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삼추(一日三秋) 라했으니
하루가 삼년 같다는 뜻으로 몹시 애태우며 기다리는 것을 말함이다.
누구나 기다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더욱이나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애태우는 심정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옛시에 “
만약 꿈에 다니면 길이 흔적이 있다면 님의 문앞 돌길이 반이나 부서져 모래가 되었으리라”
(若使夢魂行有跡門前石路半成沙) 했다.
낮에나, 밤에나 그리운 사람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은
하루가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같이 느껴지리라.
그러나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백 년을 함께 산데도
지루하지 않고 하루같이 즐겁기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
신선 노름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 하지 아니하였던가?
성경에 “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 : 8, 9)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분으로 영원도 일순간같고, 일순간도 영원같기에 하신 말씀이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시간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을 때라 한다.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진정 사랑한다면
주님을 모시고 함께 산다할 때 천년도 하루같이 짧을 것이다.
반대로 주님과 떨어져 사는 하루는 천년 같이 지루하리라.
주님의 재림이 이천년 지연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지연이 아니라
시간상 견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하간 시간이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 일순이라도 값지게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