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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 동남부 지역으로 고구려 망인들이 들어와 집성촌이 형성된다.
발해 멸망 후 망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온다.
고구려, 발해 망인들은 동경일대에서 난동을 부리며 반란을 일으키고 동경을 장악한다.
그후 일본 중부의 나라백제를 침공하자, 나라백제가 경도(교토)로 옮겨가서 대항한다.
나라백제를 점령하고 경도로 옮겨간 나라백제와 200여년간 대치하며 남북국시대를 펼친다.
이사이에 일본은 오사카(대판)vs 내량(내랑(나랑)/나라)/동경(도쿄),vs경도(교토)백제로
삼각축을 형성한다.
200여년간 대치하는 사이에 동경지역으로 금나라 여진족 망인, 거란 망인들이
일본 동경으로 들어온다.
고구려, 발해 망인들은 여진족과 거란망인들을 내세워 경도백제를 공격하여 무너뜨린다.
그러는 사이 동경이 여진, 거란망인 세력에게 넘어가버린다.
여진, 거란망인들은 일본화되면서 일본어를 사용하게 되지만,
풍습은 여진, 거란 풍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진 풍습은 앞머리는 완안 아골타 때부터 모두 깍고 중간부터 기른 다음
미혼자는 머리를 땋아 길렀고,기혼자는 뒤로 말아올렸다.
거란 풍습은 초기에 앞머리를 민머리로 자르고 양옆으로 한줌씩 남겨 종족표시를 하였고,
그이후에는 앞머리만 짧게 남기고 윗머리, 뒷머리를 모두 잘랐다.
거란 8족을 통일한 야율아보기 이후에 머리를 깍지 않고 점점 중국 풍속을 따라갔다.
몽골은 앞머리를 민머리로 깍으면서 앞머리에 한주먹 만큼 남겨
몽골 종족 표시를하여 타종족과 구분지으며 적이 쳐들어오면 빨리 구분하고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일본 남북국시대를 200여년간 지속하는 사이에
동경은 여진, 거란망인이 차지하게 되고, 동이족들은 동북(도호쿠)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동경 북쪽 동해촌에서부터 이바라키현, 후쿠시마, 궁성현(미야기)지방으로 밀려난다.
이곳은 핵원전이 폭발한 지방이다.
이런 상황에 풍신수길이 나타나 경도(교토)를 점령하고 에도(강호)시대를 개막한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 내전을 겪으며 동경(도쿄)정권을 장악한
숙여진[란주여진]족 덕천가강( 徳川家康/도쿠가와 이에야스)은
일본 동부지방을 장악하고 있었던 영주였고, 나라백제, 경도백제인과 일본 천황가의 백성들을
동경으로 옮겨 에에도(강강호) 막부시대를 개막한다.
풍신수길(豊臣秀吉/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라이벌이었던 덕천가강은 자기세력을 잘지켜
일본을 차지한다.
풍신수길은 일본 중서부의 부여, 가야, 백제, 신라, 오월의 후예족을 집중적으로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구주(큐슈)인들을 많이 투입하였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의 사위는 대마도주 평의지(종의지/쇼 요시토시)였다.
소서행장은 천주교신자였고 상인출신이었으며 그의 부장 소서비는 평양에서
아주 악명높은 왜군 장수였다.
평양 계월향이 술취한 틈을 이용하여 김응서를 끌여들여 소서비를 죽이고
김응서의 안전한 탈출을 위해 자결을 하고 김응서는 훗날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실제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 소서비는 본능사의 변란발생으로 풍신수길이 죽자,
1600년 필리핀에서 사망했다고 전함]
고구려, 발해망인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동경을 지키고 있었다면 여진, 거란망인들에게 밀려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는 한번 잃으면 두번, 세번 잃는 법이다.
욕심이 지나쳐 또다시 여진, 거란망인들에 빼앗기게 되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시 앞머리를 밀고 온 왜군들은 여진, 거란망인이고
머리를 깍지않은 왜군들은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발해망인 계열이었다.
그밖에 부여인, 오월인, 위나라 망인들의 후예들이다.
나라백제는 고구려, 발해망인계와 남북국 당시 너무 오랜동안 대치하게 되자,
나라백제인들이 이탈하여 구주지방으로 들어가서 정착하며 구주백제를 열게 된다.
그후 여진, 거란망인계가 경도를 점령하고 일본 천황가의 백성들을 동경으로 끌어가자,
이것을 반대하던 나라백제인들이 구주백제로 들어온다.
구주백제는 몽골의 쿠빌라이 세조 지원 4년에 공식 조공하고
정식 백제국으로 인정을 받아 돌아가면서 동경을 장악했던 여진, 거란망인들을 쳐줄 것을 요구하였다.
몽골은 고려를 앞세워 일본을 침공하려다가 노영희, 배중손 등이 고종 동생 승화후 온(왕온)을 내세워
전남 진도에서 고려 자주국을 선포하고 려몽연합 수군 수천척을 울돌목으로 끌어들여
1천척으로 모두 바다에 수장시킨다.
1270년 려몽연합군은 삼별초에 막혀 대마도 상륙작전에 실패하고
1274년 려원연합군의 본토 상륙은 배에서 숙박하는 바람에 구주 나가사키 서남부 타카섬에서
풍랑으로 괴멸되고 3만을 실은 병선만 살아 돌아간다.
고려인을 끌어다가 만든 전함이었고, 삼별초를 토벌했던 홍복원의 아들 홍다구와
홍다구의 아들 홍파두가 만든 전함이었다.
여진, 거란은 과거 몽골실위족(단실위,북실위,남실위,대실위,발실위,심말항실위)등을 식민지배한 탓으로
브리야트 자치공화국의 대실위에서 이탈해나가 투바 자치공화국의 투바족과 융합하여 세력을 확장한
몽올실위족 징기즈칸(성길사한)으로 부터 쫓겨 신강성, 감숙성, 내몽골 서부지역의 금나라,
란주시의 서하국, 내몽골 중서부, 섬서성 영하성 회족자치구의 거란국은 몽골의 추격에 쫓겨
800년대 거란초기 야율아보기가 세력을키웠던 내몽골동부 임황시, 적봉시로 내몰리다가
실크로드 요충지인 하서회랑을 상실하고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으로 밀려난다.
거란국은 금나라 여진에게 내몽골동부, 요녕성으로 밀려난다.
몽골 실위족을 식민지배했던 탓으로 금나라 여진족과함께 다시 길림성, 흑룡강성으로 밀려나
가장 많은 무리가 제제합이[치치하얼], 합이빈[하얼삔]등으로 달아나 정착한다.
금나라 여진에게 밀려나 요녕성 발해국을 점령하고 지배하였던
거란 왕자 야율배(조양)의 동단국은 금나라 요동선무사 포선만노에게 점령된다.
몽골의 쿠빌라이군에 쫓기던 포선만노는 감숙성 란주시의 서하국인과 금나라 여진족을 이끌고
동단국으로 들어와 점령하고, 몽골군이 추격하자 심양의 동진국으로 들어가 일시 점령한다.
이들을 합해 대진국을 선포하고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연해주지방으로 몽골의 추격을 피해 들어와
연해주에서 동하국을 선포한다.
그후 여진족은 문명생활을 영위하는 숙여진과 수렵생활을하는 생여진으로 나뉘어졌다.
일부는 한반도로 들어와 야인족으로 알려진다.
생여진[건주여진]은 흑룡강성으로 들어가고 숙여진은 길림성, 압록강, 두만강 주변일대에 자리잡고 살게된다.
동하국인들은 일본으로 도해하여 동경으로 들어가 일본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숙여진[란주여진]은 고려말, 조선초 조선군에 토벌되어 일본으로 도해하였다.
후발해, 여진, 거란인들은 남북국시대를 이용하여 일본을 먹어치울 수가 있었다.
생여진은 누루하치 때 요녕성 심양[선양]에서 후금을 세우고 홍타이지는 청을 건국한다.
징기즈칸으로부터 찬밥신세가 되었던 성길사한의 동생 호르친부의 카사르의 후예들이
생여진을 찾아가 명나라 도모를 제의하고 여진족이 황제자리를 맞는 것으로 합의를 본 후,
몽골 8기군, 여진 8기군을 결성하고 명나라를 공격하여 청을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훗날 몽골은 청이 건국되자 공신 숙청작업으로 몽골인은 청에서 축출되어
내몽고 자치구 동부지방으로 밀려난다.
일본으로 몽골에 밀려 들어갔던 후발해, 여진, 거란망인들은
일본인들의 피해의식이 한반도로 나타났고, 자기들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한반도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몽고 실위족을 식민지배하다가 멸망한 원한을 조선에서 풀었다.
피는 속일 수가 없었는지 만주 괴뢰국을 세우고 하부 경제구조를 조선인, 만주인을 끌어다가
지탱하게 끔 하였다.
일제 패망후 만주 괴뢰국 자리에다가 이스라엘인들이 히브리국을 세울 계획을 세웠으나,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항상 맨나중에 들어간 자들이 중원물을 많이 먹어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나라를 차지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었다.
한국 역시 가장 나중에 들어온 신라의 마립간인 이후 갈문왕 제도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앵글로족이 영국으로 가장 늦게 들어가 차지한다.
영국은 (서)돌궐족이 가장 먼저 이주하여 영국 북부의 스코틀랜드 중부지방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현재도 1년에 한번씩 모이는 추석, 단오같은 날을 쇠고 있다.
자치기, 재기차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풍습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이곳으로 컬트족이 들어오자 스코틀랜드 북부지방으로 돌궐족이 밀려났다.
그후 융합되어 현재는 유럽인에 더 가까워 보인다.
감숙성 실크로드 하서회랑 북부지방에 숙신족이 살았다.
현재는 숙신 해몽고족자치주, 해북 숙몽고족자치주로 남아있는 감숙 서남부, 청해성 서북부는
숙신족>색신족의 원래 고향이었다.
숙신족은 서역과 동유럽으로 이동할 때 앙골족과 붙어다녔다.
흉노의 남북분열과 동서분열 당시 신강성 토노번(투르판),오로목제(우르무치)로 밀려났다가
서흉노 질지선우가 한나라와 동맹을 맺은 동흉노 호한야선우 연합군에 밀려
서장성 동부로 내려가 중원을 재공략하였다가 실패하자 아란지방(아프간,이란 동부지방)으로
들어간 이후,기원후 330년대 아틸라훈족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아틸라 훈족이 동로마제국을 침공하자,숙신족도 앙골족과함께 동유럽지방으로 밀려난다.
기원전 질지선우와 함께 아란지방으로 이주하지 않고 중원에 남는 세력이 한[한예,한백족],
전조[유연], 말예[말갈,예맥]등으로 분화한다.
앙골족과 숙신족은 같이 붙어다니면서 서로 사이가 좋지않아 매일 싸웠다.
하도 자주 싸워서 이들은 앙숙지간이 되었다.
여기에서 앙숙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아란지방에서 혼혈로 세를불린 서흉노 질지선우의 후예 아틸라훈족은 동로마제국을 침공하기 시작한다.
훈족에 밀려 동고트, 서고트지방으로 밀려들어간 앙골족과 숙신족은
드디어 서로 헤어진다.
숙신족(색신족)은 서고트지방으로 흩어지면서 동유럽의 슬라브족과 융합하여 혼혈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독일지방으로 들어간다.
독일 북부지방으로 밀려나다가 추위를 피해 서부지방으로 이동하며 서부 해안가를 타고 남하하다가
독일 게르만인들의 추격을 당하고 프랑크지방으로 내려오다가 공격을 받아
영국 중부, 동남부 지방으로 들어간다.
이동하면서 숙신족은 색신족>색슨족화되었다.
색슨족은 영국 북부지방에 살고있던 컬트족을 누르고 하나가 되었고 스코틀랜드를 지배한다.
훈족의 동로마제국 침공과 서로마제국 북부 침공으로
앙골족은 동고트지방에서 일부는 숙신족을 따라가기도 하고 덴마크지방에 정착하기도 한다.
또 이곳에서 선주민을 찾아 노르만계의 주고트족과함께 색슨루트로 영국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앙골족의 주류는 게르만족의 로마제국 영토난입 때 함께 들어간다.
앙골족은 이곳에서 앵글족화 되기 시작하였다.
게르만족의 난입으로 로마제국이 혼란스러워졌다.
아프리카 북부지방으로 무어족들이 들어가자 따라들어간다.
아프리카 북부지방에서 무어족들이 배를타고 잉글랜드지방으로 넘어가자,
앙골족은 무어인[모아인]들을따라 영국남부지방으로 들어가며 기골이 장대하고 소수부족이었던
모아인[무어인]을 누르고 무어인과의 융합으로 완전 앵글족화되었다.
영국남부로 가장 늦게 들어간 앵글족은 영국을 차지하게 된다.
유럽 중원이었던 로마제국에서 가장 선진문물을 늦게까지 체험하고 들어간 앵글족은
무어족[모아족]과 융합하며 무어족을 누르고 잉글랜드를 차지한 후,
앙숙이었던 색슨족을 누르고 스코틀랜드까지 다시 차지한다.
앙숙지간이었던 이들은 영국에서 이렇게 다시 만난다.
영국이 발전하는데는 이런 앙숙관계가 아주 큰작용을 하지 않았나 한다.
양나라[경기인], 동진(익산, 나주, 여수, 순천, 사천인/ 익산인은 후일 전주, 군산등으로 흩어지고
여수, 사천의 사탁인은 진평왕때 금성으로 들어가 김춘추의 조부 진지왕을 3년만에 폐위시키고 등극),
백제가 가는 곳에 가야, 신라가 따라오고 고구려가 스토커처럼 달라붙듯이 말이다.
스코틀랜드 독립투표는 아깝게 실패하고 말았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자치권한을 더욱 확대하지 않으면
다시 독립 신임투표를 추진할 것이라며 잉글랜드 정권을 압박하였다.
영국은 현재 돌궐컬트족, 색슨족, 주트족, 앵글족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은 마한, 기자조선, 양나라(경기도), 백제, 고구려, 신라, 가야, 예맥, 말갈, 낙랑, 오월,
북경의 계나라, 연나라, 위나라인, 부여인, 발해인, 서진인, 동진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부 여진, 거란족 등도 들어와 살고 있는 나라다.
몽골에 쫓기던 거란 황제와 승상이 이끄는 주류 10여만 명이 충주목에서 몰래 1년간이나 은거하다가,
고려장수 김취려에게 쫓기다 승상이 이끄는 5만이 내륙 성남, 부산 등으로 숨어들고, 거란황제와 5만은
평양동북 강동성에서 3년간을 대치하다가 몽골[합진], 동진[완안자연], 고려[김취려]연합군에 패해
거란 황제와 가짜 승상등 800여명이 처형당하고 5만이 포로가 되어 대도[개봉(하남성 카이펑)>연경)로 끌려가 노예가 된다.
이때 거란 5일장, 광대, 풍물놀이, 매매춘, 기생 등이 고려에 알려진다.
성남의 모란장, 부산지명에 그흔적이 남아 있다.
이일로 몽골이 고려를 알게 되어 살례탑[살리타이]에 의해 몽고 제1차 침략으로 침공당하는 원인이 되었다.
몽고사신 저고여 압록강 살해사건은 협의의 원인.
여진(숙여진/란주여진/문명생활), 거란은 일본에서 동경[도쿄]등 동부지방을 장악하며 최대로 성공하였다.
고구려, 발해망인들의 어리석음으로 동경을 빼앗기고 일본에서도 결국 동북부지방으로 밀려나고,
여진, 거란망인들에게 권력을 내주고 그들은 동경에서
숙여진[란주여진]족 덕천가강에 의해 에에도 막부시대를 열게되는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에도막부[江江戶/강강호] 제1대쇼군(장군)이다.
현재 일본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뭐냐 하면
한반도인에 의해서 일본인들이 해양끝으로 밀려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은 몽올실위족들에게 쫓겨서 일본까지 간것인데도 말이다.
일본 동부지방인은 몽골을 식민지배하다 반격을 받고 몽올실위족 징기즈칸으로부터
토벌을 피해 일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고려말, 조선군에 의해 숙여진이 토벌되어 동경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최영, 이성계 등의 대대적인 토벌로 동경으로 들어가게 된다.
중서부인들은 가야, 구주백제인이며, 구주[큐슈]로 옮긴 나라, 경도백제인들은
반도에서 활동하다가 밀려나는 가야, 백제인들이다.
그이전에는 반도 서남단의 환도인, 사천의 대두인들이 먼저 밀려났고, 중국 남부에서 오월족들이
유유의 남송에 밀려 첨각열도(센카쿠열도), 유구해구(류큐), 살남제도(사쓰난제도)를 통해
구주(큐슈)로 들어가 정착하였다.
오월인들은 기원전 오나라, 월나라가 초나라에 망하고 초나라는 진시황에게 멸망할 때부터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오월인들이 일본 중부지방으로 들어가 오국, 월국 등을 세우자,
반도 가야, 백제인들이 이들을 기반으로 나라백제를 세우게 된다.
구주에 남은 오월인들은 왜인이 되었고, 훗날 위나라망인들이 구주로 넘어오자
이들 역시 왜인이 되어 반도 해안을 약탈한다.
일본에서 출격하는 왜인은 당연히 왜구이고,
삼국초기 중국 남부에서 출격하여 중국 동해안, 반도서부를 약탈하는 해구가 있었다.
중국남부 해남도(하이난)의 수도 해구가 그흔적으로 남아 있다.
해남도의 해남(하이난)은 일본어로 카이난이라고 부른다.
카이난은 훗날 언어가 진화되면서 ㅇ,ㄱ,ㅋ은 ㅎ으로 진화한다.
이들의 이동루트를 비교언어만으로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중원에 살았던 해남인들은 고립지역이 아니므로 빨리 진화하여 카이난을 하이난으로
바꿔 불렀으나, 일본으로 이주해간 해남인은 일본 고립지역에 오래남아
카이난으로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일제는 남경대학살을 일으키며 왜의 선조인 오월과 위나라인들이 유유에게 밀려난 원한을
중국 침공과 남경대학살로 보복한 것이었다.
일본은 역사를 찾아 들여다보고 원한을 갚기 위하여 전쟁을 벌인 것이며
한국, 중국을 침공하였던 것이다.
몽골에서는 러시아 백색군과 내부동맹을 맺고 백색군을 내세워 몽골인을 학살하였다.
몽골을 치자니 자기들도 역사를 제대로 몰랐고, 뭉케, 쿠빌라이에게 쫓겨 일본으로까지
도해하게 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을 것이며, 조선에서 그해답을 찾으려 하였다.
그래서 러시아 백색군을 내세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위나라인은 북위인과 남위인이있었다.
북위는 탁발선비족 탁발규가 세우는 나라이고 남위는 절강성 소주에서 건국하여
강소성 남경(난징)을 점령하고 천도하여 세우는 동오국을 말하며 조조의 아들 조비가 세운다.
조비가 하남성 낙양으로 쳐들어가 한나라 헌제를 폐위하고 세우는 위나라를 말한다.
이 나라를 다시 탁발규가 산서성 대동시 평성에서 남하하면서 조비의 위나라 수도 낙양을 점령하고
다시 위나라를 세우는데 탁발규의 나라를 북위라고 부른다.
북위가 와해될 때 다시 중국 남단으로 달아나서 해구가 되어 중국 남단과 동해안, 반도 서해안을 약탈한다.
이들은 선주민 오월이 구주(큐슈)로 이주해간 루트를 따라 위나라인들도 구주로 달아나는 것이다.
유유 역시 북위출신이었다. [절강성 소주시의 월나라,강소성 남경시의 오나라].
백제의 조상은 기원전 중원에서 백적이라고 불리웠다.
서흉노 질지선우가 동흉노 호한야선우와 한나라연합군에 패해 신강성 투르판[토노번],
우르무치[오로목제]로 밀려났다가 서장성 티벳 강족[창족]자치구로 내려가 중원을 재공략하였다가
다시 패하자, 북근동 아란지방으로 들어가며 훗날 ad300년대 아틸라 훈족으로 거듭 태어난다.
이때 서역으로 이동하지않고 중원 감숙성, 청해성에 남는 세력이
한[한예,한백족], 전조[유연],말예[말갈(속말갈),예맥]등으로 분화하게 되는데,
중원에서는 백족[백제]의 조상을 백적이라고 불렀다.
[실크로드 중원진입 요충지 감숙성 돈황지구/ 초원의길 청해성 서령시 청구지구를두고 각축전을 벌임]
동으로간 숙신족은 식신, 직신 등으로 불리우다가 읍루, 물길, 말갈[흑수말갈],
여진[건주여진,란주여진]등으로 분화한다.
[건주여진=생여진/수렵생활, 란주여진=숙여진/문명생활]
숙신족의 후예 여진족은 비려거란의 후예 거란족에 이어 몽골실위족을 식민지배하였다가
식민지배를 피해 투바 자치공화국으로 달아난 대실위족[브리야트자치공화국]의 후예
몽올실위족인 징기즈칸의 손자 뭉케황제(툴루이의 장남),
쿠빌라이[몽고 5대황제/원나라 초대황제 세조/툴루이의 차남]에게 대대적인 토벌을 받고
내몽고 동부 임황시, 적봉시와 동북삼성[요녕성,길림성,흑룡강성]으로 밀려난다.
숙신의 후예 여진족[숙여진족/문명생활]은 몽고군과 고려말, 조선의 토벌로 일본으로 밀려나 동경에서
고구려, 발해망인계를 동북지방으로 몰아내며 동경을 차지하고 중부의 나라,경도[교토]백제를
무너뜨리고 백제인들을 동경으로 끌고가서 에에도 막부시대[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개막한다.
숙적관계였던 숙신의 후예 숙여진족[란주여진]과 백적[백제]은 이렇게 일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숙적[숙신,백적]이라는 말은 이렇게 나오게 되었다.
[숙여진은 청해성 청해호일대의 숙제국,백적의 조상은 섬서성 동남부, 산서성 운성시 백이국/
백이숙제국을 말함].
반도점령에 실패하자 일본으로 밀려나 결국 일본을 차지하고 숙적관계는 다시 만나게 된다.
일본 중서부는 부여, 가야, 백제, 오월족, 남위족이 주류이며, 중동부는 북위, 고구려, 발해,
여진, 거란망인이 주류이다.
영국으로 들어간 숙신[색슨]은 앙숙지간이었던 앙골무어[모아]족의 후예 앵글족에게 패했지만,
일본으로 들어간 숙신[숙여진/란주여진]은 숙적지간이었던 나라/경도백제[백적]를 제압하고
결국 일본을 차지하게 되면서,한국과 중국을 유린한다.
[앵글족은 스코틀랜드와 성향이 비슷하고 한국인과 유사한 아일랜드(에이레)를 지배하다가
현재는 아일랜드 독립국이 되었음.
북아일랜드는 런던테러 등으로 대항해왔으나 영국의 관할하에 놓여있음]
생여진[건주여진]은 누루하치, 홍타이지때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일으켜 보복하게 되며,
요녕성 심양으로 60만의 조선인을 끌고가 여진족으로 위장시켜 만주에 대군이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호르친부의 카사르의 후예 외몽골 8기군과 명나라군을 속이고 심양에서 청나라를 건국하고
북경을 점령한다.
숙신의 후예 숙여진은 마지막으로 태평양 전쟁에서 다시 앙골모아족의 후예 앵글족에게
패전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른다.
이게 일본 왕실가는 평화론을 주장하고 동경을 중심으로 하는 자민당은 팽창론을 주장하며
반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제는 고구려에 밀려 한수유역과 공주강 이남으로 남하하여 잔류하는 온조 백잔 한성계이고,
백적은 개성 온조 백잔을 점령했다가 웅진공주로 천도한 후, 왜로 넘어가는
비류 이잔계(한반도 출생인 동성왕, 반도에서 임신한후 왜 사가현 출생인 무령왕, 성왕/웅진)와
대륙에서 넘어와 왕권을 차지하는 위구태(위덕왕,무왕,의자왕/사비)백제계이기 때문에
백적이라고 불리우게 되는 것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나오는 내용 중 세상을 부수는 앙골모아 대왕은 앵글족의 선조 앙골족을 말한다.
앙골모아 대왕은 앙골무어 대왕이다.
무어족[모아족]은 원래 소수부족으로 신장이 아주 크고 기골이 장대한 종족이었다. [평균신장 2미터]
소수부족이라 앙골족에게 쉽게 동화되고 융합되어 사라져 앵글화되는 종족이었다.
[최근 카자흐스탄에서 신장 2미터크기의 고분군이 발견되었는데, 모아족의 선조 군왕일 것으로 추측됨.
앙골족과 숙신족은 감숙성 돈황지구/실크로드, 청해성 청구지구/초원의길에서 중계무역으로 활동하던 종족이며
춘추 전국시대와 5호20국시대에 밀려 영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bc3000~ bc1100년경 힛타이트 문명이 멸망한 이후,
기원전 700년경 춘추시대때 앙골인이 감숙성 돈황지구, 동유럽 초원의 길이 지나가는 길목인
청해성 청해지구의 변방 서장성 타클라마칸 사막의 루란국, 소하국, 대하국 등이 있던 자리에서 서역으로 진출하여
지중해에서 상업무역을 하며 활동하면서 페니키아로 알려지며 이라크의 바빌론 문명을 무너뜨리고
bc668년 신바빌론을 세웠다가 실크로드 물류가 중단되자,
감숙성 흑하에서 후리인/후려인/구려인[흑하 압수인], 모압인[압수지류인], 아무르인/아모르인과
실크로드 무역을 위해 내몽고 서부 시라선맹[사라선맹]지구에 머무르며, 실크로드무역에 종사하고 있었던
서역의 사라센인이 bc550년 거병하여 신바빌론 문명을 세운 영국계 앙골인[페니키아인]을 무너뜨리고
힛타이트 문명을 재건설한후 이집트로 들어가 상이집트를 지배하며
실크로드 무역로를 다시 확장시켰다. 본토인은 하이집트로 밀려나 분리된다.
이때 적은 인구의 앙골인들이 일당백으로 너무 잘싸워서 앙골지다(사투리/옹골지다)라는 말이 탄생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루란의 위기(樓蘭의 危機)에 처했다"라고 하는데
루란국(樓蘭國)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말이다.
앙골족을 진압했던 모압인에서 일부가 모아인으로 분화하고 ad330년대 아틸라 훈족에 밀려
서로마제국으로 밀려 들어가 무어인이 된후, 잉글랜드로 뒤따라 들어간 앙골족과 융합하여
앵글무어족이 탄생한다. [루란국, 소하국까지가 앙골족 문명임.
대하국은 북월지 문명/ 홧따메(훠따메)!=what,s the matter?/뭔일이래?].
"누란(累卵)의 危機"라고 말하면 정세나 전쟁의 위태로운 형세가
계란을 묶어 쌓아올리듯이 위태로운 형편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