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빙의 아버지
이수익
어머님 제 여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 가옥 이 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여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 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은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1942년 경남 함안 출생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으로 『야간 열차』 『슬픔의 핵(核)』 『단순한 기쁨』 『그리고 너를 위하여』 『아득한 봄』 『푸른 추억의 빵』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등 한국시인협회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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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처음 시를 공부하면서
이수익 교수님의 <결빙의 아버지>를 읽고 가슴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지요
10년이 훨씬 넘어 시를 다시 꺼내 읽으니 또 다시 눈물이 나네요
누구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겠지만
저 역시 잔정 많으시던 아버지가 이 가을에 더욱 그리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