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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설-연역적 과학방법론
포퍼는 비엔나 서클의 일원이었지만, 논리적 경험주의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관찰의 이론의존성 테제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귀납주의를 포기하고 연역주의를 선택한다. 그러나 경험주의는 여전히 유지한다. 고학은 더 이상 관찰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고학의 출발점은 이제 문제이다. 기존의 과학이론을 통해 설명할 수 없는 사례들이 나타날 경우, 그 사례들을 설명하기 위해 잠정적인 이론의 후보로서 가설을 구성하게 된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구성된 가설로부터 연역의 방식에 의해 경험적으로 관찰핡 수 있는 사례를 예측해 낸다. 그리고 그 사례에 대한 관찰이 이루어진다면, 가설은 검증/확증되고 이론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만약 예측된 결과가 관찰되지 않으면 가설은 반증되고 폐기된다.
가설-연역적 방법은 관찰이 가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론의존성 테제를 위배하지 않는다. 그리고 관찰사례들로부터 법칙을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귀납적이지 않고, 관찰을 요구하는 결과를 예측하는 과정은 연역적이다. 그리고 가설을 이론의 지위로 상승시키기 위한 검증/확증이나 가설을 폐기하게끔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사설로부터 연역적으로 예측된 결과에 대한 경험적 관찰이기 때문에 경험주의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2. 긍정식에서 부정식으로
관찰의 이론의존성 테제에 의해 과학이론은 관찰로부터 시작한다는 논리적 경험주의의 주장은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지만, 가설-연역적 방법론 속에서 검증주의나 확증주의는 여전히 지탱될 수 있다. 설명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한 잠정적 설명으로 설정된 가설로부터 연역적 과정을 거쳐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예측 사례를 찾은 후, 그 예측 사례의 발생 여부를 관찰함으로써 가설이 참임을 검증하거나, 일 개연성, 즉 확증도가 높음을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검토해 보면, 가설-연역적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 검증주의나 확증주의가 유지될 수 없음이 드러난다. 검증주의와 확증주의는 가설 h가 참일 경우 특정한 관찰사례 O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관찰사례 O가 발생함을 관찰함으로써 가설 h를 검증하거나 확증한다. 이러한 형식의 추론은 조건문에서 후건을 긍정함으로써 전건을 긍정하려는 시도이며, 전형적인 후건 긍정의 오류의 사례이다. 즉 가설-연역적 방법을 받아들인다면, 검증주의와 확증주의는 논리적으로 부당하다. 그리고 가설-연역적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관찰이 이론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비엔나 서클은 그들의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해 포퍼는 놀라운 통찰을 제시한다. 가설 h에 의해 예측된 관찰사례 O의 발생을 통해 가설 h가 참임을 입증하거나 참일 개연성을 높일 수는 없다. 그러나 관찰사례 O가 발생하지 않음을 관찰함으로써 가설 h가 참이 아님은 주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형식의 추론은 조건문에서 후건을 부정함으로써 전건을 부정하려는 시도이며, 전형적인 후건 부정식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건 부정식은 타당한 논리식이다. 이처럼 관찰을 통해 어떤 가설이 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즉 검증하거나 확증할 수 있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방식은 없다. 반면에 관찰을 통해 어떤 가설이 거짓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즉 반증할 수 있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방식은 있다. 그리고 거짓임이 입증된, 즉 반증된 가설은 폐기되어야 한다.
3. 반증가능성: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 기준
논리적 경험주의는 검증원리에 의해 유의미한 명제와 무의미한 명제를 구분한다. 그리고 과학은 유의미한 명제들만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려고 시도했다. 반면에 포퍼는 과학이론을 구성하고 있는 명제가 아닌 이론 자체가 과학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문제삼는다. 포퍼는 "과학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언명 또는 언명의 체계는 가능한 또는 있음직한 관찰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어야만 한다"(K. R. Popper, Conjectures and Refutation, Routledge, 1969, p. 39, A. 오히어 지음, 신중섭 옮김, <<현대의 과학철학 입문>>, 서광사, 1995, p. 82에서 재인용.), "한 이론의 고학적 자격의 기준은 그 이론의 반증가능성, 반박 가능성, 테스트 가능성이다"(K. R. Popper, Conjectures and Refutation, p. 37, 신중섭, <<포퍼와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 1992, p. 40에서 재인용.), "경험 과학의 체계는 경험에 의해 반박될 수 있어야 한다"(K. R. Popper, Logik der Forschung, p. 15, 신중섭, <<포퍼와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 1992, p. 40에서 재인용.)라고 말함으로써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 기준이 이론의 반증가능성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떤 이론은 그 이론이 거짓임을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경우 과학이론이다. 반면에 경험적 반증이 불가능한 이론은 사이비 과학일 뿐 과학은 아니다. 예를 들어, "명왕성에 지적인 생명체가 있다"라는 과학적 가설은 과학적이다. 왜냐하면, 이 가설은 명왕성을 탐사함으로써 거짓임을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퍼는 사이비 과학의 대표적인 예로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든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충족되지 않은 성적인 욕구에 의해 모두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아들러는 열등감에 의해 완전히 상반되는 두 행위를 모두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한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인간의 행동에 대한 설명과 예측은 절대로 틀릴 수 없다. 마르크스의 과거에 대한 설명은 훌륭한 편이다. 그러나 그는 과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예측했으며, 그의 예측들은 분명히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측들 중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다. 그리고 최초의 공산국가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전근대적 국가였다. 자체 모순에 의해 붕괴된 자본주의 국가는 지금까지는 없으며, 앞으로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공산혁명이 일어나면 국가가 사라져야 하지만, 공산국가는 강력한 정치권력을 형성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반증사레에 의해 폐기되어 마땅한 이론이지만, 반증사례가 나타날 때마다 이론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됨으로써 폐기되지 않고 있다.
4. 진리의 확보에서 대담한 추측으로
과학은 진리의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귀납적 방법을 사용할 경우, 검증원리에 의해 유미한 참된 경험적 명제들을 확보할 수 있고, 이 명제들의 논리적 구성에 의해 참된 과학이론을 얻을 수 있다. 가설-연역적 바압을 사용할 경우, 잠정적인 가설로부터 연역된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예측 사례를 관찰함으로써 가설이 검증되거나 확증될 수 있고, 검증된 가설은 참된 과학이론으로, 확증된 가설은 참일 개연성이 높은 과학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반증주의에 따르면, 과학은 결코 진리를 확보할 수 없다. 가설은 반증될 수만 있을 뿐, 결정적으로 검증되거나 확증될 수는 없다.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보편법칙의 발견이나 참된 과학이론의 구성이 아니라, 가설을 반증하려고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증주의에 입각한 과학활동은 부정적 활동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참된 과학이론이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이론은 반증 가능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포퍼는 과학자들의 임무가 기존의 이론에 대한 반증시도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참된 과학이론이란 없다. 그러나 좋은 과학이론은 있다. 포퍼는 "과학적 방법은 대담한 추측과 그것을 반박하려는 찰저하고도 치밀한 시도이다"(K. R. Popper, Logik der Forschung, p. 81, 신중섭, <<포퍼와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 1992, p. 164에서 재인용.)라고 함으로써 좋은 과학이론이란 대담한 추측을 포함하는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과학자의 임무에는 대담하고 포괄적인 이론을 생산하기 위해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그의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이 추가된다. 대담한 추측이란,과학사의 어느 단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이론으로서의, 배경지식에 비추어 보아 그럴 듯하지 않은 주장을 담고 있는 추측이다. 대담한 추측을 포함하는 이론만이 좋은 과학이론인 것은 아니다. 배경지식에 나타나 있지 않거나 배경지식이 배제하고 있는 현상을 예측하는 참신한 추측을 포함하는 이론도 좋은 과학이론이다. 좋은 과학이론은 반증될 수 있는 예측들, 즉 잠재적 반증가능자를 많이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반증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반증가능성이 높은 이론이 좋은 이론이다.
좋은 이론은 제한조건과 예외가 적은 이론이다. 제한조건이 많은 이론은 반증을 어렵게 한다. 그리고 많은 예외를 포함하는 이론은 이론에 대한 반증사례를 예외로 간주함으로써 반증사례가 나타나더라도 이론을 폐기할 수 없게 한다. 또한 좋은 이론은 보다 많은 사실을 금지한다. 금지하는 사실이 전혀 없는 이론을 반증할 수 있는 이론을 반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반면에 금지하는 사실이 많은 이론은 그 이론이 금지하고 있는 사실들 중 하나 이상이 발생한다면 반증된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많은 사실을 금지한다는 것은 그 이론의 경험적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경험적 내용이 많은 이론은 대답하다. 그리고 좋은 이론은 단순하다. 단순한 이론일수록 반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경험적 내용이 많은 이론은 명확하게 기술된 이론이다. 명확하지 않게 기술된 이론, 예를 들어, 전기에 대한 이론으로서,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무(無)이고, 단지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모든 물체에 존재하며, 그와 동시에 그것은 근원적이며, 조그마한 자극에도 믿을 수 없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나타내며 이러한 나타남은 그 스스로 사라지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다. 특수한 물체의 본질에 따라서 이러한 나타남의 조건은 무한히 변한다"(J. W. Goethe, Theory of Colours, trans. by C. L. Eastlakr, M.I.T. Press, 1970, p. 295, 앨런 F. 차머스 지음, 신일철, 신중섭 옮김,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 1985, pp. 85-86에서 재인용.)와 같이 애매모호하게 기술된 괴테의 이론을 반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가설-연역적 방법을 채책하면서 진리의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과학은 가설을 선택함에 있어서 참일 확률이 가장 높은 가설을 선택한다. 하지만 좋은 이론은 참일 확률이 가장 낮은 이론이다. 왜냐하면, 좋은 이론은 반증가능성이 높은 이론이고, 반증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그 이론을 거짓이 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참일 확률이 가장 높은 이론은 그 이론을 거짓이 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는 이론이고, 그런 의미에서 반증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론이다. 반증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론은 과학이론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하기 힘들고, 그런 의미에서 나쁜 이론이다.
5. 과학의 진보란?
과학의 목적은 자연에 대한 참된 보편적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귀납주의적 과학관에 따르면, 이러한 과학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귀납주의 과학의 궁극적 목적은 자연에 대한 참된 보편적 지식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증주의에 따르면, 그러한 목적은 달성될 수 없는 목적이다. 왜냐하면 반증주의는 자연에 대한 참된 보편적 지식이라고 주장된 것들이 거짓임을 밝히는 것으로 과학의 역할을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증주의자는 어떤 과학이론이 거짓임을 입증할 수는 있지만, 참임을 입증할 수는 없다. 과학의 역사란 실패한 이론의 무덤이고, 현재의 과학이론은 아직은 거짓임이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거짓일 확률이 매우 큰 가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누적적-진보적 과학관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왜냐하면 누적적-진보적 과학관은 자연에 대한 참된 보편적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지식이 끊임없이 증가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참된 보편적 지식 획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반증주의에 따르면, 누적적-진보적 과학관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러나 포퍼는 누적적-진보적 과학관을 지지한다. 반증주의에서의 과학의 진보란 과연 무엇인가?
포퍼에 있어서 과학의 진보란, 반증된 이론에서 아직 반증되지 않은 거짓된 이론으로의 이동이다. 그러나 과학의 목적을 자연에 대한 참된 보편적 지식의 획득으로 설정할 경우 이러한 이론의 변화를 진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포퍼는 과학의 목적을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가 생각하는 과학의 진보란 거짓된 이론의 제거를 총한 진리로의 점진적 접근이다. 과학자는 대담한 추측을 하고 그 이론의 반증을 시도한다. 그리고 추측이 반증되면 새로운 추측을 하고 또다시 반증을 시도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면서 거짓된 이론들을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진리에 점진적으로 접근한다. 현재의 과학이론은 반증가능성이 높으면서 아직까지 반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반증되지 않은 이론은 확인된 이론이다. 확인된 이론은 반증된 이론보다는 나은 이론이다. 그러나 확인된 이론이 참된 이론인 것은 아니다. 확인된 이론에 대한 반증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어떤 이론이 무수한 테스트를 통과했더라도 그 이론이 검증되거나 확증된 것은 아니고 여전히 잠정적 가설로서의 위상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포퍼의 "과학은 확증된 언명의 체계가 아니다....과학은 진지(眞知)가 아니다"(K. R. Popper, Logik der Forschung, p. 77, 신중섭, <<포퍼와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 1992, p. 41에서 재인용.)라는 말의 의미이다. 과학에서의 중요한 진보는 참일 확률이 거의 없는 대담한 추측이 확인되거나, 참일 확률이 매우 높은 조심스러운 추측이 반증될 때 일어난다. 과학의 진보는 새로운 가설의 제시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새로운 가설의 제시에 의해 과학의 진보가 일어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새로운 가설은 기존의 가설에 비해 반증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특히 새로운 가설이 기준의 가설로는 예측하지 못하는 새로운 현상을 예측하는 경우, 과학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고려할 많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새로운 가설이 에측하는 현상은 기존의 가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예측하기 때문에 그 현상을 테스트하는 방법은 기존의 가설을 테스트하는 방법과 달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