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천
해님이 씹다 버린
하루를 포근히 감싸주러
통통한 달님이 나와앉은 허기진 자리에 언제나 그렇듯
포장마차 한 대가 서 있습니다
별들이 밤새 흘린 눈물의 흔적인 아침이슬을 따라
전철을 타는 사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하루 일을 마치고 오는 사람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이곳엔 오늘도 사람 사는 이야기로
시끌벅적 한 것 같습니다
" 알라 배고프겠다 퍼떡 먹이라"
할머니.. 왜 이렇게 많이 주세요?"
두 그릇으로 보이는 우동에
오고 가는 정을 찬으로 먹은
엄마와 아이가 멀어지는 걸 보며
"할메요. 두 그릇에 나눠줬으면 될낀데.
낱술 한잔에 오른 취기를 내뿜으며
말하고 있는 남자에게
"그라면 그 사람이 공짜로 먹은 것 같아 미안해 안 지겠나?
사람들 마음에 고마움도 다 못 채워주는 세상에 미안함을 심어주면 쓰것나"
남들이 먼저 행복해지는 게
내가 행복해지는 거라며
웃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서
제 몸 부풀어 떨어지는 물방울이 된 남자는
한 쁨 더 커진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소주잔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
옆에서 조용히 먹고 있던
우유배달을 하는 아이가
할머니.
오뎅 두개랑 떡볶이 5개 먹었어요'
"그럼 300원이네"
라며
700원을 거슬려 주면서
오늘도 고생했데이
퍼떡 가서 숙제나 하거라"
"네 할머니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오냐..
잘 가거래이"
멀어지는 아이를 향해
지그시 웃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할매요.
아무리 계산해도 600원이 넘는데예?.
옆에 앉아
술잔만 기울이고 있던 남자의 참견에
돈을 벌기만 하면 되것나
잘 쓰기도 해야제.
돈 대신
감사해 하는 마음을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달님보다 더 커진 할머니의 미소를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근데 할매요.
요기 요 낱담배랑 낱 술 은 왜 판미꺼?'
공사판이다 남의 집 식당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한 푼 생기면
지새끼 먹일 것도 모자라는데
지엄마 아버지 입에 들어갈 게 어딨겠노?"
하루 시름을 낱술 한잔과
담배 한 모금에 풀고 가라는
속 깊은 배려에
할머니의 그 깊은 속을
오늘에사 알았네예.
아침부터 처절처절 내리는
게으른 빗방울이
저녁이 되어서는 부지런하게도 내리다 그친 자리에
금세 별 하나가 나와 앉았습니다
"아이고. 이놈의 비가 그칠라면
아침부터 그쳤으야제...
일용직을 나간 털보 아저씨가
마중 나온 홀쭉해진 별 하나를
등에 지고 들오더니
뜨끈한 우동 국물에 소주 한 잔을 말아 어묵꼬지 몇 개로 속을 지지더니
"내 땅 하나 없고 내집한칸없는
떠돌이 같은 이 신세는 언제 면하겠노'"
소주잔을 비우다 채우다 하는
털보 아저씨에게
'와 땅이 없노 보이는 땅만 땅이가
바닷물 속에 가려 안 보이는 땅도 안 있나?
"맞네예. 그기도 땅이 있긴 있네예"
"지금 당장 내 눈에 안보인다꼬 실망하지말거래이"
일년뒤면 다 잊어먹을 슬픔 때문에
힘들어 말라며 삶에 지친 그들에게
뜨끈한 국물 한 그릇에
다시 일어설 용기까지 채워주며
한없는 미소를 보내주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둘 별들이 놓아준 길을 따라 가족이 있는 집으로 멀어져간 거리에
세상을 돌고 온
탁한 바람만 오고가는걸 보며
할머니는 장사를 파장하려는 듯
한쪽 귀퉁이에서 졸고 있는 걸레로 이리저리 훔쳐대고 있을 때
세상일은 혼자 다 하고 온 듯
작업복에 덕지덕지 붙은 피곤을 달고
천막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와 그렇게 죽을상이고?"
"오늘부로 이 장사도 인자 시마임미더'
"와 누가 깨방농티나?"
"구청에서 불법이라꼬 딱지 붙여놨심더'
터전을 잃어버린 남자는
달세처럼 지불하고 사는 이 고달품을 언제쯤 떼고살 수 있는지
밤을 새워도 모자랄 푸념을
별과 달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비워가고 있을 때
"자 이거 팔다 남은긴데 가서
아이들하고 같이 먹으래이
밀린 외상값을 못 줘 미안하다며
내민 만 원짜리 한 장을
할머니 손에 쥐여주며
멀어지던 남자가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걸어가다 비닐봉지 안에
자신이 준 만원이
그대로 들어있는걸 보고선
할매는...
참..
눈물로만 피워낼 수 있는
그한마디에
할머니는 세상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힘내래이 ..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내일이란
밑천이 안 있나..
라고.
펴냄 / 노자규의 골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