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축지법 / 양사강
땅에 닿을 수 없는 날씨를 딸기꽃이라 부르자
구름에서 돋아난 날개 새파랗고
젖은 발자국에서 봄눈 냄새가 난다
눈사람이 봄에 죽는다는 것
꿀벌은 알고 있다
온실 속 물방울로 맺혔다가 딸기나무 속으로 스민다는 것도
빛의 자취를 따라 자라나는 딸기 알
점점이 박혀 가는 푸른 씨앗은
때 이른 희망일까
우리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부칠 수 없는 편지라 부른다
온통 초록뿐인 딸기나무
초록에서 빨강까지가 꿀벌의 세계라고 하자
춤을 추듯이 자란다
새벽이면 공중에 뜬 달이 가가워졌다고 한다
잎사귀 돌돌 말려 있어도
날아갈 것이라 믿는 딸기 알
새의 날개를 빌리지 않아도 날아갈 기세다
출렁거리는 세상으로 한발 성큼 내민
저 겉뿌리의 배후는 누구일까
붉어지는 알 속으로 침참해 들어간 까만 씨앗은
어떤 마음일까
딸기나무는 살얼음이면서
입술에 닿으면 녹아내릴 선물을 매달고 있다
보셨나요
흰 접시 위에 찍힌 붉은 발자국을
두 계절 먼저 왔다 간 딸기의 축지법을
[김유정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김진아, 시 양사강, 동화 추미경 당선
노벨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뒤를 이어 한국 문단을 대표할 신인을 발굴하는 ‘김유정 신인문학상’의 서른 번째 주인공들이 결정됐다.김유정문학촌과 강원도민일보가 공동 주관하는 제30회 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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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발아 기다리는 씨앗들에게 양분 되고파”
길고 뜨거운 여름이 지났습니다. 축축했던 날개를 펴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출발선, 떨리는 마음으로 섰습니다. 날개는 돋아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긴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고치를 찢고 나와야만 펼칠 수 있는 날개, 돋지 않는 날개를 탓하며 종종거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어쩌다 돋기 시작하던 날개는 구겨지거나 찢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넘지 못할 줄 알았던 문턱을 간신히 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글과 늦깎이인 제게 큰 문을 열어주신 심사위원님과 강원도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시 짓는 일이 위로였지만 때론 두려워서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붙잡아 주신 이승희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수술하신 구순의 어머니와 함께 당선 통보를 받는 순간 그만 숨이 딱 멈추고 말았습니다. 무척 기뻐하시는 어머니께 위로의 선물을 드린 것 같아 한 번에 두 개의 상을 받은 기분입니다. 항상 지지해 주시고 부족한 글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던 여러분께 안부를 전합니다. 사랑하는 건·율, 남은 가족들, 저처럼 기뻐해 주실 분들과 이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발아를 기다리는 씨앗들에게 열심히 물을 주며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 “작은 대상으로 큰 세상의 이치 드러내”
본심에 오른 8명 가운데 마지막까지 주목한 작품은 ‘딸기의 축지법’과 ‘오래된 임무’였다. 보석의 탄생 과정을 다룬 ‘오래된 임무’는 일부 표현이 과하고, 시적 메시지가 다소 약하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딸기의 생장(生長) 과정을 축지법으로 재치 있게 비유한 ‘딸기의 축지법’은 ‘경이로움’에 관한 작품이다. 지극히 작은 대상을 통해 큰 세상의 이치를 섬세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마치 ‘1제곱미터의 우주’를 자세히 보는 듯했다. 당돌하면서도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며 섬세하고 유연한 감성의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다른 작품들 또한 이름 없는 무명(無名)의 존재가 드러나는 다원화 사회를 갈망하고, 이끼-되기의 입장에서 무엇이 가짜 희망을 넘어 진짜 희망인지 묻는다는 점에서 시력(詩歷)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의 미래는 무엇이고, 시의 행방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위 질문에 자문자답하며 좋은 시를 오래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양사강 씨의 당선을 축하드린다.
-고형렬·고영직(대표 집필)
노벨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뒤를 이어 한국 문단을 대표할 신인을 발굴하는 ‘김유정 신인문학상’의 서른 번째 주인공들이 결정됐다.
김유정문학촌과 강원도민일보가 공동 주관하는 제30회 김유정신인문학상 심사 결과, 김진아 씨의 ‘집으로 가는 길’이 단편 소설 부문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시 부문에서는 양사강(본명 양점순)씨의 ‘딸기의 축지법’, 동화 부문의 경우 추미경씨의 ‘빈, 꿈을 꾸다’가 각각 당선작으로 뽑혔다. 지난 달 예심을 거쳐 최근 현장 본심을 진행한 결과다. 소설 부문 상금은 1000만원, 시·동화 부문 상금은 각 300만원이다.
본심 심사는 소설 부문 한수산·김미월 소설가, 시는 고형렬 시인·고영직 문학평론가, 동화는 홍종의·한정영 동화작가가 진행했다. 예심은 소설 김기우·이현준 작가, 시 김창균·안주철 시인, 동화 정혜원 작가가 맡았다.
시상식은 17일 오후 오후 3시 30분 김유정문학촌에서 열린다. 이날 오전 11시 청소년들의 문학 창작열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제32회 김유정백일장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다음날인 18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는 춘천시와 김유정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는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시상식이 열려 배수아 작가가 수상한다.
[출처] 제30회 김유정신인문학상 / 양사강|작성자 ksujin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