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룡산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과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계에 1491.9m로 치솟은 산이다
무룡산은 용이 춤추는 산이란 뜻의 이름에 걸맞는 무룡남릉을 갖고 있다. 아직 일반에 널리 소개된 바는 없지만, 이코스야 말로 용이 춤추는 듯 그 꼬리부분에 해당되는 황점마을 들머리 날등부터가 예사롭질 않다.
그리고 암봉으로 이루어진 1088m봉, 1219m봉, 1288m봉...! 용의 등줄기에 해당되는 1219m봉 이후의
암릉코스와 머리부분에 해당되는 1420m봉에서 정상까지의 날카로우면서 둔중한 암릉지대...!
무룡산 정상 표지
드디어 무룡산 정상에 서다...정말 춥다..
무룡산 정상앞에 선 산꾼들...다들 추운가보다...!!!
저 아래동네는 어디일까...!!!
돌탑봉 정상에서...에~고 추워라..
얼굴에 얼음이 서렸다...돌탑봉 정상에서...정말 춥다.
동엽령을 향해서 또 걷는다..
☞ 덕유산 (동엽령) ☜
한반도에서 가장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은 옛적부터 이 땅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백두대간에서 이 점을 가장 확연하게 읽을 수 있는 곳은 아마도 덕유산(1614m.전북 무주)일 게다. 덕유산 구간의 산마루는 현재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덕유산의 주능선을 사이에 두고 서편은 전북 무주.장수 땅이 되며, 동편에는 경남 거창.함양 사람이 산다. 옛적에는 산마루를 사이에 두고 백제와 신라가 갈렸다.
넓게 보자면 덕유산 일대에서 백두대간을 넘나들 수 있는 고개로는 빼재(신풍령이라고도 함).동엽령.육십령 등을 꼽을 수 있다. 빼재와 육십령이라는 이름은 덕유산이 깊고도 험한 탓에 산적과 짐승이 많았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사냥꾼이나 도적들이 잡아먹은 짐승의 뼈가 수북이 쌓였으며('뼈재'라는 발음이 경상도 땅에서 "빼재"가 됐다는 것이다), 산도둑이나 맹수들로부터 해를 보지 않으려면 일행이 60명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고개를 넘어야 했다는 것이다. 빼재와 육십령은 현재 37번 국도(무주~거창)와 26번 국도(장수~함양)로 포장돼 있어 옛 모습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덕유산의 옛 고개 중 동엽령(冬葉嶺)은 깊은 산중에 있는 덕에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 잎"으로 해석되는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 일대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가 어렵다. 무주와 동엽령을 마주하고 있는 거창군에서 동엽령을 '동업이재'로도 부르는 것을 보면 이런저런 짐작을 해볼 수는 있다. 거창군이 발간한 '거창군사(居昌郡史)'는 동엽령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재이다. 재로 오르는 병곡 대하골(현재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에는 옛날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다"
동엽령에 곧바로 닿는 산길 중에서 안내판이 설치돼 있는 정식 등산로는 무주군 안성면의 안성매표소에서 시작된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산길을 따라 펼쳐진다. 칠연(七淵)계곡이다. 이곳에도 드라마틱한 전설이 전해온다.
"무주군지(茂朱郡誌)"에 소개돼 있는 전설의 대강은 이렇다.
옛적 한 도사가 있었다. 신선이 되길 갈망하는 이였다. 천제(天帝)에게 기도하며 7년간 수도한 끝에 그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우화등선(羽化登仙)하기 위해 덕유산 정상 향적봉에 오르는 날 새벽이었다. 어느 부잣집 앞을 지나는데 구수한 밥 냄새가 났다. 허기를 참지 못한 도사는 밥 한 술을 먹게 해 줄 것을 이 집에 청했다. 측은히 여긴 이 집 며느리가 도사의 청을 시아버지에게 전했다. 노랑이로 유명한 시아버지는 "아침에 남에게 밥을 주면 재산이 축난다"고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다 도사를 밀쳐 그만 개울에 빠지게 했다. 화를 이기지 못한 도사는 며느리를 집 밖으로 불러낸 뒤 도술로 큰 물을 일으켜 집을 통째 떠내려 보냈다. 그때 이곳에 폭포와 소가 생겨났다. 경거망동한 도사는 천제에게 혼이 난 뒤 다시 7년을 수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천제의 허락을 받아 향적봉에 올라 신선이 됐다는 것이다.
칠연계곡을 벗어나 동엽령에 오르는 산길은 지게꾼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고 가파르다. 그러니 귀한 물자를 실어 나르는 대상(隊商)이 다닐 만한 길은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보따리 장수 정도가 동엽령을 밟았을 것이다.
반갑게도 동엽령(1,320m) 오르는 길은 해발 1000m대에 이를 때까지 맑은 물이 쉼없이 산길 옆으로 흐른다. 보따리 장수들은 이 물로 빈속을 채웠을 게다. 그리고 민가를 지날 때면 밥 한 끼를 구걸했을지 모른다. 더러는 면박을 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산중에서 보따리 장수끼리 마주치면 "동업(同業)"을 만났다며 반가워했을 것 같다.
그런데 전설 속 그 며느리는 그 뒤 어찌 살았을까. 머리 깎고 중이 됐으려나. 혹 동엽령 너머 거창 쪽으로 넘어와 주막을 열고서 나그네에게 인심을 팔며 살지는 않았을까. 전설의 끝을 더듬으며 가쁜 숨을 돌리자니 눈앞에 상고대가 너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그리고 너무나 매서운 바람이 분다.
동엽령가는길목의 상고대...
너무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로움...동엽령 근처..
동엽령에서 본 눈덮힌 산야...참 아름답다..
동엽령 전망대 입구..
동엽령 전망대...여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그래도 여긴 좀 따뜻했다..
횡경재 이정표...이제 하산길만 남았다..
하산중 횡경재 이정표 앞에서...하산길도 힘드네...휴 ~
☞ 송계사 (경남 거창군) ☜
☞위 치 : 경남 거창군 북상면 소정리 산 27번지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의 말사이며, 덕유산 남쪽 기슭에 수유동 골짜기에 있다.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에 원효, 의상대사가 영취사를 창건한 뒤 5개 부속 암자를 세웠을 때 송계암이라고 이름하여 창건했다.
그뒤 큰 스님들이 이 절에서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숙종 때 진명이 중건했으며, 6.25전쟁으로 소실된 것을 1969년 승민스님이 다시 지었단다.
1995년에 원정(圓靜)이 1969년 중창 때 건립한 영취루가 기울어진 것을 해체하여 다시 짓고 문각(門閣)이라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대웅전·문각(종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아미타여래
좌상.소종(鍾).탱화3점 등이 있단다.
송계사 입구...여기서 아이젠을 풀고 처음으로 소피를 보았다...!!
눈덮힌 송계사...
송계사를 알리는 표지판..
디어 종착지에 다다렀다...남덕유분소 앞을 지나며..
하산후 한잔을 즐기며...칠부능선 임재묵씨와 한~컷...ㅎ ㅎ ㅎ
너븐들 김도익 친구와 함
선두조 일행들과 한잔하면서...그래도 사진은 이쁘게 찍어 야지...ㅎ ㅎ ㅎ
2011년 1월31일..
1월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위해 다우렁(백두대간 종주 모임) 회원님들과 새벽4시에 천안 톨게이트를 떠나 경남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마을 입구에 7시에 도착했다.운전기사님이 길을 잘못들어 조금은 헤매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초입부터 무척 추웠다.옷을 챙겨 입고 무룡산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었으나 추위로 몸이 굳어 속도가 나질 않았다.삿갓골재대피소 가는길은 초입은 순탄하는듯 싶었으나 정상으로 갈수록 가파랐다.아이젠을 차고 호흡을 조절하면서 천천히 올라갔다.가는 도중의 설경은 가히 압권이었다.
1시간여 남짓가서 삿갓골대피소에 도착했다.도착하니 처음 반기는 풍력발전기의 날개 소리가 세찬 바람에
얼마나 빨리 도는지 "웅웅~" 소리가 추위를 더 느끼게 했다.옷을 다시 추려 입고 무룡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 딛었다.가는도중에서의 설경과 상고대는 내두눈을 황홀하게 했 다.너무 아름답고 신비로웠다.절로 감탄사가 연발했다.사진을 찍으며 한걸음 한걸음 가노라니 왠 놈의 바람은 이렇게도 센지 내 몸이 날아갈 정도였다.콧김,
입김으로 얼굴을 감싼 보호대는 얼어 딱딱해 바람이 세차게 불면 따갑기까지 했다.무룡산 정상을 밟고 돌탑봉,
동엽령을 거쳐 횡경재에 까지 올때의 바람은 정말 온몸을 추위에 떨게 만들었다.그런데 횡경재에서 송계사계곡까지 내려오는 길도 가파르기 그지 없었다.다음엔 역으로 다시 이 길을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지레 겁부터 났다.한참을 말없이 내려 오니 송계사절이 나타났다.아이젠을 풀고 식당으로 향해 기분좋게 걸음 재촉했다.먼저 내려온 선두조와 합세해 한잔의 술로 하루의 산행을 되씹으며 웃었다.
또 다시 생각해도 너무 즐거운 겨울산행이었다.지금도 눈에 선하다.눈덮힌 설경하며 세찬바람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