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만 더” 히 5:11-12
https://youtu.be/Dj0O_bqiVkU
1. 감옥에 간 아들에게 아버지가 편지를 씁니다. ‘아들아 올해는 내가 뉴저지에 있는 우리 집 정원에 토마토를 심을 수 없겠구나. 내가 나이가 들어 땅을 팔 힘이 없단다. 빈센트 네가 있었다면 기꺼이 나를 위해 땅을 파주었을 텐데. 너를 사랑하는 아빠가.’ 얼마 뒤 아들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사랑하는 아빠, 땅을 파지 마세요. 그 정원에는 시체가 묻혀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빈센트.’ 편지를 받자마자 아버지는 즉시 경찰에 신고합니다. 다음날 새벽 4시 경찰과 FBI가 들이닥치고, 온 정원을 다 뒤집었지만 시체는 찾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사과했습니다. 며칠 뒤에 편지 한 통이 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빠, 이제 토마토를 심으세요. 이게 지금 상황에서 해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아버지를 향한 마음과 지혜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2. 들어요. 그런데 안 들려요. ‘듣는 것이 둔하니’. 정말 이런 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신앙 즉 믿음 없이 듣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듣는 자세는 천금보다 귀한 태도입니다. 시편 95편은 불신앙으로 들은 자들이 모두 광야에 묻혔다고 말해줍니다. 안 들리는 두 번째 이유는 자기의 이념과 왕국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아덴 즉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사람들의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합니다. 하지만 몇 사람만 믿게 됩니다. 정치적 이념이 복음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왕이 있는 나라는 복음 선교가 참 어렵습니다. 세 번째 안 들리는 이유는 부드러운 음식만 좋아하는 신앙 즉 할만한 것만 하는 신앙이 되었지, 믿음과 확신으로 나아가는 삶의 자리는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6장에서 사랑으로 섬기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나타내기 위해 달려갔던 자리가 없어지자 안 들립니다.
3-1. ‘선생이 돼라’라고 부르십니다.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단단한 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먼저 부탁드릴 것은 ‘올바른 가르침’을 열렬히 환영하십시오. ‘제대로 된 말씀’을 박수치고 지지하는 모습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힘을 얻어 어떤 도전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단단한 것을 먹을 수 있는 선생의 모습은 ‘회개할 줄 아는 자세’입니다. 초보를 버린 자는 6장 1절에서 제일 먼저 죽은 행실을 회개합니다. 이전의 아픔과 힘듦 따위가 나에게 더 이상 영향 미치지 못합니다. 루터는 비텐베르그 성당에 95개 조 반박문을 붙이며 제일 먼저 ‘전 생애를 걸쳐 회개’할 것을 말합니다. 가톨릭이 제일 싫어하는 말입니다. 기득권자, 죄인이 제일 싫어하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선생, 믿음의 사람은 자신을 회개하는 자리에 제일 먼저 들어갑니다.
3-2. 이단인 다락방선교회 소속 목사 101명이 탈퇴 선언을 했습니다. 이단은 모양만 바꾸지 결국 무너집니다. 그들의 탈퇴선언문에는 잘못된 복음, 왜곡된 그리스도를 배워 지난 30년을 허비했다고 고백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잘못 가르쳐진 사람들을 다시 가르치는 것은 정말 힘이 듭니다. 아픔만 공유하는 위로는 나중에 성장하지 못한 믿음을 만들어 버려 말씀으로 세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지금입니다. 힘든 자리에서 한 걸음만 더 말씀으로 나아갑시다. 그 열매는 분명히 더 건강한 삶으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