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의 붉은 잉크
욜라 님과 함께, 기록들을 이래저래 살펴가면서 재료를 구하며 잉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소설 하나를 따와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올해에 안고 가는 문학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입니다.
잉크의 색상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의 마지막 장면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미래의 향방을 정한 주인공 다이스케의 그 후의 운명이 낙관적인 장밋빛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장미라기보다는 더 탁하면서도 옅은 빛이 돌며 무미건조할 붉은 색, 다이스케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그럴 거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펜에서 흘러나온 잉크가 종이에 닿는 그 순간, 그것이 마르기 전까지는 잠시나마 금각이 타오르듯이 반짝이는 붉은 빛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이 영원치는 않겠지만 그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펜이 종이에 막 맞닿은 그 순간이 어쩌면 이 잉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찰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미 사파리, 파이롯트 20호 등 일반적으로 쓰이는 여러 만년필에 반년 가량 직접 사용하며 안정성을 검증하였습니다. 다만 사용 시에 타 잉크와 혼합하지 마시고, 직사광선을 피해서 보관해주시길 바랍니다.
한정판의 잉크는 유리병에 담아 제공합니다. 용량은 50ml이며 10병을 제작하여 그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잉크병의 꽃 그림은 장정가(装丁家) 하시구치 고요(橋口 五葉)가 디자인하고 춘양당 서점에서 발행한 1910년 01월의 단행본 표지를 오마주했습니다.
잉크 이외에 소세키가 사용한 두 종의 원고지도 살짝 넣었습니다. 동경 카구라자카에는 유서깊은 고포인 소마야라는 문구점이 있습니다. 에도시대 제지업에서 출발하여서 종이유통업과 문구업에 진출하였고, 일각에서는 개화기 때 서양지를 이용해 처음으로 현대적인 원고지를 만든 곳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소세키는 초기에 소마야나 여타 초창기의 원고지를 사용하다가, 19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그 유명한 용 두 마리가 그려진 원고지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가격은 만 원입니다.
*그 후 잉크는 한정 이외에 일반 판매품(30ml)도 존재합니다. 잉크 성분은 동일합니다.
초저녁과 그 후 잉크
이번에는 참석이 어려운 욜라님과 함께 제작한, 해가 지는 즈음의 색을 표현한 잉크들입니다. 파란 하늘에 붉은 빛이 겹치고, 머지않아 붉게 물들게 됩니다.
문학은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개인적인 것이어서 사람마다의 취향에 따라서 이리저리 변화하기도 합니다. 어느 사람들은 거기에다가 커피나 차를 곁들이기도 하고, 한낮이나 한밤 중과 같은 특정한 시간대에 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후’라고 한다면 음료는 잘 모르겠지만 시간대는 아무래도 저녁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해 질 녘은 많은 사람들의 퇴근길이기도 합니다. 퇴근길의 들뜨면서도 복잡미묘한 그런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일반판의 잉크는 플라스틱 병에 담아 제공합니다. 용량은 30ml입니다.
마찬가지로 파이롯트 캡리스, 워터맨 세레니떼 등의 만년필에서 수 개월 사용하며 안정성을 검증하였습니다. 다만 사용 시에 타 잉크와 혼합하지 마시고, 직사광선을 피해서 보관해주시길 바랍니다.
가격은 오천 원입니다.
*그 후 잉크는 일반 판매품 이외에 한정 판매품(50ml)도 존재합니다. 잉크 성분은 동일합니다.
달력
2025년의 달력입니다. 여권 정도의 작은 크기에다 달마다 새로운 그림이 기다리고 있는, 욜라님께서 제작하신 달력입니다.
마침 색이 치워지지 않은 그림들이기 때문에 잉크로 색을 채워 넣는다면 더더욱 괜찮은 나만의 달력이 될지도요…? 연말연초 때에 내년의 일정을 생각하면서 미리 잉크를 칠해도 좋을것 같고, 아니면 새로운 달이 되었을 때에 잉크를 칠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케이티 님, 유네엘 님의 데스크에서 만나보실 수 있는 욜라님의 그림을 기반으로 하는 문방구들과 어우러지기 때문에, 같이 봐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가격은 5천원입니다.
마키에 만년필 100주년 기념 수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4년 11월에 마키에시(蒔繪師) 이이다 코호(飯田光甫, 1899-1970)와 이이지마 쇼고(飯島松郷, 1894-?)는 파이롯트의 의뢰로 만년필에 마키에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미키 료스케(並木良輔, 1880-1954)와 와다 마사오(和田正雄, 1878-1947)는 이 마키에 펜들을 이듬해에 서구권에서 시범적으로 판매하면서 호평을 받았고, 머지않아 전설적인 마키에시인 마츠다 곤로쿠(松田權六, 1896-1986)가 제작에 참여하면서 파이롯트 칠공예 역사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이 토대는 1931년 08월, 파이롯트가 주관하는 마키에시들의 모임인 국광회(國光会)의 발족으로 이어짐으로서 오늘날에 전합니다.
마키에는 일본의 전통적인 칠공예 가운데 하나로서 만년필을 장식하는데 쓰이기도 합니다. 몸체에 옻칠을 두르고, 금분이나 은분, 난각이나 나전 따위로 장식을 하여서 만년필의 몸체에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립니다. 일반적으로는 산수나 꽃과 같은 동양권 전통적인 소제를 그리지만 때로는 추상적이거나 현대적인 도안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키에 만년필의 역사가 100년이 된 것을 기념하고자 약소하게 수건을 준비했습니다. 빛이 다소 바랜 흑칠과도 비슷한, 잿빛의 배경색 위로 번체자의 문구를 금빛 자수로 써넣었습니다.
*수건의 제작 및 배부는 パイロットコーポレーション, 國光会와 무관합니다.
일부 상품의 구성 문제 때문에, 데스크 배치 시 유네엘 님 및 케이티 님의 데스크와 이어서 배치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잉크 전문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잉크의 수량과 재료에 대해 문의 중입니다.
만년필 잉크 관련 논문을 기반으로,
화장품 및 식품 첨가제로 사용하는 시약으로 대체하였습니다.
또학 색상에 따라 각 시약 간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세부적인 함량을 조절하였습니다.
참고 논문 중 일부는 하기와 같습니다.
[doi: 10.1111/1556-4029.12313]
[doi: 10.1155/2022/7186625]
수량은 총 쉰 병이 되지 않는 소량입니다. 작년 쯤에 잉크에 대한 책을 보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욜라님의 말씀대로 기존 논문을 참고하기도 하고, 독일이나 일본 등지의 아마추어 제작자들과도 이야기하면서 잉크를 한번 만들어보았습니다.
@계속 데스크 confirm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와우 이건 찐찐찐 수제잉크로군요!! 너무 멋집니다, 꼭 얻어갈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