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고수가 알아본다? 한 고수는 어두운 지하의 흑도무림黑道武林, 다른 고수는 밝은 지상의 백도무림白道武林. 서로는 숙명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종국에는 서로를 쳐야 하는 운명이지만, 그러나 고수는 상대 고수의 능력과 인품을 아끼기조차 한다. 백도무림의 고수는 중원의 질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흑도무림의 고수를 치지만 비감에 잠겨 그의 눈을 조용히 감겨 준다. 알다시피 무협지의 기본 얼개다. 여기서 두 고수 사이의 교감을 증폭시켜주는 장려함, 혹은 미세한 떨림 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이른바 비장미다. 1980년대의 홍콩 느와르에서는, 당대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진 만큼 고수 사이의 막막한 모순적 대립 구조가 휘발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의 비장미는 다른 판본으로 변형돼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영화 <히트Heat>를 보면 이 무협지의 기본 구조가 연상된다. 이 영화는 영락없이 무협지 구조다. 영화는 알 파치노와 로버드 드 니로라는, 연기자로서나 작품 속의 인물로서나 고수임이 분명한 두 인물의 어쩔 수 없는 한판 격돌을 위해 치닫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무협지 미학의 밑동인 비장미가 서서히 영화의 품격을 헝클어 놓는다.
비장미는 언제나 두 갈래 길 앞에서의 선택을 요구받기 마련. 한 갈래 길로 가면 거기에는 리얼리티라는 종착역이 나타난다. 단 비장미가 현실의 깊숙한 곳에 닻을 내리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때다. 그러나 다른 길로 갈 때 나타나는 것은 과잉된 낭만주의다. 비장미가 허방을 떠다니기만 할 때다. 무협지는 대개 후자 쪽이다. 이 영화가 강요하는 비장미 역시 후자 쪽. 그래서 영화는 과잉 낭만주의를 중간에 두고 무협지와 서로 혈통 관계임을 확인시켜준다. 두 고수의 허무적 비장미를 위해 영화라는 시스템과 다른 인물들은 같이 순장된다. 발 킬머 정도가 자기 고유의 성격으로 살아남는 정도랄까. 만약 알 파치노와 드 니로가 없다면 다른 인물들은 어느 정도나 기억될까?
내러티브 곳곳에 구멍이 나는 것도 감독이 두 인물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인 듯하다. 물론 세간의 평처럼 촬영은 깔끔해 보인다. 또한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발 킬머, 존 보이트 등이 한데 모여 보여주는 경연은 입장료 아깝지 않은 구경거리다. 좋은 재료로 그 이상을 조직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 같은 알 파치노와 드 니로를 써도 코폴라나 스코시즈가 쓸 때와 마이클 만Michael Mann이 쓸 때 이렇게 다른 것은 아무래도 현실에 대한 투시력 차이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