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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등경 [106]- (3)무진의보살품 -이어서-
사리자여, 보살의 모든 신통도 다할 수 없다. 그 모든 신통이란 천안통과 천이통, 타심통,숙명통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것이 천안통이냐 , 보살의 천안은 모든 하늘, 용,귀신과 건달바와 학무학인(學無學人)과 성문,연각들의 하늘눈보다 가장 뛰어나서 미묘하고 훌륭하고 통하고 밝아 온갖 지혜에 나아가 공덕을 성취함이 저 하늘,용,따위와 성문,연각 3승과는 같지 않다. 시방 한량 없고 그지 없는 불세계의 모든 모양, 빛깔,광명이거나 그 모든 것의 거철고 가늘고 가깝고 먼 것을 보살의 하늘눈은 죄다 비추어 보고 분별하기도 하고 잘 알아보며 또 그 중에 있는 중생들의 모든 형태를 본다.그리고 무색인을 제외하고는 , 그 나머지 업행과 나고 죽음의 상속과 또 업과 업의 과와 모든 감관을 분별함에 있어 남김없이 죄다 알며, 시방 한량 없고 그지없는 부처님들의 장엄하고 청정하게 미묘한 모든 국토까지도 남김없이 죄다 본다. 이와 같이 보고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되 자기 국토에 회향하여 장엄하기를 원하고, 이 계율 지님에 머물러서 그의 소원과 같이 위없는 큰 이익을 죄다 성취하게 된다. 보살의 천안은 또 그 중에 있는 보살 대중이 도를 수행하여 몸에 네 가지 위의를 갖추고 바르게 억념함과 해탈법을 얻어 다라니에 편히 머무는 동시에 변제의 방편으로 지혜의 방편에 들어감을 보며, 이것을 보고는 스스로 이러한 모든 행을 닦아서 죄다 원만히 갖추게 된다. 이 보살의 눈이 청정하여 걸림없음은 빛깔을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이 눈이 더럽히지 않음은 빛깔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 눈이 해탈함은 모든 견(見)과 번뇌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이 눈이 청정함은 그 본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며, 이 눈이 발동하지 않음은 번뇌를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가리움 없음은 의심을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일으키지 않음은 장애를 끊기 대문이며, 이 눈이 광명을 얻음은 법을 비추기 때문이며, 이 눈이 지혜를 생각함은 알음알이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 눈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읨은 온갖 번뇌를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위없이 훌륭함은 성인의 근본에 나아가기 때문이며, 이 눈이 걸림없음은 평등한 광명으로 중생에게 비추기 때문이며, 이 눈이 더러움 없음은 나쁜 법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며, 이 눈이 물들지 않음은 본성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이 눈이 부처님 눈에 듦은 끝까지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이 눈이 얽매이지 않음은 미움을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이치를 행하여 진실한 수행을 냄은 청정한 도법을 생각하여 알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대사는 큰 자비심에 편히 머물러 법상을 깊이 알고 이치를 잘 분별하여 다툼이 없고, 보고 들음에 따라 연설하되 착하지 않는 법을 저버리고 도량에 나아가되 마음에 장애됨이 없으며, 인색한 사람을 보고는 재물로써 보시하고 금계를 헐뜯는 자를 보고는 청정한 계율을 닦게 하며, 성내거나 미워하는 자를 보고는 참음을 닦아 다투지 않게 하고 게으른 사람을 보고는 부지런히 힘쓰도록 거둬주며, 마음이 산란한 자를 보고는 선정을 닦게 하고 지혜 없는 자에게는 슬기로운 눈을 베풀어 주며, 삿된 도를 행하는 자에게는 바른 도를 보이고 낮은 행을 닦는 자에게는 아주 깊고 미묘한 불법을 연설하여 온갖 지혜에 들며 모든 신통에 물러나지 않아 보리를 원만히 갖추게 한다. 사리자여, 이것을 이르되 보살의 하늘눈 신통은 한이 없는 것이라 한다. 보살마하살의 천이통은 다함이 없느니라. 시방 한량 없고 그지없는 불세계의 모든 소리. 이른바 하늘.용.귀신,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긴나라, 마후라가. 사람인듯. 사람아닌 듯한 따위들의 소리와 성인의 소리. 성문.연각.보살.정변지의 소리, 모든 귀 감관에 대한 소리와 내지 지옥,아귀.축생과 파리.개미.모기 따위의 소리도 죄다 들으며, 모든 중생의 마음 반연하는 곳과 착하고 착하지 않음과 착하지도 않고 착하지 않지도 않는 사람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를 죄다 풀이하며, 입으로 짓는 착한 업, 착하지 않은 업과 착함도 착하지 않음도 아닌 업까지도 죄다 사실대로 알며, 또 입의 업이 애욕으로 인하여 성냄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말하거나, 성냄과 미움을 인하여 애욕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말하거나, 성냄과 미움을 인하여 애욕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말하거나, 어리석음을 인하여 애욕을 말하고 성앰을 말하거나, 애욕을 인하여 애욕을 말하고, 성냄을 인하여 성냄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인하여 어리석음을 말하는 이러한 모든 소리를 죄다 알며, 입이 깨끗하여서 마음도 깨끗하고 입은 거칠고 입은 깨끗하여도 마음은 거칠거나 , 입이 깨끗하여서 마음도 깨끗하고 입이 거칠어서 마음도 거칠게 되는 이러한 모든 것을 걸림 없는 귀의 신통은 사실대로 알 수 있다. 귀의 신통을 얻는 보살의 천이는 또 성인의 소리와 성인의 소리 아닌 것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의 소리를 들어도 애착하지 않고 성인의 소리 아닌 것을 들어도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성인의 소리에는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추게 되고 성인의 소리아닌 것에는 크게 슬퍼하는 마음을 갖추게 되며, 과거와 미래의 모든 소리를 들어도 본제(本際)를 다하는 여실한 바른 지혜를 얻는다. 이 보살의 천이통은 또 모든 부처님의 말씀하는 미묘한 법을 듣게 되며, 듣고는 바른 지혜와 다라니를 기억하여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중생의 그릇에 따라 설법하되 모든 법의 굳고 굳지 않은 모양을 잘 안다. 이 보살이 만약 한 부처님의 설법은 들어도 다른 부처님의 설법은 듣지 못한다면 그럴 수가 없나니 모든 부처님의 연설을 죄다 받아 듣나니라. 보살이 착하고 착하지 않음과 착하지도 않고 착하지 않지도 않는 법의 소리를 들음에는 그 때와 때 아님을 잘 아나니, 이른바 대중은 있는 때이지만 설법할 때가 아님에는 듣고서 잠잠히 설법함이 없고 설법할 때이지만 대중이 없을 때에는 어떤 한 사람을 위해서 설법함이 되므로 비록 설법할 지라도 모든 사람을 위한 설법은 아니하는 법이다. 사실은 진실하여도 다른 사람을 손상시킬까 염려하여 설법하지 않기로 하고 사실은 진실하지 ㅇ낳아도 다른 사람을 이익되게 한다면 청정한 마음으로 방편에 따라 설법하기도 하며, 기쁨 소리라면 듣고 기쁘지 않는 소리라면 다시 듣지 않으며, 만약 대중 속에서 여러 중생을 위해 설법할 때에는 그 귀 알음알이의 풀이함과 느끼는 것에 따라 이 보살의 하늘귀는 죄다 듣고 알게 되며, 설법할 때에 어떤 중생이라도 깨달아 아는 자는 법을 듣고 깨달아 알지 못하는 자는 법을 듣지 못하게 된다. 이 보살의 귀 경계에는 법의 경계와 같이, 그 본성이 청정하여 나와 다른 사람과 중생의 성품이 죄다 청정함을 알아 보기 때문에, 이 보살은 귀의 경계를 바르게 분별함이 언어 문자로 말하는 모양과 같느니라. 만약에 5취(趣)가 섞여 사는 중생이 있더라도 그들의 풀이하는 언어와 음성에 따라 설법하나니, 이 하늘귀를 지님은 여래의 얻은 바 귀 경계에 회향하여 다른 승(乘)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리자여, 이것을 이르되 보살의 천이통은 다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보살의 타심도 한이 없다. 모든 중생의 상.중.하의 마음을 보살은 죄다 아느니라. 어떤 중생은 보시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心相)인 줄을 알고 어떤 중생은 계율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며, 어떤 중생은 인욕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고 어떤 중생은 정진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며, 어떤 중생은 지혜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고 어떤 중생은 성문.연각.대승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며, 어떤 중생은 힘을 인연하여 착한 뿌리를 증상(增上)시켜 원만히 갖춘 줄을 알고 어떤 중생은 행을 인연하여 착한 뿌리를 증상시키므로써 여기에 태어나게 된 줄을 알며, 어떤 중생은 그 행이 청정하여도 마음이 청정하지 않는 줄을 알고 어떤 중생은 그 행은 청정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청정한 줄을 알며, 어떤 중생은 마음과 행이 다 청정한 줄을 알고 , 어떤 중생은 행과 마음 두 가지가 다 청정하지 않는 줄을 알며, 어떤 중생은 과거세의 마음과 모든 뿌리와 행의 인연인 줄을 알고 , 어떤 중생은 인연을 따라 법을 깨달은 줄을 아나니, 이것을 보살이 남의 마음 아는 지혜라 한다. 또 보살은 남의 미래세 마음을 아나니, 어떤 중생은 미래세에 계율을 지닐 인연이 있음과 현재세에 보시의 인연이 있음을 알고, 어떤 중생은 미래세에 인욕의 인연이 있음과 현재세에 계율을 지닌 인연이 있음을 알고, 어떤 중생은 미래세에 정진의 인연이 있음과 현재세에 인욕의 인연이 있음을 알고, 어떤 중생은 미래세에 지혜의 인연이 있음과 현재세에 속심(俗 心)을 행하는 인연이 있음을 알고, 어떤 중생은 미래세에 대승을 발심하는 인연이 있음과 현재세에 낮은 근기의 인연이 있음을 아나니, 미래의 중생은 이러한 여러 가지 인연이 있으므로, 이 모든 인과 연을 사실대로 아느니라. 이 보살은 아직 교화를 받지 못한 중생에게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으며 그들의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그들이 기량(器量)에 따라 설법하되 만약 적게 듣기를 즐거워 한다면 설법을 많이 하지 않고 설법함에는 반드시 이익이 있고 공덕을 함부로 손상하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남의 마음 아는 지혜라 한다. 또 현재세 중생들의 행하는 바 심왕(心王) 과 심수(心數)의 법을 죄다 사실대로 아나니, 이른바 욕심을 사실대로 알고 욕심과 욕심 여의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욕심 여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고 성내는 마음과 성냄을 여의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어리석은 마음과 어리석음을 여의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어리석음을 여의는 마음과 흩어지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흩어지는 마음과 거두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고 거두는 마음과 게으른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게으른 마음과 정진하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정진한 마음과 하심(下心)을 사실대로 알고 하심과 상심(上心)을 사실대로 알며, 위된 마음과 어지러운 마음을 사실대로 알고, 어지러운 마음과 안정한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안정한 마음과 해탈 없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고 해탈 없는 마음과 해탈 있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해탈 있는 마음과 고요함이 없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고 고요함이 없는 마음과 고요함이 있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고요함이 있는 마음과 한량이 있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고 한량이 있는 마음과 한량이 없는 마음을 사실대로 알며, 한량이 없는 마음과 낱낱 중생의 낱낱 번뇌에 얽매이고 덮힌 마음을 죄다 알며, 이와 같이 알고는 출세간의 도로써 설법한다. 또 이 보살의 머무는 곳에는 먼저 중생을 관찰하여 그 근기에 따라 출요(出要)의 법을 연설하므로, 이 모든 중생의 상.중.하의 근기를 사실대로 안다. 이 보살이 남의 마음을 알 때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왜냐하면 이 보살의 마음과 지혜가 용맹스럽고 영리하여 잘 분별하고 생각하는 뜻과 정진하는 지혜의 알음이 있으며, 보리의 모양을 잘 풀이하고 모든 습기를 끊고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으며, 분명히 통달하여 다툼이 없고 모든 번뇌를 없애고 폭류(暴流)를 없애고 모든 법에 비추고 모든 중생에 잘 들어가기 때문에 이와 같이 안다. 이 보살의 마음이 용맹스럽고 영리하여 이러한 법에 바르게 들어가 앎으로써 이것을 보살이 남의 마음 아는 지혜 신통의 다함 없음이라 한다. 사리자여, 보살의 숙명통도 끝이 없다. 이 보살은 전생일을 생각하되 자기의 일이거나 다른 사람의 일이거나 잘 기억하여 가지며, 법계에 편히 머물러 기울거나 흔들림이 없나니, 기울거나 흔들림이 없음은 착한 일을 잘 알아 하기 때문이라. 이 생각함과 괴롭지 않음은 선정에 편히 머물기 때문이며, 이 생각함이 두려움 없음은 지혜를 잘 거두기 때문이며, 이 생각함이 다른데로부터 구하지 않음은 현전에 밝은 지혜를 얻기 때문이며, 이 생각함이 바르게 기억됨은 끝까지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이 생각함이 공덕을 도움은 대승을 잘 알기 때문이며, 이 생각함이 지혜를 도움은 그 자체가 원만히 갖추었기 때문이며, 이 생각함이 착한 뿌리와 여러 바라밀을 원만히 갖춤은 모든 불법에 능히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 전생일 아는 지혜는 1생으로부터 2생.3생. 내지 백천생,한량없는 백생, 한량 없는 천생.한량없는 백천생과 천지의 이뤄지고 무너지는 한량없이 이뤄지는 세상, 한량없이 무너지는 세상과 한량 없이 이뤄지는 세상과 한량 없이 이뤄지고 무너지는 겁수를 생각하여, 모든 중생이 이 가운데 태어나서 이러한 종성과 이러한 명자와 이러한 형용과 이러한 음식과 이러한 수명으로 괴롬과 즐거움을 받고 이 가운데 죽었다가 도로 이 가운데 태어나고 저 가운데서 죽었다가 도로 저 가운데 태어남을 아느니라. 이 보살은 이러한 한량 없는 나고 죽음을 생각하되 자기의 전생을 생각하고 다른 중생의 전생을 생각하여 과거를 다 안다. 이 보살은 자기의 착한 뿌리를 생각하여 무상보리심에 회향하고 또 다른 사람의 착한 뿌리를 생각하여 무상보리심을 내게 하기를 원하나니, 이 보살은 바르게 생각하는 마음으로서 본래의 나고 죽음과 고행에 대하여 덧없고 괴롭고 나 없음을 잘 관찰하느니라. 만약에 덧없음과 괴로움과 나 없음을 관찰한다면, 모든 물질과 애욕과 벼슬과 수명과 권속에 자재로워서 죄다 탐착함이 없고 또 제석, 범천,호세(護世).전륜성왕과 태어나는 곳의 다섯 가지 욕심과 즐거움을 탐하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현전에 태어남을 받을 것이며, 이 보살은 덧없음과 괴로움과 나 없음을 생각하고 나서 과거의 더러운 행은 다 드러내어 참회하고 현재의 모든 나쁜 일을 목숨이 다 될때까지 끝내 하지 않으며, 과거의 착한 뿌리를 더욱 잘라내어, 무상보리에 회향하고 현재의 착한 뿌리를 중생들과 함께 무상보리에 회향하고자 하여, 이 보살은 모든 나쁨을 여의고 삼보의 종자를 끊지 않기를 원하는 까닭에 모든 착한 뿌리를 죄다 무상보리에 회향할지니, 사리자여, 이것을 이르되 보살이 전생일 아는 지혜를 생각함이 다할 수 없다 하느니라.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의 뜻대로 하는 신통도 다 할수 없다. 어떤 것이 뜻대로 하는 신통인가. 마음과 지혜를 정진하여 모든 법을 섭취하려고 함에는 마음을 조복하고 유화하여 자재로움을 얻고 지혜를 잘 수집하므로써 능히 이 뜻대로 하는 신통을 얻는다. 이 보살은 갖가지의 신통을 일으켜 변화하고 또 이 신통으로써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하나하나 갖가지 신통을 나타내 보여 중생을 교화하나니, 말하자면 어떤 빛깔과 모양이나 어떤 세력과 변화하는 것들이라. 이 보살은 갖가지의 빛깔과 모양을 나타내어 중생으로 하여금 보게 하고 보고는 마음을 조복시키나니, 이른바 부처님의 빛깔과 모양이거나 연각의 빛깔과 모양이거나 성문의 빛깔과 모양이거나 제석,범천.호세,전륜성왕의 빛깔과 모양이거나 그 밖의 갖가지 한량 없는 빛깔과 모양으로부터 내지 축생의 빛깔과 모양을 나타내어 보임이라.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이러한 나타냄을 나타내고는 그의 반응에 따라 설법한다. 만약에 어떤 중생이 스스로 큰 세력을 지녔다고 생각하여 교만하고 성내고 미워하거나 훌륭한 체한다면, 보살은 이러한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큰 힘을 나타내 보이나니, 이른바 나라연(那羅延)의 힘 4분의 1.혹은 4분의 2. 4분의 3을 나타내 보이거나, 또는 수미산왕의 높이 16만 8천 유순과 세로와 가로 8만 4천 유순을 나타내 보이고서 세 손가락으로 그 몸뚱이를 들어 다른 곳 한량 없는 세계에 던져 두되 마치 아마라(阿摩羅) 과일 한 개를 던지는 것처럼 하여도 보살의 힘에는 아무런 손상과 감소됨이 없으며, 또 3천대천세계를 끊어 가지고 땅 및 바다물이 다되는 짬까지를 손으로 들고 높이는 색구경천의 이마에 이르러 한겁(劫)을 지나도록 머무나니, 보살이 이같은 큰 세력을 성취하여 나타내 보일 적에 능히 성내고 미워하고 교만하고 훌륭한 체하는 이런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을 잘 조복하게 하며, 조복할 줄을 알게 한 연후에 그 반응에 따라 설법한다. 이 보살은 뜻대로 하는 신통을 닦아 능히 지혜로써 변화하는 세력을 얻고 변화하는 세력으로써 모든 하고자 하는 일을 죄다 성취하느니라. 큰 바다를 변화시켜 소 발자욱을 만들지라도 큰 바다 적어지지 않고 , 또 소 발자취를 변화시켜 큰 바다를 만들지라도 소 발자취는 커지지 않는다. 만약에 겁수가 다하여 화재가 일어나려고 할 때에 그 불을 변화시켜 물을 만들고자 하여도 능히 뜻대로 변화시키고 , 수재가 일어날 때에 그 물을 변화시켜 불을 만들거나 풍재가 일어날 때에 그 바람을 변화시켜 불을 만들거나 화재가 일어날 때에 그 불을 변화시켜 바람을 만들거나 풍재가 일어날 때에 그 물을 변화시켜 바람을 만드는 이러한 가지가지 변화를 죄다 성취한다, 만약에 상.중의 법을 뜻대로 변화시키더라도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제석천이건, 범천왕이건 마왕 파순이건 마왕의 권속이건 그 누구이건간에 보살의 뜻대로 하는 신통을 이동하거나 머물게 하거나 파괴할 수 없으며, 이 보살은 갖가지 변화를 일으켜서 모든 중생에게 보여 그들로 하여금 기쁘게 한 연후에 뜻에 따라 설법함으로써, 이 보살의 신통은 용맹스럽고 건전하고 자재로워 모든 악마와 번뇌의 경계를 벗어나 부처님 경계에 들어가고 중생을 괴롭히지 않으며, 모든 착한 뿌리를 죄다 성취하므로 어떠한 마군의 무리라도 끊을 자가 없느니라. 이것을 보살의 뜻대로 하는 신통의 다할 수 없음이라 한다. 사리자여, 보살의 4섭법도 다함이 없나니, 애어.행.동사니라. 보시가 또 두 가지 있으니, 재물의 보시와 법의 보시가 그것이며, 사랑하는 말씨라 함은 재물을 구하는 사람에게나 설법을 듣는 사람에게 유화하게 말함이며, 이익 되는 행이라 함은 재물구하는 사람과 설법듣는 사람에게 그 요구에 따라 죄다 만족하게 함이며, 이익을 같이 함이란 대승으로서 자기를 이익되게 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편히 머물게 함이다. 또 보시란 남에게 구걸함을 보고 마음을 청정히 함이요, 사랑하는 말씨란 것은 모든 구걸하는 사람에게 기뻐하는 마음으로 대함이며 이익 되는 행이란 것은 모든 구걸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이익되는 일을 원만히 갖추게 함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항상 대승으로써 중생을 권하고 가르침이다. 또 보시란 이른바 버리는 마음이요, 사랑하는 말이란 것은 행동에 제한이 없음이요, 이익되는 행이란 필경에 뉘우치지 않음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대승 회향함이다. 또 보시란 사랑함을 일으켜 버림을 행함이요, 사랑하는 말씨란 것은 기뻐하는 마음을 내버리지 않음이며, 이익되는 행이란 것은 크게 슬퍼하는 마음을 장엄하여 중생을 이롭게 함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높고 낮음을 버리고 온갖 지혜에 회향하기를 발심함이다. 또 보시란 법대로 재물을 구하여 깨끗하게 보시를 행함이요, 사랑하는 말씨란 것은 사랑할 자를 인도하여 법에 편히 머물게 함이며, 이익되는 행이란 것은 자기 이익을 말하여 다른 사람을 이익되게 함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지혜의 마음을 내게 함이다. 또 보시란 안팎을 다 버림이요, 사랑하는 말씨란 것은 공덕과 지혜로써 마음에 인색함이 없음이며, 이익되는 행이란 자기의 이익되는 행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됨을 행함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좋은 지위를 내버려도 처음부터 뉘우치는 마음이 없음이다. 또 법보시란 것은 법을 들은 그대로 죄다 연설함이요, 사랑하는 말씨란 것은 이양을 위해서 법을 연설하지 않음이며, 이익 되는 해이란 것은 다른 사람을 가르쳐 풍자하거나 외우게 하되 마음에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음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온갖 슬기로운 마음으로 미묘한 법을 얻어 곧 이 법으로써 권하고 장려함이다. 또 법보시란 것은 설법 듣는 낱낱의 중생을 위해 차례로 설법하되 그릇됨이 없음이요, 사랑하는 말씨란 것은 남을 위해 설법하되 멀고 가까움을 사양하지 않음이며, 이익되는 행이란 것은 법 구하는 사람에게는 의복.음식.침구를 병들고 수척한 사람에게는 약품을 공급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고 이미 고읍하여 편케 하고는 그 반응에 따라 연설함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강연하거나 설법할 때마다 항상 중생을 권하여 무상보리에 회향함이다. 또 법보시란 것은 모든 보시 중에 가장 훌륭한 보시임을 알고서 이 훌륭한 법으로 남에게 연설함이요, 사랑하는 말씨란 것은 항상 중생을 이익 되게 하려고 말함이며, 이익되는 행이란 것은 이치에 따라 말하고 문자에 따라 말하지 않음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항상 불법을 원만히 갖추기 위하여 설법함이다. 또 보시란 것은 바라밀을 원만히 갖춤이 처음 보리를 수행함이요, 이익되는 행이란 것은 보리에 물러나지 않음이며,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일생만 지나면 부처님 지위에 후보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보시란 보리종자의 근본에 편히 머뭄이요, 사랑하는 말씨란 것은 보리의 싹, 줄기.잎을 길러냄이요, 이익되는 행이란 것은 점차로 보리의 꽃을 피게함이요, 이익을 같이 함이란 것은 보리의 열매를 성취함이라. 이것을 이르되 보살이 네 가지 거둬주는 법으로서 중생을 거둠이 다할 수 없음이라 한다.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의 네 가지 걸림없는 지혜도 다함이 없다.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이냐 하며, 첫째 이치에 걸림 없음이요, 둘째 법에 걸림 없음이요, 셋째 말에 걸림없음이요, 넷째 듣는 자를 즐겁게 하는 말에 걸림 없음이다. 이치에 걸림없음이란 모든 법 가운데 제 1의 제를 앎이니, 이것이 곧 비지(比智)요, 인연,화합.변견(邊見)에 떨어지지 않은 지혜요, 중도에 머물지 않을 지혜요, 12인연의 지혜요, 법성에 어긋나지 않은 지혜요, 진실다운 지혜요, 참된 경지의 지혜요, 공을 깨닫는 지혜요, 상(相)없는 지혜요, 원(願)없는 원의 지혜요, 무위(無爲)의 지혜요, 한 모양을 관찰하는 지혜요, 나 없음을 관찰하는 지헤요, 중생없음을 관찰하는 지혜요, 수명없음을 관찰하는 지혜요, 나 없음을 관찰하는 제 1의 지혜요, 과거를 관찰하는 걸림없는 지혜요, 미래를 관찰하는 치우친 소견 없는 지혜요, 현재를 관찰하는 온갖 종류의 지혜요, 모든 쌓임(陰)을 원수 같다고 관찰하는 지혜요, 모든 경계를 독사 같다고 관찰하는 지혜요, 모든 감관을 허공 같다고 관찰하는 지혜요, 안(內)법은 길이 적멸(寂滅)하다고 관찰하는 지혜요, 바깥 법은 행하는 곳이 없다고 관찰하는 지혜요, 인연은 헛깨비 같다고 관찰하는 지혜요, 생각이 바르게 머뭄을 관찰하는 지혜요, 참음의 바른 법을 관찰하는 지혜요, 좌선을 관찰하는 지혜요, 모든 진리를 관찰하는 지혜요, 고(苦)의 화합하지 않음과 집(集)의 조작하지 않음 멸(滅)의 자성과 도(道)의 도달함을 관찰하는 지혜요, 모든 법을 분별하는 지혜요, 중생의 모든 근기와 심행이 곳에 따라 느낌을 관찰하는 지헤요, 어떤 힘으로서도 굴복시킬 수 없는 지혜요, 모든 깨달음을 사실대로 아는 지혜요, 선정을 받아 지니는 지혜요, 슬기로운 광명의 지혜요, 헛깨비처럼 장엄함을 관찰하는 지혜요, 더울 때 아지랑이처럼 아득함을 관찰하는 지혜요, 꿈속의 욕망을 관찰하는 지혜요, 메아리의 인연을 관찰하는 지혜요, 거울 속의 형상이 오고 감이 없음을 관찰하는 지혜요, 갖가지의 모양이 모양 없는 것임을 관찰하는 지혜요, 세간에 얽매임과 얽매이지 않음을 관찰하는 지혜요,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음을 관찰하는 지혜요, 성문승(乘)의 다른 데로부터 들음과 연각승의 12인연을 관찰함과 대승의 모든 착한 뿌리를 원만히 갖춤을 관찰하는 지혜라. 이것을 보살의 이치에 걸림 없는 지혜라 한다. 또 이치에 걸림 없음이란 , 모든 법의 이치를 생각함이라, 왜냐하면 이 모든 법은 나와 남이 없고 중생과 수명이 없기 때문이니, 나와 남 없고 중생과 수명 없음을 곧 이치라 하고, 이 이치와 같고 물질의 모든 법이 다 그러하므로 이것을 이치에 걸림 없음이라 한다. 또 이치에 걸림 없음이란, 이 머뭄 없는 말이요, 다함없는 말이요, 온갖 법을 얻은 말이니, 이같이 이치에 걸림 없는 말은 여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이 진실한 이치는 그 근본이 다름이 없으므로, 지혜로써 분별함에 장애가 없나니, 이것을 이르되 보살의 이치에 걸림없음이 다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사리자여, 보살의 법에 걸림 없는 지혜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착한 법 착하지 않은 법과 세간의 법, 출세간의 법과 조작할 수 있는 법, 조작할 수 없는 법과 번뇌있는 법, 번뇌없는 법과 유위.무위법과 그릇된 법 옳은 법과 생사의 법, 열반의 법, 이러한 모든 법을 관찰함이니, 이 지혜는 법성의 평등함과 보리의 평등함과 지성(智性)의 평등함을 관찰하므로, 이것을 법에 걸림없는 지혜라 한다. 또 법에 걸림 없음이란, 중생들의 탐욕이 많은 행과 탐욕이 적은 행과 처음 탐욕을 내는 행과 탐욕을 내는 모양의 행과 현재 탐욕으로 반연한 행과 현재의 인연으로 탐욕내는 행을 관찰함이다. 어떤 중생은 안으로 탐욕의 행이 있어도 바깥은 탐욕의 행이 없고 바깥으로 탐욕의 행이 있어도 안에는 탐욕의 행이 없으며, 안팎으로 탐욕의 행이 있기도 하고 안팎 다 탐욕의 행이 없기도 하며, 빛깔에 대한 탐욕의 행은 있어도 소리.냄새.맛.감촉에 대한 탐욕의 행은 없고 , 소리에 대한 탐욕의 행은 있어도 빛깔,냄새, 맛.감촉에 대한 탐욕의 행은 없고, 냄새에 대한 탐욕의 행은 있어도 빛깔,소리.맛.감촉에 대한 탐욕의 행은 없고, 맛에 대한 탐욕의 행은 있어도 빛깔,소리.냄새.감촉에 대한 탐욕의 행은 없으며, 감촉에 대한 탐욕의 행은 있어도 빛깔.소리.냄새.맛에 대한 탐욕의 행은 없으므로, 이와 같이 중생들의 모든 탐욕의 행에 대한 문을 관찰하는 행에 들어간다. 탐욕의 행이 2만 1천 가지 있고 성내는 행이 2만 일천 가지 있으며, 어리석음은 행이 2만 1천 가지 있고 이것을 등분한 행이 2만 1천 가지 있으므로, 이와 같이 중생의 8만 4천 가지 심행을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고는 그의 반응에 따라 설법하나니, 샤리푸트라여, 이것을 보살의 법에 걸림 없는 지혜 다할 수 없음이라 한다. 사리자여, 어떤 것을 보살의 말에 걸림 없는 지혜라 하는가 하면, 모든 음성을 죄다 관찰하여 분명히 앎이니, 이른바 하늘.용.귀신.건달바, 아수라,가루라. 긴나라,마후라가, 사람인 듯 사람 아닌 듯한 것의 이러한 언어와 문자와 음성을 죄다 알며, 이러한 다섯 갈래 잡류의 중생에 대하여도 그 종류에 따라 낱낱의 음성과 언어와 문자를 알아서 설법하므로, 이것을 말에 걸림 없는 지혜라 한다. 이러한 말과 문자를 생각하고, 깨달아 걸림이 없으므로써, 이 보살은 한 가지 말, 두가지 말 세 가지 말로부터 아무리 많은 말에 이르거나 남자의 말, 여자의 말, 남자의 말도 여자의 말도 아닌 말과 과거의 말 , 미래의 말, 현재의 말까지 죄다 알며, 한 글자로 부터 많은 글자의 말을 아나니, 이것을 말에 걸림 없는 지혜라 한다. 이 말에 걸림 없는 지혜는 말할 때에 그릇됨이 없으며, 막히거나 걸림이 없이 미묘한 말로서 환하게 통하고 하는 말은 다 자세하고 정직하여 거칠지 않으며, 모든 문자와 말 장엄을 원만히 갖춤으로써 듣는 대중이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다. 이러한 갖가지 미묘한 음성은 깊고 멀고 넓고 커서 세속의 진리와 제 1의 진리를 장엄하여 지혜의 화살로써 사사견을 잘 쏘아 물리치나니, 이 말의 걸림 없음을 모든 부처님의 허락하신 것이므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다 기쁨을 얻게 한다. 이것을 보살의 말에 걸림 없는 지혜 다 할 수 없음이라 한다. 사리자여, 보살의 즐겁게 말하고 걸림없는 지혜란 어떤 것이냐 , 그 하는 말씀이 걸림 없고 머물지 않고 빠르고도 민첩하고 영리하여 묻는대로 대답하되 걸림이 없고 어긋남이 없음이라, 이것이 곧 서로 어울리는 대답이며, 참는 힘에 머무는 대답이며, 세속의 진리와 제1의 진리에 의지하는 대답이며,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에 의지하는 대답이며, 모든 법의 章句에 의지하는 대답이며, 4염처,4정근,4여의족. 5근.5력,7각지.8정도의 아주 깊은 이치에 의지하는 대답이며, 적멸한 생각에 의지하는 대답이니, 이른바 즐겁게 하는 말, 걸림없는 지혜란 모든 언어와 문자를 입으로 분별하여 정직하게 대답함이니라, 말하자면, 모든 선정 삼매의 참된 진리를 지혜로써 대답하고 3승을 변론하고 중생을 모든 심행(心行)의 반응에 따라 대답하며,교묘한 말씨는 아양(啞羊)과 같지 않고 억세고 거칠거나 경솔하고 희롱하는 따위의 말이어서 아무런 얽매임이 없으며, 서로 응답함이 어김 없고 미묘하고도 부드러워서 조롱하거나 꾸지람이 없으므로, 성인의 칭찬을 받고 부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과 같이 그 범음(梵音)이 청정하고, 널리 통하여 모두 다 듣게 되나니, 이 즐겁게 하는 말 걸림 없는 지혜는 모든 부처님의 허락하신 바이다. 다른 중생을 위해 미묘한 법을 연설함에 이 법을 듣는 자는 죄다 출세간의 즐거움을 얻고 모든 괴로움을 없애버린다. 이것을 이르되 보살마하살의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 다할 수 없음이라 한다. 사리자여, 보살은 또 4법이 있어 다함이 없나니,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음과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음과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경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음과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을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는가. 말이란 세간법 속에 들어가서 말하고 이치란 출세간법을 알아 문자의 모양이 없으며, 말이란 보시와 조복과 옹호를 말하고 이치란 보시.지계.인욕을 알아 평등에 들어가며, 말이란 생사를 일컬으고 이치란 생사의 성품 없음을 알며, 말이란 열반의 맛을 일컬으고 이치란 열반의 성품 없음을 알며 , 말이란 모든 승(乘)을 해설하여 곳에 따라 편히 머물고 이치란 모든 승을 잘 알아 한 모양의 지혜 문에 들며, 말이란 모든 버림을 해설하고 이치란 버림을 행하는 시기와 버리는 물건과 버리는 마음이 청정하며, 말이란 몸과 입과 뜻으로 깨끗한 계율의 공덕과 위의를 받아 가질 것을 말하고 이치란 몸과 입과 뜻의 조작없음을 분명히 알고서 모든 깨끗한 계율을 옹호해 가지며, 말이란 인욕으로써 성냄과 교만을 끊어버림을 말하고 , 이치란 모든 법을 분명히 통달하여 무생인을 얻으며, 말이란 모든 착한 뿌리를 부지런히 행할 것을 말하고, 이치란 정진에 편히 머물러 처음과 끝이 없으며, 말이란 모든 선정.해탈 삼매를 말하고, 멸진정을 알며, 말이란 온갖 문자와 지혜의 근본을 죄다 들어 간직하고 있지만 이치란 이 지혜의 이치 말할 수 없음을 알며, 말이란 37 조도법을 말하고 이치란 모든 조도의 법 수행함을 알아 능히 그 과를 증명하며, 말이란 고.집.도의 진리를 말하고 이치란 사라짐(滅)의 진리를 증명하며, 말이란 무명의 근본에서 내지 나고 늙고 죽음의 인연을 말하고 이치란 무명의 사라짐과 늙고 죽음의 사라짐을 알며, 말이란 선정과 지혜 돕는 법을 말하고, 이치란 해탈의 지혜를 밝히며, 말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하고 이치란 착하지 않는 뿌리가 곧 해탈인 것임을 알며, 말이란 장애되는 법을 벗어나고 이치란 걸림 없는 해탈을 얻으며, 말이란 3보의 한량 없는 공덕을 찬양하고 이치란 3보의 공덕이 욕심을 여읜 법성과 같아 무위(無爲)모양인 것임을 알며, 말이란 발심으로부터 도량에 앉아 보리를 수집 장엄하는 공덕까지 말하고 이치란 1념의 지혜로서 모든 법을 깨닫는 것이다. 샤리푸트라여, 요약하여 말하자면, 8만 4천의 법을 설명함을 말이라 하고 모든 문자로서 선설할 수 있음은 이치라 한다. 어떤 것을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느냐 , 알음알이란 네 가지 알음알이의 머무는 곳이니, 빛깔 알음알이의 머무는 곳과 느낌의 알음알이 생각의 알음알이 행의 알음알이 이 네 가지 알음알이의 머무는 곳이다. 알음알이란 이 네 가지 곳에 머물지만, 지혜란 이 네 가지 알음알이의 머무는 곳 없음을 분명히 알며, 알음알이란 땅,물.불,바람의 네 가지 원소를 알고, 지혜란 이 네 가지 원소의 법성이 분별없음을 알며, 알음알이란 눈은 빛깔에 , 귀는 소리에, 코는 냄새에, 혀는 맛에, 몸은 감촉에, 뜻은 법에 머뭄을 알고, 지헤란 안의 성품이 적멸하여 바깥에 행함이 없으므로 모든 법의 기억할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알며, 알음알이란 오직 반연한 것을 취하여 분별하기를 생각하고, 지혜란 마음에 반연한 것이 없어 어떤 모양을 취하지 않고 모든 법에 바라는 것이 없으며, 알음알이란 유위법을 행하고 지혜란 무위법에는 알음알이의 행함이 없고 함이 없는 법성에는 알음알이가 없음을 알며, 알음알이란 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모양이 있고 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모양이 없느니라. 사리자여, 이것을 지혜에 의지하고 알음알이에 의지하지 않음이라 한다. 어떤 것을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경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느냐, 요의경 아닌 것이란 수도를 분별하고 요의경이란 과를 분별하지 않으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어떤 업을 짓고 행함에 과보가 없고 요의경이란 모든 번뇌를 다하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모든 번뇌를 꾸짖고 요의경이란 맑고 깨끗한 법을 찬양하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나고 죽음의 고뇌를 말하고, 요의경이란 나고 죽음과 열반이 한 모양이어서 둘이 없음을 알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갖가지의 장엄한 문자를 찬양하고 요의경이란 아주 깊은 경전의 가지며, 어렵고 알기 어려움을 말하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중생을 위해 죄와 복의 모양을 많이 말하여 설법 듣는자로 하여금 마음을 기뻐하게도 하고 슬퍼하게도 하며, 요의경이란 모든 연설에 반드시 듣는자로 하여금 마음을 조복하게 하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나와 남, 중생과 수명, 양육과 사부(士夫), 지음과 받음 따위의 갖가지 문자와 모든 법에 베푸는 자와 받는 자가 없음을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서 는 베품이 있음과 받음이 있음을 말하고, 요의경이란 공하고 무상무원과 짓는 것 없고 생사와 나와 남, 중생과 수명, 양육과 사부, 짓는 것과 받는 것 없음을 말함과 동시에 항상 한량 없는 모든 해탈문을 말함이니, 이것을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경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음이라 한다. 어떤 것을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느냐 , 사람이란 나와 남에 집착한 견(견)으로 짓는이와 받는 이가 있음을 섭취함이요, 법이란 나와 남에 집착한 견으로 짓는 이와 받는 이가 없음을 풀이함이며, 또 사람이란 범부와 착한 사람, 신행하는 사람과 8인(忍), 수다원, 사다함,아나함, 아라한, 벽지불, 보살 등의 사람을 말함이니, 오직 한 사람이 출세함으로써 이익됨이 많아 모든 사람이 안락하게 되며, 세간을 가엾이 여겨 대비심을 내어서 사람과 하늘에 많은 은혜를 주기 때문에 부처님 세존이라 하고, 또 부처님은 세간의 이치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말씀을 하게 된다. 만약 나와 남에 집착한 견을 섭취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람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여래는 이러한 견을 섭취하는 자를 교화하기 위하여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이 법성이란 변하거나 바뀔 수 없고 조작과 조작 아님이 없고 머뭄과 머물지 않음이 없으며, 모든 것이 평등하여 평등도 평등하고 평등하지 않음도 평등하며, 생각 없고 반연 없이 바른 결정을 얻어 모든 법이 차별과 다름이 없으므로, 그 성(成)과 상(相)의 걸림 없음이 마치 허공 같느니라. 이를 법성이라 이르나니, 이 법성에 의지한다면, 마침내 한 모양의 법을 여의지 않고 이 법문에 드는 자는 모든 법이 한 법성과 같음을 관찰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리자여, 이것이 바로 보살의 네 가지 의지하는 법 다함 없음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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