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명(失明)까지 초래하는 눈의 망막 질환이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망막질환으로 치료 받은 환자 수는 57만5869명으로 2004년보다 67% 증가했다. 또 망막질환의 총 진료비는 729억원으로 59% 늘었다.
망막질환이 크게 늘면서 실명 양상도 달라졌다. 20~30년 전에는 백내장이 한국인 실명 원인 1위였다. 하지만 요즘은 백내장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해결되기 때문에 백내장으로 인한 실명은 크게 줄었다. 반면 망막질환이 급증하면서 최근에는 망막질환은 후천적 실명의 최대 원인이 됐다. 지난해 국내 실명 인구는 18만여 명이며, 이 중 망막 질환 등에 의한 후천적 실명이 15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 후천적 실명을 원인 별로 보면 당뇨병성 망막증이 약 65%, 녹내장이 20%, 황반변성이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밖에 백내장 등이 꼽힌다. 지난 1983년 후천적 실명 원인은 1위 백내장(36%), 2위 외상(25%)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를 보인다.
망막질환 증가의 원인은 노인인구와 당뇨병 환자 증가가 꼽힌다. 대표적인 망막 질환은 '당뇨병성 망막증'과 '황반변성'이다.
◆65세 이상 실명 원인 1위… '당뇨병성 망막증'
- ▲ ▶당뇨병성 망막증 전후 - 발생 초기 경미하게 시력이 떨어지는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혈관이 터져 유리체 등에 체액과 찌꺼기가 스며든 단계에서야 시력 장애가 나타나고 치료가 지연되면 실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당뇨병의 대표적인 합병증으로 '당뇨병성 망막증' '만성 신부전증' '당뇨발'을 꼽는다. 당뇨병성 망막증은 65세 이상 노인들의 실명 원인 전체 1위에 올라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현재 국내 당뇨병 환자는 약 5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증가 속도도 가팔라 당뇨병성 망막증에 의한 실명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매년 전체 당뇨병 환자의 약 5%가 당뇨병성 망막증에 걸린다. 당뇨병 발병 기간이 20년 이상인 사람은 약 50%가 당뇨병성 망막증을 가진 것으로 보고돼 있다.
당뇨병이 진행되면 몸에서 가장 미세한 혈관이 촘촘하게 분포돼 있는 망막에서 가장 먼저 문제가 발생한다. 미세한 혈관이 터져 혈액과 체액이 흘러나오면 혈관 주변 세포에 부종이 생길 수 있다. 더 심해지면 시력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황반의 '중심 시각점'이 파괴돼 실명으로 이어진다.
당뇨병성 망막증은 초기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을 뿐더러 시력에도 지장이 나타나지 않는다.
서울성모병원 안과 이원기 교수는 "망막 혈관이 막히거나 부종이 생겨도 초기에는 시력이 약간 떨어지는 것 외에는 증상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뇨병 환자들에게 안과 검사를 받으라고 해도 잘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시력에 이상이 없는 당뇨병 환자라도 망막 사진을 찍어보면 혈관에 꽈리 같은 미세동맥류가 있으며, 점상 출혈과 혈관에서 새어나온 체액과 찌꺼기가 망막에 흩어진 상태, 즉 비증식성 망막증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성 망막증을 방치하면 혈관이 터져 혈액이 유리체에 스며들어 뚜렷한 시력 장애가 나타나며, 자칫하면 실명으로 진행된다.
누네병원 망막센터 권오웅 소장은 "당뇨병 환자의 60% 이상이 망막 혈관이 터진 다음에야 병원을 찾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황반이 완전히 파괴돼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 소장은 "황반이 완전히 파괴된 다음에는 이를 되돌릴 방법이 아직 없다"며 "일찍 발견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생활습관 서구화로 '황반변성' 늘어
- ▲ ▶황반변성 전후 - 초기에는 부엌이나 욕실의 타일, 바둑판, 자동차나 건물 등의 선이 굽어 보이고 글씨가 깨져 보이는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좀 더 진행되면 중심부위가 보이지 않기 시작한다.
- 안구(眼球)의 안쪽 벽은 수정체가 있는 앞쪽을 제외하면 모두 망막이라는 얇은 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는 시세포와 혈관이 매우 촘촘하게 분포해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수정체 반대편 망막에 지름 1㎜쯤 되는 작은 '반점'이 하나 있다. 수정체를 통과한 물체의 상(像)이 맺히는 곳으로, '황반'이라고 부른다. 이 부위에는 특히 혈관이 매우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황반 주변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생겨 출혈과 부종이 생기거나 노폐물이 쌓이는 증상을 '황반변성'이라고 한다.
황반변성의 가장 큰 원인은 노화로, 50대부터 증가한다. 가벼운 황반변성은 부분적인 시력 저하 등을 초래하지만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진다. 황반변성의 원인으로는 노화 외에 유전과 자외선, 흡연, 기름진 음식의 과도한 섭취 등도 꼽힌다.
서울성모병원 안과 주천기 교수는 "서구에서는 황반변성이 노인 실명 원인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사람의 식습관이 급격히 서구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방 섭취량도 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우리도 비슷한 패턴을 보일 전망"이라고 말했다.
/ 배지영 헬스조선 기자 baej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