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卯年 정착과 부흥의 해☜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삿18:11-31절) 단 지파(支派)의 신상(神像) 탈취(奪取)
오래전에 미국으로 이민(移民)을 갔던 한 여성이 다시 우리나라를 방문했습니다. 그 여성은 어렸을 때, 광주에서 민주화 항쟁(抗爭)을 겪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젊은이들이 군인들에 의하여 매를 맞고, 죽고, 또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이 광주를 탈출한 후, 서울에서 잡혀, 단지 광주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심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 우리나라에 환멸(幻滅)을 느낀 나머지 완전히 한국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미국으로 이민(移民)을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외국인과 결혼을 했고, 그동안 한국을 잊기 위하여 전혀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 한국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왜 완전히 한국을 잊기 위해서 이민(移民)을 갔던 그 사람이 다시 한국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아마 그것은 자신의 피 속에 흐르는 끈끈한 정(情)만큼은 버리기 쉽지 않았기 때문 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 지파 사람들의 이민(移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다루고 있는 단 지파의 이민(移民)이 중요한 것은 단지 그들이 땅이 없어서 새로운 땅으로 이주(移住)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주(抛棄)하는 과정에서 미가의 집에 있는 새로운 종교(宗敎)를 거의 강제(强制)로 탈취 하다시피 하여 그것을 자신들의 종교(宗敎)로 발전을 시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 지파는 단지 이민(移民)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민(移民)을 하면서 완전히 여호와의 종교는 버리고, 다른 종교(宗敎)로 개종(改宗)을 해 버렸습니다. 물론 저는 이주(移住)한 사람들이 단 지파 전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번에 이주(移住)한 사람들의 숫자는 육백 명 가량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번에 이 단 지파의 육백 명이 하나님의 땅을 포기(抛棄)하고, 하나님의 종교를 버린 것을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려는 것은 이 육백 명의 단 지파 사람들이 이주(移住)하면서 무엇 때문에 완전히 신앙(信仰)까지 버렸느냐? 는 이것입니다.
Ⅰ.단 지파의 지체(상)
우리는 앞에서 단 지파가 너무나 강한 적(敵) 블레셋을 상대해야 하는 바람에 약속(約束)의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북쪽에 편하게 정복(征服)할 수 있는 라이스라는 땅을 정탐(偵探)했던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단 지파 사람들은 힘든 블레셋을 대상으로 승산(勝算)도 없는 전쟁(戰爭)을 하느니, 차라리 쉬운 목표(目標)를 찾아서 북쪽으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이런 태도가 지혜로운 자세이기도 할 것입니다. 즉 승산(勝算)도 없는 어려운 목표(目標)를 가지고 씨름을 하느라고 허송세월을 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목표(目標)를 가지고 실속(實速)있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고시(高試) 공부를 하거나 승산(勝算)도 없는 유학(留學)에 덤벼들었다가 실패(失敗)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信仰)에 있어서는 쉽게 믿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 지파의 이민(移民)은 현실적(現實的)인 문제가 아니라, 신앙적(現實的)인 문제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단 지파가 약속의 땅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이민(移民)을 가면서 유대 땅에서 상당한 시간 머물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 단 지파는 정확한 리더십이 없는 군중(群中)의 형태로 이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라이스 땅을 정탐(偵探)한 사람들의 보고를 듣고, 라이스로 이동하던 중에 기럇여아림에서 상당기간 지체를 하게 됩니다. 11-12절)읽기
단 지파 사람들은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면서 분명한 이유도 없이 유대 땅에서 상당한 기간 체류(滯留)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증거가 유대 땅 기럇여아림에 마하네 단 즉, 단의 진영(陣營)이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이유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주(移住)를 결심한 단 지파 사람들이 곧바로 라이스로 쳐들어가지 않고, 유대 땅에서 상당한 기간 체류(滯留)하게 되었을까? 적어도 마하네 단 이라는 이름이 지명(地名)으로 남으려면, 단 지파 사람들이 2.3년 이상 그곳에 체류했다는 말이 됩니다.
한두 달 있다가 떠났는데, 단 지파의 이름이 지명(地名)으로 남을 리는 없습니다. 그러면 단 지파 사람들이 곧바로 라이스로 쳐들어가지 않고, 유대 땅에 상당한 시간 체류(滯留)한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사람들이 어느 곳을 목표(目標)로 해서 이동하다가 자신들의 목표(目標)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에 정착(定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에서 가서 정착(定着)한 사람들의 경위를 물어 보면, 이곳에 정착(定着)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을 목표(目標)로 해서 이동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우연(偶然)에 의하여 그곳에 주저앉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단 지파 사람들이 곧바로 라이스로 진격(進擊)하지 못하고, 유대 땅에 체류(滯留)하게 되었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는 단 지파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들 중, 누군가의 건강이 좋지 못해서 그곳에서 지체했건, 아니면 내부적으로 의견의 불일치 때문에 지체하게 되었든 간에, 단 지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목표한 것처럼 신속하게 라이스로 이동하지 못하고 상당한 시간 지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 사람들이 약속한 곳을 포기하고,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체류(滯留) 기간 동안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아마 그들 중에 이런 문제를 제기(提起)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시 말해서 *과연 우리가 이렇게 쉽게 약속(約束)의 땅을 포기(抛棄)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아니면 *과연 중간에서 만났다는 레위 제사장의 말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있는가? 혹은 *우리가 라이스도 차지하지 못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신중론(信重論)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우리의 삶 중간 중간에 이런 지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번에 성공할 것 같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반성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민이나 유학, 결혼,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려고 하기 전,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번 일을 위하여 많은 준비를 했고, 이미 많은 일이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한 번 완전 백지 상태에서 하나님께 질문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7:7절)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ask*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힘들어 하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러 번 간청을 하고, 졸라야만 겨우 관심을 가지는 그런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늘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항상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봅니다. 물론 기도를 한다 해서 당장 하나님의 음성으로 뜻을 들려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맡기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좋은 방향으로 늘 나타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질문하고 맡기는 그 하나하나에 대하여 세심한 관심을 기올 여주십니다. 우리는 이때마다 과연 누가 주인이며, 누가 종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분명히 우리가 주님을 섬겨야 하는데, 주님이 종이 되셔서 우리가 의뢰(依賴)한 모든 것들을 다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라리 단 지파가 그곳에 눌러 앉던지, 아니면 그곳에서 다시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갔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단 지파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고, *원래 자신들의 계획대로 나갔을 뿐 아니라, 한 가지 더해서 미가의 신상(神像)을 자기들의 종교로 채택하는 일까지* 했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처음 땅을 정탐(偵探)하러 갔던 다섯 명의 강경파(强硬派)가 단 지파를 결국 이끌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아-멘
찬송가 352장 십자가 군병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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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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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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