth Bader Ginsburg:RBG )
출연해 좌우명을 공개했다.
"독립적인 사람이 되라는 어머니의 말을
마음에 항상 새기고 있다"
대한민국 법관(法官)에게 이 다큐를 권한다.
강기헌 산업 1팀 기자
[출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중앙일보 2020 09 21 월요일
긴즈버그의
오페라 사랑법^^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美) 연방대법관의
별세 하루 만인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추모(追慕)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映像)의 시작과 끝은 오페라다.
정확히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무대 막이 열리기 전에 연주되는
서곡(序曲)이다.
미국의 두 번째 여성(女性) 대법관의
삶에 대한 영상(映像)은
‘피가로의 결혼’ 서곡(序曲) 첫 부분으로 시작해
마지막 부분으로 끝난다.
오페라 애호가였던 긴즈버그를 위한 편집이었다.
‘오페라를 좋아했구나’ 하고 넘어가기엔
그가 사랑했던 오페라 목록(目錄)이
심상(尋常)치 않다.
10대 시절 폰키엘리 ‘라 지오콘다’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여주인공 지오콘다의 어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고,
사람들은 그런 어머니를 마녀(魔女)로 몰아
사형(死刑) 직전까지 내몬다.
사회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다.
하지만 지오콘다는 끝까지
인간적이고 제대로 된 선택(選擇)을 한다.
그가 특별히 사랑했던 오페라 중엔
바그너 ‘신(神)들의 황혼’도 있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다.
주인공인 브륀힐데는 신(神)의 딸로 태어나지만
사랑을 위해 인격(人格)을 얻었고,
이기심과 욕심에 만신창이가 된 인간들을 구원한 후
스스로 불길에 뛰어든다.
뜻있는 여성의 용감한 헌신(獻身)이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작품(作品) 속에
비인간적(非人間的)으로 살아야 하는
여인(女人)이 등장했다.
가난 속에 병들고(라보엠),
계급 때문에 피치 못하게
몸을 파는 직업을 택하고(라트라비아타),
가부장제에서 고통받았다(마농).
자결하거나(토스카, 루치아),
처형을 당했고(아이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죽어버리기도 했다(에우리디체, 로엔그린).
긴즈버그의 ‘오페라 친구였던’
프란체스타 잠벨로 *WNO 감독은
* (Washington National opera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
“약자(弱者)이거나 병자(病者)인 오페라 속 여성들이
인간적(人間的)으로 살고자 하는 스토리에
긴즈버그는 매료(魅홀릴묘了)됐다”며
“긴즈버그의 삶 자체가
인간의 인간적 생존에 대한 관심이었기 때문”
이라고 회고했다.
그에게 오페라는 그저 취미(趣味)가 아니었다.
2016년엔 오페라 무대에
노래 없는 배역(配役)으로 출연까지 했던
긴즈버그는 ‘오페라와 법(法)’이라는 주제로
시리즈 강의(講義)도 했다.
오페라 속의 계약, 범죄 같은 소재(素材)를
법(法)으로 풀어냈는데,
한번은 ‘카르멘’에 대한 해석(解釋)을
들려줬다고 한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도발적 여성(女性)인
카르멘이 폭행 죄목(罪目)으로 수감되던 중
간수(看守)를 유혹하는 노래를 두고
긴즈버그는
‘플리 바기닝(有罪를 認定하고 減刑되는 것)’이라
불렀다 한다.
전통적 여성상(女性像)을 완전히 부정(否定)한,
나쁜 여성의 표본과도 같아
초연(初演) 때 모두가 싫어했던 그 노래를
두고 말이다.
취미 생활마저 사회적 메시지로 남긴
한 오페라 *마니아가 세상을 떠났다.
* 마니아 mania: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
오페라에서 지독히도 오랫동안 어렵고 불쌍하게
살아왔던 여성 주인공들도 든든한 후원자를
잃어버린 듯하다.
- 끝 -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긴즈버그의 오페라 사랑법
[출처: 중앙일보]
2020.09.22 화요일 | 종합 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