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진보없는
'경사각 추구 불가능' 하고 '효율은 한낮 꿈'에 불과하다.
이를 무시한채 당장의 욕심과 결탁한 무모함은 공멸의 길로 인도할 뿐이다.
국민들께 보여줄 '신재생 에너지 비젼'은 어느 또랑에 처박혀 버리고야 말았다.
1.서론
해풍이 심한 새만금 수상 태양광 발전시설은 흔들리면 안전을 보장 못하며 발전량은 급감한다. 이원호 대호호를 비롯한 서해와 남해에 조성된 수상 부유식 태양광 발전시설은 이격거리가 짧아서 시설 간 충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연이 야기한 외력은 인간의 상상을 벗어난 무한적 충격을 일으킨다. 지금 부실한 고박 그리고 기능적 한계를 지닌 부력 시설이 조성된 사업장은 송전케이블 파손과 단락 위험에 처해 있으며 파단은 진행중이다. 매년 단선되고 있는 보령댐 사례를 보면 수면 아래 잠재해 있는 크고 작은 사고들이 수상 태양광의 사업적 지속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재확인시킨다. 보령댐 수상 태양광 발전량 데이터를 보면 동급 시설 대비 감소량은 23% 정도 감소했다. 현재 보령댐 수상 태양광 시설은 이미 지속성을 상실했다는 반증이며 유사 구조로 시설된 대다수 수상 태양광의 경우 시기에 관계없이 동일한 과정을 격고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기능이 상실한 사업장이라면 해빙기를 지난 올 봄철이 매우 위험하리라 예측된다. 요즘과 같이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도달하면 기후변화는 급변하여 자구책이 없는 수상 구조물을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갈 것이기에 그렇다.
2.본론
발전사업을 운에 맡긴다면 사업성 잃고 천수답이 되었음을 인정한것이다. 최근 한국 수상 태양광 산업은 기술적 낙후와 퇴보를 택하면서 사업적 당위성을 상실함은 물론 효율을 추구하는 기존 에너지 산업들 행보에 부합하지 못하고 생존적 가치를 져버린채 그져 RPS제도가 보장하는 수익에 안주하려는 저급한 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경사각을 추구하는 것은 무모함으로 인식 되버렸고 효율은 무지개가 되버린지 오래다. 재생에너지가 국민들에게 보여줄 비젼은 어느 또랑에 처박혀 버리고 말았다.
이상황에서 이익을 얻고자 사업규모 즉 비용 낮춘다는건 축구에 비유한다면 자살골 넣은 행위와 다름 없다. 한국 수상 태양광 산업을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올바른 판단력은 등골 오싹한 위험을 용기와 신념으로 수없이 극복하며 얻은 혁신적 기술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때 가능하다. 이를 자연의 자비와 우연을 바라며 구태에 젖어서 외면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맞이할 종말의 끝에서 붕괴현장과 마주해야 한다. 측은지심보다 자업자득이 더어울릴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3.결론
작금 한국 수상 태양광 산업은 수변의 비정한 현실을 무모하리만큼 외면하고 있다. 기초가 불안하고 기본을 무시한 결과다.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앨빈토플러저 '권력이동'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지식의 향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태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길 바라며 제안한다. 그런다고 달라질것은 없으리라. 그래도 시도해봐야 하는것이 선각자의 도리라 여기고 운을 떼본다.
수상 시설은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인지되지 못한 위험요소가 사업 전체를 위기로 몰아가기 충분한 파괴력을 지닌채 수상 태양광 시설 주변 수면 아래 잠재해 있다. 이는 인간이 갖고 있는 기술이나 인지력에 상관없이 극도로 난폭한 현상으로 빈번하게 나타나곤 한다. 그 예는 시화호 추풍령 대호호 보령댐 새만금 등 다수 지역에서 시현되고 있으며 노출되기 꺼려하는 현장을 포함하면 한국 수상 태양광은 새만금에서 어설픈 도약으로 파국을 경험하기 전 재정비 해야하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붕괴현상을 시작한 이원호에서 또 다른 종말와 마주하기 전에 말이다.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우중문에게 주는 시를 내 다시 적으니 무모함은 중단하고 '자유 정의 진리' 구하며 '生'을 찾길 권한다.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